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02)
0302 ———————————————-
천계(天界)
황궁의 외벽을 넘어서 진입하자, 선봉에 있던 백련교 수신류의 고수들이 황궁 어림군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어림군의 대장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적도들을 막아라!!”
약간 후위에서 지켜보던 나는 황궁 어림군이 넓은 광장에 무려 수천 명이나 몰려있는 걸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 많다!’
그것도 모두가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고 정식무공을 수련한 자들! 그들이 방진을 구축해서 마치 산악처럼 버티고 있는 건 압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수천 수만명의 어림군에게 덤벼드는 백련교의 수신류 고수들은 고작해야 예닐곱 명에 불과했다. 누가 보더라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였다.
콰과광
거기에다가 어림군은 대포까지 쏘기 시작했다. 멀리에서 날아오는 대포에 수신류의 고수 중 한 명이 피하지 못하고 맞아 버렸다. 수십 문이나 되는 포격이 한 자리에 쏟아져 내렸다.
쿠구구…
하지만 연기가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수신류 고수의 멀쩡한 모습이었다. 새까만 묵의(墨衣)를 입고 등에 수(水)의 문양을 새긴 그 수신류 고수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자는 몸 근처에 투명한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다.
“……!!”
“세상에!”
우리는 그 무위(武威)를 보자 경악했다.
대포를 호신강기로 막다니!
초절정고수들은 호신강기를 시전해서 적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내곤 하지만 대포는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리 기를 모아서 방어력을 높인다고 해도 대포같은 물리력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도 수신류의 고수는 호신강기를 집중해서 수십 문이나 되는 대포의 화력을 맨몸뚱이로 감당해낸 것이다. 나라고 해도 저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검마가 침음성을 흘렸다.
“음… 일부러 맞은 건가.”
수신류 고수의 무공이면 대포가 발사될 곳을 예측해서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맞았다는 건 일부러 자기 호신강기의 위력을 과시하려는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무력시위 한 번에 전면에 있던 황실어림군들이 공포에 질렸다.
“히이이익.”
“괴물이다.”
퍼버벅
이윽고 황실어림군에게 접근한 수신류의 고수들이 수장(手掌)을 휘둘러서 강기를 뿜어내었다. 사방에 빛을 내며 몰아치는 강기가 앞을 막는 황실어림군들을 한번에 수십 명씩 쓸어버렸다. 황실어림군들은 무림문파에 못지 않은 무공을 훈련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신류 고수들의 강기세례를 버틸 수가 없었다.
“으아악.”
“싸워라, 싸워!! 물러나면 안 된다!!”
콰광!!
비명과 아비규환이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어림군의 전열이 무너졌다. 수신류 고수들은 마치 양떼에 뛰어든 사자처럼 처참한 학살을 벌이고 있었고 감히 대항할만한 자가 없었다. 심지어 강기를 쉴틈없이 뿜어내는데도 피로따위는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스팟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끼어들어야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우리 근처로 한 명의 수신류 고수가 이형환위의 경공으로 나타났다. 그 자도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팔짱을 끼며 우리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내궁(內宮)으로 가시오. 교주께서 기다리겠다 말씀하셨소.”
“정말 도와주지 않아도 되오?”
“원로원이 곧 가세할테니 걱정 마시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여기저기에서 원로원 고수들이 나타나서 선봉에 선 수신류를 돕기 시작했다. 초절정고수 수십 명이 날뛰기 시작하자 어림군은 도저히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이윽고 지옥도가 펼쳐졌다.
여기저기에서 수천 명씩 다시 어림군이 충원되었지만 백련교 고수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풍신류나 화신류의 고수들도 몰려들어서 마주 힘싸움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숫자로는 황궁 쪽이 훨씬 많았지만 실력의 밀도가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럼…”
파밧
우리는 전장을 피해서 지붕을 타서 내궁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고수들이 잠입한 모양인지 여기저기에서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성이 들려왔다. 이게 바로 진짜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크아아악!!”
비명소리를 지르며 백련교 고수 한 명이 처참하게 죽었다. 공격 한 번에 오체분시되는 모습이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이 노옴!!”
그 자의 옆에 있던 동료들이 분노해서 눈 앞의 적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풍신류의 고수들인지 풍백보를 쓰면서 도기(刀氣)를 시전하며 합공했는데,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는 ‘그것’은 거칠게 자신의 팔을 휘둘렀다.
퍼버벅
“끄아악.”
엄청난 힘과 속도! 풍신류 고수들은 다섯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는데 순식간에 세 명이 즉사하고 말았다. 자세히 보자 ‘그것’은 이미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으며 머리통이 마치 도마뱀의 그것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전신의 피부가 시꺼먼 비늘로 뒤덮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독고성이 날카롭게 외쳤다.
“용인(龍人)인가!”
“초인병을 보내기 시작했군요.”
외궁의 황실어림군이 힘을 쓰지 못하자 내부에서 초인병으로 대응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끄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슬며시 용인으로 보이는 초인병들이 걸어나오기 시작했고 놈들은 하나같이 흑룡(黑龍)으로 변이하기 직전의 생김새였다. 이미 인간의 형상을 탈피한 것이다.
검마가 말했다.
“놈들과 정면승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빨리 벗어나세.”
이 자리에 모인 고수들의 실력이면 용인 열 마리 정도는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용인이나 마인이 얼마나 충원될지도 모르는데다가 진짜 적은 놈들이 아니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제갈사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내게 맡겨라!”
우웅
제갈사가 부적을 허공에 띄워올리자 우리 주변에 어두운 막이 생겨났다. 그 막이 우리 일행을 감싸자 용인들은 바로 삼 장 앞에 우리가 있는데도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제갈사가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자 용인들은 코앞을 지나가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나는 신기해서 물어봤다.
“이것도 배교의 술법이오?”
“이족의 기운과 동화시킨 거다. 그렇다고 놈들을 공격하지 마. 선공하면 풀리니까.”
“알았소.”
우리는 용인들의 포위를 뚫고 더욱 깊숙한 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길 뒤편에서 백련교의 고수들이 몰려들어서 용인이나 마인들과 혈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백련교의 초절정고수들도 용인의 타고난 신체능력을 감당하기 힘든 듯 상당히 백중세로 보였다.
잠시 후 우리가 가장 안쪽인 황제의 태룡전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거기에는 교주를 포함해서 3인의 호법사자들이 서 있었다. 교주가 힐끔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 늦었군.]처음으로 보는 백련교주의 맨 모습!
그는 금색 수실이 새겨진 자색 장포를 입고 있었으며 관(冠)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또한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아무런 표정이나 형상도 새겨지지 않은 무면(無面)이었다. 그 모습이 되려 사람을 오싹하게끔 만들었다.
뜻밖에도 체격은 꽤 작아 보였다. 어깨가 다소 좁아 보였고 무공을 하기에 적합한 체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힘만큼은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백련교주가 말했다.
[ 뭔가 강력한 결계가 태룡전에 걸려 있다. 혹시 뚫을 방법이 있겠나?]교주의 말에 천우진이 태룡전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팔진도군. 내가 밖에서 해제하고 있을테니 들어가 보시오.”
[ 호오… 가능한가.]
교주는 감탄한 듯 말했다.
[ 백웅. 그대는 좋은 동료를 많이 가지고 있군.] “……”나는 뭐라고 대답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직까지 나는 백련교주의 진짜 의도를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백련교주가 이 자리에서 뇌신류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파지직
천우진이 팔진도의 결계에 틈새를 만든 듯, 견고해 보였던 태룡전의 전면에 균열이 생겨났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깨어지듯 비틀어진 틈새가 육안으로 보였다. 천우진이 우리에게 경고했다.
“자기 몸을 지킬 자신이 있는 자만 들어가시오! 어설픈 실력으로 들어가면 개죽음이오.”
[ 그렇군… 주변의 잡놈들도 처리해야하니.]
스스스
주변에서 초인병들이 몰려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교주와 호법사자들이 이미 꽤 처치해 둔 흔적이 있었는데도 이 곳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지 쉴새없이 적의 증원군이 몰려드는 것이다. 교주가 놈들을 보자 귀찮다는 듯 자신의 손을 꽉 쥐었다.
[ 죽어라.]퍼버버벙
[ 크에에엑!!] “……!!”장내에 있던 모든 고수들이 경악했다. 그저 손을 쥔 것 뿐이었는데, 몰려들었던 20여체의 용인들이 일격에 분쇄당했기 때문이다. 용인의 전투력은 초절정고수에 못지 않았는데 단숨에 학살해버리는 모습은 가히 인간의 무공을 초월해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호법사자라 해도 저 권능을 흉내낼 수조차 없었다.
교주의 엄청난 능력에 용인들이 되려 겁을 먹어서 뒤로 물러났다. 교주가 좌중을 힐끔 둘러본 후 말했다.
[ 나와 호법사자들이 들어가겠다. 백웅 너도 올테냐?] “물론입니다.”[ 먼저 간다.]
파밧
이윽고 교주와 호법사자들이 태룡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들어가지 마라.”
“무슨 소리요?”
“이이제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교주와 황제가 싸워서 상잔(相殘)한 놈을 해치우는게 제일 낫지 않겠냐?”
난데없는 제갈사의 제안이었다. 내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옆에 있던 검마와 독고성도 한 마디씩 했다.
“그게 좋겠네.”
“들어가 봤자 저 괴물들에게 도움이 안될 것 같다.”
분위기가 백련교주를 따라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갈사의 제안은 단순히 미친 게 아니라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황제와 백련교주의 공멸(公滅)은 우리에게 매혹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닙니다. 따라가야겠습니다.”
“왜?”
“교주는 그렇게 허술한 자가 아닙니다. 왠지 뒤통수를 치려 하다가는 그의 진짜 어금니에 당해버릴 거란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그의 움직임을 근처에서 살피는 편이 낫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전생을 통해서 백련교주를 직간접적으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느낀 점은 백련교주가 둔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아도, 매우 의뭉스럽고 노회하게 전국(戰局)을 주도한다는 점이었다. 이 자리에 우리가 남겨질거란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을텐데도 일부러 내버려두고 반응을 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흠…”
검마가 곰곰히 생각하다 말했다.
“그것도 자네의 직감인가?”
“네.”
“그럼 믿어야겠지.”
검마는 내 말에 납득한 후 주변에 말했다.
“그럼 우리는 이 자리에서 퇴로를 확보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무영문의 고수들이 검마의 말에 크게 기합을 내질렀다. 그들은 결사의 각오를 하고 온 모습이었다. 독고성이 말했다.
“백웅. 같이 들어갈 사람을 정해라. 가능하면 네게 도움이 되는 자로.”
독고성의 말에 나는 망설임없이 말했다.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뭐라고?”
“그게 제일 낫습니다.”
나는 오제 전욱에게서 가호를 받아서 확실하게 언령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 그리고 아마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유사시에 비등으로 빠르게 몸을 뺄 수 있는 내가 혼자 들어가는 게 나았다.
“음… 그렇게 해라.”
독고성과 검마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 말에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광이 말했다.
“나도 따라가겠다.”
“무슨 소리요?”
“방해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는 이광의 말에 싸늘하게 대꾸했다.
“안 되오. 당신을 데려가봤자 도움될 게 없소.”
“……”
“무력으로 윽박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보시오. 여하튼 여기는 당신이 나댈 자리가 아니오.”
이광은 모멸감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내 눈을 빛내며 갑자기 내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
“제발 부탁이다. 나는 반드시 황제를 만나봐야 한다.”
설마 천하의 이광이 자존심을 숙이고 내게 무릎을 꿇을 줄이야!
나는 당혹스러웠고 옆에 있던 진소청이나 다른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광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존광대하기로 천하에서 둘도 없는 자가 태룡전에 들어가려고 무릎까지 꿇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황제를 봐서 뭣하겠다는 거요? 이미 여기까지 일이 치달았으니 그를 죽이는 수밖에 없을진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서 꼭 확인해야할 게 있다. 제발 부탁이니 나를 데려가 다오.”
“으음…”
“내 평생의 소원이다.”
그리고 나는 옆에 있던 진소청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사부가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자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나뿐인 스승이 내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 그리 보기 좋은게 아닐 것이다.
‘ 에이, 제기랄.’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 따라 오시오.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나는 당신을 구해낼 깜냥이 없으니 그것만 알아 두시오.”
“물론이다. 내 몸은 내가 지키겠다.”
“알았소.”
타닷
나는 이윽고 이광과 함께 태룡전에 진입했다. 태룡전에 진입하자 이 곳이 궁궐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내부의 광경은 마기(魔氣)로 가득찬 동굴처럼 변해 있었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 곳은 마력에 너무 노출되어서 이계(異界)가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내 귀에 천우진의 외침이 들려왔다.
[ 팔진도에 길을 만들었으나 완전하지 않소. 앞으로 쭉 나가시오. 한 식경 이내에 진(陣)을 통과하지 못하면 죽을 것이오!]나는 천우진의 조언대로 하기로 했다.
“한 식경 내에 궁을 통과해야 하오. 옥좌의 방까지 가야 하니 따라 오시오.”
“알겠다.”
나와 이광은 빠른 경공으로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용인과 마인들이 나타났다. 놈들은 엄청난 신체능력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달려들었는데 굉장히 빨랐다. 용인 한 놈의 손톱공격을 칼로 막아내자 몸뚱이 내부가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엄청난 파괴력을 잠재하고 있었다.
‘ 빌어먹을… 의념절기를 안 쓰면 인간의 신체능력으로는 승산이 없어.’
밖에 있던 놈들보다 훨씬 강해보이는 친위대급인 것 같긴 했지만, 새삼 초인병의 위력을 실감했다. 초절정고수라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겠지만 천하무림에 초절정고수는 희귀한 존재였다. 이런 놈들을 양산하도록 내버려두면 감당이 안 될 것이다.
까앙!
“크으윽.”
이광은 괴로운 듯 연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용인 다섯 마리가 합공해 오자 이광의 무공으로는 버티기가 힘든 것이다. 애초에 초인병은 인간이 상대할만한 존재가 아닌데 어떻게든 상대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긴 했다.
나는 별 수 없이 막야의 힘을 크게 끌어올랐다.
“울어라 막야!!”
키기깅
은빛 칼날이 마치 태양처럼 빛나며 뻗어나왔다. 그 순간 막야의 은인(銀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시공간을 격해서 한꺼번에 적을 베어버렸다. 순식간에 우리에게 달려들던 용인들이 회쳐져서 피곤죽이 되어버렸다.
후두둑
“허억… 허억…”
“괜찮소?”
이광은 벌써 꽤 피로해진 모양이었다. 용인 한 마리도 꽤 버거운 강적인데 그런 놈들을 다섯 마리나 마주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광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괜찮다… 어서 황제에게 가자!”
나는 순간 묘한 걸 느꼈다. 이광의 집착이 마치 광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지니고 있는 왜곡되고 광신적인 충성심과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광에게 말했다.
“만일 당신이 황제에게 조종당한다면 나는 거침없이 당신을 베어버릴 것이오.”
“맘대로 해라.”
타닷
계속해서 뛰어들어가면서 용인들이 쉴새없이 나왔다. 먼저 교주와 호법사자들이 지나가서 여기저기에 용인과 마인 시체가 널려있는데도 계속 덤벼드는 걸 보면, 이 태룡전에만 수백 개체가 있는 듯 싶었다. 실로 용담호혈인지라 나는 기가 질리는 걸 느꼈다.
‘ 이런 미친…’
백련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끼리만 황제를 쓰러뜨리는 건 이미 어불성설인 단계에 와있었던 것이다. 나는 삼황오제의 가호를 받을 경우 황궁 세력이 얼마나 강력해지는지를 실감하자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키기기깅!
막야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은색 광채를 뿜어냈다. 막야의 힘은 마(魔)를 벨 때마다 기세를 더해가는지 엄청난 진동음을 울렸다. 나는 혹시나 여동빈이 강림하지 않는지 기색을 살펴보았지만 여동빈은 단말을 통해서 강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윽고 빛의 통로를 통해서 바깥으로 나오자 팔진도를 벗어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숨 돌렸군.”
용인의 피로 피칠갑이 된 상태로 먼지쌓인 밀실의 공기를 들이마시자 엿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한숨 돌리고 있자 이광이 질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무기는 실로 신병(神兵)이군…그 괴물들을 그리 쉽게 참살하다니.”
“탐내지 마시오. 나는 이걸 얻으려고 몇 번이나 죽었소.”
“……”
그 때였다.
“이럴수가… 오늘은 대체 무슨 날이지? 황궁이 멸망하려고 이러는건가?”
다소 어눌한 중원말이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나와 이광이 그쪽을 쳐다보자, 거기에는 한 노인네와 중년인이 서 있었다.
단지 놀라운 점은 그들 두 명이 서역인(西域人)이라는 사실이었다. 금빛 머리카락에 새파란 눈, 색목인(色目人)이기도 했다. 내가 저 자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황제의 동료요?”
그러자 늙은 색목인이 앞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예수회의 명으로 대명 제국에 파견나와 있는 마테오 리치라고 하네… 그리고 이 쪽은 내 호위역인 한스 탈호퍼일세.”
옆에 있던 갈색 머리칼의 중년남성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또한 검기(劍技)로 보아 초절정 경지의 고수로 보였다.
“……?”
생뚱맞은 자들의 등장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선교라니?
이 자들은 대체 이 시점에 왜 황궁에 와 있다는 말인가?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마테오 리치가 말을 이었다.
“에메랄드 타블렛이 황궁에 있다는 정보를 얻어서 와 봤지만 엄청난 난리군…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닐 듯 하니 이만 가 보겠네.”
“잠깐! 무슨 소리요? 당신들은 대체…”
“곧 사도가 강림할 느낌이 들어. 자네들도 어서 도망치게.”
마테오 리치는 잠시 후 허공에 이상한 물고기 문양의 문을 만들어내서는 한스 탈호퍼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무래도 정말로 이 자리에 뻘쭘하게 찾아왔다가 퇴장한 모양이었다. 나는 난데없는 만남에 당황스러웠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 사도!’
사도가 강림한다면 곧 달기가 다시 나타난다는 말인가?
그 때 천우진의 말이 들려왔다.
[ 팔진도를 잘 뚫은 것 같군. 내가 느끼기에 지금 교주와 황제가 옥좌의 방에서 대치하고 있는 듯 싶소. 서둘러 가 보시오.]지체할 때가 아니다.
진정한 대결전이 눈앞에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