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1)
0031 ———————————————-
금의위(錦衣衛)
스스스…
전도귀 위종의 목도(木刀)는 마치 아지랑이같은 그림자를 일으키며 서서히 움직였다. 나는 그 움직임을 동체시력으로 쫓기가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목도 근처에 흐르는 아지랑이가 기(氣)로 만들어진 환영(幻影)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무술을 사용하는 자와 상대해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눈을 꿈벅거렸다.
‘ 뭐지? 아.’
나는 그 순간 전도귀 위종과 나의 거리가 어느 새 좁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로 아무런 전조도 없었는데 2장은 되던 거리가 갑자기 1장보다 훨씬 좁혀져 있었다. 이것은 아마 엄지발가락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거리감각을 흐리는 원리일 것이다.
나는 전도귀 위종의 보법(步法)에 말려들면 귀찮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단도를 휘둘렀다.
까앙!
전도귀 위종의 목도와 내 단도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벼락같은 기운이 한 차례 무형의 파장을 떨쳐낸다. 본래라면 전도귀 위종쯤 되는 일류고수가 휘두르는 공격을 일개아이의 단도로 막아내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휘청
그러나 전도귀 위종은 반탄력(反彈力) 때문에 손아귀가 찢어지며 자신의 목도를 놓칠 뻔 했다. 그의 목도는 부러지지는 않았으나 살짝 안쪽으로 휘어졌으며, 위종의 입에서는 한 줄기 피가 치솟았다.
“헉…!!”
전도귀 위종은 가까스로 목도를 붙잡았으나 이미 그의 팔은 허공으로 번쩍 들어올려지고 자세는 빈틈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엉거주춤 뒷걸음질치며 물러나던 그는 한참 후에 가까스로 중심을 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으헉, 헉, 헉…!! 무, 무슨 내공이…?!”
“방금 전력(全力)으로 공격한 거지?”
“……”
내가 이죽거렸지만 전도귀 위종은 이마 가득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잔뜩 얼어있는 상태로 도망칠 기회만 보고 있는 듯 했다. 원래 일반 산적이라면 되려 투지를 불태우며 덤벼오겠지만, 그는 상당한 무예의 고수이기에 내 단도에 실려있는 내공의 가공한 잠력(潛力)을 알아챈 것이다.
“너, 너는 누구냐?”
“보다시피 지나가던 어린 소년인데.”
나는 그를 고요히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무슨 용건이길래 남궁환과 모용연을 찾는 거냐?”
“크으으… 개방에서도 나섰다니.”
“개방 아니라니까.”
나는 끝끝내 그가 나를 개방소속의 소년고수라고 오해하자 항변했다.
“나는 모용연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나와 이야기할 생각이 없는 듯, 급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찢어진 손아귀를 부여잡고 달아났다.
쐐액
나는 그가 담장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 마주 뛰어올라서 그의 등 뒤에 단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전도귀 위종은 허공에서 마치 잉어처럼 능활한 경공을 발휘하더니 내 공격을 피해버렸다. 아무래도 공력만 많이 실려있지 힘과 속도가 충분치 않기 때문으로 보였다.
손쉽게 내 공격을 회피하는 걸 보면 과연 전도귀 위종은 일류고수였다. 그는 다른 집 지붕에 착지하자마자 그 탄력으로 빠르게 도망쳤다.
“이봐!”
나는 내 경공이라면 저 놈을 쫓아가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파고드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아서 전도귀 위종을 고문(拷問)이라도 할 것인가? 전도귀 위종은 도적이나 강도가 아니라 엄연히 강호인이라서, 자칫 잘못 얽히면 후환이 10배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내 호기심이나 필요의 정도에 비하면 일류고수를 겁박하는게 그리 좋지는 않았다.
‘ 흠 여기까진가…’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방금 전도귀 위종과의 짧은 대결을 생각해 보았다. 전반적으로 내가 압도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전도귀 위종이 내 내공을 알지 못하고 평상적인 초수대결을 하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전도귀 위종의 목도가 환도술(丸刀術)로 움직이며 보법과 조화를 이루는 솜씨가 대단했으며, 지금의 나로써는 따라잡을 수 없는 무기술의 경지로 보였다.
아직 나는 무공의 깊이가 부족하다. 만일 내공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방금 전에도 위종을 잡을 수 있었을텐데 놓쳐버린 것이다. 동시에, 나는 지금이 바로 선택해야 할 순간이란 걸 알아챘다.
고수들의 기운이 움직이고 있었다. 4개의 일류고수급 기운이!
‘ 속도는… 다들 걷는 속도인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움직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마도 방금 전 나와 위종이 격돌한 기파를 은은하게 느낀 것이리라. 일반인은 거의 감지할 수 없는 기의 파장이었으나 일류고수들에게 있어서는 정수리에 차가운 물 한방울이 떨어진 것 만큼이나 선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만 이쪽으로 바로 향하는 게 아니라 걷고 있다는 것. 저 녀석들은 근처에서 고수들이 격돌하는 건 알아챘지만 그 위치를 특정하지는 못했고, 의문의 적을 경계하기 위해서 움직였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자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 저 놈들의 감각은 현재 야생동물처럼 예민해져 있는 상태야. 만일 한 놈에게 더 시비를 건다면 그 즉시 나머지 놈들이 선불맞은 멧돼지처럼 달려오겠지. 그건 별로 원하는 상황이 아닌데…’
나는 처음부터 전도귀 위종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가 갑자기 호전성을 발휘하는 바람에 초수를 섞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저 찰나간의 가벼운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일류고수들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조용히 뒷골목 안으로 다시 내려섰다.
모용연은 아마 남궁환의 약혼녀의 이름일 것이다.
그런 모용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저 전도귀 위종은 모용연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뜻인가?
그래서 창천검룡 남궁환에게서 그녀를 쟁탈하겠다는 뜻인가?
‘ 좀 아닌데.’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가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전도귀 위종이 만일에 사랑때문에 움직이고 있었다면 그의 눈빛이나 행동에는 누군가를 사모하는 간절함이 깃들어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도귀 위종을 처음 뒷골목에서 보았을 때부터 그는 냉막한 얼굴로 철저한 계산을 굴리는 기색이 강했다. 게다가 모용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 자체도 왠지 억양이 달랐다.
그것은 마치 ‘물건’에 대한 탐욕과도 비슷했다.
나는 골목에서 나온 후, 내 기세를 최대한 가라앉히며 거리를 다시 걸어갔다. 원래라면 뇌룡일기공 때문에 내 가공할 내공을 숨기기가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현천신공이 기세숨기는 걸 쉽게 해 주었다. 단순히 오행의 상생효과 뿐만이 아니라 내공의 강약조절이 한층 쉬워졌기에 현천신공을 익힌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파앗
“……”
나는 길가에서 스쳐지나간 자색 옷의 남성을 힐끔 뒤돌아보았다.
저 자는 상당히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였는데 눈가에는 왠지 여자같은 염기(艶氣)가 맴돌고 있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음기(陰氣)나 화장품냄새가 나서 독특한 남자였다. 무엇보다도 저 자가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던 4인의 일류고수 중 한 명인게 분명했다.
‘ 완전 기생오래비로군. 저런 자도 모용연을 노리고 있는건가?’
나는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파에 섞여 들어갔다. 어차피 일이 어찌되었든 간에 이제는 나의 낮도깨비같은 호기심이 휘발(輝發)되었다. 필요한 만큼만 발을 담궜으니 이제는 뺄 일만 남은 것이다.
이번 일은 다음에 알아보자.
이제부터는 청룡무관에 들어갈 생각만 하자.
‘ 그나저나 개방이 뭐야 개방이?’
기분이 나쁘다.
나는 숙소에 돌아오기 전에 포목점에 들러서 간단한 아이용 활동복을 샀다. 그리고 조금 일찍부터 쉬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침상에 편하게 누워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실제로는 엄청난 내공 때문에 그닥 피로를 느끼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다음 날, 나는 잘 자고 일어나서 청룡무관으로 향했다.
“가자.”
과연 청룡무관은 나를 어떻게 받아줄 것인가.
청룡무관 앞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문지기 2인조가 서 있었다. 문지기 2인조라고 하지만 사실 이들은 청룡무관의 이선(二線) 문하생(門下生)인 방일과 방곡이었다. 그들은 방씨형제라고 불렸고, 그 중 방일은 뚱뚱하고 살집있는 체구의 소유자로써 내가 처음 청룡무관에 발을 들일 때 나와 팔씨름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사실 방일과 그리 좋은 감정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당한 연차가 지나서 그를 다시 보게 되자 나쁜 감정보다는 왠지 반갑기까지 했다. 사실 그동안 내가 전생(轉生)하면서 겪은 고초에 비하면 방일의 질투 정도는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청룡무관의 경비를 서고 있는 방일에게 말했다.
“청룡무관에 입관시험을 치러 왔습니다.”
“입관시험? 크하하, 웃기는 놈일세.”
“우와…”
나는 순간 입을 벌렸다.
놀랍게도 내가 처음 청룡무관에 왔을 때 했던 말을 똑같이 하자, 방일의 대답도 그 때와 똑같이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놀라든말든 방일의 말은 ‘똑같이’ 이어졌다.
“꼬마야. 너는 혹시 관중의 육대가 출신이냐?”
“아니오.”
“그러면 어렸을 때부터 내공의 기초를 다졌느냐?”
“……”
나는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었다. 설마 이런 상황을 겪게 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방일이 과거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할 줄이야! 신기하면서도 뭔가 의미있는 일 같았다. 나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네.”
“그럼 거, 후배가 되실 꼬맹이의 내공이나 시험해 볼까?”
“살살 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방일이 곧 진각을 내지르며 솥뚜껑같은 손을 내미는 전개까지 오자, 나는 순간 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 최대한 예전과 똑같은 대답과 행동을 해 보자. 그래도 비슷한 반응이 나오는지 알고 싶다.’
곧 간단한 방일의 자기과시 후에 팔씨름 전개가 되었다.
……
…
당연하지만 내가 이겼다.
새끼손가락으로 해도 이길 거 같았지만 일부러 힘을 좀 조절했다.
스으으
“허억!”
“절은 됐고 관주님께 말이나 잘 해 주십쇼.”
방일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왔다.
“너 잠시 날 따라와라.”
“관주님께 가는 겁니까?”
여기서 살짝 전개가 틀어졌다.
“그래.”
나는 그 순간 전생의 법칙을 직감할 수 있었다.
‘ 바뀌었군. 방일이 나를 목욕시키러 데려가지 않고 바로 관주에게 간다.’
최초에 청룡무관에 왔을 때는 여기쯤에서 내 꾀죄죄한 꼴을 참지 못한 방일의 손에 이끌려서 객잔에서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나왔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거지꼴로 다니지 않았으므로 방일은 굳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말과 행동은 유사하게 반복될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원인(原因)이 있다면 미래가 변하게 되는군.’
이건 왠지 중요한 정보인 것 같았다.
언제고 내 생명을 좌우할 중요한 단서일 거라는 직감이 든다.
나는 이상한 점을 또다시 물었다.
“바로 관주님을 뵈러 가는 거라고요?”
“왜 자꾸 묻느냐?”
“그 아래의 사범님을 먼저 만나게 될 줄 알아서…”
“흥, 우리 청룡무관에 대해 들은 적 있나 보구나.”
방일이 나를 등 뒤에 달고 걸어가며 말했다.
“진소청 총사범님을 뵙는 게 정상적인 절차겠지만 총사범님은 오늘 친구를 만나러 외출하셨다. 사범 두 분은 언제나 수련생의 지도에 정신이 없으시니, 별 수 없이 네 녀석을 직접 총관주님께 데려가는 것이다.”
“친구요?”
“알게 뭐냐. 넌 쓸데없는 거 궁금해하지 말고 똑바로 따라오기나 해.”
방일의 말투는 험상궂었지만 그건 악의(惡意)나 심술같은 게 아니었다. 그냥 이 놈은 원래 성격이 이런 것이다. 그것은 투닥거리며 같이 3년을 보냈던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좋아할 수는 없는데 미워하기도 좀 애매한 그런 놈이 방일이었다.
저벅
“관주님. 이선 문하생 방일이 입관시험 지망생을 데리고 왔습니다.”
한참 후, 나와 방일은 청룡무관주와 그의 친가족들이 살고 있는 와룡전(臥龍殿) 앞으로 왔다. 본래는 관주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었으므로 일반제자는 얼씬도 할 수 없었고, 청룡무관주의 아들같은 수제자인 진소청만이 개인적인 왕래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은 특별한 경우이기에 방일이 와룡전 앞까지 올 수 있었던 모양이다.
‘ 나도 3년동안 청룡무관에서 수련하면서 와룡전 안에는 못 들어가 봤지.’
아니, 내가 청룡무관주와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도 채 5번이 되지 않는다. 청룡무관주는 한없이 투명한 눈빛을 가진 중년인으로써 차라리 문사(文士)같은 사내였다. 그는 내게 거의 관심이 없는 듯 했으며 모든 교육을 진소청 사범에게 일임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3년동안 가까운 공간에서 지냈음에도 나는 청룡무관주 삼절 이광이 어떤 인간인지 거의 알지 못했다. 하도 허접일 때 그를 봤던 지라 그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도 잘 몰랐다. 단지 가끔씩 진소청 사범이 하는 말로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들어 오너라.”
나와 방일은 와룡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약간 넓은 공간이 나왔고, 의자에 청룡무관주가 앉아 있었다. 그가 앉아있는 곳 근처에는 서재가 있었고 현재 그는 독서(讀書)를 하던 중으로 보였다.
청룡무관주의 인상은 예전과 그대로였다. 잠시 투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청룡무관주가 말했다.
“방일아. 이 아이의 이름이 뭐라고 하더냐?”
“어… 그게…”
방일이 우물쭈물하며 나를 쳐다보자 나는 내 이름을 밝혔다.
“백웅이라고 합니다.”
“그래… 방일 너는 나가보거라.”
“넵.”
드르륵
방일이 문을 닫고 나가자 청룡무관주는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나를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말했다.
“백웅. 귀하는 백련교(白蓮敎)에서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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