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54)
00354 천계(天界) =========================================================================
‘ 어쩌지?’
금오도가 천계와 한때 대립했으며, 은주교체기에 대전(大戰)이 벌어진 후 패배하여 어딘가에 유폐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이 기이하고 환몽적인 땅에서, 사불상 때문에 만 하루동안 버텨야 한다는 건 내 마음을 암울하게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기척을 느꼈다. 그래서 말했다.
“사불상! 몸을 숨길 수 있냐.”
[ 물론이다.]
스스스
사불상은 원래 형상을 잃고 구름덩어리처럼 변했다. 변신한 사불상은 근처의 수풀더미에 낮게 깔려서 은신한 듯 했다. 기가 막힌 변신술인지라 나는 사불상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 내 걱정이나 해야겠군.’
나는 은신술을 시전하며 멸혼보를 써서 빠르게 근처에 있는 높은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멀리에서 다가오던 기척이 지근거리에 왔다.
‘ 역시 사람이 아니군…’
다가온 것은 말 그대로 요괴(妖怪)였다. 도깨비라고 흔히 불리는 족속인듯 덩치가 크고 근육이 있었으며 팔이 4개였다. 그리고 네 팔에 쇠몽둥이를 들고 무장한 상태였다. 네 팔 달린 요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가 버렸다.
나는 도깨비가 가버린 후에도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도깨비에 이어서 생전 처음보는 형상의 요괴들이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연속해서 몰려다니지는 않았으나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기척은 이 곳이 결코 외진 장소가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
나는 은신술의 효과가 무한정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초조해졌다. 그래서 사불상에게 전음을 날렸다.
[ 나는 여기서 도망칠 거야. 알아서 따라와!] [ 알았다.]사불상이 영언으로 대답하자 나는 은신술의 효과가 풀리기 전에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재빨리 기척이 적어보이는 장소로 도주했다.
싸우게 되면 마냥 당하지는 않겠지만 이 곳은 요괴선인들의 본거지인 금오도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당연히 금오도 요괴선인들의 우두머리라는 금오십천군(金烏十天君)이 나타날 것이고, 그들 하나하나는 중화팔선과 동급이었다. 그 말은 대선인과 동급의 가공할 실력이라는 뜻이었으므로 내가 그들 중 하나라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 곳은 마굴(魔堀)이다.
‘ 젠장. 차라리 호법사자랑 싸우는 게 낫지…’
나는 속으로 푸념하면서 풀숲 안에서 숨을 골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곳이 암천향만큼 위험한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은신술은 한번 사용하면 적어도 한 시진은 사용하기 힘들었으므로 이제부터는 다른 술법을 이용해서 버텨야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 그래! 환영술을 쓰자.’
내 머릿속에는 지선 망량의 술법지식이 가득 있지만 이 술법들은 제대로 수련하기 전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몸을 숨길만한 술법을 생각하던 중 환영을 내 자신에게 덧씌워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까 봤던 요괴 중 하나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잠시 후 인위적인 기운이 내 몸을 둘러쌌고, 내 외견은 요괴와 같아졌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잘 되네.’
외뿔에 외눈 요괴. 이 곳에서는 평범해보이는 형상일 것이다. 나는 시험삼아서 기척이 있는 곳으로 가 봤는데, 요괴 두세 마리가 나를 보고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쳐지나갔다. 위장이 통한 것이다.
나는 위장에 성공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환영술 또한 은신술과 마찬가지로 지속시간이 오래 가지 못했다. 기껏해야 한 식경이 있으면 풀려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안심하고 하루 동안 내 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아내야만 했다.
과연 어디가 안전할까.
나는 정처없이 걷다가 문득 괴이한 소리를 들었다.
꾸오오오 –
마치 비명같은, 억눌려 있는 듯한 외침. 그리 크지도 않았고 차라리 아기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 보통이라면 그냥 새 울음소리겠거니 하면서 지나쳐 갈 것이다.
“……!!”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느꼈다.
전율할 정도의 요력(妖力)!
단지 일 회의 귀곡성에 불과했는데도 내 공력이 저절로 반응해서 신체와 심령을 지키려고 할 정도의 가공할 힘! 귀곡성이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이 내 몸을 진탕시키는 느낌이었다. 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주변에 요괴의 기척은 사라져 있었고 음산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잘못 들어온 느낌이다.
어설픈 요괴들에게는 들키지 않겠지만, 이 귀곡성은 심상치 않았다. 잡요괴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할 수도 없을 정도의 강대한 마(魔)가 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구름으로 변신해서 따라오고 있던 사불상이 말했다.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또 벗어날 순 있겠지만, 환영술의 지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게 느껴진다. 이대로 아무 계획도 없이 요괴들이 산발하는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틀림없이 요괴들과 조우해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소동을 일으키게 되면 나는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나는 사불상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숲 안으로 몸을 성큼성큼 옮겼다. 금오도의 생태는 인간세계와 완전히 다른지, 곳곳에 식인목(食人木)이나 요초(妖草)가 득시글거렸다. 식인목은 평소에는 평범한 나무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내가 근처에 가자 곧장 줄기를 뻗어서 자동적으로 습격해 왔다.
파앗!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서 식인목을 다섯 그루 베어 버렸다. 식인목은 지성이 있는 요괴가 아니었기에 조금 해치워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가 요괴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아오키가하라 수해에서 온갖 요괴들을 베어서 수요 막야에 먹이며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 생해보다 낮은 난이도.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내가 느끼는 이 금오도 식인목 숲의 난이도는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제 1해인 생해보다 조금 낮았다. 그렇게까지 강력한 마물은 느껴지지 않았다. 동굴이라던가 쉴만한 곳을 잘 찾아보면 하루 정도 버티는 것은 무난할 것이다.
요괴선인의 본거지인 금오도가 지상세계의 숲보다 난이도가 낮다는 건 희한한 일이었지만, 이 경우는 아오키가하라 수해가 무시무시한 마경(魔景)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잡생각을 하며 숲의 안쪽으로 더욱 들어갔고, 이윽고 언덕을 올라서 근처 풍경이 보이는 지대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전경을 보는 순간, 나는 아까 그 귀곡성이 어디에서 울려퍼졌는지 알 수 있었다.
“헉…!!”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쇠사슬이 산악을 칭칭 감고 있는 장면이었다.
아니 – 그 표현은 적절치 않다. 수백 수천 개의 엄청난 크기의 쇠사슬이, 마치 산악처럼 생긴 ‘무언가’를 꽉 옥죄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무언가’는 꿈틀거리면서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는 아까 내가 멀리에서 들었던 그 괴이한 소리와 동일했다.
산악으로 보였던 것은 바로 피빛 안광을 흘리는 여우(弧)!
우오오오 –
그리고 여우가 매인 사슬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면서 끊임없이 주문의 파장을 내뿜었다. 수천 수만 개의 부적이 여우를 감싸며 봉인 중이었고, 자세히 보니 거대여우의 아래에는 엄청난 크기의 팔괘도(八卦圖)가 펼쳐져 있었다.
말도 안 될 정도의 장엄한 광경에 나는 그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저 무시무시한 거대여우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달기!!’
그랬다.
내 전생에서 두 번 지상에 사도로 강림했다가 겨우 목숨을 걸고 격퇴한 존재였다. 나는 어쨌든간에 달기를 두 번 모두 격퇴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사실 내 순수한 힘으로 달기를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번은 항우의 어마어마한 권능을 빌렸고 다른 한 번은 흉신의 주문에 칠요 두 개를 공명시키고 백련교주, 호법사자들의 힘까지 빌려서 겨우 격퇴시켰다. 달기는 인간의 힘으로는 원래 상대할 수 없는 재앙급의 천재지변이었다.
그런 달기가 금오도에서 묶여있을 줄이야?
나는 어찌된 일인지 헷갈려서 굳어 있었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아니군… 원래 달기의 본체는 여기 있었던 거야! 그러다가 인과율에 의해 [옛 지배자]가 달기를 소환하자 금오도에서 지상세계로 빠져나간 거고!’
아마 달기는 묶고 있는 저 수백 장 크기의 어마어마한 쇠사슬, 그리고 팔괘도, 부적 등등은 봉신대전에서 천계의 대라신선들이 설치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달기는 그 때부터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저 자리에 묶여 있으면서 지상세계에 대한 원한을 키우고 있는 것이리라.
지금은 예전에 봤을 때보다 압박이 덜했지만, 그건 지금 달기가 온갖 봉인에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봉인이 풀린 달기는 감당이 불가능한 엄청난 대요괴이므로 이렇게 여유롭게 쳐다볼 수는 없으리라. 나는 아직 달기가 나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급히 기척을 숨기며 숲 아래로 내려갔다.
그 때였다.
우우웅
숲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난데없이 공간이 뒤바뀌었다. 나는 술법으로 아공간(亞空間)이 만들어져서 내가 원래 있던 공간을 침식해 버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내가 이미 적의 공격범위에 들어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이런!’
아무런 전조도 없어서 방심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이미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변 공간은 생전 처음보는 형형색색의 공, 수실, 장난감 따위로 가득 차 있었고 기괴한 형태의 어둠이 연신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내가 사방을 경계하며 검을 뽑아들자 맞은편에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치 해태같은 형상에 기괴하게 뒤틀린 꼬리를 지닌 요괴선인이었다. 세 개의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이 쪽을 보는 광경은 왠지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손천군(孫天君)…”
나는 지선 망량의 지식과 직접 대면했던 경험으로 금오십천군의 모습과 특기를 대강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것은 금오십천군의 일 인이며, 보패 화혈진(化血陳)의 소유주. 요괴선인 중에서 도를 닦아 지성을 얻게 된 것도 모자라 대선인급의 역량을 갖추게 된 십천군의 하나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손천군은 나를 보더니 갈고리처럼 생긴 손가락을 뻗어서 가리켰다.
[ 인간(人間)이군. 그리고 영수 사불상… 너희는 왜 달기의 봉인지에 찾아온 것이냐?] “……”[ 천계에서 금오도의 봉인을 풀어줄 생각이 든 건 아닐테고, 봉인을 재확인하러 왔겠지. 크크크.]
제멋대로 추측하던 손천군이 자신의 꼬리를 떨며 말했다.
[ 핏물이 되어라(化血)!]촤아아악!!
그 순간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핏물이 파도치며 나타났다. 핏물의 파도는 이내 해일을 연상시키듯 거대해지더니 시야를 가득 덮었다. 도저히 인간의 신법으로는 피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해진 피의 해일이 이윽고 천공에서 떨어지려 했다.
“쉽게 죽어줄 거 같냐!”
파지직
뇌신검무가 펼쳐지며 천뢰기가 내 몸에 충천했고, 동시에 나는 뇌명도 발동시켰다.
원래라면 물을 검으로 어쩌는 게 바보같은 짓이었으나 나는 의념절기를 운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이란 본디 검에 베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벨 수 있다.
설령 보패 화혈진으로 만들어져서 금강동인도 핏물로 녹여버리는 극악한 혈수(血水)라 해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 근원을 벨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의념(意念)이다!
뇌신검무(雷神劍舞)
해일 가르기(海溢斬)
다음 순간, 뇌섬(雷殲)이 전방을 가르더니 천지를 뒤덮던 피빛 해일을 정확하게 두쪽으로 갈랐다.
[ 아니?!]나는 씩 웃었다.
‘ 본래 이름은 폭포베기(瀑布斬)지만!’
손천군이 놀라서 외치는 사이에 나는 두쪽난 해일 사이를 멸혼보로 뚫고 화혈진(化血陳)에 전력을 실은 검강을 내리쳤다.
콰과과광!!
공간을 침식하던 화혈진의 결계가 사라지며 나는 다시 원래대로의 숲으로 나온 것을 알아챘다.
[ 크아아악… 인간 따위가…]화혈진이 깨지자 손천군은 비틀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나는 손천군을 공격하지 않고 재빨리 멸혼보를 써서 도망쳤다.
‘ 못 이겨.’
지금 내가 화혈진을 깬 것은 놈이 방심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 금오십천군의 역량은 중화팔선과 동급, 즉 손천군과 제대로 싸우는 건 여동빈과 싸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내가 인간인 이상 결국 손천군의 보패와 싸우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까마득한 기분이 들었다.
과연 이대로 하루를 금오도에서 버틸 수 있을까?
바로 그 때였다.
“뭐야. 금오도에서 십천군하고 싸우다니 미친 놈이 여기 있네?”
“……”
인간의 목소리가 근처의 절벽 위에서 들려 왔다. 내가 달려가다가 절벽 위를 쳐다보자, 거기에는 일남일녀(一男一女)가 있었다. 개 중 남자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킬킬대었다.
“심심하진 않겠군. 도와줄까 꼬맹아?”
나는 그 자들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곧 손천군이 쫓아올 거라는 생각도 잠시 잊을 정도가 되어서 쳐다보았다. 하마터면 입을 열어서 왜 당신들이 여기 있냐고 외칠 뻔 했다.
‘ 미… 미친. 진짜 너네들 왜 여깄는 거냐?’
그랬다.
남자는 광서생(狂書生) 제갈사, 여자는 도왕(賭王) 벽지상.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자들과 금오도에서 맞닥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