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63)
00363 천계(天界) =========================================================================
나는 십이율주를 따라서 심양성 내의 비처(秘處)로 향했다. 그는 자기 혼자서 충분하다 생각했는지 삼사를 돌려보냈고, 나는 이윽고 별장같은 건물에서 십이율주와 독대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술상을 두고 그와 마주앉자 긴장되었다. 십이율주는 술 한 잔을 내게 따라주며 말했다.
“한 잔 하라구.”
나는 딱딱하게 말했다.
“무사는 아군이 아닌 자가 건네는 음식을 함부로 먹지 않는 법입니다.”
“이거 비싼 술인데.”
십이율주는 시덥지 않은 소리를 하며 자신의 잔을 채웠다. 찰랑거리는 물결이 잔 위를 떠돌자 그가 말했다.
“백웅. 아까 자령언월도를 보고 놀라더군. 혹시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 있나?”
귀신같다. 아주 짧은 순간의 감정변화였는데 그걸 알아냈단 말인가? 세월이 지나면서 감정을 숨기는데 나름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백련교주도 그렇고 용중일도 그렇고 왠지 만나는 사람마다 내 속내를 파악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너무 어설프다기보다는 그 자들이 백 년 묵은 너구리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대답했다.
“마도구와 칠요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주께서 암경무투회에서 우승하셔서 자령언월도를 회수하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요.”
“호오!”
나는 괜히 숨기지 않기로 했다. 눈 앞의 십이율주는 제갈사만큼이나 악독하고 지랄맞은 수법을 써서 나를 농락할 가능성이 높은 절대고수였다.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작은 정보에 이목을 끌리게 해서 큰 정보를 감추는 게 나았다. 십이율주는 턱을 괴고는 말했다.
“정말 희한한 녀석이군. 혼을 두 개나 갖고있지를 않나, 천계의 영수를 부리지를 않나, 칠요도 알고 있고, 마도구나 이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
“그러면서도 뇌신류의 호법사자라?”
중얼거리는 십이율주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정보를 하나씩 교환하시겠습니까?”
“흐음?”
“어차피 제게서 정보를 들으시려고 부르신 게 아닙니까? 서로 용건을 빨리 끝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좋아… 말해 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백련교주와 풍신류 용비천과 용중일은 조약이 끝나자마자 비등을 써서 본거지로 되돌아가 버렸고, 삼사 또한 신시로 귀환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나와 십이율주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째서 호법사자가 마(魔)를 쓰러뜨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건지 알고 싶습니다.”
십이율주가 의외라는 듯 반문했다.
“그게 왜 궁금하지?”
“궁금할 수밖에요. 호법사자보다 강한 무인은 지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 할거 아닙니까.”
“흐흠… 그걸 말해주면 너는 내게 어떤 정보를 줄 건데?”
“아까 궁금해하셨던 걸 말씀드리죠.”
십이율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끌리는 거래군. 받아들이겠어.”
“감사합니다.”
나는 그에게 황산에서 우연히 수요 막야를 얻게 된 경위를 말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교주를 만나서 그 모든 보물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또한 수요가 칠요인 걸 알게 된 이유는 동료 망량이 갑골문을 해석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칠요의 해방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자 십이율주도 물어오지 않았다. 잠시 후 십이율주는 탄성을 흘렸다.
“진짜군! 혹시 이 이야기는 백련교주에게도 한 건가?”
꼭 그렇진 않으나 다 대답하기 껄끄러웠기에 나는 대충 대답했다.
“네.”
“그럼 나도 이야기해 주지.”
십이율주는 의자에 다시 풀썩 앉은 후 말했다.
“내가 쓰러뜨리려는 건 [옛 지배자], 해신(海神)이야. 너는 해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다고 알고 있냐?”
“모릅니다.”
소문만 무성할 뿐 내가 직접 해신이라는 존재를 맞닥뜨린 적은 없었다. 그래서 십이율주에게서 직접 언급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놈은 어둠의 권속을 다스리는 능력과 함께 [옛 지배자]의 휘하에 있는 사도나 졸개들을 쫓아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옛 지배자] 치고는 격이 낮은데도 대양을 지배하며 강력한 권능을 부릴 수 있는 이유지. 이 능력 때문에 흉신(凶神)의 후예들도 쉽사리 해신에게 간섭하지 못한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그의 말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천령단을 지니고 있는 호법사자는 신의 권속이라서 해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단 말입니까?”
“뭐 그래. 잘 알고 있네. 호법사자가 해신하고 싸우려고 들면 바로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휘말려서 도망치거나 미쳐버리고 말걸. 이건 해신의 고유권능이라서 어떻게 할 수도 없어.”
“……”
“해신 뿐만이 아니야. 대부분의 [옛 지배자]는 격하의 존재를 퇴치할 수 있는 정신능력이나 술법을 지니고 있지.”
나는 왠지 이해가 되었다. 천령단이 신의 권능인 만큼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지만, 정작 신적인 존재 그 자체와 싸울 때는 도리어 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십이율주의 말을 듣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잠깐, 그러면 천령단을 얻으면 해신과는 아예 싸워볼 수가 없단 말인가?’
무한의 내공을 얻는 건 좋은데 정작 [옛 지배자]와 전투가 불가능해지다니!
그런 제약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으므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궁극적인 목표는 [옛 지배자]를 물리치는 것이기 때문에 수단이 봉쇄되는 길은 결코 선택할 수가 없다.
의문점은 또 하나가 있다. 그렇다면 용비천이 월요의 수호자인 이자나기노미코토를 쓰러뜨릴 때는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그 때 분명히 용비천은 수호자를 쓰러뜨렸기에 호법사자라면 수호자와 맞먹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일에도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말인가?
내가 침묵하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내가 이번에 자령언월도를 내놓은 건 나름대로 대출혈이었지. 나는 그가 자령언월도의 사용법을 알아내기 전에 수요를 써서 내 힘을 강화시킬 생각이다. 다음에 만날 때는 지금보다 두 배는 강해져 있겠지.”
나는 그 말에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만 해도 십이율주의 힘은 백련교주와 거의 대등한데, 더 강해지면 도대체 어떤 경지에 이른단 말인가? 차마 상상조차 하기 끔찍한 수준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억누르며 대꾸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글쎄? 네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 아닐까?”
의뭉스럽게 대꾸하는 십이율주는 여전히 인형탈을 쓰고 있어서 아무런 표정도 볼 수 없었다. 너무나 비인간적인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할 말을 잊자 십이율주는 능글맞게 말했다.
“보아하니 네녀석의 목적도 칠요를 모으는 게 아닐까 싶군.”
또 정곡이다. 나는 그 말에 에둘러서 대답했다.
“있으면 좋겠지요.”
“하하하.”
“… 십이율주. 그러면 저도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어 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율주께서는 해신이라는 존재를 쓰러뜨리고 나면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십이율주를 잘 모르는 자라면 몰라도, 나는 이미 그가 칠요 중 3개를 모은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원래부터 목요의 소유자인데다가 이번 교환으로 수요까지 손에 넣었고, 강화도 마니산에 월요가 있기 때문이다. 월요 수요 목요의 3요를 모은 십이율주는 조만간 엄청난 힘을 얻을 게 분명했다.
그 정도 힘이라면 해신을 쓰러뜨릴 만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십이율주는 그 후에는 뭘 할 생각인 걸까?
내가 질문하자 십이율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흐흐… 뭘 하냐니. 그건 시작이야.”
“시작이라고요?”
“내 목표는 그저 꿈으로만 생각할 정도로 아득하게 멀고 험하지. 그래도 뭐 시작이 반이니까 기쁘긴 하겠군.”
뭔가 좀 부족하다. 나는 연속으로 질문했다.
“그럼…”
“잠깐.”
십이율주가 손을 저었다.
“나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너도 얘기 좀 해봐. 앞으로도 계속 뇌신류 호법사자로 지낼 생각이냐?”
“……”
“아니지? 보물을 되찾을 거지?”
나는 그가 부추기듯 하는 말에 뭐라 대답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비등과 목갑을 비롯한 보물들을 되찾아야 하겠지만, 그 진의를 십이율주에게 대놓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나는 어쩔 수 없이 대꾸했다.
“교주께서 저를 배신하지 않는 한은 가만히 있을 생각입니다.”
소극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만일에 반역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힘이 없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정도의 힘을 단시간에 얻을 수 있을리 만무했으므로, 일단은 백련교주의 마수를 조심하며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자 십이율주는 짖궂게 말했다.
“교주도 똑같은 생각이라면? 너는 평생 보물을 되찾을 수 없을 텐데?”
“… 그건 그 때 가봐야 할 일이죠.”
“하하. 그렇구만.”
십이율주는 뭐가 우스운지 계속 웃다가 말했다.
“좋아. 아까 하려던 질문 계속해 봐.”
“그게… 해신이라는 놈을 토벌하면 뭐가 나아집니까?”
“뭐?”
“해신이라고 해도 [옛 지배자] 중에서 한 명일 뿐이잖습니까. 그 놈을 쓰러뜨려봐야 바뀌는 건…”
내 말에 십이율주는 대답하지 않고 고요히 나를 응시하는 듯 했다. 그 응시는 지금까지와 달리 호기심이 아니라 냉철한 분석의 기운이 담겨 있어서, 나는 절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긴장되긴 했지만 그에게서 분노의 감정은 느낄 수가 없었기에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십이율주는 한참동안이나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넌… 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군.”
“……”
“그래, 그렇군. 넌 세계의 끝을 알고 있어. 어쩌면 너와 나의 목표는 같을지도…”
그렇게 대꾸한 십이율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즐거웠어. 칠요 막야는 잘 쓰도록 하지, 백웅.”
“살펴 가십시오.”
“만일에 백련교가 마음에 안들면 내게 오고.”
휘익
십이율주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무공이 아닌 술법으로 이동한 듯 싶었다.
‘ 운이 좋았어.’
십이율주가 악독한 마음을 먹었다면 이 자리가 바로 내 무덤이자 고문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십이율주가 백련교주와 말없이 대화하던 그 때 뭔가 거래가 오고갔고, 그 거래가 내 신변을 보호해 준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사라진 장소를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이제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제갈사.”
내 머릿속에 있는 제갈사.
그와 결판을 지을 때가 온 것이다.
제갈사는 머릿속에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이혼대법으로 네게 내 혼을 옮기려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네 영혼을 장악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지금은 네 혼과 함께 지내는 상태인 거다.]나는 차갑게 말했다.
“그런게 중요한게 아냐. 너, 설마 내 기억을 다 본 거냐?”
제갈사가 광소를 터뜨렸다.
[ 크크크… 정말 웃긴 일이군. 네 녀석이 설마 18회차나 회귀한 전생자(轉生者)였고, 나와도 몇 번이나 마주쳤을 줄이야. 그 기억을 읽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았다.] “제기랄!”나는 신경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제갈사 놈은 백련교주에게 살해당했지만, 그 순간에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이혼대법으로 내게 혼을 옮긴 것이다! 다만 원래는 이혼대법으로 내 몸을 뺏아야 정상이지만 지금은 실패했기에 내게 기생해있는 상태였고, 또한 그 부작용으로 놈이 내 기억 또한 공유하게 된 것이다.
제갈사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화가 나는 건 내 쪽이다. 설마 너같은 놈과 공생하게 될 줄은 몰랐다.]나는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어쩔 건데? 육체의 주도권은 내게 있으니 네 녀석을 어떻게든 쫓아버리겠다.”
[ 크크… 할 수 있을까?]
그가 낄낄댔다.
[ 이혼대법을 천하에 알고 있는 건 오직 나 뿐이다. 네놈이 흑요석으로 기억을 공유시켜서 현이가 수련할 수는 있겠지만, 이 상황은 배교의 역사에서도 전대미문이며 이해불가란 것만 알아둬라. 본디 이혼대법은 성공 혹은 실패로만 나뉠 뿐 이렇게 혼이 공생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안해보면 어떻게 알아.”내가 짜증을 내자 제갈사가 말했다.
[ 그런데 말이지, 난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굳어버리고 말았다.
[ 넌 대체 왜 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