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70)
00370 천계(天界) =========================================================================
파앗
나는 제갈사의 말에 따라서 칠살마을로 갔다. 이미 혈도단에게서 구출하는 작업은 진행했기에 애꾸눈 노인에게서 받은 흑패가 있었다. 나는 칠살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태산의 정상을 보며 망설였다.
‘ 저기에 지금 주작이 거하고 있겠지?’
주작. 실질적으로 지금 쓰러뜨려야 하는 최악의 적수다. 주작을 거꾸러뜨리면 황궁을 없앤 것이나 다름없는 업적이다. 황제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남은 현무나 백호도 그리 강한 존재들이 아니니, 주작을 쓰러뜨리는 게 황궁을 쓰러뜨리는 셈이다. 내가 태산의 정상을 하염없이 쳐다보자 제갈사가 말했다.
[ 제갈유룡이 어떤 생각으로 이족과 손을 잡았는지는 나도 궁금하다. 지금 네놈을 돕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네 녀석의 형이잖아? 그리고 네가 배교의 술법을 접했다는 이유로 추방했다고…”[ ……]
제갈사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 제갈유룡을 쓰러뜨리는 것에서 그치지 마라. 놈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지 못하면 뒤로 나아갈 수 없을 거다.] “그게 더 어려운 거 같은데 말이지.”나는 투덜거리면서 칠살마을에 들어갔다. 그러자 이전처럼 촌장을 비롯해서 마을사람들이 나를 환영해주더니, 백목을 통해서 암천향의 [옛 지배자]에게 가도록 했다. 천계의 영수는 암천향에 갈 수 없으므로 영체 상태로 마을에 대기시켰다.
파앗!
나는 밀림에 있는 [옛 지배자]에게로 갔다. 그는 몸에 박혀 있는 수백 개의 눈으로 나를 관조하더니 말했다.
[ 말하라… 나에게 주어진 반전(反轉)의 권능으로… 삶을 죽음으로… 죽음을 삶으로 바꿀 한 번의 권리를 주겠노라… 그 누구라 할지도… 이 권능을 피할 수는 없다…]그리고 나는 그의 말을 끝까지 다 들은 후 마음 속으로 말했다.
[ 뇌신류 호법사자 이청운을 살려 주십시오!] [ 알았다…]옛 지배자의 몸에서 촉수가 꿈틀거리며 뻗어나오더니, 허공 한 부분을 짚었다. 그러자 무언가 연기같은 것이 허공에서 흘러나왔다. 옛 지배자는 그 연기를 불어서 어딘가로 날려보내 버렸다.
[ 되살렸다…] [ 감사합니다.]나는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돌아가려고 했다. 그 때 [옛 지배자]의 말이 들려 왔다.
[ 너는 검은 염소를 모시는 자에게 이야기하라… 많은 초월자가 너를 지켜보고 있노라고… 재액(災厄)은 가까울 것이다.]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 의미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파앗
다시 칠살마을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마을을 나왔다. 그리고 영수 사불상의 등에 타고 있을 때 제갈사의 말이 들려왔다.
[ 역시 제멋대로 굴면 안되는 거야, 크크.]어쩐지 고소하다는 말투였다.
[ 벽지상에게 한 경고 맞지?] [ 그렇다. 지금 변황은 마기(魔氣)에 침식당해서 검은 염소의 영토가 되었지. 하지만 그건 [옛 지배자]들 중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적어도 서너명 이상의 [옛 지배자]가 놈을 안좋게 보고 있을 것이다.] [ 검은 염소란 게 외신(外神)을 의미하는 건가?]제갈사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 넌 어찌 된 게 외신이나 옛 지배자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는거냐? 마도서를 그만큼이나 수집했으면 좀 내용을 알아보고 연구하는 게 정상일 텐데.] [ 해독이 안 되잖아.] [ … 검은 염소는 외신의 한 명으로, 격으로 가장 높은 존재 중 하나다. [옛 지배자]들조차도 신으로 모시는 자들이기에, 본래 이 코딱지만한 세상에는 관심이 없다. 다산과 풍요의 신이지.]나는 어이가 없었다.
[ 다산과 풍요? 그 사악한 기운에서 그런 건 안 느껴지던데…] [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지 마라. 애초에 너무 초월적이라서 이해할 수 없으니까.]단호하게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아무튼 동급 이상의 옛 지배자에게 견제당할테니 앞으로 그 쪽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이청운이나 찾으러 가라.] “말 안 해도 갈려고 했어.”파앗!
나는 사불상을 타고 예전에 이광이 안내해 줬던 이청운의 무덤으로 향했다. 이청운의 무덤은 벌초되어 있기는 커녕 험난한 숲 그자체라서 각종 초목이 우거진 장소였다. 나는 검을 들고 초목을 베어내며 무덤 근처로 걸어갔다.
‘ 어디 있지?’
이청운이 살아났다면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소년. 여기는 어디인가?”
난데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기척조차 느낄 수 없기에 깜짝 놀라서 목소리 쪽을 쳐다보았는데, 나뭇가지 위에 한 인영(人影)이 서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나뭇가지는 도저히 사람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얇고 작은 나뭇가지였는데도 인간의 몸뚱이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다는 점이었다.
내게 말을 건 자는 20대 초중반의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검미가 굵었으며 이목구비가 빼어난 그는 수려하다고 할만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고 체격이 보통 정도였으며 무(武)를 수련하는 자 특유의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혹자가 본다면 그를 평범한 백면서생이라고 할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일견하는 순간 그가 엄청난 고수라는 걸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그의 기세가 반박귀진에 이르렀으며, 그의 무형지기가 이미 내 주변을 뒤덮었고, 심지어 심령(心靈)마저 억눌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현재의 삶에서 나보다 윗줄의 고수라고 하면 무영검제 남궁조였는데 그가 무영검기를 일으켰을 때도 이 정도로 긴장되지는 않았다. 전신의 감각 한올 한올이 싸웠다가는 필패(必敗)를 외치고 있었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수준이 낮았다면 몰랐을텐데 어설프게 높아서 그런지 죽을 맛이었다.
이런 기분은 차라리 백련교주와 마주쳤을 때와 비슷했다. 내가 침을 꿀꺽 삼키고 그 사내를 쳐다보자, 그는 나직이 말했다.
“뇌령(雷靈)을 성취했군. 경지도 높아. 뇌신류의 문인이 맞는가?”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상하군. 영락없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내가 멀쩡히 살아있지? 그 때 단전을 파괴당해서 더 이상 살아날 방법이 없었는데…”
턱을 괴고 중얼거리던 사내가 나를 갑자기 쳐다보았다.
“자네는 여기에 왜 있는거지? 혹여 내가 회복된 이유와 관련이 있는가?”
“… 저, 저기…”
나는 그의 시선을 받자 전신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 내가 왜 이러지?’
그저 평범한 시선일 뿐이다. 그 시선에 나를 압박하는 무형지기가 섞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압박감에 나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눈 앞의 사내에게는 감히 항거할 수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고수가 분명하다! 나는 잠시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간신히 포권을 했다.
“… 인사 올립니다. 저는 뇌신류 전승자인 백웅이라 합니다.”
“백웅… 내가 아는 전승자 중에는 없는 이름이군.”
“말씀하신대로 저는 이 자리에 이유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확인해야할 게 있습니다.”
사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여 뇌신류의 호법사자이신 이청운 님이 맞으십니까?”
내 질문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내가 이청운이다.”
“……!!”
나는 확인을 받자 예상했음에도 침음성을 흘렸다.
역대 뇌신류에서 가장 강한 호법사자였으며 가장 뛰어난 천재였다고 칭해지는 절대고수! 또한 이광의 사부이니 내게 있어서는 태사부뻘 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막상 이청운을 눈 앞에 두자 어떤 말을 해야할지 막막해졌다.
그것은 첫인상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라서일지도 몰랐다. 내가 생각했던 이청운은 강인한 인상의 장년인이었는데 눈 앞의 청년은 백면서생에 가까웠다. 다만 그가 발하는 압도적인 경지가 그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잠시 후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말했다.
“이청운 님. 저는 소생의 비술으로 이청운 님을 되살렸습니다.”
이청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말은…”
“네. 호법사자께서는 과거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되살린 겁니다.”
“음…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이청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색이었다. 하긴 이런 얘기를 곧장 믿는 쪽이 바보일 것이리라. 이청운은 어이없는 소리일지언정 한 번은 믿어준다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나를 되살렸다 치고 지금은 내가 죽은지 얼마나 지났는가?”
“대략 오십 년이 지났습니다.”
“푸하하핫.”
이청운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얘기도 안 되는군. 헛소리 말고 저리 비키게. 나는 교에 복귀해야겠네.”
“잠깐…”
휘리릭!
순식간의 일이었다.
‘ 헉!’
나는 뭔가 눈 앞에 스쳐지나간다 싶더니 내 전신이 점혈당해서 움직일수 없는 걸 알아챘다. 다행히 말은 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당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등 뒤에서 이청운이 유유히 걸어가는 기색이 느껴졌다.
‘ 이, 이럴수가…’
내가 무예를 수양한지 백 년이 넘어갔다. 그동안 이광을 넘어서서 중원 최정상급 고수에 비해서 반 수나 한 수 정도는 앞선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이청운은 나를 장난하듯이 제압해버린 것이다. 이청운의 무위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대로 놓치면 안된다.
이청운이 백련교로 돌아가면 큰일난다!
나는 급히 소리를 지르려 했다.
“뇌…”
그 때였다. 갑자기 제갈사가 머릿속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멍청한 새끼! 낚이지 마!] [ 뭐?!] [ 이청운이 이 상황에 널 내버려두고 그냥 교로 복귀하는 게 말이 되냐? 뇌신류 고문 육합진살에 팔괘봉인이라는 효율적인 방법을 놔두고? 그리고 전신요혈을 제압할 수 있는데 왜 말을 할 수 있게 아혈만 놔뒀지?]나는 머릿속이 확 맑아져오는 걸 깨달았다.
[ 아!] [ 네놈이 갖고있는 정보를 확인한 후 고문하려고 그러는 거다 병신아!] [ ……!!] [ 지금이라도 사불상을 불러서 도망쳐서 점혈부터 풀어라! 고문당하기 시작하면 끝장이야!]순간적인 일이지만 이청운은 내게 심리전을 건 것이다. 당장 고문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내가 그를 멈춰세우기 위해 뭐든 내뱉는 걸 기다리고, 그 단서를 바탕으로 나를 고문하려 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 자체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 여, 역시 이광의 사부…!!’
어지간한 심계로는 호법사자라는 직책을 수행할 수 없으리라. 하물며 천재아라고 불린 자라면 더말할 나위가 없었다.
‘ 큿!’
나는 급히 의지로 사불상을 부른 후, 사불상을 타고 백련교의 숙소로 도망쳤다. 일말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전신의 혈도가 제압당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리라.
파앗!
내가 백련교의 주변풍경을 보며 잠시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흐음. 여긴 또 어디지?”
“……!!”
귀신같은 목소리! 어느 새 이청운은 내 어깨에 손을 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사불상을 탄 내 몸에 접촉해서 사불상의 공간이동을 따라온 모양이었다. 대단한 공포심이 사무치며 올라오자 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꼼짝도 못하는 내게 이청운이 말했다.
“… 아니, 알 것 같군. 여기는 뇌신류의 건물… 하지만 내부가 많이 달라졌군. 그럼 여기는 백련교인가.”
“……”
“아혈을 놔뒀으니 뭐라고 말 좀 해 보게. 나도 같은 문인을 고문하고싶진 않네.”
대놓고 고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청운의 말은 점잖았지만, 나는 뇌신류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이청운도 아마 눈 앞의 모든 것을 박살내는 파괴마 기질이 있을 것이며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성정을 보유하고 있으리라. 나는 잘못하면 뇌신류 고문을 정통으로 맞을 위기였으므로 식은땀이 흘렀다.
‘ 자, 자살할까?’
뇌신류 고문 팔괘봉인이 얼마나 극악한 고통을 줄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2단계까지는 어떻게든 참는다 해도 그 이상 버틸 자신은 도저히 없었다. 어쩌면 여기서 정신력이 고스란히 붕괴되어서 두 번 다시 재기불능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냉정함을 되찾은 후 말했다.
“혈도를 풀어 주십시오. 모든 걸 말씀 드리겠습니다.”
“흐음. 믿어도 되겠지?”
“네. 만일 거짓이 있을 경우 자진하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이청운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자네는 역시 뇌신류 문인이군.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
다음 순간, 내 몸의 혈도가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풀렸다. 나는 이번에도 이청운이 움직이는 걸 전혀 보지 못했으므로 소름이 돋았다. 하고 많은 고수를 보았지만 이청운처럼 기괴한 방식으로 나를 제압한 인물은 달리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좀 믿기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제 말을 들으실 준비가 되셨다면 함께 사불상을 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믿어주기로 했으니 내 말은 지켜야지.”
“그럼…”
파앗
나는 곧장 동영에 있는 흑요석 광산으로 갔다. 그리고 적당한 흑요석을 하나 깨어서 주먹만한 크기로 만들고, 거기에 흑요석의 술법으로 기억을 불어넣었다. 그 내용은 간략하게나마 지금까지 내가 전생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이청운을 되살리기까지 있었던 대부분의 일이었다.
‘ 이 수밖에 없어.’
나는 이청운이 좋은 말로 하고 있으나 조금이라도 말이 어긋나면 즉시 고문을 시작할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방금 전에 그 정도의 심리전을 걸었던 인물이 헛소리에 놀아나기보다는, 확실하게 고문을 해서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 할거라는 사실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설프게 이야기를 감추면서 이청운을 농락할 정도의 언변이 되지 못하므로 흑요석의 기억을 보여줘서 그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사실 바로 자살해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좋지 않다. 기껏 이청운을 살렸는데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한이 있어도 그에게서 정보를 듣고 싶었다. 이건 내 나름의 도박인 것이다.
내가 흑요석을 내밀자 이청운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이건 뭔가? 난데없이 광산에 오더니 내게 흑요석을…”
“이건 제가 지닌 술법인 흑요석의 술법입니다. 이 술법을 사용하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기억을 전달할 수가 있지요.”
이청운이 싱긋 웃었다.
“내가 뭘 믿고 그렇게 수상쩍은 술법석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거기에 나를 정신지배하거나 현혹하는 술법이 걸려있지 않을거란 보장이 어디에 있지?”
이청운은 단순히 외곬수 무인이 아니라 술법이나 기관진학에도 나름대로의 조예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술법도 다루는 백련교의 특성상 호법사자의 위치쯤 되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 말에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호법사자께서 여기까지 따라오셨기 때문이지요.”
“흐음?”
“호법사자께서는 만에 하나의 경우 제가 헛수작을 부리더라도 일 초만에 해치울 자신이 있으니 따라오신 게 아니겠습니까.”
“……”
이청운은 말 없이 나를 쳐다봄으로서 내 말에 긍정했다. 이청운의 소름돋는 속도는 일반적인 무공의 상리에서 이해가 불가능한 지경에 접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찰나에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움직일 순 없다. 수 틀리면 이청운은 마치 백련교주처럼 내 목을 한방에 날릴 수 있으리라.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제 이름을 걸고 이 흑요석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보시면 알 것입니다.”
“사실인지는 둘째치고 태도는 뇌신류 문인답군. 마음에 들었네.”
이청운은 그렇게 대꾸하곤 내 흑요석을 받아들였다.
파아앗!!
“으음!”
이청운이 잠시동안 기억을 받아들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약 반 각이 지나고서야 이청운은 황당한 듯 말했다.
“어처구니 없는 자로군… 죽으면 다시 소년시절부터 인생을 시작한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흑요석에서 천암비서에 관한 것은 의도적으로 숨겼기에 그는 모른다. 이건 내가 다른 자들에게 흑요석을 전할 때도 대개 공통적인 사항이었다.
“그리고… 하하… 정말이었군. 오십 년이 지났고, 내 제자의 제자가 있다라…”
이청운은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이 죽은 후 오십 년이 지났다는 사실과, 그동안 내가 뇌신류에서 겪었던 대부분의 일들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청운은 내가 준 흑요석의 기억에서 뇌신류 관련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으리라.
잠시 후 이청운이 말했다.
“그래, 자네의 목적은 뇌신류의 최종오의인 뇌신지혼을 얻는 거군. 지금은 자네가 백련교주의 제자이자 뇌신류 호법사자가 되어있고…”
“……”
“흠, 뭐라고 해야할까.”
이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백웅. 뇌신지혼을 그냥 포기해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