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76)
00376 천계(天界) =========================================================================
파앗
사불상을 타고 개봉에 도착하자 적당한 번화가가 눈에 띄었다. 이곳이 바로 교주에게서 언질받았던 개봉의 정두(艇痘)라는 곳으로, 사불상에게 이야기하자마자 데려다 준 것이다. 내가 일일이 가본 곳을 머릿속에 떠올려야 하는 비등과는 색다른 장점이었다. 나는 정두에서 내 접선자를 만나기 위해서 창평관(彰平館)이라는 장소로 향했다.
창평관은 표면상으로는 무술을 연마하는 도장이었다. 하지만 내가 창평관의 문지기들에게 뇌신류 호법사자의 신패를 보여주자, 그들은 대번에 눈빛이 달라지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쪽으로…”
창평관 안으로 따라들어가자 그곳에는 약 사십 대로 보내는 사내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 포권을 했다.
“창평관주 상문입니다. 뇌신류 호법사자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신도 수신류요?”
내 질문을 듣자 창평관주 상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신류 외당(外當) 소속입니다. 이번 임무를 도와드리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교주께서 말한 조력자가…”
“아, 그건 아닙니다. 다른 분께서 임무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창평관주 상문은 교주가 말했던 조력자가 아닌 듯 했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상문이 말을 이었다.
“저희 외당은 무공이 약하지만 대외적인 첩보와 자금수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좀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았소.”
“그보다 식사를 먼저 하시는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식사는 되었소. 우선 이번 임무의 정보부터 듣고 싶군.”
괜히 타지에서 남이 주는 식사는 먹고싶지 않다. 만독불침이라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상문은 탁자에 마주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물을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노예시장의 전반에 풍신류가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의위(金衣衛)의 활동도 있습니다. 풍신류와 금의위가 결탁한 증거를 찾는게 이번 호법사자님의 임무라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까?”
“교주께선 그렇게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소.”
“음… 제가 실례했습니다. 아무튼 구체적인 거래현장을 포착하셔도 좋고, 혹은 적을 생포하셔도 좋습니다. 또한 관부도 통제에 들어갔으니 필요한 경우 마음껏 날뛰셔도 됩니다.”
“… 관부를 통제했다고?”
내가 순간 놀라서 반문하자 상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네. 개봉부주 이하의 권력자는 모두 수신류의 입김이 미치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일이라 하더라도 덮을 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
나는 수신류의 영향력에 침음성을 흘렸다. 개봉부주라고 해도 넓은 개봉을 다스리는 고위관리로서, 성주에 비해서 고작 한단계 낮을 뿐이다. 그 이하의 권력가를 모두 손아귀에 넣었다는 건 적어도 수십만 명의 민생(民生)을 뜻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부귀를 축적하기는 그 몇 배로 쉬울 게 분명했다.
문제는 개봉부만이 수신류의 휘하에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개봉부 뿐만이 아니라 중원의 어떤 지역이 수신류의 영향권에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무림에 손을 댄 화신류와 풍신류도 대단했지만 아예 일대지역을 석권해버린 수신류의 저력은 끝을 알 수가 없었다.
[ 뭘 놀라냐? 수신류 정도면 이정도는 되어야 정상이지. 이 정도도 안되고서 어떻게 황궁과 대립할 수 있겠어?]제갈사가 핀잔을 줘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좋소. 노예시장의 경매는 내일이라 들었는데 나는 뭘 준비해가면 좋소?”
“마차, 시종을 비롯해서 경매참석권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두었습니다. 그리고 경매는 유시(酉時)부터 시작되니 야간활동이 될 것입니다.”
“유시라… 날이 어두워질 때 시작되는구려.”
“호법사자님. 개봉의 노예시장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잘 모르오. 노예를 거래한다는 것 밖에는…”
실제로 그렇다. 내가 표사로 살던 시절에도 노예시장에 대해서는 암중에 소문만 무성할 뿐, 그게 어떤건지 실제로 접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후의 전생에서도 다른 일로 바빠서 직접 노예시장을 조사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내가 대꾸하자 상문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일 거래될 노예는 최소 이천 명은 될거라고 합니다. 3년 내에 열리는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천 명…?”
나는 약간 놀라서 말했다.
“그렇게나 많은 노예를 매매한다고? 그게 가능하오? 아무리 치안이 안 좋아도 그정도로 이목에 띄면…”
“네.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원도 그렇고 장소도 그렇고 힘든 일이죠. 그러나 주최측에서 특수한 방법을 써서 세인들의 이목을 끌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때문에 중원의 노예상인들이 개봉에 떼로 몰려들어 온 실정입니다.”
상문은 한숨을 쉬었다.
“어떤 방법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개봉 여기저기에는 노예를 구매하러 온 노예상인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노예를 사들이려는 자, 부자, 권력가가 잔뜩 있습니다. 다들 노예의 질을 기대하고 있지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해가 안 가는군. 어떻게든 그렇게 거대한 노예시장을 열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사서 갈 때는 수상하게 보이지 않겠소? 그건 또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그것 또한 주최측에서 방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
“문제는 저희 수신류에서도 구매자용 정보까지는 알아냈으나, 주최측이 쓰게 될 방법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마 술법(術法)일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으나 잘은 모릅니다.”
나는 상문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내가 노예경매에 참가하는 김에 그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내 주길 바라는군.”
“네. 만일 술법이라 한다면 시전자는 보통 술자가 아닐 것입니다. 반드시 알아내 주셔야 합니다.”
“알았소. 그리고 또 다른 정보는 없소?”
“음… 노예의 호위역으로 대단한 무림고수들이 고용되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전탐색이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말에 호기심을 느꼈다.
“대단한 무림고수라…? 어느 정도요?”
“그건 교주께서 호법사자께 붙여주신 조력자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름아름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그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신 거겠지요.”
“흐음.”
나를 도와줄 조력자.
나는 그 말을 듣자 목갑 안에 있는 수신류 고수 3명이 생각났다. 확실히 이 세 명이면 굉장한 전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과 힘을 합치면 웬만한 자들은 적수도 되지 못하리라. 나는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잠깐. 아까부터 내 조력자가 누군지는 말하지 않았잖소? 그게 누구요?”
“음 그건…”
상문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본인께서 내일 직접 밝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교주님의 뜻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외당에 불과한 제 입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대체 누구길래 그러오?”
“……”
상문이 입을 닫자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알았소. 접선 방법이나 말해주시오.”
“죄송합니다.”
이윽고 상문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다 전달받은 후, 나는 상문에게 말했다.
“나는 내 방에서 수련하고 있을테니 시간이 다 되면 불러주시오.”
“알겠습니다.”
나는 만 하루동안 방에서 조용히 지낼 생각이었다. 지금 어설프게 나돌아다니면서 정보수집을 하려다가는 괜히 이목만 끌게 된다. 그리고 방안에서 삼보절기와 이혼대법을 명상수련할 필요가 있었기에 가만히 칩거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제갈사가 말했다.
[ 멍청한 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움직여.] “갑자기 또 무슨 소리냐?”[ 이혼대법 수련이다.]
파밧!
“앗…”
이윽고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근처를 지나고 있던 시비 하나를 제압했다. 시비의 혈도가 제압당하고 기절하자 나는 그녀의 미간에 손을 대고 백을 뽑아내었고, 그 백은 이윽고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나서 제갈사가 가르쳐주는대로 백의 움직임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스스스
[ 자. 이걸로 시각이 공유된다. 놔 줘라.]시비의 혈도를 풀어서 적당한 곳에 눕히자, 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며 일어난 기색이었다. 워낙 순식간에 제압한 터라 내가 기절시켰다고는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방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제갈사가 말해주는 요결을 운용해서 그녀의 시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보인다.
그녀가 보는 풍경이 눈을 감은 내 눈에 그대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선명하지 않고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서 영 불편했다. 이건 아마 내 이혼대법의 성취가 낮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 아직 성취가 낮아서 감각공유 이상은 어려운 것 같군. 그러면 연탈백(連奪魄)을 연습해 보자.] [ 연탈백?] [ 너는 그녀의 백을 뺏았지. 그 상태에서 그녀를 매개체로 다시 제 3자의 백을 빼앗을 수 있다.] [ 그게 가능한가…] [ 잔말말고 하기나 해.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또 연습해보겠다고 하는거냐? 교주의 이목이 대놓고 미치는 백련교 안에서?]나는 별 수 없이 제갈사의 말대로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시비가 웬 호위무사를 만나자 서로 담소를 하며 이야기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윽고 호위무사가 진득한 미소를 지으며 시비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자 깜짝놀랐다.
‘ 억!’
이건 입맞춤인가?! 시야로 보니 너무 더러웠다. 남자놈의 번들번들한 개기름 피부와 밀착해있는 광경이 정확히 보였기 때문이다.
‘ 둘은 사귀고 있는 사이군. 우욱… 그렇지만…’
나는 순간 토가 나올 뻔 했으나 제갈사의 말에 진정했다.
[ 잘 됐군! 신체접촉이 강렬하니 연탈백을 하기 쉬운 상태다. 빨리 요결을 운용해라.] [ 윽… 정신건강에 안 좋아…] [ 흐흐. 감각공유가 오감(五感)으로 퍼져나가면 아예 기절을 하시겠구만. 개소리 말고 연습이나 해.] [ 쳇…]나는 연탈백의 요결에 따라서 호위무사의 백 또한 뺏아오려고 했다. 생각외로 쉽게 그의 백이 이끌려서 내게로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제갈사의 말마따나 육체접촉이 강렬할수록 연탈백도 쉬워지는 모양이었다.
첫 시도에서 성공하자 나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시선의 공유에 참혹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 씨발! 왜 옷을 벗는 거야 이 미친놈이!’
두 남녀는 웬 방에 들어가더니 서로 옷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놈의 알몸 따위는 그리 보고 싶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여자의 시선으로 보니 색욕만이 존재하는 음흉한 시선이 대놓고 느껴졌다.
‘ 으웩!’
토 나온다! 사내의 음경이 치솟아있는 모습이 너무 소름이 돋아서 손이 벌벌 떨릴 정도가 되자 제갈사가 킬킬거렸다.
[ 오오 이 분들 한 판 할 거 같은데?] [ 이거 시야공유를 어떻게 끊어?] [ 왜 끊냐? 좋은 구경하는데.]나는 머리가 지끈지끈거려서 머릿속으로 외쳤다.
[ 닥치고 방법이나 말해! 토할 것 같으니까.] [ 재밌는데 왜…]제갈사는 투덜거리며 방법을 알려주었다. 시야공유를 해제하자 내게는 두 명 분의 백이 모였고, 제갈사가 설명을 이었다.
[ 자. 지금 모은 백은 저 2명을 차후에 조종하는 데 쓸 수 있다. 하지만 네 녀석은 그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백을 소모하는 편이 좋다.] [ 다른 방법?] [ 백이란 무엇이냐? 혼은 존재의 본질이지만 백은 동력이다. 동력이라는 건 소모재라는 뜻이지. 그래서 모으면 모을수록 가치교환에 유리한 점이 있어.] [ ……?]제갈사가 말했다.
[ 자세한 건 내일 말해주마. 어차피 노예시장에 들른 김에 그 놈을 한 번 봐야 할 테니.] [ 그놈이 누군데?] [ 뒷구멍의 장사치! 그 놈을 만나야 한다.]나는 남은 시간 동안의 절반은 교주에게서 전수받았던 삼보절기를 복습하고, 남은 절반은 이혼대법의 숙련도를 높았다. 명상 위주로 진행되었기에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만 하루가 지나자 상문이 나를 부르러 왔다.
“호법사자님.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나는 유시가 되기 반 시진 전에 복장과 금전을 모두 갖춰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 경매에 참여하는 나의 표면적인 설정은 ‘돈많은 세도가 졸부의 아들’으로서, 이번 경매에서 멍청한 척 하면서 노예를 구매하기로 한 것이다.
“갑시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타고 상문과 둘이서 관도를 지나치고 있자 상문이 말했다.
“도착장소는 점리채(卜里寨) 지역입니다. 깡촌이 하나 있으며 아무것도 없는 산중입니다만… 역시 이천 명이나 되는 노예를 수용해서 시장을 열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안에 못 들어가는거요?”
“네. 가지고 계신 그 초대장은 하나뿐이니…”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시뻘건 초대장을 꺼내들었다. 이 초대장은 특이하게도 선혈에 물들여진 것처럼 시뻘갰고, 양피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시꺼먼 글자가 마치 올올이 박혀있는 듯한 초대장은 굉장히 특이했다.
이윽고 마차가 멈춰섰다. 마차에서 내린 나는, 여기서부터 좁은 협곡과 협애가 이어지기 때문에 마차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말없이 상문과 인사하고 점리채의 산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 조그마한 산길이군.’
소로를 따라서 약 일백 장을 걸었을까? 갑자기 내 손에 들려있던 초대장이 빛나더니, 내 앞에는 시뻘건 통로같은 게 허공에 생겨났다.
“이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인기척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손님’들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하나둘씩 기(氣)가 사라진 것이다. 아마도 내 눈 앞에 열린 이 통로를 따라 들어간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되면 이 통로로 걸어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침착하게 통로를 쏘아보자 제갈사가 말했다.
[ 대놓고 혈계(血界)를 경유지로 쓰다니 어지간히도 미쳤군. 자칫하다가는 모조리 마수의 먹이가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