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78)
00378 천계(天界) =========================================================================
노인은 내 말을 듣자 당혹한 듯 말했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신 건지 알고 계신겁니까 공자?”
“물론이오.”
나는 이 상황의 해결책을 제갈사가 갖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제갈사는 정말 싫은 놈이지만 이유도 없이 쓰레기 계책을 내놓는 놈은 아니었다. 적어도 성공을 하고 나서 깔보는 게 책사의 기본이라는 걸 숙지하고 있는 놈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에서 제갈사가 불러주는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공주나 보검이라고 한들 어차피 신외지물. 실질적으로 사용자에게 엄청난 힘을 줄 수 있는 마도서에 비견할 바는 되지 않지. 저 담로가 보패급이라면 몰라도 그 정도는 아니잖소?”
“……”
“나는 마도의 물건을 보고싶소. 그것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오.”
내가 단정짓듯 말하자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어조가 확 바뀌어서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상관정 공자가 아니군.”
난데없이 차가운 적의가 날아들었다. 물론 살기나 적의에는 익숙해져 있기에 이 정도로 쫄지는 않지만, 나는 노인이 뿜어내는 적의가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보통의 인간이 내뿜는 살기와는 질이 다른 농밀한 적의였으며, 동시에 내가 여태껏 마주해본 적 없었던 희한한 기운이었다.
‘ 뭐지? 이 놈은 기문공력이라도 익히고 있나?’
[ 쓸데없는 생각 말고 빨리 대답을 해라. 중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내 의문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제갈사가 말을 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다. 나는 별 수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상관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요?”
“상관가는 옛적부터 낙양에 거한 명문가다. 천하오대의원을 배출하기도 한 정파의 일원이기도 한 상관가의 자식이 마도서나 마도구를 알 리가 없다.”
나는 제갈사가 시키는대로 짐짓 실망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정말 불학무식한 자로군. 상관가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건가?”
“뭐라고?”
“상관가의 시조는 상관완아(上官婉兒)로 측천무후의 제일가는 책사이자 측근이었지. 그리고 측천무후는 이족과 깊은 거래가 있었으니, 우리 상관가야말로 마도의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가문이라는 것도 몰랐나?”
“……”
내 말에 노인은 입을 벌린 채 놀라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당혹해서 제갈사에게 질문했다.
[ 야 사실이야? 진짜 그런거야?]제갈사가 신경질을 냈다.
[ 아 좀 닥치고 대화에나 집중해라! 좀 있다가 설명해 줄 테니.] [ 알았어.]나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는 말을 이었다.
“또 하나. 나는 상관가의 후예로서 지식이 풍부하기에, 진작에 당신의 본질을 파악했소. 당신은 내게 이름도 정체도 밝히지 않았으나, 노예시장의 일개 관리인일 리가 없지. 당신이야말로 노예시장의 중책을 맡고 있는 최고 지배자이며 이족(異族)이라는 것도 알고 있… 소!!”
엥? 진짜야?
이 노인네가 이족이라고?
나는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아서 눈을 껌벅이면서 겨우 말을 이었다. 내가 말하면서도 사실인 걸 믿기 힘들어하다니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 말을 들은 노인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동안 침묵하더니, 이윽고 놀라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그의 몸뚱이가 녹아내리는 듯 했다. 인간의 살갗이 마치 점액처럼 녹아내렸고 시뻘건 살점이 뚝뚝 떨어졌다. 흡사 촛농처럼 녹아내리던 그 몸뚱이는 이윽고 시꺼먼 기운과 함께 허공에서 소용돌이쳤고, 잠시 후에는 절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 모습을 갖추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날개가 달린 기둥처럼 보였다. 몸뚱이는 커다랬으며 사이로 촉수가 서너개 달려 있었고, 머리부분에는 움찔거리는 바다생물의 구강같은 게 달려 있었다. 다리의 커다란 빨대같은 관으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민첩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존재는 이윽고 내 정신에 직접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잘 알고 있군. 상관 가문의 인간이 그런 비밀을 지니고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내 무례를 사과하겠다.]이족의 언어이지만 일부러 인간의 뇌에 소통할 수 있도록 자체번역을 해준 듯 했다. 그걸로 봐서는 상대방은 이족 중에서도 상당한 고위존재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이족의 모습이 신기했지만 어쨌든 제갈사가 시키는대로 말을 이었다.
“그대는 머나먼 고대에 흉신의 후예들과 전쟁을 치른 [옛 종족]이군. 지금은 세상의 북반구에 산다고 들었는데 어찌 중원까지 와 있소?”
[ 후후… 정말 많은 걸 알고 있군.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을 정탐하면서 지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파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지.]
“……”
나는 제갈사 이 놈이 이족에 대해서 얼마나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질문했다.
[ 옛 종족이 뭔데?] [ 설명하자면 길어지는데, 저 옛 종족도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고등종족이다. 무대에서 물러난 지배자라고 할 수도 있지.] [ 강하냐?] [ 신체능력은 별거 아니다. 하지만 문명수준이 차원이 달라. 옛 종족에 비하면 인간은 원숭이에 불과하다.]저 기괴하게 생긴 이족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라니?
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이족을 쳐다보자, 그 자가 말했다.
으름장같은 말이었으나 저건 그저 사실재확인에 불과했다.
“사실 사전에 조사를 하고 왔소.”
[ 뭐라고?]
“당신은 몇몇 인간들과 거래를 터 놓았더군. 배화교의 교주로부터 당신의 정보를 전해들었고, 추천을 받아서 왔소. 이 바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어둠의 상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소.”
그러자 옛 종족은 음습하게 웃었다.
[ 흐흐… 제갈사의 추천인가? 그럼 확실하군.] “나와 거래해 주는 거요?’옛 종족이 질린 듯 말했다.
[ 물론. 헌데 제갈사의 추천을 받을 정도라면 너도 어지간히 미쳐버린 모양이군… 앞날이 두려운 인간이다.] “……”제갈사. 너는 대체 생전에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또한 제갈사가 노예시장에 오기 전에 말했던 ‘상인’이 누구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제갈사는 처음부터 풍신류와 황궁 따위는 관심이 없었고, 눈 앞의 ‘옛 종족’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배교의 교주이며 마도사라지만 현세에 와 있는 이족과 거래를 하다니 제갈사는 정말 미친 놈이었다.
‘ 보통은 이족을 보는 순간 공포와 광기를 느낄건데…’
제갈사가 내 생각을 읽고는 이죽거렸다.
[ 지랄하네. 나보다 더한 놈이 뭐래는 거야?]옛 종족은 잠시 후 자신의 촉수를 허공에 뻗더니, 반투명한 사각형을 소환했다. 그리고는 촉수로 사각형 하나하나를 건드렸는데, 마치 그 사각형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렇게 무언가를 조작하던 옛 종족이 말했다.
[ 어떤 마도서를 원하지?] “그한이라던가… 영벌받을 금기 정도가 좋겠군.”그러자 옛 종족이 성을 냈다.
[ 미친 놈. 정말 마도사였군! 그런 걸 인간세계에서 찾는 거냐?] “갖고 있는지 아닌지나 얘기해 주시오.”[ 없다. 서역에 있을 거다.] “그럼 갖고 있는 마도서는 어떤 게 있소?”
[ 말해주기 전에 그 댓가를 치른다는 담보가 있어야겠는데.]
옛 종족이 슬며시 나를 노려보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일단 말을 해 주시오. 당연히 치를 자신이 있으니까 온 거잖아.”
[ … ‘황금가지’가 있다.]
“호오. 무명제사서나 나인성본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뛰어난 마도서군.”
[ 재수없는 놈. 어디서 인간 주제에 마도서의 격을 운운하는 거지?]
“하하하.”
옛 종족이 투덜거렸지만 그건 적의라기 보다는 상인으로서의 장난어린 말투에 가까워보였다. 그리고 나는 제갈사의 말을 하는 도중에 그들 사이에 공유되는 광기를 느끼며 소름이 끼쳤다. 마치 태연하게 인육 얘기도 할 것만 같은 기괴한 분위기였다.
‘ 제갈사 이 놈은… 완전히 이족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어!’
이미 인간의 정신이 아니다. 내가 섬뜩함을 느낄 때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마도서 ‘황금가지’를 사고 싶군.”
옛 종족이 촉수를 뒤틀며 대꾸했다.
[ 대가를 제시해라.] “선제시라고? 정말 양심도 없군. 제시하라는 상인 치고 제대로 된 놈을 못 봤는데.”[ 싫으면 말아라. 어차피 네놈에게 팔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쳇…”
제갈사가 머릿속에서 투덜거렸다.
[ 선제시충은 지 애미애비 팔아넘길때도 가격 제시하라고 할 놈인데. 이거 잘못 걸렸군.]나는 걱정이 마구 밀려들어왔다.
[ …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수습할 자신 있는거지? 여기서 일이 꼬이면 안돼.] [ 걱정 마라.]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나는 이혼대법을 익혀서 백(魄)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소. 이걸 보시오.”
우웅
나는 어제 모았던 남녀의 2인분 백을 영력으로 가공해서 손바닥 위에 띄웠다. 그러자 옛 종족이 자신의 촉수를 부르르 떨다가 말했다.
[ 흥미롭군. 백을 내게 지급하겠단 건가?] “물론. 백이 있으면 남극에 동면한 당신들 일족이 활력을 이어가기 쉽잖소?”[ 별걸 다 알고 있군… 하지만 그건 양이 너무 적어 보이는데.] “마도서를 할부로 사겠다는 소리요.”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여유있는 척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1만 명 분의 백을 모아서 당신에게 지급하지. 어떻소?”
[ 1만 명… 흐음…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나는 여기서 더 내놓을 생각 없소. 당신의 성의를 보고 싶군.”
[ ……]
옛 종족은 조그마한 날개같은 걸 파닥거렸다. 이종족이 생각을 할 때 일어나는 현상인 듯 했다. 한참동안 고민하던 옛 종족이 말했다.
[ 조건은 충분하다. 다만 네가 마도서를 얻으려는 이유를 알고 싶은데.]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마도서는 [옛 지배자]와 큰 연관이 있다. 그래서 함부로 다루면 계약이 꼬여서 재앙을 일으키게 되지. 당연히 목적을 알아야 한다.] “굳이 말하자면 내 힘을 키우기 위해서요. 됐소?”
[ 아니… 안 된다. 그 정도로는 넘겨줄 수 없다.] “……”
옛 종족이 말을 이었다.
[ 지금의 네게는 마도서를 넘겨줄 수 없다. 할부계약이 불확실할 뿐더러 동기도 분명치 않다. 하지만 네 성의를 봐서 마도구는 거래해 주마.] “웃기는군. 어차피 마도서를 갖고있어 봤자 쓸데도 없으면서…”[ 건방지게 굴면 네놈을 없애버리겠다.] “알았소. 그쪽 말대로 하지.”
위잉
[ 이걸 거래하자.]옛 종족은 잠시 후 어두운 공간에서 무언가를 소환해서 내게 주었다. 내가 그 물건을 받아들자, 그게 은빛으로 빛나는 팔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팔찌에는 황색의 보석이 박혀 있었으며 기묘한 조형이 양각되어 있었다. 나는 팔찌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이건 마수계약의 팔찌인가?”
[ 잘 알고 있군. 상등품이다.]
“백 200인분, 어떻소.”
[ 또 헛소리를 하는군. 일시불만 받겠다는 말 뜻을 못 알아들은거냐?]
“쳇… 그럼 이걸로 거래합시다.”
쿠웅
나는 잠시 후 목갑에서 교주가 줬던 금괴와 은괴를 몽땅 내려놓았다. 옛 종족은 금은보화를 보자 감정을 하듯 살펴보더니 말했다.
[ 괜찮군. 하지만 나로서는 그 목갑을 줬으면 좋겠는데.] “안 되오. 그렇게 하시려면 내게 마도서 황금가지를 주셔야지.”[ 흥… 좋다. 이걸로 거래하면 되겠…]
옛 종족이 대꾸하려 할 때 나는 갑작스레 끼어들었다.
“아니, 계산이 안 맞는군.”
[ 뭐라고?]
“이걸 주는 김에 당신과 함께 노예시장을 운영하는 인간세력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 주셔야 겠소. 놈들의 우두머리 위치까지. 그래야 댓가가 맞잖아.”
[ 그런 건 알아서 뭘 하려는 거냐?]
“잘 들으시오. 오늘로 노예시장은 끝장날 거요.”
옛 종족이 놀랐는지 촉수를 부르르 떨었다.
[ 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무생노모의 교단이 냄새를 맡아서 인근에 당도했소. 이미 공격준비가 다 된 상황이지. 지금이라도 몸을 빼는 게 좋을 것이오.”[ ……]
침묵하는 옛 종족을 보자 나는 걱정이 앞섰다. 뭔가 제갈사가 제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 같은데 이대로 진행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짜증나는 것은 제갈사가 어떤 의도로 말을 시키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옛 종족이 말했다.
나는 제갈사의 말대로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텐데 인간세력과의 거래에 집착할 필요가 있소? 나는 백을 모을 수 있으니 그 자들보다 훨씬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소.”
[ 흐음…]
“시간이 없소. 난장판이 되기 전에 장사를 정리하려면 빨리 결정하시오.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 좋아. 속는 셈 치고 믿어보지.]
옛 종족은 머릿속으로 계산이 끝났는지 날개를 파닥거리며 말했다.
[ 나와 직접 협력하는 것은 황궁이고, 그 황궁과 연수하는 건 풍신류라고 불리는 무인집단이다. 이 건물 옆에 있는 붉은 기와건물의 최상층에 노예시장의 관리인들이 머물고 있다.] “그렇군. 놈들의 경비상태나 실력도 알려 주시오.”[ 알았다…]
휙
옛 종족은 웬 금강석(金剛石)을 꺼내서 내게 던졌다. 금강석을 받아들자 갑자기 머릿속에 확하고 정보가 물밀듯이 쏟아져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 기억 전송의 술법!’
하지만 내가 보유하고 있는 흑요석의 술법과는 달랐다. 근본적인 체계와 원리부터가 달랐다. 다만 ‘기억’을 ‘전송’한다고 하는 효과는 같았다. 이윽고 나는 이 노예시장의 구조는 물론이고 와있는 자들의 면면까지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옛 종족은 잠시 후 허공에 뭔가 차원문을 만들어서 들어가며 말했다.
[ 또 보자.]스으윽…
옛 종족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긴장이 풀려서 한숨을 쉬었다.
“후우.”
뭔가 알 수 없는 거래가 휙휙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제갈사에게 질문했다.
[ 야. 대체 방금 무슨 거래를 한 거야? 설명 좀 해봐!] [ 설명은 무슨… 이해를 못하다니 정말 둔한 놈이군.] [ 너만 아는 소리를 주구장창 읊었으면서 무슨 헛소리야? 얼른 설명해!]내가 윽박지르자 제갈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너는 미끼다.] [ 뭐?] [ 마도서를 얻고 싶었지만, 지금 네가 여기서 얻어갈만한 소득은 그 팔찌 뿐이야. 이제는 구경만 하면 된다.] [ 이해가 안 된다고…!! 제발 설명 좀 해줘.]제갈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정말 지랄맞군. 현이는 이런 놈을 주군으로 모셨다니…] [ 바보취급 작작하라고…!!]순간적으로 머리꼭대기까지 열화가 치솟아 올랐다. 그래서 나는 지체하지 않고 절연의 언령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걸 쓰면 제갈사 놈을 내 몸에서 쫓아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자 제갈사가 클클대며 말했다.
[ 흐흐,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지금까지도 절연의 언령을 쓸 수 있었는데 내가 유용할 것 같아서 그냥 놔둔 거였지? 좀 속을 긁어대니까 이제야 절연의 언령을 쓸 생각이 드는 거냐?]나는 열받아서 외쳤다.
“지랄 마! 너같은 놈은 이제 필요없어!”
제갈사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이죽거렸다.
[ 그래… 해 봐라. 나도 마침 질리던 참이다. 겨우 이 정도 그릇으로 [옛 지배자]에게 대항하겠다니 한심해서 우스울 지경이야.]멈칫
나는 절연의 언령을 외우다가 뜨끔하는 기분이 들어서 영창을 중단했다. 제갈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비꼬았다.
[ 야, 멍청아. 현이한테서 좋은 소리만 들으니까 거기에만 익숙해졌지? 전생할 때마다 역량이 상승하고 있으니까 자신감도 좀 붙었지? 이만하면 군주의 그릇은 된다고 생각했지?]제갈사가 전에 없이 견명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 웃기지 마라. 내 한마디에 찔끔해서 바로 손바닥 뒤집듯 돌변하는 걸 보면 네녀석은 아직 멀었어.] “흐… 쫓겨날 것 같으니까 다급해졌나 보지?”[ 다시 말하지만 내가 틀린 말을 하고 있다면 반박을 해 봐라. 책사가 쓴소리 몇 번 했다고 울컥해서 판을 다 엎어버릴 생각을 하는 네 녀석이 과연 신에 대항할 그릇인지. 동서고금의 패왕들에 비하면 정말 소심하기 짝이 없어.] “……”
내가 대꾸를 못 하자 제갈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 난 계속 말했지. 나한테 일일이 묻지 말고 네놈 머리로 생각하라고. 하지만 내가 머릿속에 있어서인지 네 녀석은 자기 머리를 안 쓰고 계속 나한테만 의존했지. 방금 내가 진행했던 거래가 과연 네 지능으로 분석이 불가능한 거래였냐? 아닐걸? 조금만 생각해도 인과관계를 다 파악할 수 있었을걸?] “… 그건.”[ 현이는 매번 네 전생마다 그따위 어리광을 몇십 몇백 번이나 받아줬던 거다. 네놈 대신 자기 머리를 굴려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썩을 놈을 내치고 싶다는 생각도 하면서, 이 멍청이가 사람이 될 때까지 칭찬해 주면서 열심히 키워야겠다고 동정심을 품었을걸? 정말 대단하셔라!]
망량의 이야기가 나오자 할 말이 없어진다. 제갈사의 말은 내가 마음속에 감추고 있었던 약점을 정면으로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 쫓아내고 싶으면 당장 쫓아내라. 하지만 그건 네 한계를 뜻하는 거다.] “빌어먹을…”나는 풀썩 주저앉아서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후에 말했다.
“… 미안하다. 다시 생각해 보겠다.”
제갈사의 말대로다. 이대로는 발전이 없다.
절연의 언령으로 제갈사를 쫓아내는 건 간단하며,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제갈사가 얼마 전부터 짚어주는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끔 했다. 전생자로서의 직감이라고 해야할까, 놈이 말하는 쓴소리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내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이 닥쳐온 것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 그렇다.] “하지만 정말로 이해가 안되는 게 있다. 미끼라는 게 무슨 말이냐?”
[ 흠… 넌 아직도 백련교주를 잘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군.]
제갈사는 말을 이었다.
[ 백련교주는 널 믿지 않고 있어. 그런데도 풍신류의 꼬리를 잡아내야 하는 이 중대한 임무에 네 녀석을 거의 혼자서 파견했지. 또한 상관정이라는 신분도 굉장히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설마…”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놀랐다.
[ 이미 시작됐을 거다. 너는 노예시장 관리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미끼였고, 본진이 지금쯤 와 있겠지. 처음부터 양동작전이었다는 소리다.]콰광!
거대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내가 그 쪽을 돌아본 순간, 나는 새로운 국면이 닥쳐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룡(水龍)!
무려 이십 여 장에 이르는 비현실적인 크기의 수룡이 노예시장이 허공에 떠 있었다. 수룡 위에는 한 인영이 서 있었는데, 안력을 돋우어서 그 모습을 파악하자 나는 그 정체를 즉시 알 수가 있었다.
‘ 독고준…!!’
황금용 가면을 쓴 수신류의 호법사자는 수룡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장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수십여 명의 괴인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하나같이 水 글자가 적힌 무복을 입고 있었다. 또한 괴인들의 무공은 하나같이 엄청난 수준으로 보였다.
그랬다.
수신류가 풍신류를 치러 이 자리에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