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85)
00385 천계(天界) =========================================================================
파앗
선지자에게 도착하자마자 나는 선지자에게 말했다.
“거래하러 왔다.”
[ 뭐지? 벌써 수신의 마도서를 가져왔나?]
“아니.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보물이다.”
스윽
“무명제사서다.”
나는 무명제사서를 선지자에게 내놓았다. 그러자 선지자는 촉수로 무명제사서를 받아들고 한참이나 들여다보았고, 감정이 끝나자 놀란 듯 말했다.
[ 진품이군… 어떻게 입수한 거지…?] “그건 말할 필요 없잖아? 중요한 건 내가 무명제사서에 상응하는 댓가를 교환받을 권리가 있다는 거지.”[ 흐음… 그런가… 그러면 가치판단을 해 보자…]
선지자가 슬며시 내게 촉수를 뻗자, 나는 손을 내저었다.
“내 심상을 읽어서 적합한 댓가를 조율할 필요는 없어! 내가 선제시를 하면 당신이 판단하는 방식이 피차 편하지 않겠나?”
[ 좋다… 그게 편하다면…]
이것도 제갈사가 시키는대로 하고있는 중이다. 제갈사는 거래의 주도권을 선지자의 양심에 맡기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선제시와 심리전으로 교섭을 이끌어나가는 게 좋다고 한 것이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칠요의 행방을 아는대로 알려줘! 무명제사서라면 그 정도 정보의 가치는 있겠지?”
[ 칠요의 행방… 어려운 주문이군…]
선지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꾸했다.
[ 내가 알고 있는 칠요의 행방은 총 6개… 나머지 1개의 행방은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걸 네게 알려줄 수는 없다.] “왜?”[ 천계와의 비밀엄수 조약 때문이지… 그들은 내가 온건파 이족의 수장이기에 비밀을 최대한 공유했으나 결코 칠요의 봉인이 풀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조약때문에 기밀을 누설할 수 없다.]
그러자 제갈사가 속으로 코웃음쳤다.
[ 예상했던 대로군. 그럼 이렇게 나가라.]나는 이윽고 제갈사가 시키는대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 조약을 파기하는 댓가에 무명제사서가 포함되는 거라고. 분명히 말하건대 무명제사서의 가치는 조약을 파기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현존하는 마도서 중에서 최고수준이니까.”
[ ……]
선지자는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 약속을 어기라고 종용하다니… 너는 그리 선한 인간이 아니군…] “선악을 떠난 효율성의 문제겠지. 어차피 조약이란 것도 상호이득이 있어서 맺는 게 아닌가? 나는 당신에게 더 큰 이득을 주겠다 이거야.”[ 재밌군… 대담한 제안이야…]
선지자는 촉수를 떨더니 말했다.
[ 좋다… 받아들이지… 칠요의 행방을 알려주마.]좋았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윽고 선지자가 말했다.
[ 나는 일요(日曜)을 제외한 모든 칠요의 행방을 알고 있다… 뭐부터 알려줄까…?] “음, 말로 들으면 확실하지가 않아. 좌표를 찍어주거나 시각화된 자료로 설명해주거나, 흑요석의 술법으로 전달해 줬으면 좋겠는데.”[ 좋다…]
우우웅
선지자가 허공에서 흑요석을 소환해서 자신의 기억을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내게 휙하고 던져주었고, 다음 순간 나는 선지자가 말했던 육요(六曜)에 대한 정보를 기억으로 얼추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
하지만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리고 항의했다.
“잠깐! 이건 뭐야? 단편적인 육요 주변의 풍경 관찰밖에 없잖아! 겨우 이 정도 단서를 갖고 찾아가라고?”
그러자 선지자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 아무리 그래도 천계와의 약속을 완전히 어길 수는 없지… 네가 스스로 노력해서 찾아갈 정도로만 단서를 제한하겠다… 이건 인과율에도 어긋나는 방식이 아니니 따지지 마라…] “윽…”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흑요석을 통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은 육요의 유적 주변에 있는 풍경을 본 시각적인 기록 뿐이었다. 거기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정보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보통 흑요석에 배경지식과 정보도 담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틀림없이 고의적인 행위였다.
내가 따지려고 들자 제갈사가 만류했다.
[ 야. 관둬라. 저런 깍쟁이의 신경을 건드리면 더 상황이 나빠진다. 저런 놈은 슬슬 긁어내야 옳다.] [ 쩝…]내가 들었던 손을 엉거주춤 집어넣자 선지자가 말했다.
[ 하지만 그것만으론 댓가가 부족하니… 각각의 장소로 찾아갈 수 있게 설명해 주지…] “솔직히 말해 봐. 그냥 설명하고 싶었던 거지?”내가 짜증때문에 딴죽을 걸었지만 선지자는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 먼저 월요(月曜)… 그것은 동쪽의 반도(半島)에서도 강화현(江華縣)의 강도(江都)에 있다… 보다 정확히는 마니산의 지하에 있다…] “음.”옳은 정보다. 나는 선지자가 지금 설명해주는 게 정확한 정보라는 걸 이미 전생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실제로 월요의 위치는 선지자가 설명해주는 위치가 맞는 것이다. 내가 집중해서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 그리고 화요(火曜)… 이건 최남단에 있는 대륙의 중심부… 칼투카자라의 동쪽으로 간 유라라의 적색 거암 내부에 존재한다…] “칼투카자라? 유라라?”[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그렇군.”
화요에 대한 커다란 단서를 잡은 느낌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선지자의 말이 이어졌다.
[ 수요(水曜)는 중원 황산(黃山)의 심산유곡… 삼황오제(三皇五帝) 전욱이 마지막으로 치수(治水)의 증거를 남긴 장소… 위치는 너라면 쉽게 찾아내겠지…] “그래, 다음은?”[ 목요(木曜) 해인(海印)이 있는 장소는 십이율 만하령문의 근원인 장백산(長白山) 신단(神檀)이다…] “……”
나는 더욱 집중했다.
‘ 여기까진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사실들.’
금요와 토요의 행방이 중요하다!
[ 금요(金曜)는 성지(聖地) 팔리아스의 최심부에 고신족(古神族)과 함께 봉인되어 있다… ] “……?”굉장히 이질적인 지명이 들려오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는 반문했다.
“팔리아…스? 중원어는 아닌 것 같은데, 그곳은 설마 서방인가?”
[ 그렇다… 서방에서도 가장 신비의 근원에 접근한 자들… 연금술사와 마법사들의 길드가 금요를 보유하고 있다… 서방 마법사들의 본거지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팔리아스다… 신화에서 비롯된 혈족들이 거하는 장소다…]
“……”
서방!
나는 난데없이 금요의 행방이 서쪽으로 통한다는 걸 알게 되니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말이 서방이지, 지금까지 내가 향했던 그 어떤 오지보다도 멀리 가야만 하는 것이다. 최소한 수천리 길이었다.
‘ 아, 사불상을 이용하면 단숨에 갈 수 있겠지.’
그렇다 해도 마법사들의 근거지에 금요가 있다는 건 영 껄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장소가 어떻게 되는 건데?”
[ 지정학적으로는… 현 서방의 대영제국(大英帝國) 근처에 있군…]
“뭐? 자세한 위치를 모르는 거야?”
[ 다른 칠요와 달리 금요는 본디 동방에 있다가 서방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초기 칠요의 배치 뿐… 지금의 정보도 이후에 수집한 정보에 근거해서 도출한 결론일 뿐이다…]
“음… 직접 찾아봐야 한다는 소리군.”
나는 날로 먹을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직접 대영제국 근처로 가서 정보를 수집하고, 성지 팔리아스로 가는 법을 알아내서 금요의 봉인지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선지자가 말했다.
[ 내가 알기로 마지막으로 측천무후(則天武后)의 공양물로 바쳐졌으니, 측천무후를 신(神)으로 만들어 계약한 존재가 보유하고 있겠지… 칠요를 탐내지 않을 리가 없으니…] “측천무후!”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왜 토요의 행적을 쫓고 있는데 측천무후가 나온다는 말인가?
내가 알기로 측천무후는 말년에 봉선의식을 이용해서 암천향의 하위신으로 승천하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적이 나와는 관련이 없어서 무시하고 있었던 정보인데 하필 토요 팔괘도를 그녀가 보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내가 놀라자 선지자가 말을 이었다.
[ 은카이의 수면자겠군… 뭐… 이 쪽은 포기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군…] “은카이의 수면자라면 설마 황궁을 뒤에서 조종하는 그 놈을 말하는 거냐?”[ 그렇다… 실질적으로 [옛 지배자]의 수중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 토요를 손에 넣을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겠지…] “……”
나는 칠요의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 화요, 금요와 토요에 대해서 한발짝 나아간 것 같다.’
특히 화요의 경우는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을만큼 접근한 느낌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서 질문했다.
“왜 일요의 정보는 없는 거지? 천계가 당신과 협력한다고 하지 않았나?”
[ 나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천계에 있어서 일요란 상당히 특별한 존재인 것 같았다… 어쩌면 지상세계에 없을지도 모르지…]
“지상에 없다고…?”
잠시 침묵하던 선지자가 말했다.
[ 내가 알고 있는 건, 일요와 황제(黃帝) 공손헌원 사이에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과… 일요의 힘은 모든 칠요 중에서 최고로 강력하다는 것 뿐이다.] “황제…!!”[ 모르지… 나머지 육요를 다 모으면 일요의 행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선지자의 예측은 그럴듯 했다. 태양을 상징하는 일요라면 칠요의 정점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점인 이유는 황제 공손헌원이 제작에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보면 타당했다.
‘ 다음 생에 수기공양을 할 때 일요의 정보를 알아볼까.’
그러자 제갈사가 피식 웃었다.
[ 멍청하긴. 위대한 종족의 수장과도 공유하지 않은 비밀이라면 천계 최고의 극비일 거다. 수기공양 정도로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그런가…] [ 그래서 지선 망량이 너한테 천계의 비밀부터 알아내라고 한 거다. 천계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하면 지상세계에서 뭘 해도 칠요를 다 모으는 건 불가능하니까.]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연이어서 주문했다.
[ 야. 아직 댓가가 남을 거다. 마지막으로 이걸 물어보고 끝내라.]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자 그럴듯하다 생각했다. 그리고는 심호흡하고 선지자에게 말했다.
“선지자. 내 계산으로는 아직 댓가가 좀 남아있을텐데?”
[ 미미한 수준이지…]
“그럼 상담 정도는 괜찮겠네. 안 그래?”
[ 어떤 상담인가…]
“나는 선천적인 무술재능과 술법재능이 좀 부족하다. 이걸 올릴 방법이 없을까?”
[ ……]
선지자는 뜻밖의 질문을 들은 듯 촉수를 꿈틀거리는 기색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선지자가 내 말에 대답했다.
[ 재능 그 자체를 상승시키는 축복은 매우 드물다… 방법도 매우 한정되어 있지…] “왜? 재능을 올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재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려볼까…]
선지자가 천천히 옆으로 이동했다.
[ 재능이란 건… 노력할 수 있는 재능을 포함해서… 직감… 유연성… 창의성… 선천적인 소질… 발전가능성… 그 모든 걸 의미하지… 하지만 그렇다면… 재능을 올린다는 건… 인격(人格)이 바뀐다는 의미가 되지 않겠나?] “인격?”[ 그렇다… 인격…]
선지자는 눈을 데굴거리며 말을 이었다.
[ 인격이 바뀌지 않는데… 재능이 상승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신의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는 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뭐… 그 역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기에 재능을 향상시키는 술식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여차하면 대상자에게 심대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군…”[ 그렇다 해서… 물리적으로 직접 뇌에 약물을 투여하거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방식은… 너무 저급해서 부작용이 더 많지…]
나는 선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재능이란 건 정신의 모든 방면에 작용하는 총괄적 개념이므로, 자칫 잘못하다가는 섬세한 정신세계를 건드려서 폐인이나 괴한으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뭔가 방법이 없겠어?”
[ 그럼 제물을 마련해서 마신과 계약할 수밖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옛 지배자]와 얽히는 건 그리 달갑지 않아. 좀 더 정상적인 방법은…”
[ 흠… 굳이 무예의 재능을 상승시키고자 하면… 종리권(鍾離權)과 상담하는 게 나을거다…]
“종리권?”
[ 검선 여동빈의 스승은 화룡진인이며… 동시에 종리권이지… 하지만 인간시절의 여동빈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서 선도의 길로 이끈 것은… 종리권이라고 알고 있다… 허나 여동빈은 생전에 절세천재가 아니었다…]
“흠… 여동빈이…”
[ 그런데도 그를 팔선의 일원이자 투선으로 키워냈을 정도이니… 뭔가 종리권에게 비결이 있지 않겠나…]
“……”
팔선 종리권!
지금까지 여동빈 이외의 팔선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뜻밖의 단서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윽고 이야기가 다 마무리되었다 생각했는지 선지자의 신형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 너와의 거래는 재밌군… 다음 거래도 기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