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422)
00422 천계(天界) =========================================================================
[ 사불상은 타고싶지 않다.]내가 그를 사불상에 태우려 하자 선지자는 대뜸 말했다.
“왜?”
[ 사불상은 영수라서 내 마력과 상성이 좋지 않다… 서로 꺼려진다. 가시덤불에 앉아있는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천제단까지 가려면 거리가.”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여기는 중원에서도 수천 리나 떨어진 이역강산이었으며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아라사제국이었고, 아라사제국을 조금만 넘으면 서역이었다. 서역 일보직전에 있는 장소에서 중원의 오악까지 어느 세월에 간단 말인가?
그러자 선지자가 말했다.
[ 천제단의 장소는 흑요석으로 보았다… 화산이 마음에 드니 거기서 진행하자.] “아니 어떻게 갈 거냐니까.”[ 알아서 갈테니 걱정 마라…]
슈욱!
선지자는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헉.”
뭔가 술법이나 마법을 쓴 건가? 내가 놀라서 그 모습을 지켜보자 내면의 제갈사가 독촉했다.
[ 가자.] “저 녀석 뭘 한 거야?”[ 마법을 사용했겠지. 이미 가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 해도 아스타나에서 오악까지 수천리나 되는데…”
전이술법이나 축지술은 술법체계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술법을 써도 일천 리를 움직이면 용한 것이었고 대술법사가 아닌 이상 백 리를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대번에 수천 리를 움직이는 술법같은건 상식외이자 규격외인 것이다.
사불상은 천계의 영수가 지닌 초능력으로 움직이고, 비등은 원래부터 이동용으로 만들어진 마도구라고 쳐도 술수 한번으로 수천 리를 움직일 수 있다니? 내가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결코 저런 상식외의 이동력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제갈사가 클클 웃었다.
[ 저 선지자라는 존재는 축융족의 왕이자 삼황오제 시대 이전부터 살아오는 고대의 괴물이다. 원래부터 별세계 너머에 살던 반신이자 초월자라는 거다. 보통 인간은 선지자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미칠수도 있을 정도지. 이족의 마법은 팔괘에 근거한 술법보다 훨씬 강력하니 저런 이적주문도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음… 그렇다면 술법이 마법보다 약하다는 소리냐?”[ 그게 아니라는 건 경험으로 잘 알지 않냐? 뭐든 숙련도와 자질이 중요한 거다. 술법이 마법보다 약한 거라면 환신 천우진의 강함이 설명되지 않지.] “으음.”
하긴 그렇다. 제갈사나 상관혁 등등 여태껏 보았던 마도사 중에서 환신 천우진보다 강한 놈은 없었다. 제갈사가 마법 얘기가 나오자 신이 났는지 말을 이었다.
[ 마법이나 술법이나 어차피 옛 지배자의 권능에서 비롯된 거지. 술법은 좀 더 특화된 체계일 뿐이다. 그리고 마법은 술법에 비해 인신공양의 수법이 훨씬 발달되어 있고 한계치가 높다는 장점이 있지.] “결국 사람을 갈아넣어서 강해지는 능력이란 거군.”[ 쥐뿔도 없는 재능에 인생이 마모되는 것보다야 백 배는 낫겠지?] “……”
제갈사의 말에 순간 혹했다. 확실히 재능이고 뭐고 무시한 채 인신공양으로 다 때우고 강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편하고 쉬울 수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는 말했다.
“가야지.”
슈욱
잠시 후 나는 화산의 천제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천제단 근처에는 수신류의 고수 세 명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 곧장 부복했다.
[ 부교주를 뵙니다.]나는 힐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신류의 고수들은 명령대로 화산파 본진을 제압함과 동시에 천제단도 확보한 모양이었다. 주변에 핏자국이나 전투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 무혈입성을 이뤄낸 건 사실인 듯 했다.
“명령하겠다. 이 근처에 오지 말고, 앞으로 하루동안 근방 오 리 내에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끔 해라. 화산파에도 전달해라.”
[ 존명.]
“만일 화산파 놈들이 접근하려 하면 죽여버리도록.”
[ 물론입니다.]
다소 거친 명령이었지만 이번 일이 꽤 중요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경고를 했는데도 못 알아먹는 등신이라면 죽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수신류 고수들이 경공으로 멀리 흩어지자 천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우웅
그러자 검은 빛과 함께 시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 자리에 선지자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미리 도착해서 수신류 고수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선지자가 말했다.
[ 왔군… 그럼 시작하지.] “잠깐. 봉선의식에 필요한게 뭐였지?”나는 확실히 할 겸 되짚어보기로 했다.
[ 차례, 권리, 자격, 시운.] “다 알고 있는건가?”[ 봉선의식을 고안해 낸 창힐은 내게도 봉선의식에 대해 전달했다… 알만한 건 다 알고 있다. 의식의 차례도 알고 있다.] “권리, 자격, 시운은?”
[ 넌 월요의 주인이 되고 천계의 인정을 받으며 봉선의식의 권리를 받은거나 마찬가지지… 그리고 시운(時運)은 내 마법으로 맞춰보겠다. 자격은 네 녀석이 몇 차례나 봉선의식으로 이득을 얻었으니 당연히 갖고 있겠지.]
차분하게 대답한 선지자의 몸에서 갑자기 휘광이 일어났다.
파아아앗!!
[ 봉선의식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뭘 바칠지, 뭘 요구할지를 확실히 해라.]휘광이 끝나고 나타난 모습은 뜻밖에도 인간의 형태였다. 그것도 마치 예전에 보았던 삼황오제 전욱처럼, 고대의 제관과 의복을 차려입은 괴인(怪人)이었다. 다만 완전한 인간형은 아닌지 시꺼먼 기운이 뭉글거리며 몸에서 솟아나오고 있었고 안면에 갑각질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눈의 흉광이 일렁이고 있어서 공포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갑자기 왜 인간형으로 변신한 거지?”
[ 삼황오제는 이족의 모습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 괜히 적의를 사기 싫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호오. 이족의 모습을 안 좋아하다니…”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느낌이다. 내가 신기해서 반문하자 선지자가 말했다.
[ 뭘 바칠 것이냐. 뭘 요구할 것이냐.] “……”나는 신중하게 고민하다가 말했다.
“… 초상기인과 마수의 팔찌를 바치고 천제의 발동중단을 요구하겠다.”
[ 과연. 하지만 대가가 너무 적지 않나?]
나는 씁쓸하게 대꾸했다.
“도중에 추가로 공양물을 바칠 수도 있지? 조율해 보는 수밖에.”
전국옥새와 월요를 바친다면 단숨에 10배 이상의 가치를 공양하는 셈이 되지만, 섣불리 선택할 수 없는 길이었다. 그걸 다 바치게 되면 나는 말 그대로 개털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거대한 판국에 전혀 관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실패할 경우의 위험이 너무 커서 숙고해봐야만 했다.
[ 가능하다. 그런데… 별로 좋지 않군.]선지자는 팔짱을 낀 채 약간 기분나쁜 기색으로 말했다.
[ 천지의 명운이 걸린 일에 너무 즉흥적으로 나서는 것 같군… 실패할 경우의 뒷감당이나 정확한 계산같은 건 없는 거냐?] “윽…”정확한 비판에 나는 움찔했다. 확실히 지금도 너무 느낌에 따라서 봉선의식을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냥 삼황오제한테 천제를 거둬줄 수 없겠냐고 봉선의식으로 항의를 하러 왔을 뿐 완벽하게 성공하려는 대책이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번 전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문제점을 깨닫자 선지자가 말했다.
[ 여기서 하루동안 기다리고 있겠다. 교주라는 자와 좀 더 대책을 논의하고 오도록…] “교주와?”[ 교주는 네 보물을 상당수 가지고 있다. 그 자에게서 보물을 넘겨받을 수 있으면 성공률은 훨씬 올라가겠지. 그리고 백련교주만이 지니고 있는 보물이 또 있을테니 말이지…] “아.”
그렇겠구나!
나는 선지자의 조언이 알맞다고 느꼈기에 황급히 말했다.
“고마워!”
[ 실수를 계속 하지 마라… 네가 준 성유물의 가치에서 정확하게 거래를 하는 중이다.]
“……”
섬뜩한 기분이 든다. 선지자야말로 한 치의 인정이나 양보도 없이 혹독하게 거래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방금 해준 조언도 자비나 인정때문에 한 게 아니라 내게서 받은 성유물 값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사불상을 타고 교주에게 되돌아갔다.
“교주.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주에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했다. 물론 뇌신류의 방해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도 이청운의 존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교주에게 상황설명을 끝낸 후 마무리로 말을 이었다.
“… 해서, 제 판단으로는 뇌신류를 건드리기 보다는, 오악을 확보한 김에 봉선의식을 치러서 성공률을 높이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 백웅. 그래서 내 보물까지 천제단 봉선의식에 함께 바치겠다는 말인가?]
“하늘사다리를 막는게 지금 제일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 흐음…]
교주는 크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교주가 말했다.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 시진 기다리도록.] “네.”나는 밖에 나가서 한 시진을 앉아서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을 채워서 다시 들어가자, 뜻밖에도 교주가 내게 비등과 목갑을 휙하고 넘겨주었다.
[ 이걸 받도록.]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게 끝이 아니다. 따라와라.] “……?”
나는 놀라움을 느꼈다. 비등과 목갑은 내가 생각하기에 천하의 절세명검에도 뒤지지 않는 대단한 마도구였다. 교주가 내게서 강탈한 비등 목갑을 제물용으로 돌려주는 것도 이상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니?
이윽고 나는 교주를 따라서 어디론가 향했다. 교주와 나는 백련교의 본단이 있는 요새 정문을 나섰고, 교주를 수행하던 원로원 고수들까지 모두 돌려보냈다. 호위역인 원로원 고수들까지 돌려보내는 걸 보면 교주가 가려는 장소는 심상치 않은 듯 했다.
휘잉
나는 교주를 따라서 엄청난 속도의 경공술로 이동한 끝에 웬 요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새라고 표현한 것은 마치 산 전체를 깎아서 만든 듯한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벽이 명백히 인위적인 수법으로 되어 있어서 이게 인공적인 구조물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덜컹…
기관장치를 작동시켜서 거대한 철문을 연 교주는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며 말했다.
[ 지금부터 보는 모든 것은 본교, 그리고 수신류 최대의 비밀이다.] “네?”[ 만일 이 비밀이 외부로 새어나간다면 나는 세상이 멸망할지라도 너를 고통스럽게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겠다.]
최대의 비밀!
그리고 교주의 엄포!
교주는 지금 백련교가 놓인 상황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냉철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죽음의 공포가 별로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엄포를 놓으면서 살해하겠다고 한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수틀릴 경우 다 포기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죽일 정도의 비밀이 이 안에 있다는 뜻!
“… 알겠습니다.”
그러자 교주가 낮게 웃었다.
[ … 후후. 생전에 이 비밀을 타인과 공유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설마 원하던 황궁토벌을 이뤘는데도 이토록이나 일이 꼬여서 몰리게 될 줄이야… 인생이란 정말 혼돈의 굴곡이로구나.]이런 교주의 독백은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나는 교주를 따라서 어두운 비밀통로를 한동안 걸어들어갔고, 공동을 여러 번 통과했다. 그리고 웬 범어가 쓰여져 있는 수십 개의 원형통로가 또다시 드러났는데 교주가 그 중 하나를 골라서 거침없이 들어갔다.
‘ 미로같군.’
그리고 교주는 이 미로의 정확한 해법을 알고 있다. 교주가 이렇게까지 해서 지켜야할만한 뭔가가 이 안에 있다는 뜻이다.
구불텅거리는 통로를 몇 번이나 통과했을까?
[ 도착했다.]야명주가 환히 비치는 어떤 거대한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제단은 삼각꼴이었는데 계층 하나하나에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한 제단 주변에는 마치 제단을 장식하듯 꼬불거리는 나선형의 계단이 여러 개 드리워져 있었으며, 시퍼런 불빛 수백 개가 제단 근처에 날아다녔다.
우우우우 –
“교주. 저 제단… 그리고 푸른 불빛은 뭡니까?”
[ 저건 혼(魂)이다.]
“네?”
[ 먹이를 주고 있지.]
그렇게 대꾸한 교주가 손을 뻗었다.
파아앙!!
파공음과 함께 허공에 투명한 결계가 언뜻 비쳐보였다. 결계에 손을 댄 채 한동안 이족의 언어로 된 주문을 중얼거리던 교주는 한참 후에야 손을 뗐다. 그리고는 말했다.
[ 이 곳에는 수신류가 아닌 자가 들어올 수 없는 결계가 쳐져 있다. 임시로 해제해 두었다.] “네.”우리는 결계 안쪽의 나선형 계단을 걸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이 나선형 계단을 걷다보니 익숙한 느낌이 났는데, 왜냐하면 전형적인 이족의 건축양식이었기 때문이다. 교주가 마도에 통달한 마도사이며 이족의 지식에 박식하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교주는 앞서 걸어나가며 말했다.
[ 내가 젊은 시절에 힘을 얻게 된 건 이 유적 덕분이었다.] “유적? 여기는 수신류의 마을이 아닙니까?”그렇다.
이 거대한 인공요새는 내가 알기로 수신류의 마을이었다. 수신류는 백련교 본단 내부에 들어와 살지 않았으며, 이 요새에서 폐쇄적으로 꽁꽁 뭉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까 들어올 때도 언뜻 수신류의 마을 모습이 먼 발치에서 보였다.
교주는 내 말에 대꾸하며 허공에 드리워진 계단을 한층 힘차게 걸었다.
[ 본래 나는 어릴 적부터 독서광이었고, 백련교 제사장의 혈맥이었다. 무공은 별로 관심도 없었지. 내게 평생 지워진 업은 제사장의 혈맥으로서 지식을 보존해서 후대에 전승하고, 백련교의 제사의식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 그러던 중 나는 우연히 달마사조의 비망록(備忘錄)이 새겨진 고대문서를 발견해서 해석했다. 그리고 이 산 내부에 고대의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죽을 힘을 다해서 이곳까지 왔었지. 그 모든건 순전히 지식욕이었다.]
멈칫
[ 그리하여 발견했다. 이 천암(天暗)의 제단을.] “천암의 제단?”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 달마사조께서 외신의 도움을 받아 무생노모의 법문을 제작하셨으나 그 혼돈의 권능이 너무 강해서 세계 곳곳으로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달마 사조께서도 그 때 돌아가셨지. 그러나 마지막 한 조각만큼은 백련교가 보유하게끔 하기 위해서 법문이 완성되기 전에 이 제단을 만들었던 것이다.] “제단에 무생노모의 법문이 봉인되어 있었던 겁니까?”[ 그렇다. 후인을 기다리고 있었지.]
교주는 허공의 계단에서 내려와서 제단의 최상층에 발을 딛었다.
[ 나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숙식했고, 법문을 해석하면서 거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교주의 경공이면 굳이 계단을 밟지 않고 무공술로 단숨에 올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이렇게 하는 걸 보면 이 장소가 교주에게 있어서 특별한 장소로 보였다. 내가 따라서 최상층에 발을 디디자 교주가 웬 돌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덜그럭…
교주는 돌상자의 안에서 웬 커다란 두루마리를 꺼냈다. 두루마리라고는 하지만 넙적하고 수백 겹의 단층이 보였다. 재질은 뭘로 되어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두루마리를 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숨이 막힌다.
이 기분은 도대체 무엇인가.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심장이 터질것만 같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교주가 내게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 네가 이걸 잡을 수 있을까?]나는 이를 악물고 두루마리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신에 거대한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 느꼈다.
파악!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교주가 내게 싸대기를 날렸을 때였다. 아무래도 손을 뻗은 그 순간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기절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윽… 기절해버린 겁니까.”
[ 놀랍군.]
교주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 여태껏 이걸 만지기는 커녕 이 최상층에서 돌뚜껑을 여는 순간 증발해버린 자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는 이 혼돈의 기운에 멀쩡하고, 잡으려고 시도까지 했으며, 기절로 그쳤구나.] “……”[ 두루마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타버리고 꽈배기처럼 꼬여서 죽은 자도 있었지.]
끔찍한 소리를 태연하게 한 교주가 두루마리를 자기 품속에 넣었다.
[ 내가 잡을 수 있는 이유는 달마대사의 고문에서 올바른 주문을 배우고 그 혼돈의 힘을 원영신으로 끌어내어서 동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혼돈의 힘을 사역하기 전까지 나는 미치광이 상태로 수련에만 몰두했을 정도다. 보통 인간이라면 천암의 제단 최상층에 올라온 순간 혼돈의 권능에 미치거나 죽게 된다.] “으음…”[ 마도서의 권능이 제단과 연계하고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너는 멀쩡하구나…]
나는 교주의 말에서 뭔가를 깨달았다.
“설마… 그 두루마리는…”
[ 그렇다.]
이어진 교주의 말에서, 나는 곧 벌어질 봉선의식이 심상치 않을 거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 이것이 바로 혼돈의 직계로부터 이어지는 고대의 신비. 신이 직접 저술한 수신(水神)의 마도서, 크타아트다. 이걸 삼황오제에게 바쳐서 천제계획을 중단시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