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424)
00424 천계(天界) =========================================================================
나는 교주와 함께 사불상을 타고 교에 돌아왔다. 교주는 돌아오자마자 내게 말했다.
[ 백웅. 이대로는 우리 힘이 모자라다. 십이율과 동맹을 맺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야겠다.] “어떻게 바꾼다는 말씀이신지…”교주의 안광이 순간 번득였다.
[ 뇌신류와 손을 잡는다!] “……!!”[ 호법사자를 막을 정도라면 큰 전력이 될 것이다.]
나는 교주가 굉장히 유연하게 사고를 전환한다는 걸 새삼 알 수 있었다. 교주의 내면에서 적아는 확실히 구분되어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손을 잡고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는 모양새로 보면 원래부터 교주는 뇌신류와의 연수를 생각하고 있었던 듯 싶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뇌신류와의 동맹은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낙양 쪽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협상할 수 있는 여지는 최대한 남겨둬야겠지. 화신류를 포함해서 모든 교의 세력을 철수시킨다. 그 일은 한백령에게 맡길것이다.]
“네.”
[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대책이고.]
그렇게 운을 띄운 교주가 무면탈 너머로 은근슬쩍 나를 쳐다보았다.
[ 이것만으로는 천계와의 전면전을 타개할 수가 없지. 백웅 너는 무슨 대책이 없느냐?]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하지만 천계라고 하는 거대한 세력과 싸우는데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 전력차이가 너무 난다.’
화룡신검을 지닌 여동빈의 힘은 교주와 대등하거나 그이상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천계에는 여동빈 수준의 투선이 몇 명이나 더 있을 것이며, 그 외의 대라신선, 중급 신선인 지선, 하급 선인이나 인도까지 포함하면 무시무시한 대세력이었다. 또한 만일에 천계의 삼청이나 서왕모같은 신적 존재까지 참전하게 되면 지금으로서는 버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것이다. 천계라 함은 본래 인간의 무림세력 따위가 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신화시대 이래로 인간을 수호하며 보호 유지하며 문명의 결정권을 지닌 신계(神界)가 바로 천계인데, 맞서싸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삼황오제를 통해서 천제를 막을 수 없는 이상 이제는 싸워야만 했다.
“음…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 천천히 생각하도록…]
나는 제갈사에게 물었다.
[ 제갈사. 뭔가 방법이 없을까?]제갈사가 되려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 왜?] [ 왜라니?] [ 내가 너라면 깽판칠만큼 쳐놓고 다음 생으로 넘어갈 텐데 그걸 왜 굳이 내게 묻는거냐? 아까 선지자를 찾아갈 때는 봐줄 만한 선택이었는데 금세 멍청이가 되는군.] [ ……]투덜거리던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쓸 수 있는 방법은 아직도 많다. 선지자는 삼황오제에 상소를 올리는 것만이 방법이라 했지만 그건 단면적인 시선에 지나지 않지. 지금부터라도 뒤집으려면 뒤집을 수가 있다.]나는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 마왕 벽지상에게 천계와 싸울 것을 부탁하는 게 어떨까? 그 자의 힘이라면…] [ 아서라. 그 음흉한 괴물이 그런 모험을 할 것 같냐? 힘이야 모자라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종말 후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만신전을 구축하려는 존재다. 괜히 삼황오제의 가호를 받는 중원땅에서 천계와 싸우는 일은 하지 않을거다.] [ 흐음…] [ 백웅. 정말로 방안을 알고 싶으냐?]제갈사는 은근히 말했다.
[ 그러면 나와 거래를 하자.]나는 제갈사의 속셈을 눈치채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 제길! 타개책을 알려주는 대신 네녀석에게 육체를 주라고?] [ 바로 그거지. 그래야 타개할 수 있기도 하고.] [ 전에도 말했잖아. 나는 네 녀석을 못 믿어.]그러자 제갈사가 히쭉 웃는 기색이었다.
[ 수 차례 말하는 거지만, 나를 믿으라는 게 아니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네 녀석은 외통수에 몰리고 몰리다가 발악하며 자살하는 수밖에 없어. 그럴바에야 내가 가진 방법에 희망을 걸어보는 게 어떨까?]나는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 네놈이 내 뒤통수를 치면 선지자가 뒤통수 친것보다 백 배는 아프겠지.] [ 괜찮다니까? 흐흐흐.]도저히 믿음이 안 간다.
하지만 나는 점차 제갈사의 말에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답도 없이 천제가 내려와서 천계가 백련교를 씨몰살시키는 걸 지켜볼 바에는, 어쨌든 놈의 두뇌에 걸어보는 것도 답이 아닐까?
나는 점차 반반으로 기울어진 마음의 균형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 교주. 우선은 뇌신류와 이야기를 하러 가겠습니다. 그 이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 알았다.]
휘익
나는 교주 앞에서 물러나서 사불상을 탔다.
‘ 뇌신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부터 알고 싶어.’
이청운이 이 시기에 움직여서, 나를 도발하듯 이야기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다행히 소호 금천에게 밑천을 다 털리지 않은 상태였고 월요와 전국옥새가 건재했기에 이청운의 손에서 최소한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파앗
내가 먼저 향한 곳은 무당파였다. 무당파에 진소청이 나타나서 수신류 장로 독고우를 패배시켰다 하니 진소청부터 만나고 싶어진 것이다. 종남파에 이광과 극호가 버티고 있겠지만, 나는 이광의 얼굴이 보기 싫었으므로 진소청과 만나는 길을 택했다.
무당파에는 예전에 들른 적이 있었기에 손쉽게 사불상을 타고 무당파의 장문인전 근처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장문인전에서 내리자 근방에서 기가 빠르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기감에 감지되는 걸 보니 아마 무당파의 문인들일 것 같았다.
쉬쉬쉭!
이윽고 도복을 입은 무당파의 고수들이 나를 빠르게 둘러쌌다. 나는 그들의 무공이 어떤지는 잘 몰랐지만, 검을 빼든 기세와 자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무당파에서도 중지(重地) 중의 중지인 장문인전 근처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중 제일 앞에 있던 중년인 도사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누구냐? 나는 현여(玄餘) 도인이며 이 곳은 대무당파이다!!”
현자 배의 고수인가.
그렇다면 현천도인과 동배분이며 무당파의 중핵을 맡고 있는 절정고수라는 뜻이다. 나는 힐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나는 수상한 자가 아니오. 진소청을 찾아왔소.”
현여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진소청을?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놈놈거리지 마시오. 듣는 놈 기분 나쁘잖소.”
“개소리…”
나는 현여도인이 발작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
“나는 진소청과 같은 뇌신류(雷神流)요. 진소청을 불러준다면 무당파에 폐 끼치지 않고 얌전히 물러가겠소.”
웅성
몰려있던 무당파 고수들이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들이 뇌신류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의 상황전개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현여도인은 침착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뇌신류의 누구란 말이냐? 이름도 없는 무명소졸이냐?”
나는 현여도인의 입이 너무 험해서 미간을 모았다.
“내가 정말 무당파를 공격하러 온 악적이려면 어쩌려고 이렇게 도발을 해대시는건지? 자기 무공에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나 보군.”
“네가 반로환동한 괴인이라 해도 악적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정말 짜증나는군!”
나는 현여도인이 어떤 인간인지 알 것 같았다. 여태껏 내가 봐왔던 무당파의 현자배는 현천도인과 현종도인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꼬장꼬장한 면이 있어도 나름대로 유연성이 있고 현명한 도인들이었다. 그러나 현여도인은 표면적인 자기 위치에 매몰되어서 상황파악을 안 하고 떽떽거리기만 하는 꼰대인 것이다. 성질같아서는 현여도인을 쳐죽이고 이 자리에 피로 냇물을 만들고 싶었지만 나는 일단 참고는 말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기다리겠소. 다만 당신들이 선공한다면 나도 그만큼 되돌려줄 것이오.”
“으, 이 놈!”
쐐액!
현여도인이 자기 성질을 참지 못하고 자기 신형을 폭사해서 나를 공격해 왔다. 내가 보니 저건 무당파가 자랑하는 오대신공 중에서 사상조화공(四像造化功)을 운용한 쾌검결이었다. 사상조화공은 오대신공 중에서도 유난히 공격력이 강하고 실전성이 강한 내공이었으므로 현여도인의 쾌검은 강호일절이라 할 만 했다.
‘ 웃기는군.’
하지만 나는 이미 초절정고수들을 숱하게 접하고 천외천에 절대지경에 검선에 삼황오제까지 만나본 몸이었다. 이제 와서 무당파 현자배의 절학 하나에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뻔히 다 들여다보이는 쾌검을 가볍게 화경으로 흘려보내고는 투경(透經)으로 가볍게 현여도인의 갈비뼈를 쓰다듬어 주었다.
콰앙!
폭음과 함께 현여도인이 입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주변에 있던 무당파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노성을 질렀다.
“이 놈!”
“쳐라.”
검기가 비산하며 내 주변으로 공격로가 빛처럼 스쳐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예측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무수한 전투를 거치면서 직감이 발달하였고, 무당파 제자들의 수준이 뻔했기에 마치 손에 잡히듯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뇌영보를 운용하며 그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피해냈고, 그들은 내가 등 뒤 일 장 위치에 가도록 깨닫지 못한 기색이었다.
“헉…”
그들이 뒤늦게 당황해하며 나를 쳐다보자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선공은 당신들이 했소. 다시 말하는데 이번에도 공격하면 현여도인처럼 될 것이오.”
현여도인은 내게 침투경을 맞아서 내상을 입은 상태로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꿈틀대고 있었다. 심각한 내상은 아니었으나 통혈(痛穴)을 때렸으므로 아파서 넋이 나갈 정도일 것이리라. 내가 엄포를 놓자 무당파 제자들은 주춤거리는 기색이었다.
그 때였다.
[ 무당파 본산에서 이 무슨 행패인가!]휘리릭
경공 천상제를 펼치며 하늘에서 청풍자(靑風子), 청일자(靑一子), 청균자(靑筠子)가 내 앞으로 날아왔다. 나는 예전의 전생에 무당파에 들렀을 때 그들과 대면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초절정고수였으며 현 강호에서 최정상을 다투는 존재들인 것이다.
청풍자는 내공을 끌어올린 채 안광을 폭사하며 내게 말했다.
“뇌신류라는 것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성명별호를 밝혀라!”
이제 보니 저 셋은 장문인전 안에서 조용히 청력을 높인 채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정말이지…”
나는 앞으로의 전생에서도 이 짓을 몇 번이나 해야하는 걸까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짜증이 팍 치솟았다. 적대적인 정파의 꼰대들을 상대로 언성높이며 설득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는 말했다.
“나는 백련교의 부교주이자 뇌신류의 호법사자직을 겸하는 백웅이오.”
“……!!”
“얼마 전 본교의 장로가 무당파를 방문했다가 진소청에게 격퇴되는 일이 있었소. 오늘은 진소청을 만나서 그 일을 이야기할 생각이오.”
웅성웅성
무당파의 고수들은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하긴 눈 앞에 있는 소년이 백련교의 2인자라고 하니 손쉽게 믿겨지는 일이 아니리라. 청풍자는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설마 선전포고를 하러 온 건가?”
“흥… 선전포고? 자기 주제도 모르는군.”
나는 감정이 상해있었기에 약간 빈정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럴 마음이 있다면 구파일방은 반 시진 내에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멸문당할 거요. 단지 당신들같은 송사리와 싸워봤자 무의미한 상황이니 내버려두고 있을 뿐. 제발 주제파악하고 뇌신류나 불러오시오.”
“윽… 이 개종자가…!!”
내 비웃음에 청일자와 청균자가 발끈하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초절정고수 두 명의 합공이라면 나도 경시할 수 없었기에 순간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금방이라도 격돌이 일어나려는 찰나, 청풍자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백웅 부교주.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한 걸 미안하게 생각하네. 지금 진소청을 불러오지.”
“이해해주셔서 고맙소.”
청일자가 분개하며 외쳤다.
“장문인! 저 개종자를 썰어버리고 백련교 놈들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부교주라는 저 놈을 없애버립시다.”
청일자의 외침에 무당파 제자들이 호응하며 살기를 일으켰다. 금새라도 달려들 기세였으므로 나는 이대로 설득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청풍자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닥치고 그냥 진소청을 불러와라.”
“자… 장문인.”
“이 일은 우리 손을 떠난 듯 싶다.”
청풍자는 무당파의 장문인답게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한 모양이었다. 청일자와 청균자는 불만이 있는 기색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진소청을 부르러 경공을 시전했고, 잠시 후 다른 숙소에 머물고 있었던 진소청이 그들을 따라왔다.
진소청은 나를 발견하자 포권했다.
“부교주 백웅. 간만이오.”
나도 그를 따라서 마주 포권했다.
“뇌신류 진소청. 오늘은 백련교의 입장을 밝히고자 왔소.”
“말씀하시오.”
“음 그건…”
나는 말을 하면서도 껄끄러운 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진소청을 막상 대면하자 침음성밖에 나지 않았다.
‘ 무형(無形).’
마치 백련교주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허허(虛虛)로운 느낌! 공(空)에 진입하는 듯한 어슴푸레한 기척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결코 사람을 위협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강력한 힘은 아니었으나, 마치 차원이 다른 곳에서 인간을 관조하는 듯한 초월적인 시선을 느낀 것이다.
진소청은 그 동안에 절대지경에 이른 게 틀림없다. 초입이든 어떻든간에 굉장히 빠른 발전속도였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는 말했다.
“… 이 곳은 이목이 많으니 자리를 옮깁시다.”
“알겠소.”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청풍자가 말했다.
“그냥 여기서 말하면 안되겠나?”
나는 청풍자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이건 뇌신류 사문의 일이오. 외인은 참견 마시오.”
“… 알았네.”
“진소청. 사불상에 타시오.”
파앗
나는 진소청과 함께 인적이 없는 산속으로 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진소청. 이청운은 대체 무슨 생각이오? 왜 이 시점에 구파일방에서 백련교를 막아서는 거지?”
진소청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태사부께선 이번 일을 통해서 백웅 당신을 만나고싶다 하셨소. 그리고 예상한대로 찾아왔구려.”
“역시 그랬나…”
“안내해드리기 전에 나도 개인적으로 백웅 당신에게 물어볼 게 있소만.”
“뭐요?”
진소청이 근처의 바위에 자신의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백웅 당신이 심상치 않은 내력을 지닌 신이(神異)한 존재라는 건 사조께 들어서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의 출신은 뇌신류이며, 뇌신류의 숙적이 백련교라는 건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럼에도 백련교를 돕고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소.”
“……”
“당신같은 고수가 뇌신류 부흥을 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잠시 어이없는 눈으로 진소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이청운은 진소청에게 내 전생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어!’
진소청은 지금 내가 전생자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게 확실하다. 나와 이광 사이에 걸려있는 악연의 고리를 알고 있다면 방금 전같은 질문은 못하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흑요석으로 기억을 계승시켰던 진소청은 내가 뇌신류를 등지려 하는 선택을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해줬었다. 현 시점에서 이청운은 내가 전생자라는 비밀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걸로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갈등되었다. 지금이라도 흑요석으로 진소청에게 기억을 전해주는 게 나을까? 하지만 이청운처럼 심계가 뛰어난 자가 내가 그런 행동을 하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고민하자 제갈사가 속에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 뭘 고민해? 이청운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는 거야. 진소청에게 기억을 계승시키고 싶으면 하고 아님 말아라.] [ 그야 물론 계승시켜야…] [ 하지만 알아둬야 할 거다. 네가 기억을 계승시켜준다고 해도 진소청이 네 편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걸.] [ ……] [ 또한 전생자의 비밀이 퍼져나가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냐.]나는 움찔했다. 확실히 지금의 진소청은 뇌신류의 재흥과 복수에 깊이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흑요석으로 기억을 계승시켜줘도 과거의 지선 망량처럼 공사를 구분해버릴 가능성도 컸다. 그건 진실된 동료라는 이야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리고 제갈사 말마따나 내가 전생자라는 비밀은 결코 쉽게 퍼져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진소청에게 말했다.
“그건 내 개인적인 사정이오. 나도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이오?”
“당신은 이청운에게 그동안 많은 무예의 가르침을 받았겠지. 그 중에 칠대절학도 있었을텐데, 당신은 칠대절학을 어디까지 연성했소?”
내 질문에 진소청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얼마 전 적연부동(寂然不動)에 이르러 태사부께 칭찬을 받았소.”
“적연부동?”
“마음에 생각이 없음을 알게 된 거요.”
“……?”
이게 뭔 소리지?
나는 칠대절학의 합체기를 익혔다거나 몇 개의 절학을 혼합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실제로도 삼보절기나 지주명왕을 보면 절학의 연계를 통해서 광세절학을 재창조한 예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뜬금없는 적연부동 이야기가 나오자 그게 무슨 경지인지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아, 아무튼 이청운을 만나고 싶소.”
“그럽시다. 태사부께서는 지금 종남파에 계시오.”
“이광, 극호와 함께 있는 거요?”
“그렇소. 무당파에는 나 혼자 왔었소.”
종남파에 갔으면 바로 만났을텐데 조금 엇나간 셈이었다. 하지만 이광을 보기 싫은 게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불상을 소환했다.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