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461)
00461 암천향(暗天鄕) =========================================================================
팽조를 소환하는 건 사실 만일의 가능성에 걸어보는 도박에 가까웠다.
현 시점에서 팽조가 이미 우리를 확고하게 ‘적’이라고 인식했을 가능성이 꽤 높다. 아마도 팽조는 음산한 지하에서 뭔가 은밀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 중이었는데 전국옥새의 염탐을 알아챘으리라. 그리고 행적을 숨겼다면, 전국옥새를 지니고 있는 내 정체를 알아내려 했을 것이다. 그 시도가 성공했다면 팽조는 내 정체까지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팽조를 두려워하기에 앞서서, 창힐의 행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 자가 유일한 단서인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팽조는 삼황오제 전욱의 현손이자 대라신선의 신분을 지닌 존재가 아닌가? 이쪽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는 걸 이용해서 팽조가 수상하다고 천계에 바람을 불어넣을수도 있으리라.
여러모로 해서 나쁠 게 없었기에 나는 즉시 팽조를 소환하려고 망량선사의 마을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갈사가 직전에 제동을 걸었다.
“잠깐. 기다려 봐라. 잠깐 짚어보고 갈 게 있다.”
“알았어.”
제갈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백웅. 창힐이나 팽조가 얼마나 강할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냐?”
뜻밖의 질문이었다. 나는 멈칫거리다가 대답했다.
“글쎄… 대라신선 정도가 아닐까.”
“젠장. 역시 물어보길 잘 했군.”
“왜?”
“절대 그 정도가 아니야. 그 두 놈은 최소한 사도급이라고 생각하는게 좋아.”
“……!!”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제갈사를 쳐다보자 제갈사는 약간 자세를 낮춘 상태로 앉아서 말했다.
“물론 창힐이든 팽조든 천계의 신분은 대라신선이겠지. 삼청과 대라신선 외에는 딱히 정해진 상급 위계가 없는 게 천계니까. 하지만 네가 전생(轉生)하면서 모은 정보에 따르면 창힐은 고대 은주시대에 왕노릇을 하며 황제 공손헌원의 측근이었으며, 팽조는 태생적으로 삼황오제의 혈족이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계급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으음.”
“게다가 말이지. 팽조가 검은 형제단의 총본산에 있으며, 그놈들이 금요와 성지에 관련되어 있다는 거… 굉장히 수상쩍지 않냐?”
“……”
“팽조는 금요(金曜)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다. 어쩌면 그 놈이 원래 중원에 있던 금요를 서방에 가져갔을지도.”
나는 제갈사의 말을 주의깊게 새겨들었다. 십 년 내에 창힐을 찾아내라는 절대지령의 압박감 때문에 정신없이 서방까지 가긴 했지만, 확실히 제갈사는 내가 생각 못해본 부분을 짚어주고 있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물었다.
“팽조가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이족과 손을 잡은 걸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본인에게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제갈사가 훗하고 웃었다.
“놈들은 정말 기묘한 조합이야. 창힐이든 팽조든 산해경에도 기록되어 있는 신화시대의 유명인이지만, 정작 신화에서의 중요도는 낮아. 그런 놈들이 이제 와서 흑막으로 드러난다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삼황오제 시대의 신화가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지금 그렇게 복잡한 건 알고 싶지 않아. 놈들이 사도급으로 강하다고 해도 칠요의 힘을 잘 쓰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어!”
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팽조 놈이 이번에 소환에 응한다고 해도 창힐에 대한 정보를 쉽게 내놓을 것 같지는 않아. 모르쇠로 일관할 게 뻔할텐데 어떻게 해야 놈에게서 정보를 빼낼 수 있을까?”
사실 제갈사에게서 가장 듣고싶은 계책은 이거였다. 제갈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계책은 딱히 없어!”
“뭐…?”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지금으로서는 불확실한 게 너무 많아. 다만 놈이 소환에 응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짐작되는 게 있으니, 네 녀석은 그냥 최선을 다해서 놈과 얘기해보면 돼. 의외로 잘 풀릴지도 모르지.”
이윽고 제갈사는 내가 이야기할 요령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제갈사가 내게 이혼대법을 걸고 멀리에서 지켜보는 식으로 훈수를 둬도 좋겠지만, 천우진이라면 이혼대법의 기색을 바로 눈치챌 게 뻔했다. 결국 내가 혼자서 다 해내야만 했다.
파앗
나는 준비가 다 되자 망량선사의 마을로 가서 천우진을 만났다. 천우진은 흡사 구데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발… 좀 가시오… 가.”
“……”
천우진이 슬슬 뒷걸음질을 했다.
“귀찮단 말이오 제발!”
이렇게까지 혐오스러워할 줄이야.
아무래도 나는 기회만 생기면 천우진의 능력을 빌리려는 거머리같은 걸로 인식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물러설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망량선사를 꼭 봐야겠소.”
“당신이 보고싶다고 하면 내가 비켜줄 것 같소? 당신만큼 사욕을 품고 여러 번 여기에 찾아온 자는 여태껏 없었소. 제발 여기서 떠나가길 부탁하오.”
천우진이 ‘부탁’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걸 보자 놈은 꽤 간절한 듯 했다. 더 이상 나와 얽히면 사바세계의 풍진때문에 크게 귀찮아질 것을 예감이라도 한 걸까? 하지만 나는 냉담하게 말했다.
“난 서방의 수호자에 관한 소식을 갖고 왔소. 그러니 도교의 수호자인 망량선사를 꼭 만나야하겠소.”
“으…”
천우진이 잠시 움찔했다. 그리고는 체념한 듯 말했다.
“젠장할… 스승님도 허락하셨으니 일단 들어오시오.”
방금 전에 망량선사가 내가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준 모양이었다. 나는 천우진의 환술이 풀리자 마을 안으로 들어와서 여동빈의 사당 앞에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익숙한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
꿈 속으로 들어왔다. 역시나 그 곳에는 망량선사가 검은 고양이의 형태를 한 채 오솔길 저편에서 다가오는 중이었다. 망량선사가 느긋하게 말을 걸어왔다.
왜 갑자기 그런 걸 궁금해 하는거냐?
나는 망량선사가 왠지 기분이 좋아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망량선사에게 말했다.
“망량선사. 서역은 지옥이야.”
[ 네가 나한테 하려는 말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서역의 수호자가 금요를 지키고자 봉인되었다는 것 정도는.]
그렇게 대꾸한 망량선사는 눈을 새파랗게 빛냈다.
[ 그 모든 게 사악한 존재의 계책이며 계략이다. 굳게 닫힌 동방의 문을 열어버리려는 게 목적이지…] “… 난 너를 잘 모르겠어.”나는 망량선사에게서 뭔가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저 망할 고양이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했을 때는 기가막힐 정도로 쉽게 알아채서 사람 말을 무시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솔직한 심정을 말하기로 했다.
“낙양에 잠든 마를 봉인하고 있는데다 도교의 수호자이며 우주적 존재? 게다가 기억상실증이라고? 넌 대체 뭐야?”
[ 방금 네 입으로 다 설명했군.]
“아냐. 이건 그냥 수식어일 뿐이잖아. 나는 아직도 네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고!”
나는 답답해서 외쳤다.
22회의 전생을 거치는 동안 망량선사는 이것저것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면서도 정작 자신이 무엇이며 어떤 걸 원하는지는 말한 적이 없었다. 하긴 기억상실인 놈이 대답해준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망량선사가 어떤 놈인지는 알아두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었다. 망량선사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자 나는 한층 황당해서 말했다.
“왜 하필 검은 고양이야! 왜냐구?!”
[ 내가 고양이로 보인다고?]
“그래! 너 고양이잖아!”
이건 정말 말하고 싶었다!
망량한테는 근엄한 스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서 왜 내게는 검은 고양이인가?!
그러자 망량선사가 대꾸했다.
[ 재밌군. 그건 네가 내 힘의 본질을 어느정도 통찰했다는 뜻일텐데…]통찰?
망량선사는 지붕 위로 폴짝 뛰어올라서 몸을 둥글게 말아서 앉은 후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 보았다.
[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더 해 봐라.] “너는 수호자라면서 서역을 이대로 놔둘 생각이야? 이대로라면 금요를 뺏기고 서양인들 모두가 이족의 가축이 되고 말 텐데.”[ 어쩔 수 없지. 내게는 그들을 막을 여력이 없으니까.] “지키는 건 동방대륙 뿐이라 이 말인 거냐?”
[ 현실적인 한계다.]
냉담하게 말하던 망량선사의 말이 이어졌다.
[ 그 밖에는 할 말 없냐?] “그 외신인가 뭔가의 봉인을 그만두고 네가 직접 힘을 쓰는 건 어때? 우주적 존재라면서! 너라면 [옛 지배자]도 상대할 수 있을 거 아냐!”내가 그동안 답답해하던 점을 토해내듯이 외쳤다. 그러자 망량선사는 자신의 앞발을 핥으며 대꾸했다.
[ 벼룩 잡으려고 초가삼간 불태우는 격이지.] “뭐?”[ 내가 봉인을 그만두고 나선다면 네 말대로 웬만한 [옛 지배자]는 상대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딴 놈들보다 수백 배는 더 위협적인 존재가 세상에서 마음껏 활보하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삼황오제가 직접 나서도 막을 수가 없어.] “……!!”
뭐라고?!
나는 망량선사가 삼황오제를 직접 언급하자 깜짝 놀랐다. 이 놈이 천계의 위계에 얽매이지 않는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삼황오제와 동격 이상의 존재란 말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넌… [옛 지배자]냐?”
[ 그건 나도 모르겠다. 네 말마따나 나는 현재 기억상실이니까. 천계와 손을 잡고 있는 것도 겸사겸사일 뿐이야.]
망량선사의 시선이 푸른 하늘으로 향했다.
[ 내가 알고있는 건 하나 뿐.] “그게 뭔데?”[ 내가 처음 지상에 떨어졌을 때 내 본질이 내게 속삭였다. [인간을 지켜라] … 라고.] “……”
망량선사는 인간을 지키려는 충동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어서 되물었다.
“떨어졌다고? 어디에서 떨어졌다는 거냐? 하늘… 우주에서?”
[ 그건 아니다. 더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딜 말하는 거야?”
[ 나는 떨어지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 한 번 떨어진 이상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는 결코 거기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그렇게 중얼거리던 망량선사가 말했다.
[ 묘하군. 나의 본질이 네가 쌓은 인과율에 반응하고 있어. 아직은 한참 모자라지만.]내 전생능력을 이야기하는 건가?
그 인과율이 쌓였기 때문에 망량선사가 자기 얘기를 해 준 건가?
내가 침묵하자 망량선사는 말했다.
[ 그렇군.]
잠시 꼬리를 휘젓던 망량선사가 말했다.
[ 전욱에게 얘기해 봤다. 널 도와주라고 하더군.] “헉!”이 미친 고양이는 역시 삼황오제와 동격 이상이란 말인가?! 태연하게 오제 전욱에 대해서 말을 놓고 개인적으로 연결하는 걸 보면 장난이 아니었다. 점점 시야가 흐려지면서 망량선사의 모습이 멀어지면서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 우진이가 네 소환의식을 도와줄 거다. 그럼 가 봐라.]……
…
나는 잠에서 깨어서 일어났다. 그리고 저만치에서 천우진이 굉장히 화가 난 얼굴로 열심히 제단에 깃발을 꽂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나는 천우진을 불렀다.
“천우…”
“닥치쇼!! 스승님이 말한대로 도와줄 테니까 제발 닥치라고!!”
콰악
천우진은 원한을 담아서 태극 깃발을 제단 정중앙에 꽂으며 외쳤다.
“당신이 내 사형의 친우이고 스승께 명을 듣지 않았다면 삼황오제의 사도고 나발이고 당신은 여기서 내 손에 죽었을 것이오!!”
이 자식 엄청 화났는데?!
역시 아무리 천우진이라 해도 남을 위해 네 번이고 다섯번이고 움직이며 휘둘리면 화가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나는 괜히 화난 천우진을 건드리지 않기로 생각하며 놈에게 어떤 선물을 줘서 화를 풀어줄까를 재빨리 생각했다. 천우진과 원한을 계속 지는 건 앞으로를 생각할때 전혀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잠시 후 대라신선의 소환의식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소환할 대상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귀찮게 태허천존이나 서왕모 등을 대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공양물으로 은빛 봉황조각과 초상기인 1체를 꺼냈다. 둘 다 귀한물건이긴 했지만 당장 필요한 게 아니었기에 바치기로 한 것이다.
우우웅
천우진이 강신을 받는지 머리 위에 은빛 고리가 떠올랐다. 한참동안 천우진의 머리에 푸른 혈관이 삐죽이며 눈이 하얗게 뒤집혔는데, 잠시 후 천우진의 입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삼황오제의 사도, 백웅. 겁도 없이 나를 불렀구나.]나는 그 목소리에 그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대꾸했다.
“당신이 전욱의 현손이자 대라신선인 팽조가 맞소?”
[ 그렇다.]
“나는 당신이 내 소환에 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소. 찔리는 구석이 많을 테니까.”
[ 크크…]
팽조는 괴이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검지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 굳이 응해준 이유는 네게 경고하기 위해서다.] “경고?”[ 동방에서 뭘 하든간에 우리는 네게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서방 일에는 끼여들지 마라. 네가 칠요의 소유자이자 전욱의 사도라면 내가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나는 제갈사가 말했던 교섭의 국면이 다가왔다는 걸 직감했다.
‘ 예상대로군.’
제갈사의 말에 따르면 팽조가 소환에 응한다면 십중팔구는 서방에 오지 말라는 뜻을 피력할 것이라 했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대꾸했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소. 단 창힐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오.”
[ 내가 창힐이 어디 갔는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시치미 떼지 마시오. 당신과 창힐은 전국옥새의 준관리자급으로 등록되어 있소. 당신들이 동료라는 사실을 내가 전욱에게 직접 고하면 어떻게 될까.”
[ 흥… 할 테면 해 봐라… 어차피 증거도 없을텐데.]
“증거라면 있소.”
[ 뭐라고?]
나는 품속에서 전국옥새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팽조를 노려보았다.
“원래라면 삼황오제가 지상의 일을 그리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 하지만 내가 공양의식으로 전국옥새를 전욱에게 바친다면 그는 전국옥새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테고, 인과율을 수득하여 현세에 강림할 수 있겠지.”
[ ……!!]
“서방에 쳐들어간 전욱의 본체와 싸우고 싶소 아니면 창힐의 행방을 말하겠소? 이건 정당한 인과율일테니 칠요의 부전협정에도 안 걸릴터.”
팽조가 경악해서 외쳤다.
[ 미친 놈! 전국옥새는 최상의 보패이자 절세기보인데 고작 위협을 하려고 신에게 공양하겠다는 말이냐? 그건 보통 보패의 10배나 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단 말이다.] “난 진심이오.”[ 허세부리지 마라.] “……”
한동안 나는 팽조와 서로 노려보며 기싸움을 했다. 팽조는 강신중이라서 감정이 잘 읽히지 않았지만 꽤나 고심하는 듯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대략 한 식경동안 눈싸움이 이어지던 중 팽조가 말했다.
[ 좋다. 창힐의 행방을 알려준다면 더 이상 서방에 관여하지 마라.] “물론이오.”나는 쐐기를 박듯 제갈사의 조언대로 말했다.
“단 당신이 거짓을 고하거나 실언할 수 있으니 공증인으로 망량선사를 내세우겠소.”
[ 뭣이?]
우웅
내 말에 호응하듯, 갑자기 공기가 크게 무거워진 게 느껴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망량선사가 이 자리를 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증인으로 망량선사가 나섰다는 뜻은, 만일에 거짓을 고할 경우 망량선사가 정당한 인과율을 얻어서 거짓말쟁이를 찢어죽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어지간한 배짱으로는 거짓을 말할 수 없을 터!
신의 통찰력이 필멸자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러자 팽조는 다소 당황한 기색으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 … 알았다. 망량선사의 이름에 걸고 진실을 이야기하겠다. 대신 네가 한 약속도 망량선사의 이름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다.] “이의 없소.”[ 지금 창힐의 정확한 행방은 나도 잘 모른다. 놈과 헤어진지도 수천 년이나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암천향(暗天鄕)으로 향했다는 사실이다.] “암천향!”
나는 흠칫 놀랐다.
그 곳은 대라신선조차도 가면 미쳐버리는 광기의 대지이자 이계가 아닌가? [옛 지배자]가 심심찮게 보인다는 사상최악의 마경이 바로 암천향이었다. 창힐은 마지막으로 대답을 하고 나서 천우진에게서 떠나갔다.
[ 암천향의 달을 찾아가 봐라. 내가 들은 창힐의 마지막 행선지는 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