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462)
00462 암천향(暗天鄕) =========================================================================
암천향의 달?
팽조에게서 얻어낸 건 수수께끼의 단서였다. 암천향이라는 괴이한 대지에 창힐이 있다는 건 둘째치더라도 그 세계에는 또 다른 달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여러가지 의문이 동시에 머릿속에서 휘돌았지만 이미 팽조는 가버리고 없는 상태였다. 이윽고 강신이 풀리고 천우진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는데,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한듯 관자놀이를 검지로 세게 누르며 말했다.
“용건은 끝났겠지? 이만 나가보시오.”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에게 백우선을 건네주었다. 천우진은 멀뚱한 표정으로 백우선을 받았는데,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동안 내가 당신에게 너무 과한 부탁을 해왔던 것 같소. 이게 그 댓가라고 하긴 뭐하지만 화를 풀어 주었으면 좋겠소.”
이 사과는 진심이었다. 천우진에게 흑요석을 공유한 적도 없었는데 그에게 동료 이상의 부탁을 너무 자주 해왔기 때문이다. 천우진과 더 이상 관계가 틀어지면 쓰잘데기없는 역풍을 맞거나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감각, 그리고 천우진에게 미안한 감정이 사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자 천우진은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요. 겨우 사과를 하려고 보패 백우선을 내게 준다고? 당신 멍청이요?”
“말했듯이 성의를 표하는 거요.”
때로는 보물보다 인간의 마음이 중요한 때가 있다.
“내참… 어이없군. 이게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모르는 건가.”
천우진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알았소. 이걸로 나도 감정을 풀겠소.”
“고맙소.”
나는 천우진에게서 등을 돌려서 떠나가려 했다. 그러자 천우진이 뒤에서 불렀다.
“잠깐!”
내가 천우진을 돌아보자 그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보패를 맨입에 받을 수는 없지. 조언을 몇 가지 해 주겠소.”
“조언?”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먼저, 술수를 익히는 요령부터 알려 주겠소. 대부분의 술수를 익힐 때 써먹을 수 있는 요령이오. 당신은 재능이 극히 없으나 이 요령을 알게 되면 쉽게 진보할 수 있을 거요.”
나는 천우진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렇게 편리한 요령이 있단 말이오?”
“물론 당신이 잘 따라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소.”
“말해 주시오. 새겨 듣겠소.”
“술수를 익힐 때는 해당 술수의 수련법 뿐만이 아니라 우도의 수련으로 정신을 통일하며 좌도와 우도 수련을 병행해야 하오. 사념을 없앨 때는 허투루 하지 말고 삼화(三和)의 박자에 따르도록 하시오. 그리고 우도의 명상수련을 할 때는 축기(築氣)의 통로와 술수의 영통을 같게 하는게 좋을 거요.”
나는 천우진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그 말은 무공으로 받아들이는 기경팔맥과 마찬가지로 영기의 통로를 뚫으라는 말이오?”
“그렇소.”
“으음… 그런 수련법은 들어본 적도 없소. 영기란 정해진 형태가 없어서 마치 물이나 구름처럼 제멋대로 몸을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축기하듯…”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도 그럴것이 천우진의 수련법은 내가 알고있던 술법수련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무공과 술법의 수련은 서로 다르며 그 원인은 기와 영기가 본질적으로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라는 건 좀 더 선명하게 인간의 오장육부에 스며들어서 혈맥과 운행을 같이하기가 쉬운데, 영기란 영적인 힘이라서 기보다 더욱 형태가 애매모호했다. 그래서 미호든 망량이든 내게 술수를 가르쳐줬던 스승들은 이런 방식을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천우진이 말했다.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요령이오. 어차피 재능이 없어서 영력을 통제하기도 벅찰테니 이 방식으로 기준이라도 잡으라는 거지.”
“흐음.”
“무인의 환골탈태와 마찬가지로 술수의 영력이 극한에 달하면 술사 또한 법(法)을 얻게 되오. 그때 깨달은 요령이지.”
확실히 그렇다. 환신 천우진은 무인으로 치면 절대지경에 도달한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술법에서 중급술사에 겨우 발을 걸치고 있는 내가 그의 방식에 딴지를 거는 건 건방지다 못해 멍청한 행동이다. 대수롭지 않게 말한 천우진이 말했다.
“또 한가지. 당신이 보패나 기보 관련으로 궁금하거나 의문스러운 게 있으면 지금 질문해 보시오. 대답해 주겠소.”
나는 천우진의 그 말에 번뜩 생각나는 게 있어서 즉시 화요와 화룡신검을 꺼내서 동시에 양 손에 잡았다. 천우진은 두 신보의 영력을 느꼈는지 잠시 움찔했고, 나는 그에게 현재의 내 상태를 설명했다.
“보다시피 화요에 잠재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화기를 이용해서 화룡신검을 되살리는 중이오. 이 방법이 맞는지 알고 싶고, 언제쯤 화룡신검이 되살아날지 궁금하오.”
“어디 봅시다.”
천우진은 주문을 웅얼거리며 자신의 두 눈에 영력을 모았고, 잠시동안 응시하다가 말했다.
“화룡신검에 잠들어있는 신령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소. 확실히 효과있는 방식이군. 방법은 틀린 게 없으니 안심해도 좋소.”
“언제쯤 깨어나겠소?”
“대략 삼칠일 정도 걸리겠군.”
“그렇게 오래…”
“오래라니. 당신의 말대로라면 화룡신검은 수백 년 동안 정기를 다 빨려서 부러지기 직전이었소. 화룡신검이 되살아난다면 지상에 존재하는 보패와 신검의 서열이 다시 매겨질텐데 아주 짧은 기간이지.”
그것도 그렇다.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화룡신검은 파사현정의 본능을 지닌 극정의 신검이오. 그게 부활했을 때 그 제갈사인지 뭔지 하는 마도사가 가까이 있는건 좋지 않을 거요. 즉시 적으로 인식해서 신염업화로 불태워버릴 테니까.”
“유념하겠소.”
당분간은 화룡신검과 화요를 꺼내들고 있어야겠다. 나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팽조가 준관리자의 권한으로 전국옥새의 검색기능을 닫아버렸소. 이걸 어떻게 술법으로 풀 수는 없겠소?”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런 방법이 없소. 전국옥새 자체가 삼황오제가 직접 만든 지고의 보패인데 인간술법사 따위가 어떻게 건드리겠소? 방법이 있다면 제작자에게 직접 해제해달라고 하는 수밖에.”
“제작자라면…”
“소호 금천이지. 그를 불러내서 봉선의식으로 부탁하면 될 거요.”
그 순간 천우진이 나를 예리하게 노려보았다.
“말해두지만 난 절대 안 도와줄 거요. 이걸로 은원과 감정을 털어버릴 테니까.”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천우진의 도움으로 봉선의식을 또 치르는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설령 망량선사를 설득해서 천우진을 움직인다 하더라도 봉선의식이 끝나는 순간 천우진이 나를 죽이려 할게 분명했다. 나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기로 하며 두 손을 들었다.
“알았소. 다른 술법사를 찾아보지.”
“그러는 게 좋을거요. 잘 가시오.”
“그럼.”
나는 천우진에게서 떠나서 장령곡으로 되돌아왔다. 제갈사는 팽조를 만나서 들었던 전후상황을 듣자 황당해했다.
“암천향의 달…? 그러면 암천향을 수호하는 거미신을 정면으로 뚫고 비신(秘神)의 도시까지 거쳐야 한다는 건가… 창힐 이 개새끼가 정말 엄청난 곳에 숨었군.”
“암천향의 달이 어딘지 알고 있냐?”
“아아, 알고 있지.”
제갈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젠장. 그 곳은 마계 암천향에서도 가장 사악하고 어둡고 위험한 장소다. 마도사들은 해저에 존재하는 르뤼에만큼이나 그 곳을 불길하게 여기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그곳에 갈 방법이 없어.”
“그… 그 정도냐?”
“당연하지. 왜 위험하냐고? 지금껏 그 어떤 마도사도 그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끝’이라고도 불러.”
“……”
암천향에는 그런 장소도 있는 건가?!
나는 전욱이 준 창힐을 찾는 임무가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빌어먹을… 골치아파.”
제갈사는 욕지기를 흘리다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넌 왜 병신같이 천우진 놈한테 귀한 백우선을 주고 지랄이냐?”
“윽.”
역시 이 이야기가 나오는가.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그게 도리라고 생각해서였어.”
“도리? 하! 어차피 그걸 주든 안 주든 그 놈은 이제 우리 일을 도와주지 않을텐데 무슨 의미란 말이냐.”
“……”
“뭐,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지.”
제갈사는 곱지않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꽤 많이 진행됐어. 암천향의 달에 가면 된다는 것까지 알아냈으니 죽을 위기를 몇번쯤 넘기면 될지도.”
“비등을 쓸까?”
나는 비등을 꺼내서 손에 들었다. 이게 없으면 내 모험의 대부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편리하고 강력한 마도구였다. 뿐만 아니라 이 비등의 원래 목적은 암천향 모처의 장소에 주인을 데려다주는데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내 자의대로 이동용으로 썼지만 비등이 이끄는 암천향의 장소로 이동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무 위험하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그건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마도구다. 그리고 그 마도구를 소유했던 건 압둘 알하자드, 역사상 손꼽히는 강력한 마도사 중 하나. 절대 좋은 의도로 암천향에 데려가려는 게 아닐거다.”
“압둘 알하자드… 라는 건 놈이 서장을 넘어선 파사(波斯)땅 사람이란 거냐?”
중원에서 서쪽으로 계속 가면 서역이 나오지만, 서역에 가기 전에 서장과 파사가 있었다. 서장은 변황이라고도 불렸고 딱 중원 외곽의 이민족 왕국이 존재하는 곳이었고 파사는 서장보다 더욱 서쪽, 대사막이 펼쳐져있는 지역을 의미했다. 나는 파사땅 사람들이 그런 형식의 이름을 쓴다는 걸 여행하면서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반문한 것이다.
제갈사가 말했다.
“술법사는 중원 및 칠요의 권역에만 있지만, 마도사는 전세계 어디에든 있지. [옛 지배자]의 어둠이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누구든 접촉할 수 있다.”
“흐음.”
“느낌이 안 좋아. 내가 압둘이라면 절대 좋은 의도로 목적지를 설정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 비등의 목적에 순순히 따르면 죽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비등을 쓰지 않고는 암천향에 갈 수가 없잖아.”
“다른 방법은 두 가지 있지.”
방법이 있다고? 내가 제갈사의 말에 그를 쳐다보자, 그는 고소를 머금었다.
“그 방법대로 해서 찾아가도 십중팔구는 죽으니까 문제지만.”
“무슨…”
제갈사는 검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첫 번째. 꿈의 비술을 이용해서 70의 층계를 내려가서 문지기의 시험을 통과한 후 700의 층계를 재통과하면 암천향의 숲에 도착한다고들 하지. 이게 가장 통상적인 마도사의 방법이지만, 문제는 문지기의 시험을 통과한 마도사조차도 역사상 손꼽을 정도라는 거다.”
“왜?”
“그 시험은 모든 지혜와 용기, 정신력을 시험하는 극도로 어려운 시험이다. 거기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꿈의 자아가 소멸되어서 죽고 만다. 게다가 시험을 통과해서 암천향에 도착한다 해서 딱히 좋은 일이 있는것도 아니지. 그 숲에 살고 있는 태고의 마수와 이종족들과 대면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니까.”
“곤란하군…”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 듯 했다. 제갈사가 또다시 손가락을 올렸다.
“꿈의 비술을 이용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또 하나의 방법은 정면으로 암천향의 차원좌표를 찾아서 차원문을 뚫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지. 이 방법을 쓰면 시험같은 건 치르지 않아도 된다.”
“그럼 그 방법을…”
제갈사는 광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흐흐. 이 방법을 쓰면 [옛 지배자], 모든 거미의 군주와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옛 지배자]랑 한번 싸워볼래? 그 놈이 암천향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거든.”
“…….”
“그러니까 암천향은 갈 수 없다고 하는 거다. 그 곳은 인간이 갈 수도 없고 갈 이유도 없는 곳이니까.”
나는 탄식성이 나오는 걸 느꼈다.
‘ 제기랄… 이거 어떻게 하지?’
창힐이 암천향의 달에 있는 것까지는 알아냈는데 정작 암천향에 가는 방법이 하나같이 목숨을 열 개는 여벌로 지니고 있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고 무서운 것들이었다. 세 가지 방법 중 뭘 쓴다고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냥 날려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해서 암천향에 가는 걸 무작정 미뤄둔다면 전욱과 정해둔 10년의 기한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임무실패가 되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마라. 지금 우리한테는 무명제사서가 있으니까.”
스윽
제갈사는 자기 품에 있던 무명제사서를 꺼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네가 없는 동안에 무명제사서를 미친듯이 탐독했다. 이 마도서는 아직까지 얼마나 많은 지식이 있는지 몰라. 이 무명제사서를 연구하다보면 안전하게 암천향의 달까지 가는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오!”
말이 된다. 무명제사서는 최상급의 마도서! 그렇다면 암천향에 관련된 지식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한줄기 희망이 보여서 주먹을 불끈 쥐자 제갈사가 말했다.
“그러니 내가 무명제사서를 연구할 시간이 필요해. 당분간은 가진 걸 정비하고 수련을 해야겠지.”
“나는 뭘 하면 되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을텐데? 할 일이 태산이라서 뭘 해야할지 걱정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만.”
제갈사가 핀잔을 주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알았어.”
제갈사 말 대로다. 내가 해야할 수련이나 행동은 굳이 암천향에 가는 게 아니라 해도 굉장히 많았다. 그 중에서 취사선택을 해서 충분히 자기자신을 단련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게 주어진 과제인 것이다.
나는 제갈사에게서 물러나와서 화요와 화룡신검을 동시에 손에 쥐었다. 몸을 타고 거대한 화기가 넘실거리며 쉴새없이 이동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두 자루의 검을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중얼거렸다.
“삼칠일이랬지… 그 동안 이 무기들을 쓸 방법을 알아내야 해.”
두 자루의 날붙이를 쓰는 방법.
그것은 현재의 내가 알기로 두 가지가 있다.
그 방법들을 찾아내서 최강의 무력을 얻어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