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482)
00482 암천향(暗天鄕) =========================================================================
나는 십이율주 하은천의 말에 잠시 혼란이 왔다.
‘ 내가 화요의 주인이란 걸 어떻게 알았지?’
저 자가 해신을 토벌하려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전의 전생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는 몇 번이고 해신을 함께 치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십이율주에게 있어서 해신이란 존재를 쓰러뜨려야 할 숙적 그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저 자는 나를 용의 화신이라면서 불러왔는데도 화요의 주인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화룡진인의 힘과 화요의 힘은 별개이기에 제 3자가 단정짓는건 어려운 일인데도 하은천은 단호하게 말한 것이다.
나는 혹시 떠보기인가 싶어서 우선 받아넘기기로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화요라는 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후후. 뭐 당연히 시치미를 떼겠지.”
십이율주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마. 지금은 칠요를 강탈할 생각이 없으니까. 중요한 건 백웅 네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고, 나는 그 힘을 빌려서 내 목적을 이루고 싶다는 것이지.”
“설레발이 강하시군요.”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영문모를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조력자를 알아 보시지요.”
죽을 수도 있지만 이 자리에서는 강하게 내 의견을 말하는 게 중요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십이율주는 바로 무력을 쓰려 하지 않고 내 말을 경청하는 기색이었다.
“다른 조력자라. 어떤 조력자를 말하는 거지?”
“백련교주나 천계의 신선들에게 도움을 얻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들의 힘은 저를 훨씬 상회할 테니까요.”
“쓰잘데기없는 놈들이지.”
십이율주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내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지금 나를 도와줄 자는 너밖에 없어. 부탁이니 협력해 줬으면 한다.”
“싫다고 말했잖습니까? 십이율이 천계의 도움을 못 받는 이유가 뭡니까?”
“……”
십이율주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상하군. 칠요의 주인씩이나 되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말은 무슨 뜻인가?
얕잡아본다기 보다는 뜻밖의 상황을 마주한 듯한 반응이었다. 잠시 눈에 이채를 띄고 있던 하은천이 말했다.
“천계는 우리 십이율과 만하령문에게 함부로 간섭할 수 없지만 대신에 우리도 천계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지 못해. 일종의 불가침 계약이 되어 있다.”
“……!!”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 땅을 지킬 수밖에 없어. 설령 천계의 신선을 강령하려 해도 중원땅에 비해서 제약이 크지. 바로 네가 해신을 토벌할만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거고, 그래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는 거다.”
“싫습니다.”
“당연히 싫겠지. 그냥 공짜로 도와달라는 요청만 하고 있으니 누가 좋아하겠어? 그러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안하지.”
보상?
나는 귀가 솔깃했다. 십이율주 하은천은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해신을 토벌한다면 그 후 우리 십이율의 힘을 전적으로 빌려줄 것을 약속하지. 원한다면 네게 십이율주 자리를 주겠어. 십이율 삼사와 특위, 그리고 모든 문파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거다.”
십이율주의 직위를 준다니!
하지만 나는 앞서 해신을 토벌한다는 조건부가 붙었기에 내키지 않았다. 해신 또한 [옛 지배자]이므로 결코 토벌하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하은천이 멀쩡히 목요의 주인으로서 존재하는 한 십이율주 자리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나는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조건부는 싫습니다. 당장 제게 이득이 없잖습니까.”
“그래?”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만일 우리 두 명이 칠요의 주인이라고 가정하면, 칠요를 가지고 [옛 지배자]인 해신을 토벌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실 텐데요. 칠요는 삼황오제와 [옛 지배자]의 부전약정을 상징하는 신물일진대 그걸로 [옛 지배자]를 친다는 건 전쟁이 재개된다는 뜻입니다.”
“……”
“당신 일을 도와주다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될 테니 거부합니다.”
십이율주는 굳은 듯 했다. 이윽고 그는 정말로 놀란 듯한 말투로 말했다.
“굉장하군… 너는 정말 굉장해. 어떻게 필멸자로서 그 나이에 거기까지 신화의 비밀을…”
나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 윽, 실수했나?’
십이율주를 설득시켜서 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생각에 전생지식을 과하게 풀어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화룡진인의 힘을 직접 보여주는 이상으로 십이율주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세상에는 칠요가 뭔지 아는 존재도 극히 드물었는데 칠요의 진실까지 아는 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놀란 건 십이율주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 시립해 있던 삼사들도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운사가 크게 놀랐는지 중얼거렸다.
“천기(天機)를 벗어난 존재… 천운(天運)을 무시한단 말인가?”
십이율주가 충격을 추스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너를 너무 얕본 모양이군. 사과하지.”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전 이 일에 엮이기 싫으니까요.”
“너무 단호한 거 아닌가?”
“십이율주께서 제게 강압을 가하는 정도를 생각하면 그럴만하다 생각지 않으십니까?”
“후후후…”
십이율주는 왠지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우선 방금 전에 칠요를 지닌 자가 해신을 토벌하는 게 부전약정을 깨는 행위가 아니냐는 질문에 먼저 대답해 주지. 내 이름을 걸고 말하는 거지만, 그건 결코 삼황오제나 [옛 지배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위도 조약파기행위도 아니야.”
“무슨 말입니까?”
“너는 해신(海神)이 꽤 특수한 존재라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어.”
그가 만찬상에 있던 나물반찬을 집어먹으며 말을 이었다.
“놈은 다른 [옛 지배자]와 달리 전세계의 대양(大洋)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고 있지. 터무니없는 욕심쟁이야. 그렇게 영역이 넓은만큼 다른 [옛 지배자]에게 별로 호의적인 시선도 받지 못하고, 또한 놈은 일종의 ‘문지기’라서 따로 가호를 줄만한 존재도 없어.”
“왜입니까? 왜 가호를 받지 못하죠?”
“해신이 쓰러지면 다른 [옛 지배자]들이 설치기 좀 더 좋은 환경이 되니까… 그리고 이 세계에서 어인(魚人) 족속들의 성세는 상당히 강한 편이라서 지금껏 다른 존재의 심기도 많이 거슬렀어.”
“……”
“게다가 내 나름대로 확인도 끝냈지. 칠요로 해신을 토벌하는 일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고 오로지 힘만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재확인한 거야.”
나는 십이율주의 설명을 듣던 중 ‘확인’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다. 뭔가 십이율주가 터무니없는 짓을 했을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든 것이다. 또한 해신을 치는데 제약이 없다는 말도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고민하자 십이율주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 좋아. 그럼 네가 원하는 걸 말해봐. 뭐든 내 힘으로 들어주지. 빈말이 아냐.”
십이율주는 현재 간절하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무력제압을 해도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칠요와 화룡신검을 가진 내 진짜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동귀어진의 태세로 나갈 경우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힘들 게 분명하기에 모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다.
이건 위기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다.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일반인이 겪을만한 위기를 수십 수백배나 겪다 보니 뭔가 감이 왔다. 십이율주의 지금 제안은 강렬한 위험을 동반하고 있지만 커다란 보상을 함축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들었던 제안과는 어조나 간절함이 완전히 다르다는게 피부로 느껴졌다.
‘ 아마 그건 내가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겠지…’
예전과는 사정이 다르다. 나는 팔짱을 낀 채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세 가지 조건을 들어주신다면 당신 뜻대로 해신을 토벌하는데 협력하겠습니다.”
“세 가지 조건?”
“네. 이걸 들어주실 수 있다면 두말않고 최선을 다해서 돕지요.”
“흥미롭군, 말해 봐.”
나는 두부요리를 한입 먹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첫째. 저는 팽조와 사황 창힐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원합니다.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모두 과감없이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이게 첫 번째입니다.”
하은천은 별로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좋아. 두 번째는?”
“둘째. 미야모토 무사시를 빌려 주십시오. 그가 내 명령에 복종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 자의 무력이 필요합니다.”
“흠… 10년! 그 이상은 안 돼.”
“알겠습니다.”
여기까진 그에게 별로 부담이 없는 제안인 듯 했다. 나는 마지막 제안에 그가 경악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심술궂은 생각이 들어서 거침없이 그에게 말했다.
“마지막. 지금 당장 내게 십이율주 자리를 주십시오.”
“… 뭐?”
하은천은 당황했는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시 말씀드릴까요? 십이율주 자리 주십시오.”
“흐음… 음…”
“십이율 문주를 거느리고 동북의 새외무림을 호령하는 자리를 달란 말입니다.”
나는 전생의 경험으로 십이율주의 심리와 상태를 알고 있다. 과거에도 십이율주는 내게 십이율주의 자리를 주겠다 한 적 있는데, 지금의 제안과 대동소이했다. 그 제안에서 유추해 볼 때 그에게 있어서 십이율주 자리는 상황에 따라 남에게 넘길 수도 있는 자리인게 분명했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진짜 중요한 건 십이율의 지존 자리가 아니라 [만하령문의 문주]이자 [칠요의 주인]인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괜히 해신을 물리친 후 십이율주의 자리를 받겠다는 어정쩡한 제안보다는 바로 십이율주 자리를 받겠다고 하는 게 낫다. 사실 만하령문의 문주 자리가 훨씬 나을수도 있지만 그건 하은천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확실해.’
이 정도 제안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면 실리를 챙길 수 있다.
“하아…”
천하의 십이율주가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모습은 전생과정 중에 처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평상시라면 농담하는거냐면서 웃어넘기겠지만, 그는 지금 내 제안을 함부로 거절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는 탁자에 턱을 괴고는 말했다.
“내가 그 제안을 안 받아들이고 널 죽여버리면 어떻게 할 건데?”
“저도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싸울 수밖에요.”
예상했던대로 그가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지만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하도 많이 죽어서 죽는 게 별로 두렵진 않았다. 대신에 그에게 경고했다.
“동귀어진(同歸御盡)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도 도박이다. 어쩌면 순식간에 하은천의 은하구절편이나 삼사의 술법에 썰려버릴 수도 있지만, 내가 대라멸진에 화요까지 일깨우며 싸우면 순간적으로 전력이 비약적으로 치솟는다. 그 때의 힘은 아직까지 확인해본 적이 없었으나, 분명히 하은천의 목숨에도 내 어금니가 닿을 것이다.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꼈는지 하은천이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고려왕(高麗王) 자리는 어때? 왕 정도는 시켜줄 수 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려왕 따위보다는 십이율주 자리가 낫죠.”
“잘 아는구만.”
“전 황제 자리도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그는 잠시 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 그래, 좋아. 대신에 십이율주 자리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야. 너는 십이율에서 나와 대등한 권한을 지니는 걸로 해 두자고. 다만 삼사를 비롯한 만하령문의 통제권은 양보 못 해. 이 정도면 어때?”
나는 느긋하게 대꾸했다.
“제가 당신보다 십이율의 장악력이 높을 리가 없잖습니까?”
“욕심이 과한 거 아냐? 십이율 문주와 그 세력이면 중원 백련교에 절대 뒤지지 않아. 내가 타인에게 이 정도 권한을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흐음…”
하긴 그렇다. 율주가 되어서 특위, 십이율문주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덤으로…”
십이율주는 기가 질려서 외쳤다.
“또 있냐?!”
“당신이 봉황을 소환할 수 있는 이유, 그리고 무공의 연원에 대해서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세 개가 아니라 네 개구만.”
“해신이라는 [옛 지배자]를 쓰러뜨리는 일인데 그 정도 정보도 공유할 수 없는 겁니까? 어차피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그런 강적을 쓰러뜨릴 수 없잖습니까.”
십이율주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곤란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알~았어. 네 녀석 정말로 욕심쟁이군.”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너는 나와 동격의 십이율주다.”
나는 대꾸하면서도 잠시동안 믿기지 않아서 손을 부르르 떨었다.
‘ 해냈다!’
비록 [옛 지배자] 토벌에 참여한다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나는 그에게서 굉장한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앞으로 나는 십이율의 세력을 움직일 수 있음과 동시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무력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십이율주 하은천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잠시 신단수 좀 보러 갈까?”
“네?”
“십이율주가 되겠다며. 그러면 신단수에 대해 몰라서는 안 되지.”
나는 엉겁결에 그를 따라서 신시를 나섰다. 그리고 신단수를 향해서 조그마한 구름다리를 타고 광대한 계곡을 건너기 시작했다. 천형의 요새이자 만장단애가 숨쉬듯 펼쳐진 곳인지라 조금만 잘못해도 떨어져서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걸어서 어떤 산등성이에 도착한 십이율주가 말했다.
“이상하지? 한참을 걸었는데도 저 커다란 나무에 조금도 가까이 온 기분이 들지 않잖아.”
그건 그렇다. 지금까지 하은천, 삼사와 함께 무려 이십 리에 가까운 거리를 걸었는데도 코앞에 있을 것 같은 신단수가 전혀 가까워지지 않은 것이다. 내 거리감각으로 볼 때 신단수의 위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환술입니까?”
내가 질문하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아냐. 분명히 저 위치에 존재해. 하지만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셈이니, 이렇게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신단수에 오를 수 없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저 나무는 신화시대에 심어진 세계수(世界樹)이며 아홉 개의 세계에 걸쳐 있어. 그 영기로 인간을 보호하면서 사신일족의 영향력을 봉쇄하고 있지. 물론 기능이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따악
십이율주가 손가락을 마주치자 갑자기 허공에서 원이 열렸다. 아마도 전이술법인 듯 했는데, 십이율주의 술법수준은 굉장한 수준으로 보였다. 십이율주와 삼사가 그 원으로 몸을 옮기자 나도 따라갔다.
위잉
내가 도착한 곳은 천지사방이 온통 새까만 장소였다. 별이 마치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보였고 별의 숫자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발 밑과 주변에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나무줄기가 펼쳐져서 마치 대지처럼 보였다. 동시에 나는 이 곳의 공기와 영기가 지상과는 매우 이질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십이율주가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말했다.
“어때? 멋지지 않냐? 여긴 내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도착한 장소야.”
“네?”
“세계수의 정상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각별하지.”
나는 나무줄기 너머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바다와 육지가 마치 지도처럼 펼쳐져 있었고, 세상은 구(球)처럼 생겨 있었다. 동시에 나는 예전에 망량이 세웠던 [세계가 둥글다]라는 가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방금 전에 물어봤던 [봉황소환]에 대해서 지금 설명해 주지.”
갑자기 십이율주가 세계수의 줄기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는 엄청난 영기를 뿜어내며 이 주변의 공기와 나무가 동시에 공명하는 게 느껴졌다.
오오오오오 –
쿠구구구
우주를 앞둔 경계의 세계, 세계수의 정상에서 십이율주의 힘이 말도 안될 정도로 증폭한다! 나는 그 힘의 증폭율이 내가 전국옥새를 끌어냈을 때와 대등, 그 이상이라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자 몸이 굳는 기분이 들었다. 십이율주가 전신에 초록색 영기를 휘감으며 인간을 초월한 신기(神氣)를 보여주며 영언(靈言)으로 말했다.
슈우욱
십이율주가 자신의 힘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의 몸에는 엄청난 힘이 충만해 있는게 육안으로 보였고, 가히 천령단을 휘두르는 호법사자에 버금가는 듯 했다. 십이율주는 빙긋 웃었다.
“이제 설명이 되었나?”
“… 네.”
칠요 목요의 주인.
그것은 세계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