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487)
00487 암천향(暗天鄕) =========================================================================
나는 확신을 할 겸 말했다.
[ 해신은 죽었습니까?] [ 죽지 않았다. 다만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 무슨 말씀이신지…] [ 네가 놈의 수급을 베었고 화룡신검에 깃든 여동빈은 놈을 죽이는 봉인이 되었다. 아직 목숨은 붙어있으나 향후 수십 년에 걸쳐서 서서히 생명력을 잃으며 죽게 되겠지.] [ ……]정말로 징글징글하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해신을 못 죽였단 말인가?
목이 잘리고 명치에 봉인이 꽂혔는데도 수십 년이나 살아남는단 말인가?
‘ 정말 신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존재군…’
전욱의 말이 이어졌다.
[ 세상의 인과율에 위배될까 저어해서 네게 권능을 발동하는 방법을 일러주지 않았으나, 너는 이미 여러 번 나의 권능에 도움을 받았다. 해신을 쓰러뜨리고 본디 죽었어야 할 너의 육신은 그 덕에 아직 살아있다.] [ 저는 죽지 않은 것입니까?] [ 그렇다.]살아있다!
나는 그 말에 기뻐졌다. 해신을 없앤 것보다 되려 이게 더 흥분되고 기뻤다. 여태껏 강적을 쓰러뜨리는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나면 죽기 일쑤였는데 이번에는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욱이 말했다.
할 말이 없다.
마지막에 해신의 목을 벨 수 있었던 것도 기적같은 일이었고, 사실 나는 거기서 대라멸진을 소모할대로 소모하고 벌레처럼 죽는 게 정상이었다. 적어도 칠요를 한 개 더 해방해야 해신과 싸울만 할 거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벌레처럼 약하다는 말에 약간 상처받았지만 말하는 이가 삼황오제이니 납득할 수밖에 없다. 눈 앞의 전욱은 어쩌면 해신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는 존재이니 내 싸움을 한심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 저… 저기… 제 사도의 권능은 무엇입니까?] [ 그건 곧 열(?)이 네게 알려줄 것이다.]순간 전욱의 거대한 눈이 어둠 속에서 번득였다. 그 위압감이 굉장했기에 나는 전신이 섬찟하는 느낌이 들었다.
[ 네 주변에 곧 거대한 위험이 닥칠 것이라는 예지(豫知)가 있었다. 너는 충분한 힘을 얻고 돌아가야 할 것이다.] [ 거대한 위험이라니요?] [ 어쩌면 해신을 토벌하는 것보다 더 위험해질지도.]전욱이 직접 경고하는 이상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삼황오제의 격은 [옛 지배자]에 뒤지지 않으니 진짜 위험한 것이다. 나는 해신을 토벌해서 기뻤던 마음이 불안감으로 순식간에 채워지는 걸 느꼈다.
‘ 젠장,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죽겠군.’
산 넘어 산이었다. 해신을 쓰러뜨렸다고 기뻐할 게 아니라 계속해서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전욱에게 말했다.
[ 전욱이시여! 창힐과 팽조의 행방에 대해서 알아냈습니다.]이걸 전달한다면 10년동안 창힐을 찾아내는 임무가 끝날지도 모른다!
[ 말해 보아라.] [ 창힐은 암천향의 달에 있고 팽조는 서방의 대영제국에 잇습니다.] [ 그래서?] [ 네?]전욱은 냉막한 어조로 말했다.
[ 내가 사도인 네게 명한 것은 십 년 내로 창힐을 내게 데려오라는 거였다. 장소를 말해줬으니 본좌에게 직접 놈들을 때려잡으러 가라는 것이냐?] [ 어… 아니 그건…]차가운 답변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창힐의 위치를 몰라서 내게 찾아오라는 말을 한 줄 알았는데, 마치 위치 정도는 대단치 않다는 말투였다.
[ 아 그리고 팽조는 전욱님의 현손인데도 서방으로 건너가서 악신을 섬기는 마도에 몸을 담아버렸고, 간부까지 되었습니다만…] [ 그래서 어쩌라고?] [ ……] [ 내 자손의 일에 일일이 관여할 생각은 없다. 하물며 서방의 일이 되었다면 더 관여하기 싫다. 다만 임무에 방해된다면 네가 팽조를 베어버려도 좋다.]자신의 후손을 베어버리라는 냉혹한 명령은 둘째치고, 위치를 알려줘도 직접 움직일 생각이 없단 말인가? 하지만 이게 ‘왕’이라 불리는 존재의 보편적인 사고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직도 내게 창힐을 데려오는 임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좀 더 유능한 모습을 보이도록 해라.]핀잔처럼 한 마디를 남긴 전욱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 백웅. 연회를 충분히 즐기고 열을 만나 오거천문으로 나가거라.] [ 네.]휘이익
전욱의 모습이 사라지고, 장내에는 귀신들이 허접지겁 왁자지껄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풍경만이 남았다. 녀석들은 아까부터 밥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달그락
쩝쩝
나는 귀신들을 힐끔 바라보았으나 귀신들은 뭘 보냐는듯 되려 나를 쳐다보았다. 하나하나가 막강한 힘을 지닌 놈들이었기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 쳇. 밥이나 먹고 갈까…’
나는 여하튼 연회의 음식이 맛있긴 했으므로 혼자서 맛있게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려고 했다.
바로 그 때였다.
[ 조심성이 없군. 그만 먹고 일어나십시오.] [ 엥?]내 음식상 앞에 열이 서 있었다. 그는 언제 왔는지 흔적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열에게 항의했다.
[ 잠깐. 이거 좀 먹고…]너무 맛있어서 젓가락을 뗄 수 없다. 그러자 열이 대꾸했다.
[ 그대는 사도지만 인간입니다. 그런데 영체만 와서 만귀전의 연회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까?] [ ……?] [ 한 접시를 비울 때마다 그대의 현실세계 육체는 10년 늙을 것입니다. 술 한 잔마다 5년을 늙겠지. 만귀전의 거대한 음신지력(陰神之力)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벌써 과하게 드셨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노화는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 헉!] [ 왕께서 따로 경고하실 성격이 아닌지라 말하러 온 겁니다.]열이 중얼거렸다.
[ … 차라리 다 늙어빠져서 필멸자의 신체를 버리고 강해지는걸 좋아하실지도 모르겠지만.]나는 깜짝 놀라서 내가 먹은 걸 돌아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이것저것 집어먹었기에 아직까지 한 접시를 비운 건 없었고 드문드문 먹은 듯 했다. 그리고 술도 한 잔밖에 안 마셨다.
‘ 이… 이거 몇 년 늙는거야?’
순간적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갔더니 노인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열을 따라갔다.
[ 그만 먹겠소.]아무리 맛있어도 노화는 달갑지 않다. 처음의 식욕이라면 열 접시도 거뜬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대번에 100년씩 늙어서 동방무결이나 원로원같은 늙은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기가 충천한 경지에 이르러서 전투력이 하향되지는 않지만 자칫 잘못하면 늙어죽을 수 있기에 꺼려졌다.
[ 네.]나는 열을 따라서 만귀전을 나와서 다시 오거천문 앞으로 갔다. 문을 나서자, 아까처럼 양옆에 태양과 달이 떠 있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풍경이 펼쳐졌다. 내 옆에 서 있던 열이 말했다.
[ 돌아가시고 싶다면 오거천문의 출구를 조정해서 현계로 돌려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나는 오거천문을 힐끔 쳐다보고는 질문했다.
[ 지금 현실의 내 상태는 어떻소?] [ 나중에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위험한 상태는 아니니 걱정 마시길.] [ 흠…] [ 하지만 지금은 사도의 격(格)에 어울리는 힘을 갖추고 나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왕의 위엄에 손상이 가니까요.]맞는 말이다.
열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련이 시작되었다.
열은 그 이후로 내게 상당한 시간동안 뭔가를 굉장히 열심히 가르쳐 준 듯 했다.
“……”
하지만 나는 현실세계에서 눈을 뜨며 탈력을 느꼈다.
“기억 안 나…”
뭔가 굉장히 열심히 오랫동안 수련한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발 밑이 허전해지며 내 몸이 허공에 크게 뜨는 걸 느꼈다.
“헉?!”
주변을 둘러보니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다. 천지가 폐허가 되고 난장판이 된 와중에 내 몸이 상공에 휙하고 떠 있었으며 나는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화요를 쥐고 있었다.
‘ 아 맞다!’
열의 말이 조금씩 기억났다. 열의 말에 따르면 전욱이 자신의 권능으로 시간을 멈추고 내 영체를 만귀전에 데려온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현실에 복귀하는 순간은 만귀전에 불려간 것과 아무런 시간차가 없었다.
쿠궁
땅에 해신의 거대한 머리통이 떨어져서 지진이 나는 소리가 아련하게 울렸다. 문제는 나는 무공술을 쓸 수 없었고, 이곳은 농밀한 마력때문에 비등사용도 불가능하기에 이대로라면 떨어져서 큰 피해를 입는다.
“하압!”
끼기기긱
나는 몸에 내공을 돋우어서 몸을 강화시키며 떨어져 내릴 때 다시금 해신의 몸통에 화요를 박으며 추락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도중에 놈의 명치에 꽂혀있는 거대한 화룡신검의 이글거리는 칼날을 쳐다보았다.
화룡신검이 없으면 내 전력이 크게 떨어질지도 모른다. 절세신병인 화룡신검을 회수하고 싶었지만 나는 오제 전욱의 말이 떠올랐다.
‘ 맞아… 여동빈이 자기자신을 희생해서 해신을 죽이고 있는 중이야. 뽑을 순 없어.’
기분 탓일까?
화룡신검은 내게 오지 말라는 듯 진동을 더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우우웅
저걸 뽑으면 해신이 신의 힘을 회복하면서 금세 만전상태로 부활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화룡신검을 방치하기로 했다.
“여동빈, 미안합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대라멸진을 팔문까지 끌어낸 직후일텐데도 내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되려 청량감이 감돌았다. 심지어 화룡진인이나 여동빈이 내 몸의 잠력을 끌어쓴 여파도 느껴지지 않아서 만전의 상태였다.
‘ … 그래도 전국옥새의 영력을 꽤 많이 사용해 버렸군. 3할 정도 남았나.’
그 짧은 시간에 전국옥새에 저장된 힘을 이렇게나 사용할 정도였다면 정말 흉험한 전투였던 것이다. 나는 뭘 해야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 십이율주 놈과 얼굴 맞대고 싶지는 않아. 지금은 위험해.’
지금 얼굴을 마주해봤자 칠요를 빼앗겠답시고 나를 습격할 가능성이 있다. 십이율주는 전혀 신용이 가는 인물이 아니었기에, 화룡진인이 부상당하고 여동빈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상태에서는 망량과 제갈사가 있는 거점으로 돌아가는 게 최선이었다. 십이율주 놈도 할 말이 있다면 나중에 사자를 보내올 것이다. 나는 화요에 의지해서 대롱대롱 매달린 채, 어렴풋한 직감으로 전욱사도의 권능을 사용했다.
‘ 어… 이렇게 쓰는 거였던가?’
파밧
나는 갑작스럽게 내 몸이 신단수의 정상에 와 있는 걸 깨달았다. 시꺼먼 밤하늘과 별빛, 그리고 둥근 지상이 내려다 보였다. 난데없이 이 곳으로 이동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당황해하며 다시 한 번 직감으로 되는대로 권능을 썼다.
“아… 이게 아니라…”
파밧
이번에는 웬 서양 건축물이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꿇어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던 토마스 모어가 나를 발견하자 황당해했다.
[ 검은 형제단이 대영제국 전체에 결계를 폈는데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보아하니 내가 방문한 이후로 경계령이 떨어져서 서양 마도사들이 결계로 침입자를 막으려 든 것 같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 그리고 외양이 정말 많이 변하셨군요…]
뭔가 잘 되지 않는다. 이 권능이 뭐였는지 생각이 날락말락한다.
확실한 건 이 권능을 ‘이동’은 물론이고 모든 방면에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째서인지 권능을 수련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왜 수련했던 기억을 까먹은 것일까?
‘ 젠장. 이게 아냐…’
나는 다시 한 번 직감에 몸을 맡기고 권능을 사용했다.
파밧
“됐다!”
나는 드디어 제대로 능력이 사용되었음을 느꼈다.
장령곡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제갈사와 망량을 찾아서 장령곡 안을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망량을 만날 수가 있었다. 망량은 나를 보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 웅…?”
나는 한껏 고무되어서 외쳤다.
“그렇소 망량!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겠소? [옛 지배자]인 해신을 토벌했소!”
“……!!”
나는 제갈사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갈사가 없군. 그는 어디…”
“… 미안한데 당신 정말 백웅 맞소?”
“응?”
망량이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내게 말했다.
“내가 아는 백웅은 십대 중반의 소년이오. 하지만 당신은 아무리 봐도 소년이 아니군.”
“뭐?”
“자기 모습을 보시오.”
그가 내게 품속에 있던 거울을 던졌다. 나는 그 조그마한 거울을 받아들고 내 몸을 보고는 놀랐다.
“……!!”
삼십 대 중반의 사내.
그것이 지금 내 모습이었다.
‘ 만귀전의 연회 때문에 나이를 먹어버렸구나!’
더 큰 문제점은 내 외모가 나이를 먹을수록 추해지기에 지금의 모습은 차마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건장하고 젊긴 하지만 명백히 추남(醜男)이라고 부를 정도의 못생기고 제멋대로인 얼굴이 보였다. 여기서 어렸을 적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건 힘들다고 느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