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498)
00498 암천향(暗天鄕) =========================================================================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유는 당연히 앞서 말했듯이 배교의 마왕이 발호했기 때문이다. 그 자가 인과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중원무림에서 활동한다면 중원이 배교에 정복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왜냐하면 명색이 마왕이고 사도급 존재기 때문이지. 그의 힘은 대라신선을 초월한다.”
“그건 그렇겠지…”
“마왕 벽지상은 반드시 낙양의 대결계를 건드릴 거다. 천계가 그 정황을 읽었기에 즉시 천제의 하강을 가결했다.”
천제!
그것은 천계에서 직접 오악의 천제단에 하늘사다리를 내려서 천계의 전력을 지상에 투입해서 사악한 무리를 쓸어버리는 과정이었다. 그걸 막으려고 천제단을 부수려 들다가는 오히려 천계가 이 세상에 덧씌워져서 더 커다란 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막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천제로 ‘청소’되는 것은 비단 악인 뿐만이 아니라 문명 그자체가 될 수가 있어서 최소한 수백만 명 단위의 학살이 예고되어 있었다.
나는 격렬하게 외쳤다.
“대체! 왜! 하필! 그 놈은 지금 나타나서 지랄이냐고!!!”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지금껏 가만히 앉아서 세상이 망하든말든 관전하고 있던 배교의 마왕이 왜 하필 지금 활동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제갈사에게 계약의 유예기간까지 줘 놓고 행동을 바꿔버린다는 건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그러자 침착하게 망량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 셋이 의논하고 있던 중이오. 그리고 배교 마왕의 발호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소.”
“우연이 아니라고?”
“무언가 외력(外力)이 작용한 게 틀림없소. 또한 그 외력은 우리가 지금껏 해왔던 행동 중에서 인과(因果)가 발생했을 거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자가 발호를 한 거지.”
“인과…”
“잘 생각해 봐야 하오. 지금껏 해왔던 행동 중에서 지금까지의 전생과 뭐가 다른지를…”
“…….”
나는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옆에 있던 제갈사가 고통을 눌러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 자에게 물어서 알아낼 수는 없다. 지금 내가 혈영곡으로 가면 그 자는 내 영혼을 완전히 지배하려 들 거다. 통제를 강화해서 꼭두각시로 만들려 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너희의 적이야.”
“큭.”
말하는 걸 보니 제갈사는 계속 마왕의 소환을 거부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무명제사서로 높아진 마력을 이용해서 저항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강제로 불려갈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뿐이야.”
“제길… 그렇게 말해도…”
짚이는 게 없다.
매번 전생마다 다 다른 행동을 해 왔기 때문에, 다른 전생에 비해서 뭐가 다른지를 꼭 짚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말했다.
“이번 전생에는 해신을 쓰러뜨렸어. 해신을 쓰러뜨렸기 때문에 다른 [옛 지배자]들이 마왕 벽지상을 꼬드겨서 중원을 침공하려는 게 아닐까?”
“그 생각은 우리도 해 봤소. 하지만 그래서는 인과율(因果律)을 무시하고 마왕급 존재가 직접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을 설명할 수 없소. [옛 지배자] 중에 마왕보다 강한 존재는 아주 많기 때문에, 그런 방법이 있다면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중원으로 쳐들어올 것이오.”
“그럼 뭐지?”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모두들 전전긍긍했다. 난데없이 마왕이 등장한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때 천우진이 말했다.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지.”
“그게 뭔데?”
“바로 네가 뇌음사를 조사했던 일이다.”
내가 천우진을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너는 뇌음사를 조사하면서 창힐과 그의 화신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었지. 그 행동은 틀림없이 창힐에게 위협이 되는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힐은 암중에서 자신의 화신을 움직여서 네게 싸움을 걸어온 거지.”
나는 아연해져서 대꾸했다.
“싸움을 걸어오다니? 설마 창힐이 배교의 마왕을 움직였단 말이냐?”
“그럴 가능성도 있단 말이다. 아직까지 정보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 가능성을 아까부터 토론하고 있던 중이다.”
“음…”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 창힐과 그의 세력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적었다. 기껏해야 그의 화신이 여덟 명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기 때문에 구구한 억측에 불과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 천우진이 말했다.
“우선 내 술법으로 보조해서 제갈사가 소환되는 걸 최대한 막아보겠다. 그리고 백웅 너는 망량 사형과 함께 천제를 막을 방법을 최대한 알아 봐.”
“천계를 설득할 방법을 찾으라는 것과 같은 소리군.”
“예전 생의 기억에서 알겠지만, 내 스승님도 천계에는 첨언을 할 수 있을 뿐 수뇌부의 결정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신다. 네놈이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
“흐음…”
천계를 설득해서 천제를 그만두게 하는 방법.
그것은 천제를 내릴 이유가 없다고 설득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천제가 내려오는 49일이 되기 전에 마왕 벽지상을 쓰러뜨리는 게 최선이군.”
“최선이지. 실현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만 제외하곤…”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사가 염세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마왕이란 존재는 녹록치 않아. 네가 상대했던 해신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라신선을 넘어선 존재다.”
“인간 중에서도 그런 놈들 있잖아. 백련교주나 십이율주를 끌어들이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49일동안 놈들의 역량이 마왕의 목을 딸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까? 여태껏 네가 봐 왔던 백련교주는 네 도움을 받아서 크게 강화되었다는 것도 생각해라.”
“음…”
“게다가 수천 년 전부터 엄청난 숫자의 인신공양을 이용해서 자신의 마력을 키워온 배교의 주인은 무시무시한 사법(邪法)을 휘두를 수 있으니, 인간으로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사법에 대항할 방법부터 마련하지 않으면 백련교주나 십이율주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왕 앞에 서지도 못할 거야.”
“빌어먹을. 안 된다는 소리만 하고 있으면 뭐 해결되나? 해 봐야지!”
내가 신경질적으로 외치자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너같은 바보자식은 그렇게 대책없이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해. 해신도 쓰러뜨린 놈한테 걸어보는 수밖에…”
나는 문득 생각난 의견을 제시했다.
“반전의 권능을 써서 벽지상을 없애버리는 거야! 한번에 해결되겠군.”
그러자 천우진이 핀잔하듯 말했다.
“여기 머리 좋은 사람들이 셋이나 모여있는데 그거 하나 생각지 못했겠소?”
“……”
내가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이자 제갈사가 말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말이다… 아까 두 번째 가능성을 듣지 못한 거냐?”
“창힐이 마왕을 움직였을 가능성?”
내 반문에 옆에 있던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백웅. 지금 그게 걸리기 때문에 반전의 권능을 섣불리 쓰지 못하는 것이오.”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이오?”
“반전의 권능을 쓰거나, 그게 아니라도 그저 밀림의 옛 지배자에게 마왕의 위치를 고하기만 해도 처리될 것이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지금의 위난을 넘길지언정 ‘왜’ 마왕이 움직였는지는 알 수가 없게되오.”
“아…!!”
“지금 우리는 마왕이 왜 움직였는지, 그 변인(變因)을 모르는 상태요. 어떻게든 지금의 위난을 수습한다 하더라도 다음 전생에서 똑같은 위험이 닥쳐온다면 무의미하오. 이유를 알아야 대처할 수 있을 거 아니오?”
“그건 그렇구려.”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고 전생의 경험치를 쌓으려면 그 방법은 피해야 하오.”
일리있는 말이다. 반전의 권능은 신에게 빌어서 적수를 처리할 수 있는 사기급 권능이지만, 그렇게 될 경우 마왕의 돌출행동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배우는 게 없다는 건 큰 손해였다.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또 하나. 반전의 권능으로 마왕을 처리한다 해도 놈을 꼭두각시처럼 뒤에서 조종한 창힐은 그대로 남는다. 어차피 이대로가면 창힐과도 싸워야 할 텐데 그 때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윽… 그렇군….”
“뇌음사의 주지가 했던 말을 기억해 봐라. 창힐은 힘을 힘으로 부딪히는 놈이 아니고 책략과 술수를 즐겨 쓴다. 그렇다면 네가 비장의 수를 써 버리며 놈에게 정보를 갖다바치는 건 하책(下策)이야. 창힐은 화신을 이용해서 인간세상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게 분명해.”
“흐음.”
“그리고 이번에 마왕이 그런 꼼수에 쓰러진다 해도 창힐은 결코 네게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을 거다. 책략과 술수를 이용해서 너를 교란하면서 농락하겠지. 네가 어처구니없이 돌연사할 때까지 창힐의 화신인 팔부중 한 놈도 못 만날 가능성이 있어.”
“……”
좀 심한 가정이긴 했지만 제갈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이번 생에서의 최대 적수는 창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창힐에게도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반전의 권능을 미리 써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제갈사에게 물었다.
“잠깐. 그렇다면 마왕을 냅두고 그냥 창힐을 반전의 권능으로 처리하는건…”
“왜 하나만 생각하고 둘을 볼 줄 몰라?”
한심하다는 듯 말한 제갈사가 말했다.
“그게 좋은 방법일 수는 있지만 안먹힐 가능성이 높아.”
“왜?”
“알다시피 반전의 권능은 [옛 지배자]에게 통하지 않아. 왜냐하면 신에게는 삶도 죽음도 없기 때문이지.”
“… 설마.”
“만일에 창힐이 삶도 죽음도 없는 불멸의 경지에 이른 존재라면 반전의 권능을 무의미하게 날리게 될수도 있단 말이다. 지난번에는 애교로 봐줬다지만 이번에도 그럴지는…”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반전의 권능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상대하려는 창힐이나 마왕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놈들인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이제부터 내가 상대하려는 놈들은 신화급의 신이나 악마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섣불리 적의 대장을 치려 하지 말고 정보를…”
쿨럭!
갑자기 제갈사가 선혈을 토했다. 놀라서 망량이 그를 부축하자 제갈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놈과의 계약에 거스르는 반동이 심해지고 있어. 오래는 못 버텨.”
“너…”
제갈사의 안색이 파리했다.
“그렇다고 죽어서 도망칠 수도 없지. 놈과 영혼으로 묶여있으니 이용당하는 시간만 빨라질 뿐…”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경직되었다.
“백웅, [옛 지배자]에게 나를 인신공양으로 바쳐라. 그럼 일석이조다.”
“뭐?”
이 자식 농담하는 건가?
하지만 농담하는 얼굴이 아니었기에 나는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무명제사서의 마력 중 4할을 머금고 있다. 그런 나를 죽여서 신에게 바치면 틀림없이 큰 축복이나 보물을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앞으로의 전투에 큰 도움이 되겠지.”
딴은 맞는 소리다.
하지만 나는 제갈사의 말이 어처구니 없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친 놈아! 그냥 산하사직도에 가둬버리기 전에 닥쳐!”
마왕의 부름이 문제된다면 그냥 천우진의 보패에 가둬버리면 될 일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었다.
“그건 안 되지. 지금 화룡진인이 회복했나? 화요의 힘을 끌어올려서 계속 회복시키고 있는데도 해신의 마력때문에 깨어나지도 못했지? 그리고 해신과의 싸움에서 화요와 전국옥새의 영력도 상당히 소모했을 텐데?”
“……”
“지금 이 상태로 마왕 벽지상과 싸우면 절대 이길 수가 없어. 이길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마련하려면 인신공양으로 편법을 쓸 수 밖에 없다.”
“네 목숨을 굳이 안 바쳐도 이길 수 있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머리 좀 식히고 가만히 있어.”
“어이, 백웅. 지난번에 내가 말했잖아. 우리 목숨은 소비해야 할 자원이라고.”
제갈사가 무감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대로 끙끙대다가 마왕에게 끌려가서 적이 되든 산하사직도에 갇히든 지금의 나는 무쓸모하다. 그렇다면 지금 죽어서 최대한 네게 도움이 되는 편이 나아.”
“왜?”
나는 짜증과 황당함이 북받쳐서 말했다.
“제갈사. 왜 못 죽어서 안달이냐? 말이 인신공양이지 산채로 심장을 뜯어내고 신에게 잡아먹히는 과정인데 그게 좋아? 넌 정말 정신이 나갔어!”
“이제 아셨나.”
제갈사가 킬킬대고 있을 때 천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만 해라.”
휘이익
기습적으로 천우진이 산하사직도를 펼치자 제갈사는 그대로 산하사직도 안에 봉인되어 버렸다. 천우진의 팔에서 갑자기 파직하고 검은 번개가 치솟아 오르자 천우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빌어먹을. 무명제사서의 마력이 굉장하군. 오래는 못 가두겠어…”
“제갈사를 가뒀나?”
천우진은 한없이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보기엔 너희 둘 다 머리에 열이 올라서 등신같아 보였다. 머리 좀 식히고 차분하게 생각해. 49일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니까.”
“그래야지.”
새삼 천우진을 동료로 영입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광기에 찬 선택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백웅. 선지자에게 가야 하오.”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가진 정보가 이 국면을 풀어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