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01)
00501 암천향(暗天鄕) =========================================================================
나는 진소청이 깨어나자 그에게 말했다.
“이제 내 부탁을 들어줄 때가 되었군.”
진소청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같은 고수가 내게 부탁할 게 있소…? 내 스승도 당신의 상대가 되지 못할 터인데.”
“아주 큰 부탁이지. 그리고 미리 사과해두겠소.”
나는 말투를 슬며시 바꾸며 말을 이었다.
“그간 내버려둬서 미안하오.”
“……?”
“자. 이걸 받으시오.”
쿠웅!
나는 잠시 후 목갑에서 거대한 흑요석을 꺼냈다. 보통 사람보다 몇 배나 거대한 흑요석 덩어리를 보자 진소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가 거기에 손을 대란 말을 하자 경계어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남아일언은 중천금. 난 진소청 그대가 쓰러졌을 때 죽일수도 있었는데 자신의 말도 지키지 않을 생각인가?”
“흐음… 알았소.”
진소청은 한숨을 쉰 후 흑요석에 손을 대었다.
우우웅
그 순간 나는 흑요석의 술법을 써서 그에게 내가 가진 기억들을 전송했고, 그건 여태껏 다른 동료들에게 간이식으로 흘려보냈던 것과는 큰 용량차이가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진소청에게 무예관련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상세하게 쏟아붓는데 주력한 것이다.
“……!!”
진소청은 벼락맞은 듯 몸을 떨다가 이윽고 멈추었다.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잠시 관자놀이를 짚다가 내게 말했다.
“그랬던 거군…!! 백웅 당신은 전생자였어. 그리고 나와도 여러번 만났던 거야.”
“그렇소.”
진소청이 약간 서운한 듯 말했다.
“헌데 여태껏 나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일이 별로 없었구려.”
“그건…”
나는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숨겨봤자 어차피 진소청은 흑요석의 기억을 받았으니 대충 다 짐작하고 있으리라.
“내가 진소청 당신의 재능을 은연중에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껴서였소.”
“……”
“허나 약속하오. 앞으로의 전생에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오.”
그러자 진소청이 상쾌하게 웃었다.
“훗. 당신은 원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을 얻을수도 있는 자인데 순수한 의분(義憤)으로 신적인 존재에 대항하고 있잖소? 그런 건 사소한 일이오. 나도 잊어버리겠소.”
“이해해줘서 감사하오.”
“백웅. 떠나기 전에 스승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소.”
“윽, 그건…”
나는 진소청의 요청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내 기색을 알아챘는지 진소청이 말했다.
“내 스승이 당신의 일에 끼어드는 이유는 내가 걱정되어서요. 허나 내가 갈 곳을 명확히 밝힌다면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괜찮소.”
이윽고 진소청은 청룡무관에 가서 이광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 듯 했다. 이광이 따로 배웅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진소청의 무예수련에 납득한 듯 했다. 진소청은 관중을 나와서 나와 함께 걷던 중 말했다.
“백웅. 그대는 뇌신류와 백련교가 어떻게 결판을 냈으면 하오?”
“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건 여태껏 생각하기 복잡한데다 당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미뤄뒀던 일이었다. 하지만 진소청의 말대로 언젠가는 해답을 내려야 하는 일이었다.
이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뇌신류가 어떻게든 백련교에 복수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호법사자 이청운이 살해당하고 문파가 내쫓기며 수많은 살상을 당한 치욕은 결코 뇌신류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백련교주는 그 나름대로의 정의가 있으며 현재의 백련교는 뇌신류가 범접할 수 없는 강대세력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이 문제가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전생에서 내가 진소청을 육성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진소청이 제대로 성장한다면 백련교주에 맞먹는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뇌신류의 어금니는 충분히 백련교에 닿고도 남았다. 그리고 뇌신류와 백련교가 서로 다투기 시작하면 나로서는 큰 손해였다.
그렇지만 선대의 원한을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고 자라온 진소청에게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문제다. 진소청은 나중에 이게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문제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기에 미리 내게 말을 해 온 것이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뇌신류가 원한을 잊었으면 하오.”
“역시 그런 생각이군.”
“진소청. 그대는 어쩌고 싶소?”
진소청이 먼 산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은원(恩怨)이란 목숨보다 앞서서 처리해야 하는 것이오. 하물며 나를 여태껏 키워주신 스승님이 목숨을 걸고 뇌신류의 원(怨)을 갚기를 원하시니 제자인 나는 반드시 뇌신류의 원수를 갚아야 하오.”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 하지만 이건 내 생이 하나뿐인지라 단면적인 시선을 지녔을 때의 이야기.”
“무슨 말이오?”
“그대는 전생을 하면서 하나의 생에 결코 다 알아내지 못할 뇌신류와 백련교의 비사(秘事)를 캐냈소. 내가 스승님께 들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으며, 백련교주 또한 자신의 신념을 가진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지. 그래서 당신의 기억을 전해받은 나는 뇌신류의 은원을 일차적인 은원관계로 파악할 수가 없게 되었소.”
“흠…”
“백우선을 보았던 미래를 생각해 보시오.”
백우선?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음, 그런 기억이 있군.”
“그 때 백우선은 내가 백련교주와 대등한 무공을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판을 내지 않았다고 했소. 백우선이 고도의 인과를 읽어내어서 미래를 예측하는 보패라고 생각하면, 백우선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던 거겠소?”
“잘 모르겠소.”
“당신이 지금까지 모아왔던 정보에 따르면, 나는 절대지경으로 향할수록 백련교주를 죽이는게 무의미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오. 뇌신류의 원한 또한…”
“……!!”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확실히 진소청이 절대지경을 성취했음에도 백련교주를 죽이지 않은 건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그때는 자세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그 허무함을 깨달은 건 바로 이 세계 자체가 뒤틀려있기 때문이라 생각하오.”
“뒤틀려 있다라…”
“절대지경에 올라 무림의 지존이 됨은 결국 그대가 파헤치고 있는 [세계의 어둠]과도 접하게 된다는 걸 의미하오. 가만히 있으면 나인교가 창궐해서 모두가 멸망하는 흐름이 존재하니 피할 수가 없지. 절대지경에 이른 진소청은 좋든 싫든 강해지는 과정에서 그 뒤틀림을 깨달아서, 백련교주 또한 미래에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했으리라고 보오.”
“……”
“비틀림에 대항하기위해서는 자기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오.”
이런 관점은 생소하다. 아니, 진소청 본인이기 때문에 저렇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세상에서 자기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놓을 수 있는 관점이다. 나는 진소청의 말에 집중하다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오?”
진소청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진정으로 뇌신류의 원한을 갚는 방법은 바로 당신을 돕는 거라고 생각하오. 백련교주가 뇌신류를 친 것은 결국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그의 욕심이 비뚤어진 결과인 것이오. 그를 비뚤어지게 한 이 세계 그 자체를 바꾸어야 만사가 해결될 것이고, 그걸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전생자인 당신을 도와서 사악한 존재를 멸하는 것이오.”
“… 훌륭하오.”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언뜻 진소청은 입바른 소리만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저것이야말로 대인(大人)이자 영웅의 사고방식이었다. 보통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무림인이란 건 피로 피를 씻는 존재이기에 자신이 직면한 은원관계를 벗어나서 대의를 생각하기 힘들었다.
더욱이 진소청이 흑요석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골수 뇌신류 무인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생각이 무척이나 유연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자신의 모순을 해결하고 진소청같은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10년도 넘게 걸리지 않을까?
진소청이 말했다.
“그럼 미호에게 가 봅시다. 당신은 그녀에게도 사과해야 할 거요.”
나는 진소청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파앗
나는 진소청과 함께 비등을 써서 천황궁으로 갔다. 천황궁에는 역시나 전귀와 후귀라 불리는 식신이 등장해서 우리를 침입자로 간주하고 막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망량에게 들은 조언이 있었으므로 천황궁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 나는 미호 당신이 서왕모에게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멈칫
그 순간 전귀와 후귀가 공격을 멈추고 굳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호가 요염한 몸매의 미녀로 변화해서 걸어나왔다.
“너희는 누구냐?”
나는 준비해왔던 대답을 했다.
“나는 백웅, 이쪽은 진소청이다. 그리고 나는 보다시피 화요의 주인이다.”
치리링
내가 화요를 들어서 힘을 불어넣자 강력한 화염의 기운이 검 바깥으로 폭사되었다. 폭사되던 기운이 정갈하게 다듬어지자 마치 현악기같은 소리가 났고, 그 소리를 들은 미호는 움찔하는 기색이었다. 요괴다보니 화요의 힘을 더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침음성을 흘리던 미호가 말했다.
“대단한 자로구나… 그대같은 자가 왜 이 조그마한 나라에 찾아온 거냐?”
“앞서 말했듯 나는 미호 당신이 서왕모가 있는 천계로 되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다. 그래서 교섭하러 왔다.”
“흐으음… 어떻게 내 사정을 알고 있지?”
나는 잠시 장삼봉의 기운을 불러서 내 몸에 맺히게 했다. 강신은 아니고 직전의 과정으로 대라신선의 신기(神氣)를 보여준 나는 미호에게 말했다.
“보다시피 나는 대라신선과 단말이 통해있다. 천계의 사정에도 꽤 밝지.”
“그랬군. 그래서 그 방법이 무엇이냐?”
“그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뭐냐?”
나는 미호에게로 커다란 흑요석을 던졌다. 미호가 꼬리로 흑요석을 잡아채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내 기억을 전송하는 흑요석이다. 지금부터 기억을 전송할건데 거기에 동의하면 된다.”
미호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 마라. 어떤 술수가 들어있을 줄 알고?”
미호가 흑요석을 내팽개치려 하자 나는 미호에게 말했다.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너일 텐데.”
“뭐라고?”
“지상에 내려온지 수백 년이 지났으나 아직까지 천계에 돌아갈 방법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처지가 아니냐? 답답한 마음에 고려땅으로 가서 서경을 뒤지거나 전설의 월요를 찾을 계획도 세우고 있겠지.”
“……!!”
“하지만 나는 네가 확실히 되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다.”
“정말이냐?”
“일단 그 흑요석으로 기억을 전달받는데 동의해라. 그러면 알려주겠다.”
“……”
“너도 알다시피 나는 칠요의 주인이다. 널 상대로 사기를 치진 않아.”
미호는 몹시 망설이는 듯 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새하얀 꼬리를 뻗어서 흑요석을 자신의 손에 쥐었다. 그 순간 나는 기억을 전송했고, 미호는 흑요석으로 기억이 들어오자 몸을 크게 떨었다.
잠시 후 미호가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너… 너… 백웅…”
나는 미호가 기억을 얻었다고 생각하자 바로 그녀에게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미호!!”
“……”
“그동안 네가 죽는 걸 보고싶지 않아서 흑요석을 주려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너무 급한 상황이야. 이런 못난 나를 도와줘.”
“이, 이런…”
미호는 크게 낭패한 표정이었다. 진소청 때와는 달리 그녀는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한참 필요한 듯 그 자리에서 꼬리를 떨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식경이 흐른 후에야 미호가 입을 열었다.
“왜 나를 좋아하는 거냐?”
응?
뜻밖의 질문에 나는 미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는 인간족의 절세미녀를 많이 만났으며 개중에는 인간인 너와 어울릴만한 짝도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굳이 요괴인 본녀를 그리도 사랑하고 있는 것이냐?”
바보같은 질문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미호에게 한발짝 다가가서 말했다.
“좋아하는데 그런 이유가 필요해? 굳이 말하자면 너는 나를 편견으로 대하지 않고 솔직하게 다가와줬어. 그리고 난 그런 네가 좋아. 네가 아니면 안돼.”
“……”
“앞으로도 계속 전생을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좋아해.”
갑자기 미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뭔가 눌러참는 얼굴로 옆을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흐… 흥! 정말이냐?”
“당연하지.”
“… 알았다. 아직까지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미호는 살포시 웃었다.
“너와 함께 하면 재밌을 것 같구나.”
됐다!
“고마워!!”
나는 미호 또한 동료로 영입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걸로 이번 전생에서는 일단 동료로 영입할 수 있는 인물을 다 받아들인 셈인 것이다. 나는 미호에게 물었다.
“미호. 혹시 츠치미카도 일족과 알고 지내고 있었어?”
“흐음… 츠치미카도 일족을 끌어들여서 창힐의 화신과 맞설 생각이냐?”
“그래. 망량의 계책이야.”
바로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들어가서 아베노 일족을 만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 위험한 장소에는 별로 가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나 미호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아쉽지만 본녀는 그런 전설의 음양사 일족과는 별로 아는 사이가 아니다. 게다가 음양사는 요괴의 천적이니 접촉하고 싶지도 않았지. 다만…”
“다만?”
미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덴노나 현재의 동영을 지배하는 쇼군(將軍)이 그들과 모종의 끈이 통해있다고 들은 적은 있다.”
“아, 그건…”
덴노는 일본의 천황을 말하는 말이다. 그는 현재 미호에게 환혹술에 걸려있는 상태였는데, 사실은 홍몽의 술수를 이용해서 자의식을 보존하는 상태였다. 나는 예전에 그의 비밀을 지켜주기로 했는데 미호에게 고스란히 비밀이 전달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미호가 웃었다.
“아하하. 걱정 마라. 덴노에게 해꼬지를 하진 않을 것이다. 본녀의 환혹에서 자신을 지킬 정도라면 인정하고 이야기를 나눌만 하지.”
“알았어.”
우리는 곧이어 덴노에게 갔다. 멍하니 환혹에 걸려있는 덴노는 아무리 봐도 정상인의 자아가 아니었다. 미호가 환혹을 풀었는데도 덴노는 멍하니 꿈꾸는 표정이었는데, 미호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일어나라. 네가 홍몽의 술수를 펼친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러자 덴노의 표정이 일변하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끝났군…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시오.”
“후후. 그럴 필요는 없다. 너는 앞으로도 쇼군을 견제하는 말이 되어서 일하면 된다. 너와 네 일족의 신변에 위해를 가할 일이 없으리란 걸 약속하지.”
“저… 정말이오?”
“단, 츠치미카도 일족에 대해서 네가 아는 걸 모두 말해야 한다.”
“알겠소.”
우리는 덴노에게서 음양사 츠치미카도 일족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가 있었다. 천황이라는 직위답게 그는 영적으로 음양사 일족과 큰 관련이 있었으며 상당한 기밀정보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던 중 미호가 크게 놀랐다.
“설마… 아베노 세이메이가 살아있단 말이냐?”
“그렇소.”
덴노가 우묵한 눈으로 말했다.
“그는 헤이안 시대부터 동영의 모든 음양사를 통솔하는 수장. 아오키가하라 수해에서도 가장 깊은 곳인 멸해(滅海)를 관리하고 있다고 알고 있소. 다만 같은 음양사들도 그가 봉인하는 지역이 워낙 두려운지라 모습을 못 본 지 수백 년이 넘었다 하오.”
미호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내가 듣기로는 500여 세를 살고 사망했다 들었는데 아직도 살아있다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니….”
“그 자는 츠치미카도 일족 역대 최고의 천재. 인간의 음양사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존재라 했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소청이 내게 말했다.
“백웅.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음양사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어떻소? 그 정도 술법사라면 천우진과 대등할 것이오.”
“으음!”
확실히 그 정도 존재라면 창힐의 화신과 싸우는데 큰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괜찮은 계획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좋아. 일단 둘 다 장령곡으로 가자. 이대로는 힘이 부족하니 최대한 강해져야 해.”
파앗
나는 우선 미호와 진소청을 데리고 장령곡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망량과 천우진, 검마에게 그들을 소개시켜주고, 본격적으로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망량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진소청은 장령곡에서 수련하시오. 백웅이 갖고 있는 성련과 흑백련이 있으면 내공 문제도 금방 해결될 것이오. 또한 수련이 심화되면 검마와 대련을 통해서 실력을 빨리 향상시키기를 바라오.”
일석이조의 수련법이었다. 검마 또한 칠대절학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서 진소청과 토론하면 훨씬 빨리 실력이 늘게 분명했다.
“알았소.”
“미호 당신은 나와 함께 천우진에게 술법을 배웁시다.”
“알았다.”
망량이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은 백련교주에게 가서 교섭하시오. 이번 마왕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힘이 꼭 필요하오.”
“백련교주를 쉽게 설득할 자신이 없소.”
나는 진짜로 자신이 없었다. 백련교주는 무림의 절대자답게 지닌 무공도 엄청났고 심성도 의뭉스럽고 교활해서 결코 자신의 진의를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창힐의 화신에 대해서 설명하고 조력해달라고 해도 허튼소리로 들릴 것이다. 혹은 알고도 자기 뜻대로 이용해먹으려 할게 뻔하다.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힘을 보여주면 이야기를 듣겠지.”
“힘? 지금 나는 본신의 무공 외에는 가진 게 없소. 화룡진인이 부상중이라…”
“타인의 힘을 빌리는 거라면 보다 직접적인 방법이 있소.”
망량이 갑자기 동영어로 말했다.
“미야모토 무사시, 나오시오.”
스스슥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난데없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모습이 드러났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내 쪽을 힐끔 바라보다가 말했다.
“십이율주 백웅. 명받은대로 십 년간 그대를 돕기로 했다.”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이전에 내가 십이율주 하은천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10년간 내게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날 도와야하기 때문에 장령곡에 와 있을 것이리라. 망량은 딱히 미야모토 무사시의 기척을 느낀건 아닐테지만 그런 제반사항을 짐작했기 때문에 찔러본 것이다.
“나를 도와주겠소?”
미야모토 무사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파앗!
나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함께 비등을 써서 백련교주가 있는 교주전에 도착했다. 나는 방금 전 망량이 말해 준 계책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 어떻게든 한백령만큼은 구출해야 해.’
그걸 위해서는 다소 강한 무력시위라 해도 감수해야 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교주전 안쪽으로 무사시와 함께 걸어갔다.
“……?”
뭔가 이상하다.
이 정도 걸었으면 원로원 고수라던가 수신류의 고수가 한두 놈씩 튀어나와서 기습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늘 복마전처럼 고수가 들끓던 교주전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척을 숨기고 있다고 볼 수도 없는게, 미야모토 무사시 또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절대지경의 고수 앞에서 원로원 고수들이 자신의 기척을 감출 수 있을 리 없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불쑥 말했다.
“흉(凶)하군.”
내가 그를 쳐다보자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했다.
“저 앞에 엄청난 힘을 지닌 놈이 있다. 그래도 갈 거냐?”
그의 시선은 교주전의 가장 내밀한 곳, 평소에 백련교주가 머물고 있던 고요한 방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백련교주가 모종의 기연으로 엄청난 무공을 성취했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 만일 백련교주가 강해졌다면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얘기나 붙여볼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아무리 미야모토 무사시라고 해도…
나는 난데없이 큰 모험을 하는 선택이 되자 이를 악물고 말했다.
“… 지금은 시간이 없소. 갑시다.”
“알았다.”
만일 교주가 또다시 사도급 존재가 되었다 하더라도 비등과 권능을 쓰면 어떻게든 피할 순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이십 보를 앞으로 갔다.
이제 교주전의 가장 안쪽 방이 보인다.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죽음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었다.
오오오오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 순간이었다.
“……!!”
나는 눈 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고 눈을 부릅떴다.
백련교주.
‘ 주… 죽었어!’
무면탈을 쓴 채로 누워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건 바로 백련교주였다.
그는 외상같은 건 보이지 않았으며 손발이 쪼글쪼글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교주의 원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기이한 ‘무언가’였다.
그 ‘무언가’는 새하얗게 빛나는 눈동자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쪼글쪼글하게 생긴 갓난아기처럼 생겼는데 몸뚱이가 기형적으로 생겨있었다.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몸에 일체의 털이 하나도 없어서 맨들맨들했고 인간의 생식기같은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무언가’의 눈동자를 마주치는 순간 엄청난 위압감에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뭐지?
저건… 뭐지?
너무 이상해.
이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서 있는 것 같아.
보통 이족에게서 받는 괴이한 느낌과도 차원이 다르다. 전신에 땀이 흥건해지고 위화감에 구토할 것만 같다.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했다.
“도망치자.”
내가 그를 힐끔 쳐다보자, 무사시는 전에 없이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그건 알겠는데 그렇게 강합니까?”
“강함의 문제가 아니다… 너무나 불길한 자다.”
스윽
갑자기 그 괴이한 존재가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더니 입을 길게 쭉 찢으며 히쭉 웃으며 말했다.
“백웅. 백-웅. 백웅… 맞아… 그런 이름…”
나를 왜 부르는 걸까?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놀라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반갑, 습, 니다… 나는… 백련교의 교주… 독고… 설… 입니… 다…”
저 목소리는 익히 알고 있다.
마치 앵앵거리는 것처럼 들리지만 특유의 억양이 남아있다.
또한 저 이름은 –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믿기지 않는다.
“… 소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