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06)
00506 암천향(暗天鄕) =========================================================================
한백령은 내 요구에 어리둥절해하는 듯 했다. 나는 사전에 화룡진인의 상태를 감지했고 현재 해신의 마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사상태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백령에게 화요를 넘겨주었다.
‘ 화요에 깃든 화룡진인이 한백령을 해치진 않겠지.’
한백령의 손에 화요가 들리자 그녀는 물끄러미 칼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화룡의 화신. 당신은 화신지혼이 뭔지 알고 내게 그걸 부탁하는 겁니까?”
“강대한 화염의 힘을 사역하는 거라고 알고 있소.”
“……”
한백령은 왠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교주가 말하기로 당신은 뇌신류의 무예를 쓴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그렇소. 교주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자신이 낙양에 숨겨둔 자가 알아냈다고 했습니다.”
나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놈이 내 행적을 캐냈단 말인가?
‘ 그 놈인가?’
짐작가는 자는 있다. 물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므로 한백령의 말에 주의를 집중했다.
“당신이 뇌신류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면 설명하기 편하겠군요. 화신지혼이란 전대 뇌신류 호법사자인 이청운이 만들어낸 뇌신지혼(雷神之魂)과 마찬가지로 무극(武極)에 이르려 하는 미완성의 오의입니다.”
“……!!”
“뇌신지혼은 종사의 극비이니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얼핏 들은 것 같긴 하오.”
예상은 했지만 한백령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되자 감회가 달랐다.
뇌신지혼과 비슷하지만 다른 기술!
“… 이청운의 뇌신지혼은 자기자신을 뇌령(雷靈)으로 바꾸고 동조하여 번개 그 자체가 되는 오의. 마찬가지로 저 또한 인간의 몸을 염령(炎靈)으로 바꾸고자 지난 세월 동안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었소?”
“이청운과 저의 재능에 차이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지요. 또한 역사의 차이도…”
그녀는 슬픈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이청운은 역대 최고의 무재를 지닌데다 그의 선대부터 계속해서 요결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뇌신지혼을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지요. 반면에 저는 제 대(代)부터 연구를 시작했으며 재능도 부족했기에 화신지혼은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기술이 되고 말았습니다.”
“엉터리 기술?”
“보시지요.”
화르륵!!
갑자기 한백령의 몸에서 거대한 불꽃이 일어나더니, 그녀의 육체가 반투명해지며 거대한 환염의 날개를 만들어 냈다. 화염이 영롱하게 일렁이며 장관을 만들어냈고 몸이 영체처럼 변화하는 듯 했다.
저것이 화신지혼!
한백령은 그 상태로 잠시 있더니 다시 인간의 형태로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엄청난 화염을 뿜어냈는데도 그녀의 옷은 전혀 손상된 기색이 없었다.
“보시다시피 화신지혼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찰나. 하지만… 이 찰나동안 화신지혼을 운용한 동안 천령단이 절반 가까이 소모되었습니다.”
“……!!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지금 소모된 기운은 아무리 천령단이라 해도 한 식경은 있어야 복구되지요. 기껏해야 숨을 열 번 쉴 사이에 너무 엄청난 내공을 잡아먹었습니다.”
“……”
“뇌신지혼은 화신지혼과는 다릅니다. 뇌신지혼 또한 엄청나게 내공을 잡아먹긴 하지만 천령단을 지니고 있다면 그 손실이 미미한 수준이라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지요. 화신지혼은 뇌신지혼보다 순간적으로 열 배 이상의 내공을 소모해버리니, 도저히 사용할만한 게 아닙니다.”
충격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화신지혼은 천령단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사용이 불가능에 가까운 기술이 아닌가? 나는 그제서야 그동안 한백령이 화신지혼을 갖고 있음에도 섣불리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무한의 내공으로도 손실율을 버티기 힘들만큼 가공할만한 내공을 뽑아쓰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 … 19번째 전생때는 제단의 힘과 불사능력을 이용해서 화신지혼을 억지로 썼던 거군.’
아마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뇌신지혼의 경지에 이른 이청운을 못 막았기 때문이리라. 뇌속으로 공격하는 이청운은 일격에 수신류 호법사자를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있었기에 동일한 영역에 이르러야만 한다.
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한백령의 말이 이어졌다.
“낙양에서 마도사를 쓰러뜨릴 때는 급한대로 화신지혼을 써서 힘을 빌려드렸으나, 제가 다시 화신지혼을 써서 그때같은 위력이 나올지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소? 지금 화신지혼을 썼기에 천령단이 회복되지 않은 거라면 잠시 기다렸다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한백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제 힘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천령단이 지니고 있는 무한의 내공, 그 용량 자체가 줄어들고 있죠. 처음에 당신을 봤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전력은 7할 정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아마 이 현상은 저 뿐만이 아니라 교주나 다른 호법사자도 마찬가지인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원영신과 천령단의 힘이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서 내게 질문했죠. 이유를 몰라서 답하지 못했습니다만.”
나는 그 이유를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 내가 해신을 쓰러뜨렸기 때문이야.’
천령단은 해신을 매개체로 해서 ‘아버지’의 옥좌에서 힘을 빌려오는 계약이다. 원영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내가 이번 생에서 해신을 쓰러뜨려 빈사상태로 만드는 바람에 계약이 약화되었고, 원영신과 천령단 또한 서서히 약화된 것이다.
천령단이 약해지는 이유는 해신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신이 완전히 사망한다면 천령단의 계약 또한 무효가 되는 게 아닐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한백령에게 말했다.
“… 그렇다 해도 시도해보지 않을 수는 없소. 부탁이니 힘을 빌려 주시오. 화룡진인이 깨어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강적에 맞설 수가 없기 때문이오.”
“어쩔 수 없군요. 미리 설명해 드렸으니, 설혹 진인이 깨어나지 않는다 해도 나를 원망치 마시길…”
“물론이오. 그럼 좀 쉬다가 시작합시다.”
약 반 시진 동안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진 후, 한백령은 화신지혼을 극도로 끌어올리더니 화요 간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일반적으로 화염이 물체를 연소시키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백령이 끌어올리는 화신지혼의 힘은 마치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있는 것처럼 화요의 검극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미 한백령이 뿜어내는 화염이 수십 리를 불태우고도 남을 화력이란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흡수력이었다.
‘ 과연 화염의 칠요인가…!!’
화신지혼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한백령에게 다가가 등쪽에 공력을 보내려 하다가 흠칫했다.
“헉!”
순식간에 내 공력이 8할 가까이 빨려들어간 걸 알아챈 나는 기겁했다. 도대체 이 순간에 내공을 얼마나 쓰고 있다는 소리인가?! 문제는 내 공력을 그만큼이나 먹었음에도 한백령의 화신지혼은 딱히 회복된 기색이 없어서, 실로 인간이 논할 수 없는 단위의 공력을 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쿠우우우…!!
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잠시동안 무저갱처럼 화염의 힘을 먹어치우던 화요는 이윽고 화염에 반응하더니 서서히 힘을 빨아들이는 걸 멈추었다. 그리고 한백령이 화신지혼을 끝내고 비틀거리며 쓰러지자 나는 급히 한백령을 부축했다.
“괜찮소?”
“허억… 허억…”
한백령은 전신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눈을 뜨더니 말했다.
“약속… 반드시… 화신류를… 지켜…”
“알았소. 조금 쉬시오.”
이윽고 한백령이 기절하자 나는 그녀의 몸상태를 진맥으로 살폈다. 그리고 천령단을 거의 소모했음에도 그녀가 원래부터 품고 있던 공력이 크기에 목숨에는 이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환골탈태란 공력의 유무때문에 상태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영구적인 신체의 변화였으므로 급작스러운 노화때문에 죽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화요에 다가가서 집어들었다.
지잉 –
갑자기 화요가 주황빛을 내뿜었다. 마치 부활이라도 한 것처럼 강한 기운이 명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칼날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화룡진인의 환영이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연자여. 그대가 나를 회복시켰는가?] “네. 이제 괜찮으십니까?”[ … 그렇지 않다. 해신의 마력을 몰아냈으나 아직 전투에 나설 순 없겠구나.]
무겁게 대꾸하는 화룡진인은 확실히 피로해보이는 기색이었다. 해신의 마력때문에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이제 겨우 활력을 찾은 상태였고, 인간으로 치면 병상에서 갓 상체를 일으킨 수준이었다. 이 상태의 화룡진인을 억지로 전투에 내보내면 안될 것이다. 나는 화룡진인에게 말했다.
“좀 더 힘을 회복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 아니다. 그보다 그대에게 깃든 존재와 이야기하고 싶구나, 연자여.]
“장삼봉 진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렇다. 그 투선(鬪仙)을 내보내 다오.]
파앗
잠시 후 장삼봉이 내 몸에 강림했다. 화룡진인은 장삼봉에게 말했다.
[ 잠든 동안에도 천계의 소식을 전해듣고 있었소. 그대가 여동빈에 이어 사도와 함께 활동하게 된 투선인가?]장삼봉이 포권했다.
[ 장삼봉이 응룡의 화신이신 화룡진인을 뵈오. 본인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 이대로라면 앞으로 그대와 나의 연자(然者)는 반드시 미후왕(美?王)과 싸우게 될 것이오.] [ ……] [ 허나 미후왕은 내가 전력을 지니고 있어도 감당하기 힘든 상대. 반드시 그대가 큰 도움을 줘야만 할 것이오.]장삼봉은 화룡진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 원래 그 존재는 투선 최강이라 불리오. 그런만큼 천계에서도 비중이 커서 경거망동하지 않소. 그 미후왕이 우리에게 칼끝을 겨눌거라 생각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 연자는 현재 마왕과 싸우거나 설득하려 생각하고 있소. 성패가 어찌되든간에 미후왕 또한 마왕의 목을 노리고 있으니 충돌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오.] [ 흐음…]장삼봉이 낭패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 화룡진인이여. 방금 그 정보는 천기(天機). 귀하의 신분으로 결코 누설해서는 안되는 것이오.] [ 삼황오제의 사도라면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리라.] [ … 그건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오.]장삼봉은 천계의 원칙대로 행하려는 성향이 있는 걸로 보였다. 화룡진인이 말했던 미후왕에 관한 정보는, 장삼봉 또한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내게 따로 이야기하지 않은 듯 헀다. 장삼봉이 침음성을 흘리더니 말했다.
[ 우리는 모두 천계의 권속. 만일 미후왕과 다툴 일이 생긴다면 삼청(三淸)이 결론을 내릴 것이니 섣불리 싸운다는 단정은 내릴 수 없소.] [ 장삼봉이여. 현재 지상의 상태를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 ……] [ 현재는 만당 시대보다 혼란스러운 시대. 무엇이 정의인지 잘 생각해 보시오.] [ 본인 스스로 판단할 터이니 그리 알아주시오.]파앗!
이윽고 화룡진인은 화요 안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장삼봉과 논쟁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자신의 힘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장삼봉의 빙의도 풀리자 나는 장삼봉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 장 진인! 미후왕이 마왕을 노리고 활동한다는 정보를 내게 숨긴 겁니까?!] [ 그렇소.]나는 기가 막혔다.
투선 미후왕이 아직까지 지상에서 암약하면서 마왕 벽지상을 노린다는 건 특급정보 중의 특급정보였다. 잘못하면 그 때문에 내 모든 계획을 수정해야만 할 것이고, 어쩌면 죽을 위기가 닥쳐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 아마 화룡진인은 응룡의 화신이라서 정보를 전해들은 거겠지.’
화룡진인이 지금 천계의 정보를 알아내서 내게 간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나는 그 정보를 몰랐으리라.
[ 어째서입니까? 당신과 나는 단말을 이은 운명공동체…] [ 허나 그대는 삼황오제의 사도이기도 하지. 천계 삼청께서 특별히 내게 명하시길 그대에게 과한 천기를 누설해선 안된다 하셨소.] [ ……!!] [ 이해해 주시오, 연자여.]삼청이 직접 나를 견제할 것을 명령했다고?
그렇다면 여동빈과 달리 장삼봉이 유독 소극적이었던 게 성격탓이 아니라, 천계 상층부의 명령이었단 말인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장삼봉의 목소리가 어두워져 있어서 그 또한 천계의 명령을 답답해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으나 장삼봉에게 따져봤자 될 일이 아니었다. 명령을 한 놈들에게 화를 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육성으로 말했다.
“… 잊겠습니다. 그래서 미후왕이 마왕을 어떻게 노리고 있다는 겁니까?”
[ 허어… 대신 정보를 말하라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대가 나를 진정으로 연자라 생각한다면.”
[ 어쩔 수 없군.]
장삼봉이 말을 이었다.
[ 천기를 누설한 술법사를 처치한 후 미후왕은 인간의 도시에 숨어서 정보를 축적하고 있었다 하오. 그는 변화술에도 능숙해서 온갖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서,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마왕의 본거지를 토벌할 것이오.] “미후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마왕은 대라신선을 초월한 존재라 하던데 혼자서 되겠습니까?”[ 미후왕은 특별하오. 그는 신화시대의 신마(神魔)를 모두 품고 있어서 특별하오. 그래서 만일의 경우에도 천계측에서는 미후왕이 최소한 마왕을 봉인해줄 것이라 믿고 있소.] “……”
엄청난 신뢰다.
아무리 투선 최강이라 하지만 미후왕이 그렇게 강한 존재란 말인가?
나는 듣다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그렇다면 천제는 대체 왜 내리는 것입니까? 마왕을 미후왕 혼자서 토벌할 수 있다면 굳이 천제를 내릴 필요는…”
[ 마왕 때문에 내리는 것만은 아니오.]
“무슨?”
[ 해신이 쓰러지면서 인과율이 크게 요동쳤고 강대한 [옛 지배자]의 화신이나 사도가 중원에 출몰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아졌소. 마왕 정도는 잔챙이로 보일 정도의 강대한 존재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니 천계에서는 천제를 내릴 수밖에.]
맞는 말이다.
백련교에 나타난 [옛 지배자]의 화신, [영겁의 태아]가 지닌 힘을 생각하면 그럴 만 하다. 그에 못지 않은 강대한 사도나 화신이 또 등장한다면 중원은 대혼란과 학살이 연일 발생할게 분명했다. 나는 장삼봉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내게 정보를 숨기지 마십시오. 이건 연자로서의 부탁입니다.”
[ 허허… 알았소.]
파앗
나는 한백령을 한씨세가에 데려다주고 본거지에 되돌아가기 전, 의성 상관혁의 의가를 찾아갔다. 그리고 놈이 의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걸 알아채고 벌레씹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 새끼였을 거야…”
틀림없다.
내가 뇌신류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낙양에서 나와 화신류가 통하던 정황 모두를 교주에게 전해준 것은 의성 상관혁이었으리라. 사역마의 마법으로 정보를 모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한 갑자기 백련교주 및 수뇌부의 기척이 사라지자 의심스러워서 스스로 종적을 감췄으리라.
그럴지도 모를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혼대법을 해제하게 도와줬는데도 뒤통수를 때리다니!
‘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철저하게 이혼대법으로 꼭두각시로 만들걸…’
놈 때문에 괜히 백련교주에게 발목잡힌 걸 생각하면 괘씸해서 이 의가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일까 생각했지만 억지로 살심을 꾹꾹 눌렀다. 상관혁 놈의 죄를 다른 자들에게 분풀이하는 건 옳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장령곡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망량 및 일행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이야기해 줬다. 망량은 난처한 듯 말했다.
“곤란하군. 바로 수요를 해방하러 가야하는데 설마 미후왕이라는 변수가 끼어들 줄이야…”
“미후왕을 찾아봐야겠소?”
“……”
망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지금 그럴 시간이 없구려. 미후왕이 마왕을 치든 말든 일단은 수요를 해방해서 힘을 얻으러 갑시다.”
파앗!
나는 잠시 후 망량, 천우진과 함께 숭산의 천제단으로 갔다. 소림사의 신승은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맞아주었다.
“잘 오셨소.”
“칠요를 해방하러 왔으니 누구도 제단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 주시오.”
“물론이오.”
신승은 호언장담했다.
“빈승과 사제들, 그리고 십팔나한과 사대금강, 백팔나한진이 있소. 그 누구도 소림사의 문턱을 섣불리 넘을 수 없을 것이오.”
그리고 천제단에서 망량과 천우진이 깃발을 모두 꽂고 봉선의식의 준비를 마쳤다.
우우웅!!
잠시 후 봉선의식이 시작되며 거대한 존재가 숭산에 강림하는 게 느껴졌다.
그 존재의 크기는 아주 거대해서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존재감을 강림 전부터 내뿜고 있었다. 그 기세를 마주하던 천우진이 아연실색해서 외쳤다.
“헉… 이건… 설마…”
“천우진, 무슨 문제 있나?!”
“아, 아니….”
“제단에 수요를 매개체로 올렸잖아! 그러면 당연히 전욱이 나오는 거…”
당연히 우리는 사도인 내 직속상관인 전욱을 부르는 쪽이 훨씬 봉인해제가 쉬웠으므로 수요를 제단에 올려서 수요의 제작자인 전욱이 나타나게끔 해놨다. 그래서 지금 수요 봉선의식에 나타날 것도 당연히 전욱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천우진의 반응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천우진이 외쳤다.
“수, 술법을 쓸 수 없다고! 이런 말도 안되는…”
“……?!”
“뭔가 터무니 없는 게 이 천제단에…”
쿠궁!!
갑자기 천지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완벽한 어둠으로 화했으며, 심지어는 생물의 기척조차도 모조리 잦아들어가는 듯 했다. 망량이나 천우진의 기척은 물론이고 신승이나 사람들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파천의 가호를 받을 때의 풍경과 비슷했으나 그것과는 좀 달랐다.
이 어둠은 불길한 심연에서부터 정신을 갉아먹는 듯한 불안한 광기를 품고 있다.
나는 이 어둠의 공기에서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이 내 정신으로 침투하려는 걸 느끼고는 숨을 들이쉬었다.
‘ 이 어둠 자체가 정신공격이야…’
도대체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내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게 보였다.
오오오오오 –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곳은 인간세상이 아니다.
봉선의식이 펼쳐진 순간, 거대한 존재가 나를 또다른 차원으로 강제로 데려온 것이다.
천지사방에 원래 별빛이 펼쳐져 있는 우주의 한가운데, 그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차원의 나락에 강제로 틀어박히게 된 셈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를 인지하게 되자 급격한 공포가 밀려들었다.
어둠이 꿈틀거린다.
저것은 뱀… 아니, 용인가?
흉측하지만 마치 빛나는 별조차 먹어치울 것 같은 무시무시한 광세의 어둠이 눈 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찌나 거대한지 비늘 하나가 대륙 하나만큼 거대한 것 같았고 움직임 한 번에 세계를 멸하는 바람이 쏟아지는 듯 했다. 나는 태어나서 아직까지 저렇게 거대한 걸 본 적이 없다.
저것은 위대한 존재.
그리고 그 [본질].
마치 전욱의 거대한 어둠의 형체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우오오오오오
꿈틀거리던 어둠이 내 몸을 가볍게 울음소리만으로 터뜨려버렸다.
나는 우주의 먼지가 되고 말았다.
파앗
“……”
나는 어느 새 장령곡에 앉아있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 눈 앞에는 출발한 준비를 끝마친 망량과 천우진이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자 놀란 기색이었다.
“백웅, 왜 그러시오?”
“으으으윽…”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리를 짚었다.
“… 수요해방은 미룹시다. 권능 한 번 남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