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20)
00520 암천향(暗天鄕) =========================================================================
한 달 내에 절대지경의 발판을 만들어 준다고?
나는 의혹이 생겼지만 어쨌든 진소청의 말대로 지금 내가 딱히 할 일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작 한 달 동안에 크나큰 성취를 얻을수 있는것도 아니라서 전전긍긍하던 중에 진소청이 솔깃한 제안을 해 준 것이다.
“알았소.”
진소청은 나와 함께 수련장으로 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실 방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지금 초절정을 넘어서서 확실히 절대지경에 이른 건 아니라 생각하오. 나도 수련기간이 부족해서 간만 보고 있지. 계기가 생겨야 확실히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렇군.”
아마 현재의 진소청은 절대지경의 초입에 발을 들이미려는 수준으로 보였다. 비슷한 경지라면 용중일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당신이 쌓아온 무(武)의 기억 속에서 순간적이지만 무혼의 편린을 본 것 같소.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생각해본 결과 당신이 우선 뇌신지혼부터 얻기 위해서는 중요한 기초가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되었소.”
“기초?”
진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뇌신지혼을 얻으려면 특수한 요결이 필요한데, 그 요결은 엄청난 난이도를 지니고 있지. 백웅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건 왜 어려운 것 같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방대한 양을 짧은 요결에 압축해서 그런거 아니오?”
“그렇소. 하나의 뇌신류 천재가 일평생 쌓아올린 성과를 하나도 아니라 수십 개씩 모아서 요결에 압축시키고, 그걸 바탕으로 뇌신지혼을 이룩하는 방식이오. 그래서 애초에 천재가 아니면 익힐 수 없지.”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나는 뇌신지혼에 대해서 생각하던 중, 백웅 당신에게는 추가수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소.”
“응?”
“무혼을 얻기 위해서는 권검창을 달통한 달인들에게 전수받고 탈각과 망아의 과정을 반복하오. 이건 그저 상징적인 절차일 가능성이 높소. 즉, 뇌신지혼을 익히든 무혼에 도달하든 그것은 – 뇌신류의 ‘모든 것’을 익혔다는 증명이 필요하다는 거지.”
“모든 것…?”
“말 그대로 모든 것. 종사(宗師)로서 권법, 검술, 창술, 잡기, 신법에 이르기까지 뇌신류의 모든 무예를 달인의 경지로 익혀야만 하는 것이오.”
부웅
진소청은 창을 내쪽으로 겨누었다.
“지금까지 이청운은 당신에게 이런 사실을 언급도 하지 않았소. 왜냐하면 뇌신지혼에 도전할 수준쯤 되면 잡다한 기술은 전부 터득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백웅 당신은 뇌신류의 잡기(雜技)나 신법에 있어서 미진한 부분이 있었소. 그 일례가 바로 멸혼보 천광이오.”
나는 진소청의 말에 항의했다.
“난 멸혼보를 익숙하게 잘 쓰오.”
“비기 천광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오. 그래서 애매한 요결을 익히기 위해 굳이 청월을 구출해온 것이고. 멸혼보를 제대로 달인의 경지에 올리지 못하면 뇌신지혼에는 오르지도 못하고 허송세월할 게 뻔했소. 혹은 뇌영보나 천주살을 최고의 경지로 올려야 하는데 이건 더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
“……”
“잡기 또한 마찬가지요. 내 생각에 백웅 당신은 후생(後生)에서 녹월(綠月) 장로와 접촉할 필요가 있소.”
“녹월이라면… 뇌신류 귀혼일파 출신의 벽력삼존을 말하는 거군.”
진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귀혼일파는 뇌신류에서 가장 다양한 기술을 보유한 유파이자 술법도 잘 부리는 곳이오. 이청운은 귀혼일파의 기술도 대개 터득하고 있었다고 짐작되오.”
“알았소.”
“그리고 또 하나. 당신은 창권검 중에서 권(拳)을 잘 모르오. 그러니 낙양에서 호위무사로 일하는 정윤보나 적월 장로를 찾아서 그에게 권을 배워야 하오.”
나는 진소청의 조언을 들으면서 기가 질리는 걸 느꼈다.
“세상에… 이청운은 왜 이런 걸 내게 말하지 않은 거요?”
“그야 팔선신공을 전수할 시간만으로도 부족했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팔선신공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뇌신류의 수많은 기술을 배우러 다니다가는 또다시 무류(武流)가 꼬이지 않겠소.”
“그건 그렇군.”
“나도 지금의 당신을 다 도와줄 순 없소.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소.”
그리고 수련이 시작되었다.
천광(天光)!
슈슈슉
눈깜짝할 사이에 빛의 환영이 뿜어져 나오면서 멸혼보의 보법과 함께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진소청은 부족한 요결을 습득하자마자 바로 멸혼보의 비기를 사용해버린 것이다. 다만 진소청은 여태껏 워낙 엄청난 짓을 많이 저질렀는지라 이제 와서 이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우선 멸혼보 천광을 내게 보여준 진소청이 말했다.
“내가 천광을 가르쳐주는 방식은 다른 사람과 다를 거요.”
“응?”
“칠대절학과 팔선신공을 먼저 머릿속에 떠올리며 한번 몸으로 펼쳐보시오.”
나는 진소청이 시키는대로 했다. 연무과정이 끝나자 진소청은 자신의 창을 다잡으며 말했다.
“자, 방금 펼친 것들의 요결을 강하게 집중하며 대련합시다.”
나는 진소청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대련이라고? 정말 비기의 전수를 대련으로 할 생각이오?”
가만히 반복훈련하며 명사의 지도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요결 하나 머릿속에 넣어놓고 대련훈련이라니? 나는 무예를 수련한 경험이 오래되었지만 이런 전수방식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날 믿어보시오.”
“으음…”
“단, 당신은 내공을 절반으로 억제하며 싸우시오. 그래야 적절할 거요.”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 보지.”
따다당!
이윽고 진소청의 창과 내 검이 허공에서 마주쳐서 강한 소리를 냈다. 내공의 절반이라 해도 진소청보다는 훨씬 높았기 때문에 나는 손쉽게 내공에서 우위를 점하는 걸 느꼈다. 여기서 진소청이 의념절기를 쓰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내게 밀리게 될 것이리라.
부우웅
진소청은 나와 십여 초를 부딪히다가 갑자기 기세가 일변했다. 그리고는 광풍노도처럼 란, 나, 찰을 뿜어내며 내게 반격을 가해왔는데, 나는 이 단순한 초식의 연계 자체가 의념절기라는 걸 깨달았다.
‘ 강하군!’
처음에 내가 진소청을 영입하러 갔을 때와는 천지차이다! 나는 초식의 연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장중하게 버티면서 진소청의 헛점을 찾았다. 그런데 진소청은 공세를 취해오다말고 갑자기 칠대절학 중 현천오신결을 써서 나를 공격해 왔고, 나는 날아오는 오색강기를 가볍게 장법으로 쳐 냈다.
파바밧
“……!!”
그 순간 환영처럼 진소청의 몸이 내 쪽으로 달려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게 진짜인지 허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서 급히 방어태세를 잡았는데 진소청은 즉시 태극요지유검을 수법(手法)으로 변화시키며 내 혈도를 찔렀다. 내 헛점만을 찌르는 움직임이었기에 나는 기겁을 하며 멸혼보로 피했지만, 진소청 또한 멸혼보를 쓰며 나를 따라붙었다.
찰나의 순간에 심적권청이 느껴졌다.
진소청의 마음의 소리가 정적의 공간 속에서 울려퍼지는 게 느껴졌다.
찰나에 진소청의 창극이 느릿하게 내 목을 베어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공격에는 살의가 없었고 오로지 위의(威意)만이 있었다.
[ 흐름에 몸을 맡기시오. 그리고 보법이란 단지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란 걸 깨달으시오.]쉬쉬쉭
멸혼보를 쓰는 신형이 엉키면서 진소청이 쉴새없이 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진소청이 초근접전을 시도하는데도 떼어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연신 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칠대절학이나 팔선신공을 쓰면 그 즉시 진소청이 응용기로 파해해 버리니 떨쳐내는 게 불가능했다.
퍼엉!
나는 견디지 못하고 내공을 돋우어서 강기막을 펼치며 진소청을 떨쳐냈다. 그러자 진소청은 공중제비를 넘으며 땅에 착지하며 말했다.
“이래서 내공을 다 쓰지 말라고 한 것이오. 수련이 안 되니까.”
“으음…”
“나는 계속 칠대절학과 팔선신공을 쓰며 당신을 추격하겠소. 당신이 어떤 절학을 써도 근접전으로 따라붙을 거요. 벗어날 방법은 하나뿐이란 걸 깨달으시오.”
진소청은 말이 끝나자마자 재차 덮쳐왔다. 그리고 나는 이 정체불명의 대련을 그 날 하루종일 해야만 했다. 장장 여섯 시진 내내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자 나보다 진소청이 먼저 지친 듯,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역시 쉽지는 않군. 나는 좀 쉬었다 나올테니 백웅 당신은 대련을 연구하고 있으시오.”
“알았소.”
진소청이 휴식하러 들어가자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곰곰히 참오했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진소청의 응용력과 수의 깊음이 대단했다. 마치 내가 다음 순간에 어떤 변초를 쓸지 다 알고 대응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 이 대련이 멸혼보 비기를 얻는 게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반시진 내내 머리가 부숴져라 고민하다 결국 장삼봉을 불렀다.
[ 장 진인. 도와주십시오.] [ 허허. 그 대련은 잘 구경했소.]장삼봉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 내가 보기에도 답은 하나요. 다만 입으로 요체를 전달하면 그대가 말의 함정에 빠져서 진의를 멀리할까 저어해서 몰아붙이고 있구려.] [ 조언을 주십시오.] [ 흐흠… 그대는 이미 삼보(三步)를 얻었잖소?] [ 방금 전 삼보절기를 써서 피했지만 진소청도 같은 삼보절기로 따라붙었습니다.] [ 과연 같은 것일까?] [ 네?]장삼봉이 훗하고 웃더니 말했다.
[ 어렵지 않으니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게. 지금까지의 땀과 노력을 믿으면 되는 거요.]그 순간, 나는 뭔가 머릿속에서 팟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 혹시…?’
두 시진 후 진소청이 체력을 만전으로 회복하고 나왔다. 그리고 말없이 대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까강!
나는 진소청이 재차 엄청난 기세로 파고드는 걸 느꼈다. 여기서 떨쳐내려고 하면 바로 진소청이 반격할 것이다. 나는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죽기살기로 삼보절기를 펼쳐냈다.
휘이잉
진소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똑같이 삼보절기를 써서 내 공격범위를 파고들었다. 확실히 기술에 있어서는 진소청이 나보다 훨씬 위였다.
‘ 될까?’
나는 진소청이 장법을 써서 공격해 오는 순간을 잘 포착하면서 이번에는 멸혼보와 함께 삼보절기를 펼쳐 보았다. 사실 멸혼보는 요결만 기공으로 움직이면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는 느낌이라서 삼보절기를 적용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장삼봉 진인의 말에 뭔가를 느껴서 시도해보기로 한 것이다.
파바밧!
“……!!”
그 순간, 나는 진소청과 크게 거리를 벌리며 그의 맞은편에 가 있었다. 진소청은 나를 더 추격하지 않고 자신의 어깨에 창을 걸치며 말했다.
“알아차렸구려.”
“멸혼보와 삼보절기를 함께 펼친다… 이게 비기 천광을 얻는 방법이란 거요?”
“그게 끝이 아닐텐데. 깨달은 걸 더 말해 보시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내 검으로 말하리다!”
콰광
다시금 진소청의 칠대절학과 내 칠대절학이 부딪혔다. 굴공참이 현란하게 뿜어져나옴과 동시에 지주명왕과 칠성폭뢰지가 허공을 수놓았다. 나는 무아지경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절학을 진소청의 움직임에 맞춰서 뿜어내었고, 아까와 달리 간격을 일정수준 유지하면서 그와 합(合)을 맞출 수가 있었다.
그렇게 대략 이백 초가 지나자, 진소청은 자신의 무기를 거두며 말했다.
“자, 이제 천광을 써 보시오.”
쩌엉
나는 말이 끝나는 순간 섬영(閃影)을 뿜어내며 멸혼보 천광을 시전할 수 있었다. 수많은 섬광이 흩날리며 천지를 교란하는 초절정의 비기, 천광은 이제 완전히 내 소유가 된 것이다. 진소청이 씨익 웃었다.
“하루만에 터득했군. 나도 꽤 잘 가르치지 않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그렇구려. 하지만 잘 이해가 안 가는게 있소만…”
“무엇이오?”
“일단 감에 따라서 두 절기를 융합하긴 했소만 어째서 이게 비기습득으로 이어지는 거요? 천광의 요결이 이해되긴 했지만.”
그러자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당신은 삼보절기를 얻은 순간 멸혼보 비기를 얻은거나 다름없었소. 왜냐하면 삼보절기는 모든 보법의 상위호환이나 다름없으니까, 보법의 극의를 얻은 자가 뭔들 못하겠소?
하지만 삼보절기로 절대회피를 한다는 관점에 너무 빠져서 공격적인 응용을 하지 못한 거지.”
“으음.”
“당신은 이제야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보법으로 공간을 장악하여 적을 공격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오. 손과 발은 언제나 함께 가는 것이니 보법의 정수(精髓)를 얻은 순간 모든 걸 얻은 셈.”
“알 것 같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삼보절기와 굴공참 모두가 공간을 장악하는 권능이란 걸.”
진소청이 더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절대지경에 이르려면 보통 의념절기를 훨씬 넘어서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 깨달음을 위해서는 무예에 있어서 달인이나 명인조차 넘어선 실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나는 이번에 삼보절기와 굴공참을 온전히 깨달음으로서 이제야 하나의 조그마한 기둥을 세운 것이고, 이런 깨달음을 늘리며 저변을 공고히 하면 뇌신지혼에 이르게 될 것이다. 뇌신지혼으로 이르는 편린이 지금 내게도 보인 셈이었다.
진소청의 말이 이어졌다.
“이 기세로 계속 대련합시다. 적어도 칠 주야.”
나는 황당해서 대꾸했다.
“뭐? 비기는 이미 습득했는데…”
“아까의 대련으로 당신이 투선강림 동안 얻었던 전투경험치가 전혀 소화되지 못한다는 게 확실해졌소. 그 경험치 중에서 절반이라도 얻었다면 이미 나 정도는 쉽게 해치울 수 있어야 정상인데, 그냥 장삼봉이나 여동빈에게 다 맡겨놓고 전투의 원리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지. 나름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했지만.”
“……”
할 말이 없다.
“나와 당신은 흑요석을 공유하면서 익힌 절학이 비슷하오. 나와 대련하면서 기(技)를 중점으로 경험치를 녹이는데 집중하겠소.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진경이 훨씬 빠른 성취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알겠소.”
“아…!!”
갑자기 진소청이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그가 뭔가 깜박한 듯한 기색에 긴장하며 외쳤다.
“왜 그러시오? 설마 깨달음을…”
“그런 게 아니오!”
진소청은 약간 당황하더니 말했다.
“훈련을 진행하기에 내 체력과 기력이 부족하구려. 남는 설삼이나 흑백련이나 영단 좀 주시오.”
“……”
훈련체력을 위해서 천하의 영약을 달라고 하는 건 천하에서 진소청 뿐 아닐까?
나는 별 수 없이 여태껏 보유하고 있던 영약을 꺼내서 진소청에게 전부 건네주었다. 진소청은 그 중에서 한두 개를 챙긴 후 말했다.
“곧 검마가 일을 끝내고 복귀하면 둘이서 당신을 갈구… 아니 훈련시켜 주겠소. 나머지는 검마에게 쓰도록 합시다.”
“……”
틀림없다.
나는 또다시 지옥훈련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