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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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천우진을 데리고 온 후 그에게 기억을 담은 흑요석을 주었다. 그러자 천우진은 노골적으로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망량이 그에게 괜찮다고 설득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들였다. 원래라면 아무리 망량이 설득해도 받지 않았겠지만 어차피 망량선사 때문에 2년간 내 동료이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다.
우웅
천우진은 기억을 받아들이자 황당한 듯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나를 노려 보았다.
“이 자식… 한두번도 아니고 나를 몇 번이나 이용해먹으려는 거냐.”
“이해해 주게, 사제. 백웅은…”
“알고 있소. 어쩌면 신에 대항해서 인간을 구원할지도 모르는 놈이라는 걸.”
천우진이 마뜩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빌어먹을! 이런 놈한테 인간의 운명이… 믿을 수 없어.”
“……”
“난 아직 널 인정한 게 아냐. 하지만 2년동안 일은 확실히 해 주지.”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는 천우진은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난데없이 깽판을 칠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인 건지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천우진에게 말했다.
“천우진. 궁금한 게 있는데.”
“뭐냐?”
“술법의 경지를 극한까지 올리면 신(神)에게도 통할까?”
이건 중원 제일의 술법사 중 하나이자 환신인 천우진에게만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천우진이라면 술법의 극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기에 신과 힘을 견줘보는 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흠, 그 질문인가…”
천우진은 의자에 크게 몸을 기대며 대꾸했다.
“통한다.”
“통한다고!”
“술법 또한 사실은 신의 힘. 복희가 내린 팔괘에서 비롯된 것이 술법이기 때문에 삼황오제의 권능 중 하나이기도 한 거다. 즉 술법사들도 마도사와 다른 형태의 신관(神官)이라고 할 수도 있지.”
색다른 관점을 이야기해 준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실제로 신을 잡았던 사례도 있는걸로 알고 있다. 대라신선만 해도 술법을 사용하는데, 고대에 대라신선들이 모여서 강대한 신을 봉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진짜? 그게 누구냐?”
“천계에 떠도는 소문이라서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술법이 극에 다다르면 신에게도 바늘이 들어가는 건 확실해.”
그 때 망량이 말했다.
“사제. 사제는 그럼 신에게 통할만한 술법을 시전할 수 있겠는가?”
“……”
천우진은 침묵하며 고민했다. 그에게 있어서도 크게 고민할 법한 문제인 것 같았다. 한참동안 생각하던 천우진이 말했다.
“내 힘이 신열 덕분에 크게 늘어서 방어까진 가능하겠지만 신에게 치명타를 줄만한 술법은 내게 없소. 인위적으로 개발한다면 만들 수야 있겠지만 최소한 수십 수백 년동안 신살 술법만 연구해야 할 것이오.”
“그런가…”
천우진이 선을 긋듯이 말했다.
“말해두는데 지난번 생처럼 판이 마왕이나 사도와 싸울 정도로 커진다면 나도 큰 도움이 될 수 없소. 그 때는 나도 내 한 몸 지키는데만 주력하겠소.”
이기적인 말 같았지만 현실적인 한계이기도 했다. 아무리 천우진이라고 해도 마왕이나 사도급 존재와 싸울 때 확실한 승산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사제. 차후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내게 술법을 전수해 주게.”
“알았소.”
“그리고 조만간 삼대세력의 회동이 열릴 때 그걸 천리안의 술법으로 감지해야 하네.”
“역시 그럴 생각이었군.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오.”
천우진을 영입한 후 내가 제갈사를 찾아가자, 제갈사는 뭔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2년이라고? 그것밖에 못 쓰나?”
“최대한 늘여보려고 했는데 망량선사가 단정을 지어버려서…”
“젠장. 천우진 놈이 10년은 개처럼 일해줘야 하는데. 안 그러면 앞으로 십이율이나 백련교를 견제하기가 너무 벅차…”
투덜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오늘부로 연금술 공부는 중단하고 너도 망량과 함께 천우진한테 술법을 배워라.”
“엉?! 너무 갑작스럽잖아.”
“어차피 연금술의 기초는 1년동안 다 쌓았다. 다음 생에 어느 정도 써먹을 수 있을 거야.
경지를 숙련시키려고 그동안 공부시키고 있었을 뿐이니 이제는 술법도 한번쯤 다질 때가 왔다고 본다.”
“으음…”
“네 녀석은 제대로 술법을 파서 공부한 적이 없어. 환신 천우진이 장령곡에 머무는 2년 동안에 최대한 술법을 배워야 이득이다.”
나는 내심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 연금술 공부도 지겨웠는데 잘 됐군!’
백날 틀어박혀서 광물과 약초공부에 조합식이나 연습하고 있으니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하니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스승이 천우진 놈이라는 게 약간 마음에 걸렸다. 시도 때도 없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놈 밑에서 배우는 건 보통 괴로운 게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날부터 천우진에게 술법을 배우게 되었다. 망량은 지금 삼자회담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나 혼자 일대일로 배우는 형식이었다. 천우진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술법을 배운다고 해도 목표가 있어야겠지. 뭘 목표로 술법을 배우는 거지?”
“언젠가 [옛 지배자]를 물리치는 술법을 쓰고싶어!”
내가 자신있게 대답하자 천우진이 차갑게 웃었다.
“빌어먹을. 개소리 말고 100년 내에 이룰 수 있는 현실적 목표를 말하라고. 거기에 맞춰서 진도를 짜 줄 테니까.”
“……”
단숨에 개소리로 치부당하자 기분이 언짢았지만 내 말이 과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음신지력(陰神之力)을 최대한 살리면서 태평요술(太平妖術)을 대성하고 싶어.”
“전욱에게 받았던 음신지력이 체내에 남아있는 건 확실한 건가?”
“그래.”
“생각보다 자기 처지는 잘 파악하고 있군. 그래서 지금 성취는?”
“어… 별로 수련을 못 했어.”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동안에는 없는 재능을 끌어모아서 무공 하나만 절대지경에 올리는 것도 벅찼기 때문이다. 하물며 무공보다 술법재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동안 술법에는 시간을 쏟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자 천우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 녀석은 그동안 수십 번의 삶을 살아오면서 은근히 영력을 많이 쌓았다. 구미호에게 받은 기물을 십 년간 품으면서 술력을 쌓았고 수요를 매번 공양할 때마다 영력이 상승했으며 음신지력까지 얻었어. 현 시점에서 네 녀석의 순수한 영력은 웬만한 상위 술법사에 버금간다.”
“오오!”
“술법의 기초 잠재력은 높은 편이란 말이지.”
이 놈이 웬 일로 내게 좋은 평가를 해 주는 거지? 내가 내심 기뻐했지만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복잡한 영감(靈感)을 필요로 하는 술법은 전혀 못 익힐 게 뻔해. 50년 내내 수련해도 상급술수를 못 쓰는 게 정상일 거다. 네 녀석은 원래 술법사를 하면 안 되는 놈이야. 머리가 영민하지만 타고난 영력이 희박했던 사형과는 완전히 반대군.”
“……”
“그렇기 때문에 태평요술이라는 종파(宗派)도 사실 네 녀석과 별로 안 맞아. 태평요술은 타고난 두뇌와 재능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
“그럼 어쩌라는 거야?”
천우진이 팔짱을 꼈다.
“술법역사에서 너같은 경우가 대성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즉 너는 타고난 힘만을 휘두를 수 있는 선천적인 술법사. 신마(神魔)의 혈통을 이어받은 반요(半妖) 술법사같은 경우라고 간주하는 게 맞겠지. 그렇다면 음신지력(陰神之力)으로 길을 넓히고 뚫어서 그 방면에서 먼저 경지에 도달한 후, 그 숙련도를 이용해서 태평요술까지 마저 익히는 게 좋다.”
“태평요술은 지금 못 익힌다는 거군.”
나는 천우진의 말을 이해하고는 질문했다.
“음신지력으로 길을 어떻게 뚫어?”
“음신지력은 태음(太陰)이니 보통의 인간도사는 아무리 수련해도 얻기가 힘든 특수한 영력. 또한 보통의 음양을 초월하는 속성이다. 그러니 음신지력을 지니고 있는 네 녀석은 태음의 잠재력을 꾸준한 수련으로 늘려주는 게 우선이다.”
천우진은 손가락을 뻗어서 장령곡 인근에 있는 까마득한 절벽을 가리켰다.
“너는 오늘부터 저 절벽 끝에 앉아서 매일 밤 음신지력을 끌어올리며 명상을 해라. 다만 하루종일 앉아있는 게 아니라 음의 기운이 가장 강해지는 자시(子時)에서 인시(寅時)까지 내가 가르쳐 주는 호흡법을 운용하는 거다.”
“알았어.”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네 녀석의 허섭쓰레기같은 기초술법을 봐 주지.”
“꼭 일일이 그렇게 까야겠냐?”
“그럼 허섭쓰레기가 아니란 말이냐?”
“……”
천우진은 욕하려고 욕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내 수준을 허섭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라서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심 이를 갈았다.
‘ 젠장! 재능 없는 걸 어쩌라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강해지면 되는 거 아니냐?
나는 투덜거리며 산에 올라가서 천우진이 가르쳐준 명상호흡법을 시행했다. 첫 날에는 천우진이 내 음신지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같이 올라가서 내 수련을 봐 주었다.
우우우우 –
내 몸에서 태음의 힘과 음신지력이 끓어오르자 청은빛이 몸 주변에 맴돌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천우진이 말했다.
“천천히 내면의 영력을 도야해라.”
따닥!
천우진이 죽편으로 갑자기 내 머리를 내리쳤다. 나는 피할 수도 있었지만 수련중에 함부로 움직이면 안되었기에 맞을 수밖에 없었다. 천우진은 대놓고 짜증을 냈다.
“영력을 도야하라니까 왜 기를 끌어올려? 운공을 왜 하냐고.”
“으… 두 개의 힘이 나오는 통로가 비슷해서…”
“무공과 술법을 둘 다 절정까지 익힐거라면 제대로 구분해야지. 다시 호흡법을 시행해라.”
따닥
따닥
나는 그렇게 천우진에게 죽편으로 수십 방을 맞고 나서야 겨우 호흡법을 제대로 다듬을 수가 있었다. 천우진이 말했다.
“이 수련은 달의 기운이 강할수록 빠르게 진전될 거다. 만월일 때 가장 좋다는 소리지.”
“삭월이거나 무월일 때는 수련을 하면 안 되냐?”
“상관없어. 밤에 하기만 해도 조금은 효과가 있으니까.”
“얼마나 지나야 음신지력을 키워서 대성할 수 있지?”
내 질문에 천우진은 내 영력을 훑어보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매일매일 이 추세로 가면 250년 정도인가… 그 정도가 지나면 음신지력을 정령화시켜서 사용가능할 거다. 태평요술도 자연히 습득할 수 있을 거고.”
“… 농담하는거지?”
“농담같냐?”
천우진은 농담을 하는 눈이 아니었다.
“……”
매일 하루에 세 시진동안 야밤에 절벽에서 명상을 하는데도 250년이 지나야 음신지력을 대성한다니! 내가 황당함에 말을 잃자 천우진이 말했다.
“그래도 네 녀석은 조건이 좋은 거야. 보통 인간이 무(無)에서 지금의 네놈이 갖고있는 음신지력을 키우려고 하면 영산(靈山)에서 이백 년은 수련해야 할 거다. 지금만 해도 이백 년의 수련치를 줄여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하아…”
“과연 신의 연회에서 한 끼만 먹어도 대박이 난다니까. 도를 닦는 요괴들이라면 하나같이 널 보고 질투하겠지.”
“좀 더 시간을 줄일 방법은 없겠냐?”
나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250년동안 수련만 할 수는 없어!”
반 년이나 일년만 폐관수련해도 인간이 피폐해진다. 십 년동안 처박혀서 수련만 하다가 정신이 나가는 인간도 있다. 하물며 250년이라고 하면 정말로 정신이 못버틸 정도로 아득할 게 분명했다. 요괴들이야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서 그런 수련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천우진은 바보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대꾸했다.
“내가 알 게 뭐냐? 니가 알아서 해.”
“으…”
그래, 원래 이런 놈이었지. 나는 천우진이 불편한 기색으로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을 맞으면서 그로부터 보름 동안 음신지력의 수련과 기초술법의 수련을 했다.
그리고 보름이 약간 넘었을 때 망량이 회의를 소집했다.
“드디어 때가 왔소.”
망량은 힘주어서 말했다.
“바로 내일! 수도 낙양에서 삼자회담이 이루어질 것이오. 백련교주와 주작, 십이율주가 모두 참여할 게 분명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