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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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망량이 돌아온 후, 그는 백우선을 제갈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백우선은 제갈부의 시체에서 습득한 보패였다.
“나는 당분간 술법수련이나 다른 일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 더 바빠지겠지. 그동안은 내가 이걸로 상황을 분석해 주마.”
“부탁드립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망량은 앞으로 반천맹을 정비하고 황궁에 맞서싸울 힘을 길러야 하며, 정사파와 연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삼대세력의 틈바구니에서 기싸움을 하려면 온갖 잡무가 밀려올 것이다. 나는 망량이 고생하는 걸 생각하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 사실 망량이야말로 술법수련을 하고 싶을텐데…’
망량은 원래 두뇌가 뛰어나서 젊은 나이에 기문둔갑의 달인이 될 정도였으나 타고난 영력이 적어서 술법을 거의 쓸 수 없었다. 그런 망량에게 술법을 제대로 대성할 기회가 생겼는데도, 나를 위해서 일해주고 있기 때문에 수련을 못하는 것이다. 망량 또한 나를 위해서 자신의 기회를 희생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제갈사는 백우선을 펼쳐들며 말했다.
“우선은 이걸로 가볍게 미래를 예측…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 전에 이걸 네가 써 봐.”
“써 보라니?”
“음신지력의 수련에 백우선의 효과가 도움되는지 써 보라는 말이다.”
“아!”
그러고보니 백우선은 술자의 영력을 반영구적으로 충전시켜주는 효능이 있었다. 그 자동회복효과를 이용하면 음신지력의 수련속도가 한층 빨라지지 않겠냐는 제안인 것이다. 나는 곧장 백우선을 받아들고 그날 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음 날 내 영력을 관조하며 수련의 성취를 살펴본 천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무의미해.”
“효과가 없는건가?”
“백우선, 이건 정해진 영력만큼 회복시키는 용도야. 영력의 최대치를 늘려주는 수련에는 딱히 쓸모가 없지. 그리고 그게 가능했다면 제갈부의 술법은 이미 용왕급에 도달했을 것이다.”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단기간에 음신지력, 혹은 태음지력의 진전을 볼 방법은 몇가지 있지만 일단은 술법수련이나 해라.”
“왜?”
“네 녀석은 기연을 받아먹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 술법은 무공보다 더욱 까다로운 것이라 기초가 되어있지 않으면 결코 제대로 쓸 수 없다. 설령 지금 당장 힘의 절대치를 크게 향상시킬 수단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네 녀석에겐 독이야.”
“음… 알았다.”
나는 그 날 하루종일 천우진에게 기초 술법이론을 다시 배웠다. 망량 등에게서 배우던 것과는 달리 이론보다는 실전감각에 치우쳐진 강습이었다. 역시 천재의 수련법이라고 내심 불평했지만 뜻밖에도 천우진이 가르치는 건 꽤 알아듣기가 쉬웠다.
그 날의 수련이 끝난 후 제갈사에게 결과를 말해주자 제갈사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단 말이지.”
“제갈사. 이제 난 뭘 하면 되지? 술법수련을 2년동안 하는 건가?”
“… 그래야 하겠지만.”
뭔가를 망설이던 제갈사가 백우선을 들었다. 그리고는 외쳤다.
“백우선이여, 눈 앞의 백웅이 2년동안 성실하게 천우진에게서 술법을 가르침받은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다오!”
“어억…?!”
여러 명한테 보여줄 수도 있는거야?!
내가 놀랄 틈도 없이 갑자기 눈 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스스스스 –
나는 2년 후의 장령곡 절벽에 앉아 있었다.
‘ 내 시점인가.’
나는 절벽에 앉아서 밤새도록 명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후 내가 눈을 뜨며 잠시 달의 기운을 연마하는 걸 멈추자, 등 뒤에서 짜증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저 빡대가리는 2년동안 고작 이것밖에 못 배웠단 말인가?”
아무래도 나는 천우진이 화내는 걸 못들은 척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짜증 좀 그만 내라. 오늘이 떠나는 날이잖냐.”
“차라리 2년동안 농사를 지었다면… 으아악 내 시간…”
천우진이 길길이 화를 내며 날뛰고 있었다.
옆에 있던 제갈사가 귀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네가 열심히 가르친 덕에 확실히 초급 티를 벗고 중급 술사에 입문하지 않았나? 세간에서는 충분히 퇴마행도 할 수 있는 수준인데.”
“사형이었다면 그 시간에 벌써 등용문에 도전했겠지! 환신인 내가 이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도 바닥을 기는 수준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천우진은 짜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내 멱살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이 빡대가리야! 넌 답이 없어! 답이 없다고 이 자식아!!”
나는 멱살을 잡힌 채로 마주 천우진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뭐 어쩌라고!! 나 재능 없는데 보태준 거 있냐!”
“야 이 개자식아! 짜증나니까 한 대만 때리고 가자.”
“뭔 개소리야!!”
이윽고 나는 천우진과 멱살을 잡으며 말다툼을 하다가 급기야는 무공과 술법을 동원해서 한판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삼보절기와 무공을 동원해서 천우진의 술법에 맞섰으나 천우진은 신열로 강해졌기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언 한 방으로 나를 절벽에서 날려버리고 말았다.
“급급여율령!”
꽈아앙
“으아아악.”
나는 절벽에서 추락하다가 허공답보를 써서 빠져나오려 했으나 천우진이 또 중력을 강화시켜서 내가 떨어지는 속도를 가속시켜 버렸다.
쿠구궁
내가 땅 밑에 처박히자 저만치에서 제갈사가 귀찮은 듯 다가오며 한 마디를 했다.
“음… 천우진은 떠났다. 그래도 2년동안 가르친 정이 있어서 죽이지는 않았구만. 이것도 대라신선의 축복 효과인가.”
“파… 팔이 부러졌어. 다리도…”
내가 신음성을 내자 제갈사가 한숨을 쉬었다.
“답이 없다…”
파아앗
백우선이 보여준 미래가 끝났다. 그리고 나는 제갈사와 함께 침묵했다.
“……”
“……”
예전에 봤던 것과는 달리 근거리의 미래인데다가 변수도 거의 없어서 현실감 넘치는 예지였다. 아니,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저렇게 되고 말 것이다. 제갈사는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역시 그 절망적인 재능이면 2년으로는 힘든 거였어. 망량선사가 좀 더 천우진을 오래 빌려줬으면 좋겠는데.”
“젠장… 열심히 수련해도 저런 결과가 나오는 거면 뭣하러 해야하는 거냐고.”
나는 절망적인 느낌이 들어서 한탄했다. 이 예지가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성실히 수련한’ 가정하에 나온 결론이라는 점이었다. 즉 내가 이 예지를 무시하고 그냥 성실하게 수련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자 제갈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 녀석도 백우선의 함정에 걸렸군.”
“뭐? 함정? 방금 봤던 미래가 거짓이란 말이냐?”
“아니. 이 백우선이 보여줬던 건 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 백우선의 예지능력이 궁극적으로 쓸모없는 이유는 바로 ‘관측하는 순간 변한다’라는 성질이지.”
제갈사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이제 이 예지를 보았으니 다른 행동을 하겠지. 그 마음을 먹은 순간 예지는 변해버린 거야. 설령 똑같이 행동한다 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진다.”
“뭐? 정말이야?”
“그래. 그러니까 이 백우선을 원래 소유하고 있던 주작이나 제갈부가 우리 행동을 예측하지 못한 거지. 설령 변수를 집어넣는다 하더라도 관측한 순간 그 미래는 달라진다… 이래서는 그냥 재미있는 장난감 이외의 의미가 없어.”
“……”
“이 보패가 이렇게 쓸모없는 이유는 바로 인과율을 바꿀 힘이 없기 때문이야. 인과율을 변화시킬 힘이 없는 상태에서 미래의 나뭇가지를 읽어봐야 무의미하다는 소리지.”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제갈무후는 뭐하러 이런 쓸데없는 기능을 넣어서 보패를 만든 거지?”
“누구든 미래를 예측하고 읽고싶은 욕망이 있지. 게다가 제갈무후는 머지않아 자신이 죽으면 촉한이 멸망할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뒤를 잇는 책사가 백우선을 이용해서 계책을 다듬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을 거다. 실제로 이 백우선의 진짜 기능은 미래예측이 아니라 경고와 수읽기 정리에 가까워.”
“흐음…”
“아무튼 이번에는 도움이 되었군. 네가 행동할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되었으니.”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말했다.
“자. 예지와는 달리 간다. 이렇게 된 이상 태음지력을 향상시키는 기연을 먼저 얻어버리자고.”
“응?! 그건 내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천우진이…”
“그게 틀린 거라고 방금 백우선이 예상답안을 보여준 거잖냐? 이해 안돼? 틀린 답은 피해야지.”
“아…”
제갈사의 눈이 번득였다.
“종리권의 축복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실제로 이번에 느꼈잖냐? 삼대세력의 회동이 일어나는 걸 그 축복으로도 막지 못했지. 천하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그때는 축복이 무의미해질테니 일단 기연을 얻을만큼 얻어 두자.”
“알았어.”
나는 제갈사의 말을 천우진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그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 천만다행이군. 빡대가리를 2년이나 가르치는 걸 피할 수 있었어…”
속으로 오만 욕지거리가 솟아올랐지만 나는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말고 음신지력을 향상시킬 방법이나 가르쳐 줘.”
“그러지.”
천우진이 손가락으로 지평선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첫째. 어딘가에 있을 음신지력을 지닌 요괴를 잡는 거다. 그리고 그 요괴의 요력을 흡수해서 강해지는 거지.”
“오오!”
“그런 요괴가 어딨는지는 너도 알고 있지?”
“응? 그런 요괴가 어딨는데?”
“세상에 온갖 요괴가 있다지만 음신지력은 삼황오제 전욱의 권능이다. 그걸 갖고 있는 건 전욱 직속의 부하나 그의 핏줄밖에 없지.”
“……”
나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 만귀전(萬鬼殿).”
“그래. 만귀전의 귀신을 잡으면 될 거다. 아니면 만귀전 소속의 신격(神格)이라던가…”
“미친 소리!! 그걸 어떻게 잡아!!”
나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물론 나는 만귀전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가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만귀전의 귀신들은 일반 혼령들과는 격이 다르며 하나하나가 대라신선급 존재였다. 하물며 귀신들을 관리하는 열(?)같은 놈은 팽조와 동급의 존재인 것이다. 그런 놈들을 잡는 건 불가능할 뿐더러, 설령 잡는다 하더라도 이후에 삼황오제 전욱이 진노해서 나를 잡아죽이게 될 것이다.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괜히 수련하라고 한 줄 아나? 당연히 비현실적인 방법이니까 말을 안 했던 거지. 아무튼 실현가능성을 떠나서 일단 말이나 해 주는 거다.”
“으윽… 두 번째 방법은?”
“두 번째 방법은 음신지력을 품고 있는 보패나 기물을 손에 넣는 거다.”
나는 천우진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것도 전욱과 관련이 있는 거겠지?”
“뭐, 그럴 수밖에 없지. 최소한 신화시대의 유물이거나, 역사 속에서 누군가가 전욱을 강림시켜서 직접 보물을 하사받은 경우에 해당될 거다.”
“음… 그건 수요겠지?”
그러자 천우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해방 상태잖나. 네 녀석이 지난번에 내게 수요를 보여줬을 때 음신지력을 뽑아낼 수 있는지는 이미 확인해뒀다. 미해방이라는 건 문에 자물쇠를 채워놓은 것과 같은지라, 아무리 수요가 전욱의 제작품이라 해도 그 기운만을 뽑아서 쓰진 못해.”
“그렇군… 어…”
어라?
수요는 안 되지만…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천우진의 말이 이어졌다.
“세 번째 방법은 태음의 기운을 얻는 수련장소를 바꾸는 거다.”
“엥? 무슨 소리야?”
“이 곳이 어디냐?”
“장령곡이지.”
“장령곡은 차원 중에서 어디에 속하냐?”
“인계(人界).”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계는 영력의 농도가 무척이나 낮은 장소지. 그리고 그에 반해 천계(天界)는 굉장히 영성이 높으며 공기중의 영력이 빽빽하다.”
“천계에서 수련을 하란 말이냐?”
“당연하지. 예전에 사형이 지선의 위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사형은 천계의 영산에서 구천현녀의 가호를 받으며 영력을 쌓았다. 그 효과는 최소한 지상의 수련보다 수십 수백배는 높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 등용문을 통과하라는 소리군.”
“그렇게 된다.”
천우진이 대답하고는 뭐가 웃긴지 큭큭거렸다.
“크크… 그런데 등용문을 통과하려면 적어도 이 중원대륙의 술법사 중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실력이어야 하지. 그래도 될까말까인데 아직 초급에서 헤매는 놈이 등용문을 통과한다는 게…”
“……”
그 말 대로다. 애초에 중원의 날고기는 술도사나 술법사들이 도적(道籍)의 명예를 걸고 승천하기 위해 도전하는 술법계 최대의 관문이 바로 등용문이었다. 내가 하도 대라신선을 자주 마주쳐서 실감하지 못했으나 등용문을 통과해서 지선만 되더라도 감히 인간이 올려다보기도 힘든 영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절대 무리였다. 나는 머리를 빠듯하게 굴리다가 말했다.
“굳이 등용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천계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
그러자 천우진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무슨 잔머리를 굴리는지 알겠군. 죽고 싶으면 알아서 해라. 천계의 이목에 걸리면 설령 백련교주라고 해도 침입해서 살아나지 못할 거다.”
“젠장.”
“그래서 뭐 어떻게 할 거냐? 나는 방금 백우선의 미래를 듣고 나니까 네 녀석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싹 다 사라졌다.”
“기다려 봐.”
뭔가 수가 있을 것이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머리를 굴렸다. 편법이라고 제시된 건 하나같이 무식하게 어려워서 이대로라면 진짜 수련만으로 250년을 채워야 할 판이다. 아무리 내가 무한에 가까운 전생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러던 중 머릿속에 팍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잠깐만!”
나는 목갑 안을 열심히 뒤졌다. 그리고 안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내서 천우진에게 내밀었다.
“이건 어떠냐!!”
“……!!”
천우진은 그 물건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놀라운 듯 말했다.
“이… 이건 나도 생각 못 했군.”
“이걸로 음신지력을 얻으면 되지?”
천우진이 영안을 떠서 영력을 감지하곤 대꾸했다.
“그래. 충분할 것 같다. 얼마나 힘이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씨익 웃었다.
“하핫!”
천우진이 손에 들려있는 물건.
그것은 바로 전욱의 동상이었다.
‘ 애초에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대라신선들과 교환할 수 있는 거였겠지!’
수요의 유적, 그 중에서도 가장 심처에 있던 전욱의 동상인 것이다! 고대에 만들어진 전욱의 동상이라면 반드시 음신지력을 품고 있을 거라는 내 예측이 맞아들어간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