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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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장령곡에 돌아와서 제갈사에게 태허와 혼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그 말은 결국 원영신을 얻어야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소리겠군.”
“그럴 거 같아.”
원영신은 혼돈의 옥좌에서 힘을 빌려오는 능력이었다. 사실 무공이 아니었으며 고도의 사법(邪法)이며 마도(魔道)의 비술인 것이다. 혼돈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원영신이야말로 최상의 방법이다. 제갈사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그렇다 해도 원영신을 얻는 건 당분간 자제해라.”
“응?”
“네 녀석에게 원영신의 금제가 의미있을까 싶지만, 그건 일단 [계약]이야. 정확한 계약내용과 거기에 쓰인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면 안돼. 계약을 창조해 낸 마도사인 백련교주 본인에게서 자세한 전말을 들어야 한다.”
“알았어.”
어차피 원영신이든 천령단이든 껄끄러운 것이라서 바로 손댈 생각은 없었다. 지금 가진 힘과 수련방향을 다지는 것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이다.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이청운이 널 찾았다. 바로 가봐.”
나는 이청운에게도 망량선사에게 알아냈던 사정을 이야기해 줬다. 그러자 이청운은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과연! 교주는 그런 엄청난 경지에 발을 걸치고 있었던 건가.”
“문제는 지금의 교주가 얼마나 강한지… 같습니다만…”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이청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하하, 미안하군. 내가 얻은 무공성취가 고스란히 교주에게도 전해지니, 아마 교주는 자네 전생 중에서도 역대최강을 자랑할 것일세. 이거 참 민폐를 끼치는구만…”
“아, 아닙니다.”
나는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영입할 수 있는 최고의 절세고수인 이청운을 스승으로 삼아서 내 경지를 올리는 건 좋지만 그와 동시에 백련교주도 강해지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힘만으로 백련교를 막을 수 있을지 어떨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청운이 말했다.
“흠, 태허에 대한 그 이론이 맞다면… 왠지 나도 그 영역에 한 발을 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네?”
“뇌신지혼을 궁극으로 전개할 때 느껴지는 초감각(超感覺), 거기에 잡히는 ‘뭔가’가 있다네. 나는 그 동안 그게 내 미숙함이라고 생각했으나…”
뭔가 고민하고 있던 이청운이 말을 이었다.
“마침 잘됐네, 백웅. 나와 함께 진소청을 보러 가세.”
“그는 폐관수련 중이 아니었습니까?”
“지금의 이 고민을 함께 논하기에는 그가 제일일세. 자네가 같이 들어야 얻는 게 있을 걸세.”
나는 이청운과 함께 장령곡에서 약 십여 리 떨어진 야트막한 산으로 향했다. 현재 진소청은 폐관수련의 일환으로 산에서 홀로 숙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산의 입구에 도착하자 진소청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나와 있었다.
“종사님. 그리고 백웅… 오셨습니까.”
“진소청. 수련은 잘 되고 있는가?”
“늘 가진 걸 되새기는 것 뿐이지요.”
나는 진소청의 기도(氣道)가 예전만 못한 걸 보자 의혹이 느껴졌다.
‘ 응? 왜 나보다 약해보이지…?’
이전에 절대지경의 초입으로 느꼈던 진소청보다 훨씬 약하다. 아니, 진소청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체내와 체외에 감도는 기가 너무나 미약해서 일반인이나 다름없어보였고, 그건 반박귀진의 경지라기 보다는 정말로 무(無)에 가까워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진소청이 폐관수련을 위해 지어놓은 생활용 모옥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이청운이 내가 얻어온 혼돈과 태허의 정보를 진소청에게 이야기해 주자, 진소청은 잠자코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청운은 설명을 끝낸 후 차분하게 진소청에게 말했다.
“나는 뇌신지혼을 끌어올려 뇌혼(雷魂)이 최고의 속도를 발휘하는 그 순간, 찰나의 벽을 넘으며 뭔가를 느끼곤 하네. 아주 미세한 뭔가가 번개에 섞여들지. 진소청 자네는 그걸 태허(太虛)라 생각지 않는가?”
“……”
진소청은 한참동안 찻잔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부족합니다. 아마 순수한 의미에서 도달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종사의 말씀도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단지 가속이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후후. 그건 또 재밌는 의견이군.”
이청운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진소청에게 물었다.
“가속이라니 무슨 소리요? 설명 좀 해 주시오.”
“천지교태(天地交泰)에서 뇌신의 혼을 얻는 경지가 뇌신지혼. 자연(自然)의 본질이 혼돈일터이니 뇌신지혼 또한 혼돈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뇌신지혼의 속도로는 완전히 형태를 뭉개고 극한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는 거요.”
“흠…”
나는 진소청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그가 말하려는 바를 알아차렸다.
“뇌신지혼이 더 빨라지면 뇌신류의 무공으로도 융합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오?”
“그렇게 추측되는구려.”
“……”
나는 진소청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혹시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에게 질문했다.
“진소청. 설마… 절대지경에 올랐소?”
진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
역시!
굳이 이청운이 진소청에게 심득을 물으러 온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당연히 진소청 또한 절대지경이기에 그와 대등한 수준에서 심득을 교환해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예측이 맞아들어가자 이청운을 쳐다보았다.
“초절정에서 절대지경으로 넘어가는게 그리 쉽지 않은 것 아니었습니까?”
그러자 이청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진소청이 절대지경에 오른지는 사실 꽤 됐네. 폐관하기 전에도 그는 절대지경이었지. 그동안 말하지 않아서 미안하네.”
“왜 제게 그 사실을 숨기셨는지…”
“자네의 사기 때문이었네.”
이청운이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뇌신류 천년 역사에서 역대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내가 보기에도 진소청의 재능은 불가해(不可解)한 수준일세. 명실공히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네. 그런 진소청이 가볍게 절대지경의 벽을 무너뜨리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니, 자네에게 말할 엄두가 나지 않더군. 아무리 자네의 무공심득을 받았다지만…”
“……”
“천재나 기재들조차도 열패감을 품을만큼 엄청난 무재(武才)… 진소청의 성취를 자네에게 알려줘봤자 허무감과 박탈감만 심해지지 않겠는가? 자네가 묘예의 역에 완전히 도달할 때까지 숨길 생각이었네.”
“그랬군요…”
“하지만 혼돈과 태허의 융합은 너무나 큰 심득. 전생자인 자네가 직접 공유하지 않으면 말도 안 되기 때문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걸세.”
나는 이청운의 배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 동안 진소청의 무시무시한 재능 때문에 열등감이 폭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진소청이라 해도 절대지경을 쉽게 뚫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위안거리로 삼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것조차 무의미하게 되었다.
진소청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과한 평가십니다. 지금은 눈 앞의 일에 집중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러지. 그래서 자네는 뇌신지혼을 더욱 가속시킬만한 방안을 알고 있는가?”
“지금으로서는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누대를 이어 발전되어 온 뇌신지혼은 하루아침에 개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수 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단호하게 말한 진소청이 말을 이었다.
“지금은 융합의 개념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직접 혼돈을 다룬 자의 경험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청운이 침음성을 흘렸다.
“교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리인가?”
“네. 그리고 절대지경에 오른 고수들이 모여서 토론을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하하하하!”
이청운은 껄껄 웃었다. 그는 진심으로 즐거운 듯 했다.
“절대지경의 고수는 원래 무림역사에 백 년에 한 명도 나올까말까한 것이거늘… 이 시대에는 이리도 많이 존재하고 있구나. 절대지경끼리의 토론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이라니…”
그가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백웅. 최대한 빨리 백련교주와 교섭하게. 그래서 교주한테서 혼돈의 깨달음을 기필코 얻으시게.”
“진심이십니까?”
나는 설마하는 눈으로 이청운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 쪽에서 먼저 이런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청운 님과 뇌신류의 원한이 있는데 제가 그들과 교섭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청운은 자조적으로 대꾸했다.
“어차피 내 원한은 이번 생의 것. 전생(轉生)하며 사악한 절대신과 싸워나가는 자네의 참혹한 숙명에 비할 바가 아닐세. 게다가 나는 원래 죽어서 교주에게 패배했으니 원래라면 복수를 할 자격조차 없지.”
“그건…”
“뇌신류의 이념은 자강패도(自强覇道). 그 이념을 지키지 못한 나는 뇌신류 종사로서의자격을 일부 잃어버린 셈이라네.”
“……”
“그러니 죽어서 패배한 내 입장 따위는 생각지 말게. 중요한 건 자네가 우리 뇌신류의 소속이며 언제고 우리의 염원을 풀어줄 수도 있다는 점이지. 나는 그것만으로도 백웅 자네에게 감사하고 있다네. 뇌신류 종사로서 자네의 모든 결정을 지지하겠네.”
“… 알겠습니다.”
나는 이청운의 배포에 내심 감격했다. 원래라면 자신을 숙청, 살해하고 뇌신류를 멸망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백련교주에 대한 원한이 가장 큰 것이 이청운일 것이다. 그러나 이청운은 그 모든 원한을 접고 전생자인 나를 위해서만 활동하기로 마음먹은 셈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옳은 행위였으나 당사자가 진심으로 마음을 돌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냉정하게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따져보기 시작했다.
‘ 교주와 교섭을 한다고…’
물론 가능한 일이다. 백련교에 최대한 호의적인 자세로 나가면서 그들과 긴밀한 동맹을 맺으면 된다. 또한 내 얼굴이나 정체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운이 좋으면 교주의 제자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혹은 교주에게 흑요석을 주어서 동료로 만드는 모험을 감행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간에 그동안 제갈사와 망량이 노력해 준 덕에 나는 좋은 위치에서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혼돈과 태허의 융합!
그 초형태는 과연 어떤 힘을 내게 가져다 줄까?
이청운이 말했다.
“백웅. 하지만 그 교섭을 하기 전까지는 좀 더 수련을 해야하네. 자네는 아직 무공방면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아…”
“그렇죠. 그럼 묘예의 역을 좀 더…”
“아니. 그쪽은 이제 충분하다네. 좀 더 오랜 세월동안 숙련시킬 필요는 있으나 그동안 실력을 많이 늘였지. 그래서 이제부터는 권법(拳法)을 가르치려 하네.”
“권법!”
“검권창(劍拳槍) 중에서 권법의 이해가 가장 부족하니 말일세.”
“그렇군요.”
나는 내 무공진도가 한단계 더 성숙했음을 느꼈다. 이청운이 본인의 입으로 묘예의 역이 충분하다고 했다면, 내 뇌신류 무공의 연계응용이 크게 나아졌다는 소리였다. 내심 뿌듯해하고 있을 때 이청운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세상에 흩어진 뇌신류 권법무류의 달인들을 모으는 게 좋겠네.”
“알겠습니다.”
“그 전에 오늘은 진소청을 기왕 만났으니 대련이나 한번 하고 가게나.”
“대련이요?”
“물론일세. 일거양득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걸세.”
이청운이 훗하고 웃었다.
“참고로 진소청이 깨달은 절대지경은 뇌신지혼이 아닐세. 뇌신지혼과는 다른 분야를 개척했으니 직접 느껴보게. 나 이외의 절대지경과 겨뤄보는 건 틀림없이 자네에게 큰 경험이 될 것일세.”
“저… 정말입니까?”
“진짜일세. 뇌신지혼보다 우월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네.”
내가 놀라서 진소청을 쳐다보자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대단치 않소. 종사께서 나를 띄워주셨지만 나도 아직 절대지경의 초입에 불과하기에 이 경지에 명확히 이름을 붙일 수 없었소. 나는 아직 이청운님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오.”
이청운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지금은’ 그렇겠지. 허나 조만간 나를 뛰어넘을 게 아닌가?”
진소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언의 긍정에 가까웠다.
“……”
나는 질투심이나 허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 되면 그런 감정을 느낄 시기는 이미 지난 것이다. 그 대신에 되려 경외심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 대단하다.’
순수한 경탄이 내 마음속을 채웠다. 그리고 약간의 감사한 마음이 맴돌았다.
‘ 저런 천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던게 고맙다.’
천재와 고수들이 기라성처럼 출현해 있는 이 명대(明代), 그리고 신화(神話)와 문명이 교차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내 행운이 아닐까? 세상이 넓다 해도 진소청같은 천재는 두번다시 없을 것 같았기에 되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진소청과 대련을 하기 위해서 걸어가는 내 머릿속에 과거 망량의 말이 떠올랐다.
[ 깨달음과 가르침을 아끼지 마시오! 그리고 동료는 가능하면 늘릴수록 좋소. 이 방침을 앞으로의 전생에서도 유지하는 게 좋소.] [ 당신의 목표가 개인의 입신양명이라면 흑요석을 쓸 필요가 없겠지. 그러나 현재의 당신은 인과율을 모아서 신적인 존재와 싸울지도 모르오. 그렇다면 동료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일에 있어서 아까워해서는 안되오.] [ 누군가가 배신을 한다면 그건 도리어 당신에게 이득이지. 그 자를 앞으로 동료로 하지 않으면 되니까.] [ 지금 우리는 절대적으로 힘이 부족하오. 그 힘을 모을 때까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마시오.]망량의 말이 옳았다. 내가 깨달음과 가르침을 아꼈다면 진소청을 빨리 성장시켜서 이렇게 절대고수와 대련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산야에 처박혀서 백날 수행해봐야 지금 성장치의 1푼도 얻지 못할 것이다. 첫번째 생에 고수가 되겠답시고 홀로 수련하다가 사망했던 나는 그 사실을 절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 나는 타인의 재능을 이용해야 해.’
재능이 없는 나는, 없는 재능을 만들 수가 없다. 종리권의 축복으로 키우려 해봤으나 무리였다. 그렇다면 타인의 재능을 배후에서 부리면서, 그들을 성장시키면서 간접적으로 내가 성장해야만 한다. 스스로 최강이 될 수 없는 건 분한 일이지만 이것이 범재(凡才)가 천명(天命)에 저항하는 방법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열등감이 아니다.
겸허함을 무기로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전생자인 내가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서는 당장의 억울함이나 열등감 따위는 참아넘길 수 있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건 소통(疏通)!
나는 뇌신류 검식의 기수식을 잡으며 진소청에게 대련시작을 선언했다.
“먼저 공격하겠소.”
“들어오시오.”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자는 결코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