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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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방법은 차고 넘쳐.”
“그러니까 어떤 방법?”
“뭐, 간단하게 보자면 [옛 지배자]의 힘을 빌려서 석화저주를 걸어놓고 길을 뚫으면 되겠지. [옛 지배자]의 저주를 받은 영혼은 다른 지배자의 인신공양 제물이 될 수 없으니까.”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으윽… 그 방법을 쓰면 저주받은 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석상이 되어서 영원토록 지내야 하잖아. 꼭 그렇게 극악한 방법을 써야 돼?”
“제일 확실하고 간편한 방법이지만 역시 거르는군.”
“천우진이 우보법으로 수만 대군의 발을 묶는 건 어떨까?”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십이율의 삼사는 누가 견제하게?”
“……”
그 때 듣고 있던 망량이 말했다.
“숙부. 우선 제가 가서 교주의 뜻을 들어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판단해도 될 것 같습니다.”
“교주가 그 정도는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는 거냐?”
“교주도 주작을 얕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같은 마도사의 관점이라면 충분히 미뤄 짐작하고 있겠지요.”
“그 예상이 꼭 맞으리라는 법은 없다만, 일단은 그렇게 해 볼까.”
파앗
이윽고 망량이 여산 근처로 갔고, 십이율과 백련교의 고수들이 모여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언덕 위에서 여산 이십 리 일대에 진을 친 군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작정 돌파를 하며 학살을 저지르면 주작의 함정에 걸려들 것입니다.”
망량의 말을 들은 백련교주가 말했다.
[ 그 정도는 안다. 그래서 우리도 소수정예를 구성해서 여산 내부까지 돌파하려는 작전을 짜고 있었다.]십이율주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강경하게 나가려다가 생각을 바꾼 모양이었다. 망량은 분위기를 파악하자 바로 다음 제안을 내놓았다.
“그 소수정예에 저희 반천맹도 참여시켜 주십시오.”
[ ……]교주가 침묵하자 옆에 서 있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옥신각신할 시간도 아까우니 서둘러 준비하지.”
그들은 짤막한 회의를 거친 후 소수정예를 선발해서 내놓았다.
십이율 측은 십이율주, 무사시, 삼사, 그리고 십이율 문주 중 3명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의 일족 열 명.
백련교 측은 백련교주, 호법사자, 원로원과 수신류 소속의 고수 열 명.
그리고 망량은 나와 천우진을 제외한 거의 모두를 소수정예에 참가시켰다. 인원구성이 끝나자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숫자였다. 물론 45만의 대군을 고작 이 숫자로 뚫는다는 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개개인의 무력이 굉장하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가 볼까?”
그렇게 말한 십이율주가 갑자기 목요의 힘을 일으키며 땅에 두 손을 짚었다.
쿠쿠쿵
갑자기 주변에 거대한 토사가 일어나고 엄청난 크기의 나무줄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 나무줄기 중 몇몇이 하늘로 뻗더니 높이가 수십 장에 이르는 나무를 만들어내는 듯 했다. 갑작스럽게 나무에 일행이 둘러싸인 상황에서 율주가 태연히 말했다.
“날 따라와.”
율주는 나무의 위층으로 걸어올라갔고 나머지 인원들이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건…!!”
천리안으로 보고 있던 천우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나는 힐끔 천우진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아는 술법이야?”
“모른다.”
“모르는데 왜이렇게 호들갑…”
천우진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내가 모르니까 문제지. 세계수를 직접 소환해서 차원통로를 만드는 술법같은 게 어딨겠냔 말이다!!”
“세계수…”
“저건 신화시대의 나무다. 인간의 힘으로는 저걸 결코 다룰 수가 없어.”
“……”
십이율주가 지금 소환한건 십중팔구 신단수(神檀樹)일 것이다. 아홉 개의 세계에 뻗는다는 신목을 목요의 힘으로 이 자리에 불러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러려니 하고 있었기에 천우진이 이리도 호들갑떠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하는 마음에 천우진에게 질문했다.
“대라신선의 술법으로도 안되는 거냐?”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세계수는 원래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힘의 근원소를 발아(發芽)하는 궁극의 영적 생명체라서 신조차도 쉽게 다룰 수가 없다. 대라신선의 수준에서도 거의 불가능할 거다.”
“음… 그럼 저건 대체… 율주는 목요의 힘으로 저걸 다루고 있는데.”
천우진이 감탄한 듯 말했다.
“해방된 목요의 힘은 상상 이상인가 보군.”
정말 그럴까?
나는 저게 순수한 해방 목요의 힘일까 하는 의구심에 휩싸였다. 기억만을 전해받은 천우진은 몰라도 나는 십이율주가 종종 영문을 모르는 가공할 권능을 선보이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목요라고 하지만 내가 칠요를 다룰 때 십이율주만큼의 힘을 보일 수는 없었다.
‘ 설마…’
칠요의 권능이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걸 감안하면, 십이율주는 그 자체로 신적인 존재란 말인가? 지금까지 어렴풋이 짐작해온 것이 마음속에서 확신을 갖고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봉황 뿐만 아니라 신단수를 다루는 건 절대 보통 인간이 수련을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신적인 존재라고 해도 십이율주의 힘은 천계의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옛 지배자]쪽의 힘도 아닌 것 같으니 알쏭달쏭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십이율주가 뭘 숨기고 있는지를 생각하자 복잡해져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때였다.
우우웅
신목이 크게 울더니 다음 순간 일행의 시야가 시꺼먼 암굴 내부로 바뀌었다. 곧장 십이율주가 주문을 써서 광구(光球)를 소환했고 주변의 광경이 드러났다.
쿠궁
‘ 병마총(兵馬塚)!’
나는 천리안으로 그 광경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여산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어낸 이 거대한 암굴의 내부에는 수천, 수만에 이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병사와 말의 형상이 사방에 쫙 깔려 있었다. 하나하나의 인형은 마치 진짜인 것처럼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던 용비천이 말했다.
“진시황은 대단히 예술을 사랑한 자였나 보군. 이 병마들은 마치 진짜같아.”
그러자 십이율주가 비웃듯 낄낄거렸다.
“후후후. 진짜같은 게 아니라 진짜겠지.”
“……?”
십이율주에게 시선이 모였다. 하지만 따로 설명을 하지 않은 십이율주는 교주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벌써 절진은 펼쳐졌다. 힘으로 부수겠나?”
교주가 냉막하게 대꾸했다.
[ 2파로 나누지.]“후후. 반천맹은 그쪽이 데려가는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두 명의 의견대로 무리가 나뉘었다. 나는 뜬금없는 인원분배에 지켜보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천우진이 이내 설명해 주었다.
“저 내부에 펼쳐진 진법은 음양쌍반(陰陽雙般)의 원리로 만들어진 기환진이라서 어차피 나누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양쌍반이라니… 그걸 어떻게 알아?”
“으으. 그 동안 공부한 건 어디 팔아먹은 거냐? 병마총 여기저기에 세워진 역기(易旗)를 보면 한 눈에 파악할 수 없냐?”
천우진이 한심하다는 듯 내게 쏘아붙였지만 나는 궁색하게 변명했다.
“진이 펼쳐진 건 알았는데 그걸 한 눈에 알아보는건 어렵다고…”
농담이 아니라 알아보는 쪽이 이상하다. 역기의 분배에 따른 진법의 변화는 무려 수천 수만개에 이르고 그 하나하나를 다 외울수도 없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역기의 흐름을 보고 바로 음양쌍반의 묘라는 걸 알아보는 놈들이 이상한 것이다.
천우진은 다시 천리안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무튼 계속 지켜봐. 결정적인 순간에는 네 녀석이 나서야 할테니 말이다.”
“알았어.”
웬만하면 내 목숨이 위험하므로 나서지 않겠지만, 초상기인을 빼앗을 기회나 큰 변화시점이 찾아온다면 내가 비등을 써서 저 병마총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선지자에게 빌린 무기를 쓰는 한이 있어도 반천맹에 우위를 가져다줘야 했다. 즉 나는 이번 일에서 비장의 한수인 셈이다.
스스슥
백련교와 함께 움직이던 반천맹의 인물들은 곧이어 병마총 여기저기의 어둠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병마총을 가르고 있던 통로들이 서서히 변화하며 미로를 만들고 미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진의 변화가 침입자를 사로잡는 상황이었기에 망량이 먼저 눈치채고 백련교주에게 포권했다.
“교주! 반천맹주 망량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백련교주는 바로 망량의 의도를 눈치챈 듯 반문했다.
[ 반천맹주여. 그대가 이 절진의 변화를 꿰뚫을 수 있겠는가?]“충분히 가능합니다. 저희에게 맡겨주시길.”
[ ……]교주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용비천이 성큼 걸어나오더니 소리를 내질렀다.
“헛소리 말아라! 너희같이 박쥐같은 놈들한테 어찌 목숨줄을 맡긴다는 말이지?”
“……”
“이깟 진법 따위는 내가 힘으로 부술 수 있다.”
우우우우우우!!
용비천의 양손에 거대한 바람의 기운이 모였다. 이내 그 기운은 용권풍을 만들어내며 크게 치솟아 올랐고, 용비천이 안광을 빛내며 용권풍을 전방으로 내쏘았다.
콰과과광!!
수백 점의 청동 병마들이 부숴지며 허공을 날았고 용권풍이 사방을 요란하게 어지럽혔다. 마치 태풍이 쓸고 지나가는 듯한 위용인지라 장관이었고, 용비천은 어느 새 허공답보를 써서 하늘로 떠오르며 이번에 다시 십여 장 크기의 풍탄을 만들어서 연속으로 날렸다.
콰과광
콰쾅
“으하하하.”
폭음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무한의 내공을 이용해서 가공할 파괴행위를 하던 용비천이었으나 백련교주가 그에게 무겁게 명령을 내렸다.
[ 용비천. 그만두시게.]“네?”
[ 그만두라고.]용비천이 의아해하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휑해진 미궁의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해되던 진법의 요소를 다 부쉈습니다. 이제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 … 후우. 정말 대단한 진법이군.]백련교주가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손을 내저었다.
우웅
“……!!”
갑자기 뜬금없이 눈 앞의 파괴참상이 모조리 사라지더니 원래대로 병마총의 미로가 나타났다.
“아니!”
“세상에…”
그 모습에 대부분의 일행이 깜짝 놀랐고, 특히 용비천은 경악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교, 교, 교주! 설마 놈들의 진법을 복원하신…”
[ 그게 아니다. 지금까지 그대가 부쉈다고 생각한 건 모두 환영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본질을 드러나게 한 것 뿐.]“헉! 그럴 리가…”
[ 천령단의 무한의 내공을 뽑아서 썼으나, 이 진법은 허(虛)와 실(實)이 구분되지 않는 접힌 공간. 물리적인 파괴력은 아마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까부터 이 환영을 간파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망량이 앞으로 성큼 걸어나오며 말했다.
“힘으로 부술 수 없다면 절차대로 파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 나는 이토록 기묘하고 강력한 진법을 태어나서 처음 맞이한다. 아마 이건 주작이 필생의 잠력을 쏟아서 만든 최고의 기문둔갑이겠지. 그래서 음양쌍반의 묘를 파악하고 있음에도 나조차도 파해할 자신이 없다.]그렇게 중얼거린 백련교주가 뚫어져라 망량을 쳐다보았다.
[ 반천맹주. 그대의 기문둔갑 실력은 어느 정도 되는가?]그러자 망량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천하제일(天下第一)입니다.”
[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은 어색하기까지 했는데, 망량이 너무 당연스럽게 천하제일이라는 광오한 한 마디를 입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호법사자들도 황당해하는 눈으로 망량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백련교주가 잠시 후 말했다.
[ 믿어보지.]그리고 망량이 선두에 서서 진법을 파해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망량의 말에 따라서 움직였고 때로는 깃발을 뽑아서 다른 곳에 다시 꼽기도 했다. 나는 천리안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며 불안감을 느꼈다.
“저 진법을 망량이 깰 수 있을까?”
“물론.”
천우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네 전생기억에서 사형은 내가 냈던 기문둔갑 문제를 모두 풀이했다. 그렇지 않나?”
“그랬었지.”
“그런데 뭐가 문제냐?”
천우진이 자부심을 담아서 말했다.
“환신(幻神)의 기문둔갑을 일견(一見)에 풀어버릴 수 있는 천재는 천하가 아무리 넓어도 사형 한 명 뿐이란 말이다.”
한 식경 후.
일행은 병마총의 미로를 빠져나왔고 미로는 빠져나오자마자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미로가 있던 자리에는 사람 손가락만한 병마들이 조그마한 미로 모형 속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그 크기는 고작해야 오 척에 지나지 않았다.
한백령이 그 모형을 보더니 질린 듯 말했다.
“우리 모두가 이 조그마한 모형 속에서 헤매고 있었단 말인가?”
“그게 기문둔갑의 무서움이지요. 기문둔갑 속에서는 저 조그마한 모형이 수백 리 크기의 미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무섭군…”
일행이 치를 떨고 있을 때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손바닥에 얹으며 대꾸했다.
“진은 파해했습니다. 이 길로 쭉 가면 아마 주작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일행이 직선으로 나 있는 통로로 진입했을 때였다.
“잘 오셨소.”
권(圈)을 들고 있는 백의의 가면사내가 통로 한가운데를 막고 있었다. 당연히 그 사내의 정체는 대부분이 알고 있었기에, 백련교주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 황궁 사신위(四神衛)의 백호(白虎)라는 자인가.]“그렇소. 내가 바로 백호요.”
금의위의 수장이자 사신위 백호!
내 전생과정 중에서 나를 위기에 몰아서 죽인 전적이 있는 놈이 길을 가로막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