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605)
605====================
암천향(暗天鄕)
여동빈과 함께 현실세계로 되돌아오자 서문혜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으세요?”
“괜찮소. 구천현녀는…”
“앞서 갔습니다.”
이제 2개의 결계를 깼으니 남은 것은 투선 및 대라신선들이 협력하여 진을 치고 있는 방어선이었다. 이건 특정한 결계가 씌워져 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내로라하는 강력한 신선들이 버티는 장소이니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구천현녀가 먼저 간 것을 보면 제천대성을 미리 기다리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서문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 정말로 괜찮겠소?”
“무엇을 말입니까?”
“나는 아마 오늘 여기서 죽을 거요. 승산이 거의 없는 싸움일진대 당신의 힘이 전력에서 빠질 수가 없기에 억지로 데려온 것 같구려. 나는 당신을 죽을 장소에 끌고 온 셈이오… 미안하오.”
그러자 서문혜가 빙긋 웃었다.
“제가 오고 싶어서 왔어요. 나인교주로써 쌓은 죄를 속죄하러 온 걸요. 저는 이제 목숨에 미련을 버렸고, 돌아가라고 하셔도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서문혜…”
“단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면…”
서문혜의 섬섬옥수가 부드럽게 내 뺨을 매만졌다.
“백웅 님, 자책하지 말아요.”
“……”
“억지로 무리하지도 말고.”
나는 그 말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그동안 살면서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그런 말을 매번 듣고 싶었다.
재능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여 고꾸라질 때마다 모든 게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우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이 잘 짜여진 악몽이라면 그걸 타개할 수 있는 건 무한한 전생능력을 가진 나밖에 없었고, 신에게 희생된 자들의 비극이 마치 나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동료들이 내게 격려의 말을 해 줬지만 왠지 서문혜의 말 한 마디가 나를 크게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감정을 추스리며 말꼬리를 떨었다.
“… 고맙소. 그럼 가 봅시다.”
파밧
나는 서문혜와 함께 더욱 곤륜산의 상층으로 내달렸다. 여태껏 가본 적이 없는 장소였기에 비등은 쓸 수 없었고 그저 천계에서 가장 영험하고 장중한 곤륜산의 비경을 헤쳐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대략 사백여 장을 더 올라가자, 그 곳에는 구천현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천현녀는 거대한 절벽 위에 서 있었는데 아래쪽에는 수십 개의 도관이 지어진 분기가 눈에 보였다. 다만 도관은 팔괘에 따라 배치되어 있었고 마치 원형으로 휘말려들어가듯 촘촘하게 지어져 있었다. 또한 도관의 한가운데에 108명의 신선들이 몰려서 엄청난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구천현녀가 말했다.
“여기가 경계입니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진입하는 순간 투선들이 공격해 올 겁니다.”
“제천대성을 기다리고 계신 겁니까?”
구천현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시해지술로 저와 당신들의 기척을 감추고 있습니다만 너무 늦으면 큰일납니다. 그가 빨리 와 주기를 바랄 수밖에요…”
“음…”
구천현녀의 초조함이 느껴졌지만 무리도 아니었다. 제천대성이 안 오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데 정작 그 제천대성이 싸우고 있는 상대는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닌 것이다. 제천대성이 예와 전투를 시작한지도 최소한 한 식경은 된 것 같은데 과연 제때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예의 명성이 고대신화에서도 손꼽히는 대영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코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때였다.
슈르르륵
“젠장할… 그 아저씨를 때려눕히긴 했는데 망했군!”
제천대성이 근두운을 타고 우리 옆에 나타나며 욕지기를 내질렀다. 제천대성의 왼쪽 손바닥에 큰 화살이 2개 꽂혀있고 피가 철철 흐르는 걸 발견한 구천현녀가 말했다.
“예가 적궁백시(赤弓白矢)로 승부를 걸었군요.”
“그렇수다! 빌어먹을… 7발까지는 어떻게든 했는데 마지막 두 발은 어쩔 수가 없었어. 잘못하면 내가 심장에 맞아서 죽을 뻔 했다고. 내 몸은 동두철액인데 이 빌어먹을 화살은 너무 세…”
“예는 어찌 되었나요?”
“내 여의봉을 정통으로 먹었으니 천 년 정도는 곤륜산의 밑바닥에 기절해 있겠지.”
“……!!”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적궁백시가 굉장히 강한 술수였구나!’
내게 강림해서 쓸 때는 매번 내 뒤통수나 때렸기에 잘 실감을 못했지만, 적궁백시를 대인전에서 쓸 때는 천하의 제천대성조차 당할수밖에 없는 초강력한 술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제천대성의 여의봉을 맞고도 소멸하지 않고 부상으로 끝난 걸 보면 예 본인의 무위도 투선급이라 할 수 있었다.
‘개새끼… 나한테 강림했을 때 그렇게 싸워줬으면…’
내가 내심 욕을 하고 있을 때 구천현녀가 손을 들더니 시해지술을 시전했다.
우우웅!!
그러자 잠시 후 제천대성의 손바닥에 박혀 있던 백시 두 개가 신령스러운 빛을 내뿜으며 뽑혀나왔다. 새하얀 영기의 번개같던 백시는 뽑혀나오자 주인에게로 되돌아가듯 솟구쳐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제천대성은 자신의 손을 몇 번 쥐락펴락하다가 감탄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가능하군. 원래 백시가 몸에 꽂히면 나라도 뺄 방법이 없었는데 백시에 당한 상처까지 시해지술로 회복이 되는구만… 태양을 살해한 화살까지 없앨 수 있다니 시해지술은 정말 대단한 술법이야.”
“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없어!”
호쾌하게 대꾸한 제천대성이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화륵!
갑자기 그의 눈이 화염으로 빛나더니 전방을 크게 주시했다. 그는 화안금정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전방의 방어진을 통찰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저번에 못 보던 녀석이 하나 끼여있는데…”
“못 보던 녀석이라뇨?”
“아니다. 어디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제천대성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아 몰라! 시작한다.”
꽈릉!
번갯불이 전방에서 튀겨나가더니 제천대성이 다짜고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제천대성이 108명의 대라신선이 모여있는 절진 바로 앞에 도달한 순간, 어디에선가 시꺼먼 환영같은 게 수십 개나 튀어나오더니 동시에 제천대성을 덮쳤다.
쿠콰콰쾅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그 순간 뛰쳐나온 투선과 천계의 천장(天將)들이 수백 개나 되는 병장기를 제천대성에게 휘두르며 노갈성을 터뜨렸다.
[네 이놈!!] [천계의 반역자, 미후왕!!] [이번에야말로 용서받지 못하리라!!]퍼버벅
포위망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쏟아지자 제천대성은 여의봉을 크게 늘려서 빠르게 공격을 걷어냈다. 그러면서 한 번 가볍게 휙하고 여의봉을 휘둘렀는데 그 순간 천장 중 다섯의 몸뚱이가 터져나갔다.
[ 아니!]포위하고 있던 천장들이 경악하자 제천대성이 히죽 웃었다.
“아가리는 잘 터는군. 혼자 있을 때는 감히 나를 올려다보지도 못했던 놈들이.”
후욱
“가라.”
제천대성이 자신의 귀밑털을 뽑아서 분신술을 쓰자 수백 명의 제천대성이 주변으로 퍼져나가서 천장과 투선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천장들은 아무래도 분신을 상대로도 고전하는 기색이었지만 투선들은 다른 듯 했다.
“허허! 어찌 그대처럼 대단한 존재가 반역을…”
탄식성을 흘리던 한 투선이 무당파의 도복을 입은 채 앞으로 나와서 제천대성의 분신 열 마리를 동시에 상대했다.
“이 장모는 오늘 최선을 다하겠소.”
분신들이 동시에 그를 공격해 들어가자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어보였지만, 다음 순간 시간이 모여드는 듯한 느낌과 함께 분신들의 공격이 태극(太極)에 휩쓸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분신들은 도리어 자신의 힘을 얻어맞고는 뒤로 나동그라지거나 도로 머리털으로 되돌아갔다. 그 투선의 두 손에 천하의 리(理)가 모여서 음양을 찢어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퍼퍼펑
제천대성의 본체가 맨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다가 히죽 웃었다. 적이 강력한데도 그는 도리어 전투의 희열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헤헤. 장삼봉인가? 오랜만이야.”
그의 말대로 지금 투선의 방어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투선 장삼봉!
무당파의 초대조사이자 등선하여 투선의 좌를 얻은 존재이며, 과거 명말원초 시대에 무림제일인이자 무림지존이었던 초고수였다. 게다가 내가 현재 수련하고 있는 칠대절학의 원형을 창시한 존재이며 절대지경의 무쌍패를 보유하고 있었다.
스스스
“정일명위(正一明威)!”
거대한 힘이 허공에 펼쳐지는 게 전시안을 통해서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장삼봉의 옆에서 공격해 오던 분신 다섯 마리가 찢겨나가는 환영이 보였다. 아무래도 다른 투선이 나타나서 가세한 모양이었다.
“제천대성이여. 아무리 당신이라도 우리 투선 모두를 상대로 싸우는 건 무모하지 않겠소?”
“천사(天師) 장도릉(張道陵).”
수수께끼의 술수를 쓰며 오색구름에 휘감겨 나타난 존재는 투실투실한 외모였으나 제천대성도 이름을 기억할 정도의 투선인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장도릉이라는 이름은 오두미도(五斗米道)의 교조(敎祖)이자 도맥의 거대한 위인이었기 때문이다.
“무모하고말고. 제천대성이 아니면 대체 누가 그럴 생각을 할 수 있을꼬…”
“그렇고말고. 제천대성이 아니면 할 수 없지.”
스아앗
장도릉 옆에서 이번에는 2명의 투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매우 대비되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거의 동시에 입을 맞춰서 말하는 듯 했다.
왼쪽의 투선은 많이 늙었는지 머리카락은 물론 수염까지 모두 새하얀 색깔의 노인이었고, 오른쪽의 투선은 아주 젊은 외모에 머리카락이 아주 새까만 청년이었다. 그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허나 나 남두성군(南斗星君)이 말하건대 참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고 생각해.”
“허나 나 북두성군(北斗星君)이 말하건대 제천대성은 이 자리에서 죽을거라 생각해.”
남두성군과 북두성군!
저 자들은 천계에서 수명을 관장하는 신격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투선을 겸하고 있는 듯 했다. 생김새나 말하는 건 우스워보였지만 저래봬도 투선이었기에 나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게 분명했다.
콰르릉
“푸하하하! 너 정말 미친 거 아냐? 천계 투선을 혼자서 다 이기려고? 그게 가능할 거 같아? 하긴 그래서 내가 너를 좋아한다니까.”
폭염과 함께 거대한 비단을 이끌며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제천대성은 양 손에 권을 들고 있는 그 소년처럼 생긴 투선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도 왔냐? 나타(??).”
나타라고 불린 투선이 눈에서 흉흉한 빛을 뿜어내며 히쭉 웃었다.
“니가 진에서 자리를 비웠을 때부터 대충은 짐작했지. 원숭이 네 목은 내가 따고싶었거든! 딴 놈한테는 양보 못해.”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리고 혼천릉 좀 넣어. 시끄럽잖냐.”
“남이사!”
스스스
어린시절에 용조차 때려잡았다는 전설의 나타태자에 이어서 그 옆에 소리소문없이 푸른 빛이 떠올랐다.
푸른 빛은 이내 엄청나게 잘생긴 외모의 미청년으로 변신했고, 그 청년은 이마 사이에 제 3의 눈을 지니고 있었다. 삼첨창을 천천히 전방으로 들어올린 그 미청년은 착잡한 말투로 제천대성에게 말을 걸었다.
“예전부터 겨뤄왔으니 네 힘이 굉장한 건 안다. 그러나 네가 우리 모두를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없다.”
제천대성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랑진군(二郞眞君), 부담갖지말고 덤벼. 내가 너네 동정이나 받으려고 여기 도전한 건 아니거든?”
“… 무모한 놈!”
이랑진군이라고 불린 투선이 혀를 차더니 전투자세를 잡았다.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상위투선인지 인간세상의 절대지경 고수를 훨씬 상회하는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랑진군 뿐만 아니라 제천대성을 가로막은 투선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
나는 멀리에서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투선들의 면면을 보자 숨이 콱 막히는 걸 느꼈다.
‘ 지상의 도사들이 이 광경을 보면 놀래 자빠지겠지…’
하나같이 도가에서는 전설적인 명성을 떨친 존재들이었으며 아예 남두성군과 북두성군은 태초부터 신격이었던 존재였다. 그들 하나하나는 제천대성보다 약할지 몰라도 힘을 합치면 아무리 제천대성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후욱
제천대성은 다시 한 번 분신을 한번에 수백이나 소환해 냈다. 하지만 투선씩이나 되는 존재들에게 분신의 숫자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제천대성이 멀리 있던 내게 영언을 보냈다.
[ 구천현녀가 나를 도와서 시해지술로 싸울거야. 너는 그 사이에 파고들어서 진을 이루는 108명의 신선 중에서 한 놈이라도 해치워버려. 그러면 성공이다.] [ 알겠습니다.] [ 신호를 줄 때 들어가.]나와 제천대성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구천현녀가 제천대성의 옆에 순간이동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투선과 천장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천계의 동지들이여. 서왕모야말로 천계의 반역자이며 많은 신선을 잡아먹었습니다. 또한 그녀가 사어의 좌를 살해했거늘 어째서 반역자를 도우시는 겁니까?”
웅성
구천현녀의 말에 투선과 천장들이 잠시 동요하는 듯 했다. 장삼봉은 특히 놀랐는지 당혹한 얼굴로 대꾸했다.
“구천현녀시여. 무슨 말…”
그 때였다. 갑자기 날카롭게 남두성군과 북두성군이 그의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그만!”
“그만!”
“구천현녀야말로 반역자다! 현혹되지 말고 죽여라.”
“구천현녀를 죽여라! 반역자는 용서할 수 없다.”
우우우
그러자 사방에 몰려들어 있던 천장들이 눈에 흉흉한 붉은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이성을 닫아버리는 대신에 힘을 강화시키고 흉폭해지는 술법을 시전한 모양이었다. 저렇게 되면 천장 또한 그리 만만한 놈들이 아니게 된다.
우우우
남두성군과 북두성군이 기함하며 내지른 소리는 투선들에게도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기이한 음파같은 게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투선들은 왜인지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생각이 사라지는 걸로 보였다.
다만 장삼봉만큼은 끝까지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현재 상황에 강한 의문을 품은 걸로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당황했다.
‘뭐야? 저 자식들은!’
어쩐지 안 어울리는 놈들이 투선 사이에 끼어있다 싶었는데 저 두 놈은 서왕모의 끄나풀인 건가? 투선들이 구천현녀에게 설득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 미리 잠입시켜놓은 듯 했다. 다음 순간 투선과 천장들 모두가 동시에 제천대성과 구천현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구천현녀를 죽여라!”
“제천대성을 죽여라!!”
천계 대부분의 전력과 고작 두 명이 싸우는 양상이 시작된 것이다.
꽈르르릉
콰과광
차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보패와 술법들이 곤륜산의 정상을 가득 메웠다. 그 공격의 대부분은 적의 것이었으며 제천대성이 분신술을 이용해서 투선들의 합공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나는 손에 땀을 쥐고 그 장절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찌릿하고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지금이야! 들어가!]타닷
나는 제천대성의 신호를 받자마자 여동빈을 선검으로 변화시켜서 전방으로 날아갔다. 여동빈이 내게 강림할 수도 있지만 강림을 하면 여동빈이든 나든 힘을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선검술로 힘을 최대한 축적하려는 것이다.
내가 대라신선들의 포위진 언저리에 도착해서 뒤편으로 날아들어가려 하자 한창 싸우고 있던 자들 중에서 나타태자가 코웃음을 쳤다.
“하하하!! 감히 인간 따위가 덤비는 거냐?”
보패(寶貝)
건곤권(乾坤圈)
위잉
그 순간 나타태자가 양손에 들고 있던 건곤권 중에서 한 쪽이 내게 날아왔다. 나는 무림에서 권을 투척하는 무림인을 꽤 상대해 본 것 같지만 지금의 공격은 그들 중 누구와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절대지경 고수를 상대하는 듯한 무시무시한 힘과 속도로 내 목을 일격에 절단하려고 날아든 것이다.
그러자 여동빈의 선검이 반응하며 월공투계를 시전했다. 여동빈의 감각 덕분에 나는 건곤권에 목이 베이는 걸 막고 되려 검으로 쳐낼 수 있었지만, 그 순간 손목과 팔뚝이 통째로 부러지는 듯한 가공할 잠력 때문에 튕겨져 날아갔다.
투우우웅
“크으으윽.”
건곤권을 막은 것 뿐인데 팔이 얼얼해서 마비된 것 같다! 손가락도 몇 개쯤 마디가 부러져 버렸기에 나는 밀려오는 고통 때문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나타태자는 건곤권을 회수하며 황당해했다.
“뭐야?! 인간 따위가 내 건곤권을 막았다고?”
그 때 선검으로 변해 있던 여동빈이 내게 의지를 전달했다.
[ 연자여! 나타태자는 제천대성이나 후예 정도는 아니지만 상위 투선이다. 정면승부하지 말고 피해서 들어가라.] [ 빌어먹을… 그게 쉬워야 말이죠…]나는 제천대성의 말에 푸념하며 검을 다잡았다. 내공덕에 빠르게 부상을 회복하긴 했지만 역시 투선과 정면으로 싸우는 건 무리였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나를 따라오던 서문혜가 갑자기 나타태자에게 덤벼들었다.
팔선신공(八仙神功)
잔공운요(殘空雲曜)
퍼버벅
“크하악!!”
나타태자는 서문혜의 사정없는 찌르기에 당하자 비명을 지르며 뒤로 피했다. 너무나 단순해 보였지만 서문혜의 육체능력이 너무나 높아서 투선조차도 그녀의 공격을 막거나 흘릴 수가 없는 것이다!
“백웅 님, 가세요!”
서문혜가 외쳤다.
‘서문혜, 부탁하오!’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솔직히 서문혜에게 상위투선을 상대하라는 게 너무 어이없는 주문이긴 하지만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 목숨걸고 여기 온 게 아니었는가? 서문혜가 만들어 준 이 한순간의 빈틈을 살리지 못하면 곧이어 나타태자 말고 다른 투선까지 나를 방해해서 끝장나고 말 게 분명했다.
“이야앗!”
포위망을 뚫었다!
나는 서문혜가 만들어 준 틈을 타서 가타부타 따질 겨를도 없이 밑의 대진(大陣)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절벽언덕 위에서 볼 때보다 훨씬 깊은지 상당히 오랫동안 떨어져 내렸고, 내려가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신선들이 나타나서 내게 술법을 날려왔다.
콰과광
“크아아앗…!!”
나는 비명을 지르며 화요를 휘둘렀고, 그 순간 화요에서 화룡진인이 모습을 드러내서 날아오는 술법들을 모조리 반사시켜 버렸다.
[꼭두각시들 같으니!]신선들은 크게 당혹해했다.
“허억! 화룡진인이다…”
“말도 안돼.”
단말마는 순간이었다. 화룡진인은 술법능력이 굉장히 높았으므로 아무리 등선한 하급신선이라 해도 화룡진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화르륵
신선들은 자신의 술법을 반사당하자 그대로 타 죽어버렸는데 현재 화룡진인의 힘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다는 걸 의미했다. 화룡진인은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까지는 잘 했다! 여기까지 나와 여동빈이 최대한 힘을 아끼고 잠입했으니 진을 부술 수 있을 것이다.]지이잉
하지만 108인의 술사들이 있는 곳까지 고작 십여 장을 남겨뒀을 때 갑작스럽게 내 몸은 공중에 착지해 버리고 말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바닥이 깔려있는 듯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었다.
“……?”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결계 아래쪽에서 낭랑한 웃음이 들려왔다. 108명의 술사들이 넓게 포진해 있는 중앙에서 오색구름을 휘감은 존재가 터뜨리는 웃음이었다.
[후후후후. 귀여운 벌레가 나를 방해하러 찾아왔구나.]그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전신의 솜털이 쭈뼛하고 서는 걸 느꼈다.
[벌레의 힘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서왕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