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624)
624====================
암천향(暗天鄕)
우오오오 –
챙! 채챙!
‘ 여긴?’
이 몸의 주인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선다. 작달만한 몸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크고, 넓고, 또한 피에 젖어 있다. 사방에는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고함소리, 피륙이 처참하게 비산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내 시선이 시작된 곳은 – 전쟁터였다.
나는 대번에 이 시선의 주인이 여동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동빈의 기억이니 이 조그마한 소년은 아마 여동빈일 것이리라. 아마도 그의 나이는 내가 전생을 시작하는 초기의 나이와 별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여동빈은 한 손에 검을 잡고 전신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난데없이 옆에서 달려와서 창으로 찌르려는 한 병사에게 반격했다.
푸콱
“크어억…”
여동빈은 결코 봐줄 생각이 없는지, 목에 칼이 꽂혀서 고통스럽게 꺽꺽대는 병사에게 더 깊숙히 칼날을 밀어넣었다. 목줄기가 반쯤 끊어질 정도가 되어서 병사의 눈알이 까뒤집어지며 완전히 사망하자, 그제서야 여동빈은 검을 목에서 뽑기 시작했다.
츄와악
그는 사람을 죽인 후에 아무런 감상에도 젖지 않고 빠르게 그 병사가 들고 있던 창을 들었다. 하지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 던져버리고는 몸 속에 있던 육포와 단검을 챙겼다. 그리고 나서는 시체가 널려있는 구덩이로 기어들어가서 몸을 숨겼다.
전쟁의 상황은 갈수록 격해지고 있었으나 여동빈은 매우 침착했다. 그는 시체더미 속에 몸을 숨기면서 계속 주변을 살폈고, 누군가가 시체를 확실히 없애려고 창날을 꽂으려 들면 재빨리 튀어나와서 그 병사를 기습해서 죽였다. 필요하다면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흙먼지와 피안개가 흩날리는 전장에서 여동빈은 악착같이 명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동빈의 체력이 다 되어가는지 그의 눈이 침침해져가는 게 느껴졌다. 시체더미 밑에서 육포를 건조하게 뜯고 있던 여동빈의 앞에 웬 발이 눈에 들어왔다. 여동빈이 위를 올려다보자, 거기에는 아름다운 흑발의 미인이 거대한 낫을 든 채 서 있었다.
‘ 상관완아!!’
나는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지만, 현 시점의 여동빈은 그녀를 전혀 몰랐다. 그래서인지 검을 꾹 말아쥐고는 있으나 덤비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상대와 자신의 힘 차이를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상관완아가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황소는 대당(大唐)의 천하를 뒤집을 겁난을 일으키고 죽게 될 운명이다. 하남 회양의 진주(陳州)에서 큰 패배를 겪고, 이 태산 낭호곡(狼虎谷)에서 자결하게 될 것이다. 내가 세운 계획의 경과를 지켜보려고 전장에 들렀는데… 흥미로운 아이가 있구나.”
“……”
여동빈은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 여동빈이 달려들지 않는 까닭은, 그녀가 나타난 순간 주변의 소요가 멎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관완아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전쟁에서 관군의 칼받이로 세워진 소년병 치고는 굉장하더구나. 방금 전에 황소가 자결했고 이제 전쟁이 끝났는데, 지금까지 백인(百人) 이상을 죽여 백인살(百人殺)을 달성하다니. 무공을 익힌 자도 쉽게 하지 못할 일일텐데.”
여동빈은 건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날 죽일건가?”
“후후, 죽이려면 벌써 그리하지 않았겠느냐? 내가 보기에 너는 아주 흥미로운 운명을 지니고 있고 재능이 넘치니, 네 미래를 지켜보고 싶구나.”
“당신은 누구지?”
그녀가 훗하고 웃었다.
“나는 상관완아. 네 재능에 감복했으니 뭐든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마. 내가 이런 제안을 하는 일은 백 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할 것이다.”
그 말에 여동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배우고 싶어.”
“호오, 왜?”
“더 이상 약자로 남아있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한 여동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하의 패주(覇主)가 되어 모든 부귀영화와 명예를 손에 넣고 싶어!! 그리고 적을 쳐죽일 수 있는 무쌍의 힘을 원한다.”
“그렇구나.”
나는 그들의 문답을 지켜보며 내심 황당함을 느꼈다.
‘ 여동빈은 천하에서 가장 고고하고 정의로운 검선이 아니었던가?’
여동빈의 어린시절, 힘을 추구할 때는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여동빈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신기함을 느끼고 있을 때 상관완아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한 천하제일이라 칭할 수 있는 무공은 총 세 가지가 있다.”
상관완아의 말에 여동빈은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집중했다.
“첫째는 백련교 사대무류(四大武流)이다. 얼마 전에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신흥세력인 그들은 당대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 중원대륙의 모든 정사파가 그들의 무공보다 한수 아래이며 은연중에 그들을 두려워한다. 그 중에서도 뇌신류(雷神流)와 수신류(水神流)의 무공은 경세지경이라고 하지.”
스스스스
점차 전장의 피냄새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상관완아가 술법을 부려서 자신과 여동빈의 몸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새 그들 두 명은 청아한 물빛과 새소리가 가득한 녹음의 대지, 폭포 아래에 있었다.
상관완아가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공손세가(公孫世家)의 공손검법(公孫劍法)이다. 극성으로 터득하면 가장 강할테지만, 사실 그건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 인간은 절대 공손검법의 끝을 볼 수 없다! 그렇다 해도 그 검법이 현 무림에서 천하제일으로 불릴 만 하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패왕(覇王)이 말년에 남겼다는 천둔검법(天遁劍法). 익힌 자는 초패왕의 힘을 손에 얻을 수 있다고 하지. 원한다면 그게 있는 비고동으로 데려다 주마.”
“……”
상관완아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선택해라. 무엇을 얻고싶든 그 장소로 데려다 주마.”
스스스스 –
그 때 눈 앞이 흐려지더니 새까만 공간에 내가 부유하며 떠 있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자, 검선 여동빈의 환영이 나타나며 말했다.
[ 나는 그 때 천둔검법을 택했다.] [ 여동빈.] [ 그리고 때마침 내가 나타난 장소는 온갖 무림인들이 경쟁하며 패왕의 비보인 천둔검법을 얻기 위한 아수라장이었다. 상관완아는 그 장소에 나를 휙하고 던져두고 갔었다.] [ ……] [ 나는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아서 천둔검법이 봉인된 최심부로 향했다.]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할 말을 잃었다.
‘ 그런 장소에서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여동빈이 전쟁터에서 칼받이로 구르면서도 백인살을 달성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무공도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온갖 무림인들이 패왕의 보물을 얻겠다고 설쳐대는 장소에 떨어졌다면 백발백중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다시 시점이 바뀌어서 여동빈의 기억속으로 되돌아갔다.
스스스스 –
여동빈은 전신에 상처투성이였으나 치명상이나 중상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후덕한 인상의 청년이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이고 죽겠다. 장형(張兄), 그놈의 천둔검법이란 건 아직도 보이지를 않는구려.”
그러자 옆에서 당나귀를 타고 좁은 암도를 가고 있던 늙은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종리권(鍾離權), 네 녀석은 뭐 그리 투덜거리느냐? 그렇게 귀찮으면 그냥 패왕의 무덤에서 당장 축지법 써서 꺼지면 될 거 아니냐.”
“에고… 농담이오. 농담.”
“곧 등선(登仙)할 만큼 도력이 높은 놈이 그따위로 인내심이 없어서야!”
“에고에고…”
찔끔하던 종리권이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도맥(道脈)에서 장과로(張果老) 선배가 속이 좁다더니 사실이구만.”
“흥.”
장과로는 종리권의 말을 들은 듯 했으나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귀 옆에서 걷고 있던 여동빈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야. 패왕의 유진이라 칭해지는 천둔검법은 무림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편리한 비급이 아닐 것이다. 틀림없이 우리 도맥에서 책임지고 회수해야 할 중대한 유물일지니, 너는 괜한 욕심을 버리거라.”
멈칫
그 말에 여동빈은 잠시 멈춰서더니 장과로에게 포권을 했다.
“아직 보지도 않고 어찌 단정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이 무덤에서 제 목숨을 구해주시고 기초무공을 가르쳐주신 은혜는 잊을 수 없으니 반드시 갚겠습니다. 허나 저에게 입신양명의 소망이 있으니 노도(老道)께선 무시하지 말아주십시오.”
“호오오… 그렇느냐.”
장과로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아이야. 입신양명이 무엇이 그리 중하더냐? 어차피 인간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있지 않느냐?”
“죽는다는 결과가 있어도 어찌 사는지는 다르지요.”
“그래… 강자(强者)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아주 편하고 안락할 것이다. 그 세상을 누리고 싶다는 네 소망을 뭐라할 순 없느니라.”
장과로가 커다란 담뱃대를 꺼내서 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허나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무엇이냐? 인간이냐? 자연이냐? 강하고 또 강해진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길인가?”
“……”
“이 노도(老道)가 중조산에 은거하여 오랫동안 살아오며 느낀 게 있느니라. 설령 신선이 된다 하더라도 세상 그 자체를 바꿀 순 없지. 섣불리 강한 힘을 추구하여 악에 물드는 것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보듬을 수 있는 약한 자를 돌봄이 옳다.”
“그렇습니까…”
여동빈은 장과로의 말에 대꾸하면서도 그다지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하긴 전쟁터에서 구르면서 험하게 살아온 고아에게 도가의 정의로운 사상을 말한다 한들 씨알이나 먹혀들 리가 있겠는가? 당장 나만 해도 여동빈만큼 험난하게 살지는 않았음에도 도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그리 공감가지 않았다.
그 때였다.
그들은 무덤의 제일 마지막 관문에 도착한 듯 했다. 시뻘건 용암이 가로막고 있는 수십 장 넓이의 험난한 지형이었는데, 장과로는 볼 것도 없다는 듯 여동빈을 지팡이로 들어서 자신의 나귀 뒤에 태웠다. 그리고 나귀를 타고 터벅터벅 허공을 걸어갔다.
“아, 장 형! 같이 좀 갑시다!”
뒤에서 허겁지겁 종리권이 허공을 뛰어서 함께 관문을 건너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뒤에서 거대한 장력이 날아와서 종리권을 덮쳤다.
쿠구궁!!
“종리권!!”
장과로가 깜짝 놀라서 그를 불렀는데 종리권은 찰나지간에 피한 듯 장과로 옆으로 와 있었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듯 피를 토해내며 쿨럭거렸는데 기식이 엄엄해 보였다.
“크흑…”
종리권이 부상을 입자 장과로는 대노한 기색으로 맞은편을 노려보며 외쳤다.
“어떤 무도한 자가 함부로 남을 습격하느냐?”
그러자 맞은편의 절벽에 한 사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패왕의 검법을 얻고싶은 건 무림인이라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체를 밝혀라.”
그는 자신의 두건을 벗으며 말했다.
“나는 공손세가의 가주, 공손벽(公孫癖). 여기만 통과하면 천둔검법은 내 것이란 말이겠지.”
“……”
“도인이여 그 자리를 비켜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공손벽을 노려보던 장과로가 그의 옆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걸 깨닫고 말했다.
“너는 또 누구냐?”
그 자는 팔짱을 낀 채 장내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나는 공손가주를 도와주러 온 백련교의 호법사자, 뇌신류(雷神流)의 이군악(李君岳)이라 하오.”
“으음… 무림의 최고고수들이 이토록 치졸한 기습을 하다니.”
호법사자 이군악이 말했다.
“어차피 도맥과 무림은 그리 큰 상관이 없지 않소? 노도께서 패왕의 검법을 양보해 주신다면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을 것이오.”
그러자 장과로가 크게 호통을 쳤다.
“무도한 자들이여! 그 과욕때문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쿠구구구!!
장과로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동굴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공손벽과 이군악이 동시에 허공을 날아서 장과로에게 덤벼들었고, 장과로는 그에 맞서서 싸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동빈에게 장과로의 전음이 들려왔다.
[ 아이야! 서둘러 천둔검법을 얻거라! 저렇게 욕심많은 이들에게 넘길 수는 없다.]타다닷
여동빈은 망설임없이 나귀를 몰아서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그리고 영롱한 수정이 가득한 비고동 내부로 진입했고, 고색창연한 수정 한가운데에 엄청난 영기를 내뿜고 있는 전설의 보검이 있는 걸 발견했다.
화룡신검!!
여동빈은 그대로 화룡신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머릿속에 화룡진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너는 누구냐?]여동빈은 갑작스러운 음성에 당황한 듯 했지만 침착하게 대꾸했다.
“나는 여동빈. 여동빈이오!!”
[ 너는 이 검을 얻어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나 개인의 입신양명을 추구하여 강자가 되려 함이오!!”
[ ……]화룡진인은 잠시 어이없는 듯 말을 잃었다가 웃었다.
[ 하하하하! 재밌는 꼬마구나. 아주 욕망에 솔직하구나.]“나 여동빈, 죽을지언정 허튼 소리로 사람을 기만하고싶지는 않소.”
[ 좋아, 마음에 들었다. 네 정신상태를 나 화룡진인이 뜯어고쳐 주마!]“응?!”
화르르륵!
“으아아아악!!!”
다음 순간 화룡진인이 엄청난 화염의 기운으로 그를 둘러싸자 여동빈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듯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 기운은 이내 사그라들었고 이내 화룡진인이 그의 몸에 빙의한 상태가 되었다. 화룡진인은 여동빈의 몸을 움직이며 신기한 듯 말했다.
[ 호오. 내 화염에 불타지 않는 걸 보면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사악한 마음이 없구나! 이런 인간은 처음보는군…]그러던 화룡진인이 여동빈의 기억을 읽고는 눈을 빛냈다.
[ 못된 인간 두 놈이 있다는 건가? 혼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