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639)
638====================
암천향(暗天鄕)
나는 진소청과 극호를 찾아갔다. 그들은 내게서 흑요석을 받은 이래로 지속적으로 무예를 연마하고 있었다. 물론 전생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그들의 무공이 급증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이미 벽을 깨뜨린 듯한 환희가 맴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강호는 조만간 새로운 절대자들의 출현을 보게 될 것이다.
진소청이 말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나와 사형이 당산(唐傘)을 가르치고 있소.”
“당산을?”
얼마 전에 본인에게서 부탁받고 어린아이일 때의 당산을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장령곡으로 데려왔었다. 사실 너무 어린 나이라서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고 흑요석으로 무예기억만 한번 넣어주고 내버려둔 상황이었다. 진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굉장히 무공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재능도 굉장하오.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사천당문의 기초무공을 모두 터득했고 고급무공의 구결을 어깨너머로 배워서 다 외운 듯 했소. 재질로 보면 그는 명실상부한 천재요.”
“으음.”
“내가 타인의 재능에 이토록 놀랄 줄은 생각지 못했소.”
그럴 만 하다. 그 정도의 엄청난 무학재능을 갖고 있으니 딱히 기연도 없었는데 절대지경에 올라서 사천당문 사상최강의 고수이자 독왕이 되었으리라. 나는 진소청의 말을 듣다가 혹시하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했다.
“잠깐. 설마 당산에게 뇌신류를 가르친 거요?”
“그렇소. 그는 빠른 속도로 강해질 수 있소.”
“윽, 그건…”
나는 그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뇌신류의 전승자로서 인식이 희박하다고는 하지만 뇌신류의 무공을 함부로 남에게 가르치는 건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연무장 한켠에서 당산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이, 백웅 아재. 뭘 아까워 하는 거야? 당신 진짜 은근히 쫌생이구만.”
“당산!”
당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깟 뇌신류 좀 나한테 가르쳐주면 어때서 그래? 당신 어차피 얼마 안 가서 또 죽을 거 아냐. 내가 무공 좀 수련한다고 당신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쪼잔하게 굴어?”
“……”
맞는 소리였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공수련은 잘 되고 있나?”
“훗! 어차피 내 목표는 사천당문의 가주를 쳐죽이는 거니까 아직 많이 멀었지. 다만 이제는 사천당문 본가의 고수 한두놈 정도는 죽일 수 있어. 기습이라면 그 이상도 노릴 수 있고.”
“굉장하군…”
나는 솔직히 감탄했다. 사천당문 본가의 고수라면 절정수위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을 죽일 수 있다 자신할 정도라면, 그 동안 당산의 무공은 어린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이미 절정고수에 진입했을지도 몰랐다.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재능이었다.
‘ 진짜 이 녀석 20대가 되기 전에 초절정의 극에 이르는 거 아냐?’
어째 내 재능이 병신같다는 것만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했다. 내가 복잡한 눈으로 당산을 쳐다보고 있자 당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진소청이 백련교주의 제자로 들어간다며? 그럼 진소청이 없는 동안에는 백웅 당신이 내 스승이 되어서 무공을 가르쳐 줘.”
“뇌신류 말이냐?”
“응.”
당산이 히죽 웃었다.
“뇌신류 무공은 굉장해. 무형지독이라는 극점(極点)을 제외한다면 사천당문의 무공은 뇌신류에 비해서 쓰레기나 다름없어! 난 뇌신류를 배운다면 10년 내에 복수할 자신이 있으니까 빨리 가르쳐 줘.”
“어… 그 정도냐?”
“당신은 뇌신류 무공의 명인이면서 그걸 체감하지 못했던 거야? 비슷한 무공수위라면 뇌신류 고수가 사천당문 고수를 세 명 이상 감당할 수 있어. 결전오의 뇌명까지 쓰면 그 이상도 가능하겠지. 뇌신류는 절세무공이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해.”
“……”
그 동안 내 주변에 하도 굉장한 달인들만 쏟아졌기 때문에 뇌신류 무공의 뛰어남을 잘 못느꼈던 것 같다. 좀 약한 놈들을 상대로 싸울만 하면 절대지경 고수들이나 무한의 내공을 지닌 호법사자 틈바구니에 치여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봐. 근데 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가 널 키워주는 이유는 나중에 무형지독의 비밀과 심득을 얻고싶어서야.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고. 그런데 네가 뇌신류의 달인이 되어서 사천당문의 무공을 버리면 내게 무슨 이득이 있지?”
이해타산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당산의 무형지독이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으며 어쩌면 사도나 마왕에게도 치명타를 먹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내 질문에 당산이 킬킬 웃었다.
“하하하! 그 말 할 줄 알았지. 걱정마, 내가 사천당문에 복수한 다음에 그놈들의 무공과 비결을 다 외워서 당신한테 가르쳐 줄 테니까.”
“어느 세월에 그게 된다는 거야? 사천당문 무공도 거의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텐데…”
“말했잖아. 사천당문 무공은 쓰레기야. 뇌신류와 달리 3,4년이면 극성까지 다 배우고도 남아.”
“… 진짜냐.”
나는 당산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불신의 눈으로 쳐다봤지만 진위를 판별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꼬맹이가 이 짧은 시간에 뇌신류 무공과 사천당문 무공의 우열을 판별하고 극성에 이를때까지의 시간을 금방 계산해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 것이다.
‘ 이런게 바로 순수한 천재인가?’
진소청과는 다른 유형이다. 진소청은 그다지 은원에 관심이 없어서 있는대로 산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당산은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자신보다 열등한 놈들을 깔아뭉개는데 익숙해 보였다. 천재 특유의 오만함과 잔인함이 돋보이는 쪽은 당산 쪽이었다. 물론 그들의 재능을 비교할 방법은 내게 없다.
당산과의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진소청에게 말했다.
“진소청. 간만에 대련을 한 번 해 봅시다.”
“좋소.”
파앗
나는 진소청과 삼 장의 거리를 벌린 후 서로의 병기를 잡았다. 나는 예전에 진소청을 갖고놀듯이 패배시켰으나, 그건 진소청이 내 흑요석의 기억을 읽기 전이었다. 지금의 진소청은 내 무예기억을 은봉황을 통해서 받아들인 상태인지라 짧은 시간에 얼마나 진보했는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까가강!!
첫 초수가 충돌했다. 나는 진소청의 내공이 영약 덕분에 심후해진 것과는 별개로 그가 내 공격에 반응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검과 창을 다섯 번 부딪히는 사이에 그의 실력을 잴 수 있었다.
이미 진소청은 내 목숨을 노릴만한 사정권까지 실력을 올렸다!
처음 싸웠을 때의 애송이의 탈을 벗은지 오래였다.
‘ 세상에… 수련한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물론 아직까지는 내 실력이 훨씬 위에 있지만, 진소청의 성장속도는 역시나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나는 이 대련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생각하고 알고 있는 모든 절초를 동원해서 진소청과 싸웠다.
콰광
마지막 강기의 충돌을 끝으로 오백여 초의 대련이 끝났다. 진소청의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나는 별다른 호흡의 변화가 없었고, 이건 내공과 실력의 격차를 의미했다. 진소청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하핫! 간만에 만족스러웠소.”
“나는 무섭소. 당신의 재능은 끝이 보이지 않는군…”
“… 음? 백웅.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나보군.”
진소청이 내 속내를 읽어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은봉황을 내밀었다.
파아앗!!
진소청에게도 여동빈의 과거회상이 전해졌다. 진소청은 한참동안 그 기억을 음미하다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무신(武神)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내게 온 거구려.”
“그렇소.”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무신이 뭐하는 놈인지도 잘 몰랐지만 이제야 단서를 얻은 느낌이오. 여동빈은 무한의 공간 속에서 나선을 취함으로서 그 자신의 실력을 올렸고, 그에게 글자로 말을 거는 존재가 분명히 있었소.”
“……”
“진소청. 당신은 무신(武神)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소. 그 무신은 당신에게 [천 년의 봄을 보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고 했지.”
“맞소.”
“뭔가 다르지 않소? 여동빈이 마주친 그 무한의 공간에 존재하는 자는 말 그대로 선악과 의지가 따로 없는 전능한 신격에 가까웠소. 하지만 당신이 어린 시절에 마주쳤던 그 무신은 마치 인간과 같지 않소?”
“으음…”
진소청은 곰곰히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때 마주쳤던 무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소.”
“당신처럼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말이오?”
“마치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져서 잘 기억나지 않소.”
“그 존재가 당신에게 제약을 걸었나 보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로서 확실해졌소. 진소청 당신은 반드시 백련교주를 만나서 그가 만났던 무신에 대해서 물어봐 주시오. 당신의 기억속에서 만났던 무신과 어떻게 다른지를!”
“그래야 겠구려. 내게도 굉장히 궁금한 일이오.”
과연 어떨까.
진소청, 여동빈, 백련교주, 장삼봉 –
지금까지 그들이 마주쳤던 무신(武神)이라는 존재는 과연 동일한 것인가?
‘ 꼭 알아야 돼.’
지금까지 우주적인 존재들과 강대한 신을 적수로 삼으면서 인간의 무(武)가 하잘것없다는 걸 무수히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武)는 계속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신역절기를 깨달은 미래의 진소청은 나인교주를 토벌했으며 과거의 여동빈도 무신의 도움으로 종말의 거룡을 토벌했다. 어찌보면 순수한 인간으로써 [옛 지배자]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武)의 극한에 도달하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도달해 있는 걸로 보이는 무신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그에게서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 그리고… 백련교주가 알고 있는 혼돈과 태허의 융합에 대해서도!’
백련교주가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의 근원도 내가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빠르게 강해질 수 있으리라. 여러모로 진소청을 백련교에 잠입시키는 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 때 극호가 말했다.
“아 맞다. 너 제천대성의 축복이 뭔지는 알아봤냐?”
“응?”
“지금까지 받아놓고 뭔지도 모르는 건 아니지?”
“……”
그러고보니 이번 생에 제천대성한테서 수기공양의 대가로 축복을 받았었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극호의 말에 내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자 극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뭐 내 일은 아닌데 말야~ 뭔지 알고 있어야 나중에 써먹을 수 있지 않겠냐?”
“음… 근데 제천대성을 일부러 부르기도 좀…”
“그리고 너 그 제천대성이라는 놈한테 놈의 이야기로 소설을 써 주기로 했었잖아.”
“아 그랬지.”
그 때는 대충 이야기를 주워삼켰는데 극호는 기억속에서 그 일을 잘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극호의 말이 이어졌다.
“소설 쓸 줄은 알아?”
“……”
나는 침묵하다가 솔직히 말했다.
“음… 유행이길래 없는 돈 아껴서 표사시절에 소설을 즐겨보긴 했는데… 솔직히 쓴 적은 없는데.”
첫번째 삶에서 내가 나이를 먹었을 때, 세간에는 호사가들이 논하는 무림이야기를 재밌게 재구성해서 쓰는 무협군담소설이 인기였었다. 무림에서 영향력 있는 세가의 가주들이 직접 소설가를 찾아가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 달라고 할 정도였다. 나도 유행따라서 무협소설을 재밌게 보았던 것이다.
“역시 그렇구만. 제천대성이 나중에 다시 널 찾아와서 소설 썼는지 안 썼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하려는 거냐.”
“아직 글이 안 써진다고 둘러대려고 했어.”
“그 원숭이가 그렇게 어설픈 놈은 아닐 것 같은데… 너 혼자서 논(論)이나 집해를 써본 적도 없지? 지식을 배우기만 하고 써본 적은 없잖아.”
“으윽.”
극호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내가 찔린 표정을 짓자 극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검마나 명룡자가 진소청을 위해 계책을 마련하려면 몇 달 걸릴테고… 남는 시간에 수행해봤자일테니 소설가가 되려는 수련을 해 보는 건 어때?”
“소설가?”
“그래. 나도 기루(技樓)에서 호위역을 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얻어들었는데, 지금 낙양중원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가 몇 명 있더군. 그 놈들을 찾아가서 소설(小設)이란 걸 쓰는 방법을 배워보는 게 어떻냐. 타고난 이야기꾼들일 테니.”
“흐음…”
나쁘지 않다.
내가 소설을 잘 써서 제천대성의 이야기가 유명해진다면 제천대성이 기분이 좋아져서 더 강력한 축복이나 보물을 내려줄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엉터리스러운 계책이 아니라 실제로 시도해 볼 만 했다.
“해 보지! 혹시 알고 있는 소설가 있어?”
“내가 듣기로는 오현에 사는 풍몽룡(馮夢龍)이라는 사람이 잘 쓴다던데. 삼언(三言)이라는 소설을 재밌게 봤다고 떠벌리는 졸부를 관중의 기루에서 본 적이 있어.”
“호오!”
“물론 나는 그 이상은 잘 모르니까 잘 알만한 녀석을 찾아가서 한번 더 물어보라구.”
“당연하지.”
잘 알만한 녀석 – 그건 내 동료 중 단연 한 명 뿐이다!
파앗
나는 황산으로 갔다. 그리고 오두막을 짓고 한가롭게 술법을 연마하고 있던 망량에게 대뜸 찾아가서 외쳤다.
“망량!! 소설가를 찾아야 하오.”
“안 그래도 언제 오나 싶었소. 지금부터 나와 함께 유명한 소설가를 찾아다닙시다.”
“알고 있는 자가 있소?”
“알고 있다 뿐이 아니지.”
그는 씨익 웃었다.
“나는 낙양에서 한때 문예로 날렸던 몸이오. 낙양의 유명한 재사(才士)나 재인(才人)과는 거의 대부분 인맥이 트여있소. 명제국에서 나보다 소설가나 재담꾼을 많이 아는 자는 없을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