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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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의천검에 관해서 성과를 얻지 못하자 망량이 옆에서 말했다.
“백웅. 소림사의 그 유적으로 같이 가 봤으면 하오.”
“알겠소.”
파앗
나는 망량과 천우진을 대동한 채 유적으로 향했다.
그리고 신승이 열어둔 바위문 내부로 들어가서 유적을 살폈다. 망량과 천우진은 한참동안이나 그 유적을 살폈는데, 그러던 도중 문득 망량이 말했다.
“백웅. 제갈사 숙부를 데려와 주시오.”
나는 그 말대로 남부대륙의 본거지를 만들고 있던 제갈사를 데리고 유적으로 왔다. 제갈사는 자신을 왜 데려온지 짐작한다는 듯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고 유적조사에 집중했는데, 그들 셋은 말없이 약 한 시진 동안 시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모였을 때 망량이 말했다.
“숙부는 이 시설에 대해서 어떤 견해가 있습니까?”
“… 뭐, 애매하긴 하군.”
언제나 거침없이 대답하던 제갈사 치고는 이례적인 대답이었고 그의 태도도 왠지 자신이 없어보였다. 제갈사가 천우진을 쳐다보았다.
“술법천재의 의견을 들어봐야 내 의견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선을 받은 천우진이 말했다.
“나도 동의한다. 이 곳은 술법이나 술법에 기반한 기술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내 지식으로는 이 곳을 판단할 수가 없다.”
“흐흠, 그래. 술법기반도 아니란 거지…”
나는 궁금해서 제갈사에게 물었다.
“뭐가 애매하다는 거야?”
“… 이 장소가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장소인 건 틀림없어. 적어도 현재의 대명제국의 과학기술력보다는 훨씬 진보되어 있지. 하지만… 애매하다는 거다.”
옆에 있던 망량이 말을 받았다.
“백웅. 나도 그 동안 남는 시간에 숙부에게서 이족의 문명과 기술력에 관련된 마도지식을 배웠소. 하지만 그 어떤 이족의 문명과도 합치하지 않소.”
“무슨 말이오?”
“즉… 현 세대의 문명이라기엔 크게 진보되어 있고, 이족의 문명이라기엔 뒤떨어져 있는 수준이라는 뜻이오.”
“……”
선지자의 기술수준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것도 납득이 되지 않아서 되물었다.
“그게 이족문명이 아니라는 증거는 될 수 없잖소? 어쨌든 이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인간은 현재 지상에 없을텐데 그게 이족이 아니면 뭐요?”
평소라면 내 말에 바로 반박했을 망량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말투로 대꾸했다.
“그 말도 맞소. 입구의 지문인식 장치에 이 시설의 각종 기계전자설비를 보면 현 시대에 이런 문명과 기술력을 가진 자는 없소. 하지만… 나나 제갈사 숙부가 알고 있는 이족문명과는 전혀 합치하지 않소. 이족에게는 이족 특유의 양식이 있는데 이 설비는 그런 이족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듯 싶고, 무엇보다도…”
그는 떨떠름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 설비는 마법(魔法), 사법(邪法), 술법(術法)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독자적인 체계가 있소. 마치 독자적으로 수백 년을 발전한 듯한… 그렇기에 현재 우리 동료들 중에서 이 시설의 존재나 창조자를 설명할 수 있는 자는 없소.”
“으음…”
정체불명에 수수께끼라는 뜻이었다.
제갈사가 말했다.
“이 시설에서 내공축기가 쉬워지는 이유도 잘 알 수가 없어. 너무 독립적인 기술이라서 내 마도지식으로도 규명할 수가 없군.”
“제갈사.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제일 편한 방법은 망량선사에게 공양물을 바치고 이 시설을 그에게 공양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거지. 다른 자는 몰라도 망량선사만큼은 그게 누군지 알고 있을테니.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아.”
제갈사가 고개를 저었다.
“암천향에 가려고 보물을 하나라도 아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망량선사에게 얼마나 될지 모를 보물을 공양하는 건 좀 아까운데.”
“음… 그것도 그래.”
나는 납득했다. 백련교주를 피해 중책을 택한 이상 암천향 탐험만큼은 기필코 성공시켜야 한다. 그런데 대라신선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암천향에 뛰어들고자 하면 많은 보물이 필요할게 분명했기에 지금 섣불리 정보를 캐내려고 망량선사에게 보물을 바치기는 아까웠다.
의천검이야 당장 큰 전력이 될 수 있으니 식토와 쌍고검을 바치는것도 불사했지만 이 정체모를 시설의 보물에 대해서 비밀을 캐내는데 바치기엔 아까운 것이다. 보나마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나긴 실마리를 찾아갈 여정이 될게 뻔했다.
망량이 말했다.
“백웅. 또 하나 이 시설의 특이한 점을 발견하긴 했소.”
“어떤 거요?”
“이 안에서는 술법이 일체 발동되지 않소.”
“……?!”
망량이 힐끔 천우진을 보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형 말대로다. 초급부터 상급의 술법을 모두 시도해봤으나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다소 강력한 이적급 주문도 사용했지만 역시 안 된다.”
“술법이 봉인된 장소란 말인가?”
옆에 있던 제갈사가 말을 거들었다.
“술법 뿐만이 아니지. 나도 사법을 시도해봤지만 이 곳에선 먹히지 않았다. 사역마 소환이나 연금술의 비법도 안 통해. 그리고…”
턱하고 제갈사가 내 몸에 손을 올렸다. 내가 그 손을 쳐다보자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보다시피 이혼대법도 금지되었지. 같은 이혼대법 술사인 너라면 지금 내가 백을 움직이려 했다는 걸 느껴야 정상인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백을 움직이는 동력조차 봉쇄되었다는 거다.”
“음… 무슨 의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 시설을 제작한 기술력은 매우 이질적인 것 같군.”
위잉!
그 말을 들은 나는 내공을 끌어올려서 검에 검뢰를 맺히게 했다. 장공이나 지공, 신법을 써 봤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공은 잘 되는데?”
“다른 모든 권능과 술수를 봉인하지만 기(氣)만큼은 허용한다라… 인위적이군. 기의 발동을 봉쇄하는 술법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명백히 인위적이야.”
우리는 좀 더 시설을 조사해봤지만 더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 시설에서 나온 후, 무공을 수련하던 진소청, 극호, 검마, 당산 등을 모두 이 시설에 데려다 놓았다. 축기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무공수련의 진척이 빠를 것이다.
나는 남부대륙으로 돌아온 후 제갈사에게 말했다.
“이제 할건 다 한 거지? 암천향에 바로 도전해도 될까?”
내 질문에 제갈사가 대꾸했다.
“딱 하나 할 일이 남았지. 그것까지만 해 보고 도전해라.”
“소설 말인가?”
“그래. 다음 생에 하기엔 너무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작업이니 이번 생에 결과를 보고 가야 아쉬움이 덜할 거다.”
“그렇긴 하지.”
오승은에게 대필을 맡겼는데 그의 말로는 그 당시부터 반 년은 기다리라고 했다. 아직도 꽤 시일이 남았으므로 나는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백련교주가 아무리 무림을 헤집어 봐야 우리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나도 남는 시간에 소림사의 유적에서 동료들과 무공을 수련하기로 했다.
우우웅
무공을 수련한지 약 사흘 정도 지났을까, 당산이 말했다.
“내공이 엄청난 속도로 쌓이는걸… 적어도 외부보다 10배나 15배는 빠른 것 같아.”
“그 정도인가?”
“이미 내공이 극치에 이른 당신은 잘 못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필부가 일 년만 내공수련을 해도 바깥세상에서 상당한 내가고수로 대접받을걸. 십 년을 수련한다면 내공만으로 천하에서 손꼽힐 정도가 될테고…”
“음…”
“그러고보니 여기를 뭐라고 부르지?”
“신승은 이 장소를 방주(方舟)라고 불렀어.”
“방주?”
나는 기억을 더듬어서 말했다.
“망량선사한테 이 시설을 공양한 놈이 그렇게 불렀다더군.”
“방주라, 희한하군. 이건 아무리 봐도 배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당산이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리고는 말했다.
“아무튼 이 방주에서라면 빠르게 고수가 될 수 있겠어.”
그 말대로였다. 서너 달 동안 나는 실시간으로 동료들이 성장하는 걸 지켜봤는데, 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칠대절학과 팔선신공 등의 깨달음을 흡수해서 무공이 높아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원래는 내공부족으로 쓸 수 없었던 절초들도 방주의 도움으로 내공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 쉽게 연마할 수 있게 된 듯 했다.
‘ 슬슬 가 볼까.’
나는 적당히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자 망량과 함께 낙양에 있는 오승은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승은은 실종된 상태였다.
“잘 모르겠군. 그는 당신들에게 의뢰를 받은 후 한 달 전까지 멀쩡히 칠현각에 출입하고 있었소. 당신들이 오승은을 잘 보살피라고 잔금을 줬기에 그의 숙식도 후하게 해줬는데, 어느 순간 칠현각에 나오지 않았소.”
“정말 어디 갔는지 모르시오?”
내 질문에 칠현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떠돌이 학사들을 거두어주긴 하지만 그들의 거취를 따로 돌보지는 않소.”
“무인을 붙여서 그를 감시하진 않았소?”
“내가 무엇하러 그런단 말이오?”
그렇긴 하다. 칠현각주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취미를 위해 돈을 쓰는 자산가에 불과하기에 일개 서생인 오승은에게 감시를 붙일 이유 따위는 없었다. 나는 좀 더 일을 철두철미하게 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말했다.
“혹여 그가 갈만한 장소같은 건 모르겠소?”
“잘 모르오. 그와 친하던 몇몇 학사를 알려줄테니 그들에게 물어보시오.”
나는 칠현각주에게서 정보를 들은 후 오승은의 술친구나 다름없던 학사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들 또한 오승은이 술을 잘 처먹다가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소리를 할 뿐이었다. 내가 답답해서 머리를 벅벅 긁자 옆에 있던 망량이 말했다.
“별 수 없겠군. 전국옥새로 찾아보시오.”
위잉
나는 전국옥새를 발동시켜서 오승은의 위치를 찾았다. 그러자 뜻밖에도 전국옥새의 정령이 말했다.
[ 검색대상 오승은은 현재 고려 개경(開京)에서 밥을 먹고 있습니다.] “……”뭐?
내가 뭐 잘못 들었나?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뭐라고? 그놈이 왜 거기 있어?”
[ 정보가 없어서 답변할 수 없습니다.]
“제길… 혹시 다치거나 몸에 이상이 있어?”
[ 외상은 없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주변 광경 좀 보여줘.”
파밧
나는 오승은의 주변 10여장의 풍경을 보자 표정이 날카롭게 굳어지는 걸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오승은의 주변은 화려한 궁궐이었고 시비가 옆에 있었으며, 무인들이 두세 명 서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승은과 밥먹으면서 잡담을 하고 있는 건 바로 십이율주였다.
‘ 개같은!’
나는 전국옥새에서 본 것을 망량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망량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고려 십이율에서… 오승은을 확보했구려.”
“그렇겠지… 빌어먹을.”
이 상황에서 난데없이 오승은이 한달만에 낙양에서 고려 개경까지 갈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무사들에게 호위받으며 궁궐에서 밥을 먹고있을 이유도 없다. 십중팔구는 십이율에서 오승은이 우리와 접점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납치하던가 회유해서 고려에 데려간 게 틀림없다!
망량이 탄식했다.
“십이율에서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파고들 줄이야… 내 판단착오요. 괜히 유난떨지 않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거늘, 이럴 줄 알았으면 오승은을 그냥 본거지에 데려올 걸 그랬소.”
“하지만 왜…? 십이율이 어째서 그를.”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십이율이 왜 오승은을 데려갔단 말인가?
망량이 말했다.
“짐작가는 건 있소. 아마 백련교에서 온 무림과 세상에 정보망을 가동시켜서 우리의 흔적을 알아내려 했을 것이고, 낙양에 특위까지 심어둔 십이율은 그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오. 그리고 백련교의 정보력보다 한발 앞서서 우리의 흔적을 찾아내다가 그 접점이 오승은이란 걸 알아냈겠지. 그들은 앞으로 백련교나 우리와 교섭할 재료로 삼으려고 일단 오승은을 데려갔을 것이오.”
“으음…”
“그 동안 새로 밝혀진 신화적 비밀이나 사실이 많아서 미처 신경쓰지 못한 내 잘못이오. 미안하오…”
망량이 탄식하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보다 우리가 오승은을 구출해야 하겠지.”
“십이율주와 만나야 하오. 그가 직접 오승은을 담당하고 있군.”
“그건….”
굉장히 껄끄러운 일이다. 안 그래도 암천향 탐험이라는 큰 도전을 앞두고 있는데 십이율주같은 음흉한 놈과 또다시 교섭하면서 있는머리 없는 머리 다 굴려야 한단 말인가?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십이율주라면 오승은을 가지고 간을 보다가 백련교주에게 거래를 제안할 수도 있소. 오승은의 신병이 백련교주에게 넘어가면 굉장히 일이 까다로워 질 것이오. 그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빠르게 오승은을 확보합시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된 거 아니오? 이렇게 대세력들에게 주목받는 상황에서 오승은을 데려가 봐야, 그가 쓴 소설로 대유행을 일으킨다는 계획은 이미 실패가 아닌지…”
“그건 아니오. 오승은을 구출하는 건 충분한 의의가 있소. 왜냐하면 그는 제천대성과 인과율이 이어져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오.”
“흠…”
나는 납득한 후 일단 제갈사 등과 회의를 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십이율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아군 전력을 모두 데려가라.”
“교섭을 해야하는 게 정석인가?”
“일단은.”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십이율주와 만나게 되었다.
십이율주의 뒤에는 삼사가 서 있었고 십이율 문주들이 세 명 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망량, 천우진, 진소청, 검마, 극호와 함께 개경에 와서 십이율주가 정한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십이율주가 말했다.
“당신들과 이렇게 얼굴 보는 건 처음이군. 백련교주가 애타게 찾던 뇌신류이자 반천맹… 이라고 할까?”
“얼굴을 보다니. 당신은 지금 가면을 썼잖소.”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런. 내 잘생긴 얼굴은 국가의 보배라서 섣불리 드러낼 수 없다고.”
퍽이나!
십이율주의 개소리에 내가 속으로 냉소하고 있을 때 그가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무엇을 원하지?”
“십이율주. 오승은을 돌려 주시오.”
“맨입으로?”
“그럼 그를 데리고 있어서 뭐에 쓰겠단 말이오?”
내 반문에 십이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쓸 데가 없어. 사실 이 오승은이란 놈을 여러차례 심문해 봤는데 이 놈은 그냥 밥을 축내는 평범한 서생이던걸. 글재주 말고는 딱히 볼것도 없는데 그 글재주란 것도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야. 너희는 왜 이런 놈을 애타게 찾는 거지?”
“우웃.”
회담자리 옆에서 닭다리를 먹고 있던 오승은이 움찔하고 놀랐다. 그는 개경의 음식이 맛있는지 지금도 맛있게 처먹고 있었다.
“……”
이런 자리에서 밥을 맛있게 먹고 있다니 저놈도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
내가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십이율주가 말했다.
“그래서 도리어 흥미가 생겨. 너희는 정말로 그냥 오승은이 지은 소설을 낙양중원에 유행시키는 게 목표인 건가? 정말 소박한걸!”
“그 질문에 대답할 이유는 없소만.”
“그럼 나도 오승은을 돌려줄 수 없지.”
“말해주면 돌려줄 거요?”
“성의를 봐서.”
나는 망량과 순어구로 의논하다가 별 수 없이 대꾸했다.
“그렇소. 바로 그게 목표요.”
“그래서 대체 뭘 얻는데?”
“제천대성의 호감을 얻으려 하오.”
“흠, 예상대로긴 한데 너무 허무맹랑하군.”
십이율주가 탄식한 후 말했다.
“너희들 제정신인가? 천계에서도 강력하기 짝이 없는 반신반마이자 최강의 투선이 제천대성이긴 하지만 고작 그에게 호감을 사려고 이토록 수지 안맞는 짓을 하다니. 천계의 시선이 두렵지도 않나?”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오. 그렇지 않소?”
“… 하하.”
그는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같은 바보들도 싫어하진 않아. 그래서 제천대성의 호감을 얻으면? 앞으로 그의 힘을 빌릴 생각인가?”
“당연하지 않소?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텐데.”
“제천대성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루고 싶은 거대한 숙업이 있는 거겠지.”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후후후…”
그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아. 오승은을 돌려주지. 하지만 조건이 있어.”
“무엇이오?”
“나도 제천대성의 조력을 얻고 싶다. 그걸 제천대성에게도 약속받아 줘. 그리고 앞으로 우리 십이율과 동맹을 맺고 함께 행동했으면 한다.”
“……”
“그렇게 해주면 중원에 있는 우리 십이율의 영향력으로 그 소설이 인기를 끄는데도 도움을 주지.”
어떤 의미로는 예상대로다.
하지만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어서 십이율주에게 말했다.
“십이율주. 당신은 백련교를 타도하려는 생각이 없는 거요?”
“딱히 없는데.”
“백련교와 필적하는 유일한 세력이 바로 당신들이거늘.”
내 말에 십이율주가 대꾸했다.
“필적한다고 해서 꼭 싸워야 하나?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백련교를 별로 싫어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들이 결국 세상을 구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
“내게 묻고싶은 게 가득한 얼굴인데 더 이상의 질문은 사양하겠어. 비밀있는 남자가 인기있는 법이니.”
“… 알았소.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거래성립이군.”
우리는 오승은을 건네받고 나서 그에게 집필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오승은이 민망하다는 듯 말했다.
“… 다 못 썼소.”
“얼마나 있으면 다 쓸 수 있을 것 같소?”
“음… 일 년만 더 주시오.”
“일 년?! 이미 반 년 가까이 줬잖소. 그런데 왜 또 기간이 늘어나오?”
“……”
이유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승은은 우리한테 받은 선수금으로 그 동안 칠현각에서 술 처먹으면서 놀았으리라. 돈 생기면 처 노는게 유생들의 습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인지 소설을 보니 고작해야 절반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망량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내가 사마경(司馬敬)을 불러서 오승은과 공동집필을 하도록 하겠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니… 후우! 그를 번거롭게 하다니 미안하군.”
“사마경이라면… 그때의 그.”
“사마가문의 영재요. 그의 재주는 나에 못지 않소. 그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소.”
나는 망량과 오승은을 사마경의 저택으로 데려다 주었다. 망량이 전후사정을 설명하자 사마경이 말했다.
“알았네. 최선을 다해서 제갈현 자네를 돕지.”
“고맙네 사마경.”
“모든 재주를 동원해서 저 자가 걸작을 쓰도록 만들겠네.”
그리고 망량, 사마경, 오승은은 그의 저택에 들어가서 두문불출하며 나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약 한 달, 그들은 너덜너덜해진 오승은을 데리고 나오며 내게 여섯권의 책을 건네주었다.
“삼장전을 완결냈네.”
나는 힐끔 오승은을 쳐다보았다. 주색잡기에 찌든 모습이 사라진 대신 피곤과 창작의 고통에 찌든 얼굴이 있었다. 아무래도 저택에 갇혀서 글만 쓰는 동안에 사마경과 망량에게 지독하게도 시달린 모양이었다. 먹고 자고 글만 쓰면 사람이 저렇게 폐인처럼 변하는 듯 했다.
“알았소.”
이제야 소설을 유행시킬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