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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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소설을 유행시키는 작업은 망량과 제갈사가 도맡아서 했다. 십이율주는 확실히 우리 일을 도와주기로 한 건지, 망량의 말로는 각지에서 느껴지는 백련교의 감시망이 느슨해졌다고 했다. 아무래도 놈이 직접 나서서 백련교를 견제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는 낙양 시가지 누각의 한켠에서 바깥을 쳐다보았다. 변장한 상태라서 들킬 걱정은 없었다. 바깥의 시가지에서는 이질적인 광경이 보이고 있었다.
‘ 책이 팔리고있다…’
더불어서 사람들의 옷도 달라져 있었다. 그 이유는 제갈사가 증기기관을 포함해서 명 제국에 상위기술력을 전파시키는 바람에 방적산업이 급격히 성장했고, 금속의 질도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면윤전인쇄기의 보급과 함께 책 제조기술이 혁신적으로 발달해서 일반인도 책을 접하기가 아주 쉬워졌다. 아직은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제갈사의 말로는 이 추세라면 조만간 경제와 산업 모두가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할 거라고 했다.
나는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제갈사에게 물었다.
“제갈유룡은 아무 반응도 없는데 왜일까?”
현재 가장 궁금한 건 이거다. 제갈유룡은 예전부터 제갈사가 은근슬쩍 인쇄기술을 발달시키고 증기기관이나 상위기술력을 중원에 뿌리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죽었나싶을 정도로 황궁세력이 조용히 있는 것이다. 제갈사는 차를 후룩 마시더니 대꾸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놈의 이득과 합치하는 거겠지.”
“뭐? 기술을 발전시키는 걸 제갈유룡도 바란다는 거냐?”
“……”
제갈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놈한테도 현재 중원보다 앞선 기술력은 있어. 하지만 지금까지 은인자중했던 이유는 갑작스러운 문명발달로 인해 천계나 이족이 자신을 주목하는 걸 두려워했던 거겠지.”
“앞으로도 나서지 않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자기 대신에 일을 해주는 셈이니까.”
“흐음…”
“몇 달 정도는 조용히 지켜보지. 낙양성에서는 이미 소설 삼장전이 큰 인기를 얻고 있으니 조만간 지방에서도 인기를 끌 거다.”
제갈사의 말대로였다.
삼장전은 낙양에서만 수천 부를 넘어서 수만 부가 팔려나갔으며, 부자나 서생은 물론 일반 백성까지도 널리 읽게 되었다. 석 달이 지나자 지방의 여기저기에서도 책이 많이 찍혀나와서 소설이 대유행하는 시대가 오게 된 것이다.
그때쯤 놀이패나 경극단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경극이나 연극을 상연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다가 생각했다.
‘ 슬슬 때가 온 건가?’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이변이 생겨났다.
후우웅
내가 남쪽대륙의 본거지에서 하릴없이 술법을 연마하고 있을 때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 내가 그 일진광풍을 쳐다보자,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곳에서 웬 인영(人影)이 서서히 걸어나오는 게 보였다.
‘ … 뭐지?’
뭔가 이상하다.
기묘한 적막감과 어둠이 깔리는 기분이 낯설다.
내가 이 위화감의 정체를 생각하고 있을 때 나타난 자가 말했다.
“삼장전은 아주 재밌군… 소설을 감명깊게 읽은 독자로서 찾아왔소. 내용이 아주 마음에 들었소.”
그 자는 절세미남이었다. 굳이 비교할 상대를 따지자면 한씨세가의 한진성 뿐일 정도로 이목구비가 조각같았고 흰 피부에 눈빛조차 아주 맑았다. 키도 훤칠했고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여인의 가슴을 진탕시킬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외모와는 별개로 그는 꽤 양식이 오래된 가사를 입고 있었다. 가사는 승려의 복장으로써 눈 앞의 미남은 스스로가 고위승려라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당연히 여기까지 대뜸 찾아온 자가 보통 인물일 리 없었기에 나는 크게 긴장했다.
뿐만 아니라 – 저 외모는 한 번 본 적이 있다. 나는 저 자의 외모를 기억해내고는 입을 앙다물었다. 자칫했다가는 여기가 내 무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시오?”
정체를 물었지만 사실 저 자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척 해서는 안 된다.
내 질문에 그 미남승려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지나가던 승려요.”
“……”
그럴 리가 없지.
상대의 말이 이어졌다.
“애독자로서 작가인 오승은을 만났소만, 그는 당신에게 의뢰를 받았다 하더군. 그래서 삼장전을 쓰게 한 당신의 정체가 궁금해서 먼 길을 찾아왔소. 그런데 참 먼 곳까지 와 있군…”
미남승려가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바싹 긴장하며 말했다.
“오승은을 만났다고? 그럴 리가…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소.”
오승은을 한번 뺏긴 적이 있었기에, 나는 그가 집필을 완료하고 소설을 시중에 배포하자마자 바로 내 목갑에 집어넣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승은을 만나는 건 불가능한데 저 놈은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그러나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백웅 당신의 마도구(魔道具)에 오승은을 가두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소. 그래서 내 술법으로 오승은의 영혼을 투사해서 물어봤을 뿐이지.”
“… 그런 게 가능한가?”
내가 반문했지만 그는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눈 앞에 있는 저 법승의 실력은 인간 수준이 아니다. 마도구에 갇혀있는 자의 영혼을 수천리 밖에서 투사한다는 건 인간술법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 제길, 역시 괴물이군…’
내가 침묵하고 있을 때 미남승려가 말했다.
“긴장하지 마시오. 그 소설을 왜 써서 유행시켰는지 궁금할 뿐이니까…”
“그걸 대답해 주면 얌전히 물러갈 거요?”
“대답에 따라서.”
나는 차분하게 대꾸했다.
“제천대성과의 약속이었소.”
“호오?”
“그가 생전에 겪은 유람기를 책으로 내서 유행시키기로 약조했던 거요.”
“뭐하러 그런 약속을 했지?”
“그것까지 대답할 이유는 없잖소?”
“……”
승려는 뭔가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하고도 약속하지 않겠소?”
“지금 첫 대면인데 뭘 약속하자는 거요?”
“내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세상에 뿌려준다면 당신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소. 아마 제천대성과 비슷한 조건일 테지. 어떻소?”
“그러니까 당신이 누구냔 말이오. 그것부터 밝히시오.”
승려가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삼장법사(三藏法師)라고 하오.”
역시 그렇군.
보통 사람이라면 무슨 개소리를 하겠냐고 하겠지만, 전생자인 나만큼은 그렇지 않다. 저 자의 얼굴은 과거 팔부신중(八部神衆)이 모두 모였을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하는 걸 보면 삼장전과 깊은 관련이 있는 존재인데 그런 자는 팔부신중 천인(天人)이자 아주 오래되고 강력한 존재인 삼장법사 뿐인 것이다.
눈 앞에 있는 건 최강의 팔부신중 중 한 명, 천인(天人)!
여동빈의 기억에서 봤던 종말의 거룡과 동급의 존재이며 인외의 강자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모르는 척 하며 말했다.
“삼장법사고 뭐고 당신은 너무 수상쩍소. 무슨 얘기를 소설로 써 달라는 거요? 나한테 써 달라 하지 말고 스스로 쓰시오.”
“후후… 그것도 그런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군.”
“개소리 마시오.”
“그러면 내 말을 제천대성에게 전하시오.”
천인 삼장법사의 눈이 순간 번득였다.
“칠요의 진실을 잊지 말라고…”
파앗
말이 끝나는 순간 천인 삼장법사의 모습이 장내에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우웅
그리고 나는 잠시 후 삼장법사가 나타났을 때 느꼈던 위화감이 뭔지를 알아챘다.
‘ … 시간이 멈췄었어!’
뭐가 이상한가 했더니, 주변에 있던 인간과 동식물의 움직임이 모조리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되어 있었다. 삼장법사의 존재감 때문에 잘 깨닫지 못했지만 놈은 아무래도 시간을 멈춘 이공간을 만들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모양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권능을 겹쳐서 사용한다는 것도 느껴졌다.
실로 엄청난 술법!
‘ 괴물같은 놈…’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가공할 대이적 술법을 숨쉬듯 쓰는 놈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아직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천우진이 나타나서 말했다.
“저 놈은 내가 숨어있던 것도 눈치챈 모양이군.”
“그러게 말이오.”
천우진의 말을 받아서 근처에 있던 진소청이 걸어나왔다. 그는 전율하고 있는지 손을 떨고 있는 기색이었다.
“여차하면 백웅을 지키려 했지만 저 자를 상대로는 자신이 없소…”
천우진이 대꾸했다.
“시공간 결계의 영향력을 의념으로 떨쳐낸 것만 해도 대단하오. 하지만 역시… 듣던 대로군. 팔부중 천인의 술법능력은 대라신선을 초월하는 것 같소.”
내가 죽으면 다 끝이기 때문에 동료들은 돌아가면서 나를 호위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천우진과 진소청이 암중에서 나를 지키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천인 팔부신중과 대면한 것이다.
나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 놈이 앞으로 우리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
“그건 아닐걸.”
“왜?”
“팔부중은 하나하나가 마왕급 존재이지만 인과율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우리를 전멸시키려고 무모한 싸움을 걸 수도 없어. 우리가 빌미를 주지만 않으면 저 삼장이란 놈도 상대할 만 하다.”
천우진의 말이 그럴 듯 했다. 확실히 제약이 이것저것 많이 있기 때문에 원래는 변신해서 원형을 드러내야 하는데도 모습을 감추고 있고, 과거 백련교를 위협할때도 섣불리 무력행사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천인 삼장법사가 모습을 드러낸 이야기를 동료들 모두에게 했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때가 무르익었군. 이제 제천대성을 만나자.”
파아앗
나는 공양의식을 통해서 쌍고검과 식토를 제천대성에게 바쳤다. 공양물을 받은 제천대성은 근두운을 타고 제단으로 날아온 후 말했다.
“오오! 웬 일이냐? 나한테 이런 떡고물을 또 주다니 이거 뇌물을 너무 많이 받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천대성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기분이 좋아보였다. 망량이 말하길, 제천대성은 칭찬과 뇌물에 약하니 이것저것 계속 찔러주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비위를 맞추며 손을 비볐다.
“헤헤! 또 하나 굉장한 선물을 준비했습지요.”
“선물? 또 뭘?”
“저를 따라 낙양에 와 보십시오.”
파앗
내가 비등으로 낙양에 가자 제천대성이 근두운으로 따라왔다. 내가 나타난 곳은 때마침 경극을 상연하는 장소였는데, 이 곳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삼장전으로 축제가 열리는 중이었다.
수많은 풍악소리와 함께 경극이 상연되기 시작했고, 내 뒤에 있던 제천대성은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바로 이 삼장전이라는 소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중원 전역에서 대인기라구요.”
“사… 삼장전?”
팔락 팔락
제천대성이 내게서 소설 삼장전을 받아들어서 넘겨봤다. 그는 한참동안 읽어보다가 다 읽고는 말했다.
“제목은 구리지만 내용은 나쁘지 않은데.”
“그… 그렇죠?!”
원래는 못된 원숭이인 손행자를 천인 삼장이 교화시키는 감동적인 내용이었지만, 오승은의 원안이 제천대성에게 반발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망량과 사마경이 내용을 통째로 뜯어고쳤다. 내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제천대성이 말했다.
“좋아! 기분이다! 너한테 특별히 큰 선물을 주지.”
우우우 –
제천대성의 손에서 거대한 빛의 낙인같은 게 뻗어나왔다. 그 낙인이 내 이마에 새겨지자, 나는 제천대성과 영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천대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너한테 줬던 가호가 뭔지 말하지 않았었지? 지난번에 준 건 화안금정(火眼金睛)으로 모든 요마를 간파할 수 있는 ‘눈’이었다.”
“화안금정요? 하지만 별로 그 능력이 발현했던 것 같지는…”
“화안금정을 쓰는 법은 따로 있어. 지난번에 깜박하고 말해주지 않았네.”
그는 내게 화안금정을 쓰기 전에 외워야 하는 주문과 수인을 가르쳐 주었다. 제천대성의 말대로 하자 즉시 내 눈에 환한 빛이 밝혀지며 화안금정이 발동하는 게 느껴졌다.
후우우웅!!
“……!!”
화안금정을 쓰니 상대방이 품고 있는 음기와 양기가 선명하게 보이고, 심지어 그가 품고 있는 오행의 비율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걸로 혼돈의 잠재량까지 볼 수 있는 듯 했고, 이 눈만 있으면 그 어떤 환술이나 둔갑술에도 면역이 될 것 같았다. 술법사에게 있어서는 보패나 다름없는 동력(瞳力)이었다.
나는 내심 크게 기뻤다.
‘ 술력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이 능력은 다음 전생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겠어!’
제천대성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의 보답으로 화안금정에 추가해서 또 다른 가호를 내려주마.”
“어떤 겁니까?”
제천대성이 히죽 웃었다.
“이걸 쓸 수 있게 해 주마.”
그가 슥하고 내민 것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조그마한 봉이었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자 제천대성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내가 여의봉(如意棒)을 남한테 빌려주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