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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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파앗
나는 우희가 마지막에 있었을 고성에 도착했다. 이곳은 해하(垓下) 인근의 성으로써 지금은 관리하는 자가 없어서 그저 고성의 유적에 불과했다. 고대에는 치열한 초한지의 종지부를 찍는 장소였겠지만 지금은 영웅도 군세도 없었다.
우웅…
나는 천신경의 술수를 이용해서 근처에 있는 강력한 영혼들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불러도 그다지 이름있는 자는 없었고 대개 해하에서 항우의 부하였던 인물들이었다. 한나라 군세와의 최후의 결전에서 싸우다가 죽었으리라. 나는 항우의 부하가 줄줄이 불려나오는 걸 보자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 항우의 부하 중에도 역사에 알려지지 않았던 준걸들이 꽤 있었구나. 그런데 왜 졌을까?’
천신경에 불려나올 정도라면 생전에 힘이나 지혜, 재능이 범인(凡人)보다 훨씬 뛰어난 자였다는 뜻이다. 최소한 천인장 이상은 할 정도의 실력자들이었을터인데 항우는 막바지에 몰려서도 이 정도의 인재들을 보유한 상태였단 말인가? 내가 의아하게 여겨서 함께 온 망량에게 묻자 그가 말했다.
“그 당시 천하의 대세가 한(漢)에 기울었는데 인재가 많고 적고는 이미 무의미했을 것이오. 그리고 항우는 독선적이기 그지없는 자라서 있는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소. 하다못해 동성과 오강을 넘어 강동에서 재기하려 했다면 희망이 있었을 터인데 스스로 포기해 버렸지.”
망량은 한숨을 쉬었다.
“타고난 천력은 고금제일이었으나 그의 행보는 천하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한 자나 다름없었으니 그런 의문은 무의미하오. 지금 불러낸 항우 휘하의 준걸들도 개죽음당한 셈이지…”
“……”
망량은 항우를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는 듯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 뭔가… 좀 걸리는데…’
망량의 평가는 현재 중원땅에 있는 대부분의 문사와 학자들의 의견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항우는 그저 용력을 휘두르다가 홀로 파멸해버린 패주(敗主)이며 통치자로서의 역량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대면했던 항우는 상당히 냉철하고 통찰력이 있는 인물으로써 그렇게까지 실책을 범할 인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항우 혼자의 힘만으로도 수십만 대군을 상대할 만 하다. 그런데도 굳이 인간군세에게 쫓겨서 죽음을 맞게 된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에 나는 항우를 마지막까지 수행했다고 하는 비람(批籃)이라는 장수에게 질문했다.
“항우의 부하 비람이여. 나는 우희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소. 그녀는 정말로 역사에 전해지는 대로 사면초가를 부른 후 항우에게 방해가 되지않기 위하여 자결했소?”
[ ……]
비람은 뭔가 크게 고뇌하는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지 마시오. 내 주군과 그녀의 명예를 모독한다면 지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대답하지 않겠소.] “으음.”상당히 강단있는 인물이었다. 천신경에 불려왔다는 건 사후세계를 두려워해서 천당에 가려고 도박을 건 셈인데, 그 성공확률을 내팽개칠 정도의 충성심! 생전에도 상당한 인물이었을 거라 생각한 나는 예를 갖춰서 정중하게 말했다.
“내게 들려온 소문은 그러했소. 무례했다면 사과하겠소.”
[ 받아들이겠소.]
“우희의 행적을 알고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겠소이까?”
[ 그녀는 주군께 ‘힘’을 받은 후 홀로 떠났소.]
힘이라 함은 아마 항우에게서 천괴성의 힘을 나눠받은 것이리라. 나는 의아해서 질문했다.
“당시 해하 일대를 한나라 수십만 군세가 포위하고 있었을 텐데 어찌 아녀자가 홀로 포위를 뚫었단 말이오?”
[ 그건 알 수가 없소.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건 내 주군과 유방이 그녀에 대해서 모종의 밀약(密約)을 맺었다는 것이오. 한나라 군세가 그녀를 막지 않았다고 생각하오.]
“으음…”
[ 우리들은 그 일에 대해서 주군을 원망치 않소. 그 때 이미 삶과 죽음을 모두 주군께 맡겼기에.]
설마 항우가 우희만은 보내달라고 유방에게 교섭을 한 건가?
뭔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는 꽤 달랐기에 나는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옆에 있던 망량이 말했다.
“백웅. 이렇게 되면 이제 유방을 찾아서 그를 천신경으로 부르는 게 낫겠구려. 우희를 보내준 당사자가 그였을테니.”
“한고조 유방이라… 그가 어디쯤 있겠소?”
“한나라 종실의 무덤이 있는 곳이겠지. 낙양 인근이오. 그 위치는 내가 알고 있으니 가 봅시다.”
파앗
나는 망량과 함께 한나라 종실의 무덤에 도착했다. 한나라의 왕릉은 아직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듯 했고 주변의 인적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 나는 신기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낙양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군.”
“백웅. 아마 천신경으로 검색하면 한나라의 역대 황제들이 쭉 나올 터인데 그 중에 적룡의 기운을 가진 자를 찾아내면 될 것이오.”
나는 망량의 말대로 했다. 잠시 후 망량의 말대로 수십 명의 역대 한나라 황제들이 내게 감지되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 특히 강력한 용의 기운을 가진 자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딱히 그런 자가 발견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없는데…?”
“이상하군. 그럼 내가 해 보겠소.”
망량도 삼황내문의 술법을 수련해서 천신경의 술법을 쓸 수 있었다. 그가 이윽고 십지에 기운을 모아서 영혼을 찾아내다가 황당한 듯 말했다.
“음…!! 정말 없군.”
“유방이 죽어서 적룡의 기운을 잃어버린 게 아니겠소?”
“그럴 리가… 그럴 가능성은 없소. 하지만…”
중얼거리던 망량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 한 가지 가능성이 있긴 하군.”
“그게 뭐요?”
“유방이 죽고 나서 본체인 적룡에게 회귀했을 가능성이오.”
“… 뭐라고? 그런 말도 안되는…”
“말이 안되진 않소. 우리는 유방이 그저 적룡의 힘을 강하게 타고난 인간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세상의 소문대로 진짜 적룡의 화신(化神)이었다면… 화신이 본체로 회귀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오.”
“……”
“영포의 말이 사실이었군.”
그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을 이었다.
“문제는 유방에게 힘을 준 적룡이란 존재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거요.”
“망량. 당신은 도학(道學)에 밝은데 잘 모르는 거요?”
“적룡이라는 존재가 도교위계에 따로 존재하지는 않소. 용이란 존재가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순히 적룡이라도 특정지을만한 신격이 없소. 그래서 나는 평소부터 그 ‘적룡’이란 은유라고 생각했소.”
“은유?”
“정체가 세간에 알려져도 무의미하지만, 세상에 알려지고 싶지 않은 은밀한 존재…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면 곤란한 존재가 남몰래 유방이라는 화신을 뿌린 것일수도 있소.”
“흠, 그게 뭐지…”
뭔가 복잡한 음모의 냄새가 난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결론적으로 유방이 누구의 대리인인지는 현재 모른다는 거구려.”
“확실한 건 유방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 뿐이오.”
망량이 말을 이었다.
“사제와 좀 더 논의해봐야겠소. 돌아갑시다.”
나는 망량과 함께 남쪽대륙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천우진과 제갈사에게 알아낸 사실을 공유하고 의논했다. 그러자 천우진이 말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유명한 적룡은 남방적룡인 광리왕(廣利王) 오윤(敖閏)이다.”
“사해용왕(四海龍王)이군.”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대꾸했다.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사해용왕을 비롯한 천룡들은 언제부터인가 천계에서도 출현이 뜸해졌고 사해용왕은 아예 잠적해 버렸지. 그 이유는 아마 여동빈 때 종말의 거룡을 막아낸 후유증이라고 생각한다만.”
“그렇겠지.”
“종말의 거룡은 그 때 사해용왕 모두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그 때 죽은 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방적룡 광리왕을 소환한다고 해도 그가 응할 리가 없을 것이다.”
“흐음…”
그 때 옆에 있던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가장 유명한 적룡은 한마리 더 있지 않나?”
“… 화룡진인을 말하는 건가?”
“어쨌든 그녀도 적룡은 적룡이지. 아마 힘을 되찾으면 사해용왕 개개인보다 더 강할테고.”
그러자 천우진이 말도 안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본체로 오롯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응룡의 화신이야. 화신이 또 다시 화신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어.”
“대요괴들은 종종 비슷한 짓을 하지 않나?”
“그건 존재가 부정형인 반마(半魔)라서 가능한 거지. 화룡진인처럼 강대한 신적 존재가 그런 짓을 했다가는 존재양식이 분해되어서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
“귀찮군.”
제갈사가 하품을 하더니 말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귀찮게 항우 부탁 때문에 천지를 왔다갔다하느니 그냥 맘 편하게 밀림의 지배자한테 흑패 써서 우희를 살려달라고 하는 게 어때?”
“……!!”
“그게 편하잖아.”
어라 그 방법이 있었네?!
내가 내심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자 망량이 말했다.
“숙부. 항우의 부탁 하나에 그 좋은 권능을 소모하기는 아깝습니다. 그건 천지를 뒤흔들 수 있는 능력일진대 고작 그런 일에…”
“뭐, 아깝지. 사실은 다른 놈을 살리는 데 쓰고싶었다만.”
그가 입맛을 다시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우희의 영혼을 찾아서 명계까지 쳐들어갈거냐? 그건 본말이 전도된 거라고 보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음… 그렇긴 해.”
명계.
죽은 자의 영혼이 모이는 세계.
술사들은 그 세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듯 했으나 원래 산 자는 그 세계에 갈 수가 없었다. 제갈사도 명계는 이계 중에서도 특별하다면서 별로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게다가 천계와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이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삼황오제의 손아귀에 걸려들 가능성도 높았다.
“한 번쯤은 죽는 셈치고 명계에 가서 휘젓고 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이번 생의 목적은 명게가 아니라 암천향이야. 암천향에 가려고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에서 난데없이 명계에 가서 죽으면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지. 수십 년의 적공을 날린 셈이야.”
“흠…”
“아껴봤자 똥될 뿐. 나는 흑패를 쓰는 게 좋다고 본다.”
제갈사의 의견에 망량과 천우진도 생각을 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후 천우진이 말했다.
“위험부담이 있어. 천괴성을 가진 우희가 흑패의 권능으로 되살아난다는 전제하에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제갈사가 그 말을 알아듣고는 차갑게 웃었다.
“후후! 그게 더 웃기군. 초한지의 시대는 지금부터 2천년 전에 가까운데 그녀가 여태 살아있다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 성좌의 힘을 나눠받았으니.”
“우희가 이 세계에 없다는 건 이미 전국옥새의 능력으로 확인했다. 그렇다면 우희는 이계에 가서 2천년 동안 떠돌며 살아있을 수 있다는 건데, 그게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그렇진 않겠지. 어쨌든 인간을 넘어선 존재가 되어있을 것이다.”
“귀찮게 이래저래 떠들지 말고 흑패나 쓰자고. 뭐가 어려워?”
제갈사는 짜증이 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나는 제갈사의 의견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맞아. 천우진 말대로 그녀는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어…’
살아있는 존재를 불러달라고 한다면?
멀쩡히 살아있던 우희를 쳐죽인 후 소환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밀림의 지배자]는 인간의 편의따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도락을 위해 세상을 갖고노는 [옛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억지해석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걸 보고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섣불리 행하다 실패할 경우 – 나중에라도 항우에게 흑요석을 줘서 동료로 만드는 건 불가능해지게 된다. [옛 지배자]의 힘에 기대는 건 위험한 발상이었기에 나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제갈사의 제안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좀 두고보고 싶어. 화룡진인이 힘을 찾으면 그 때 시행했으면 해.”
“화룡진인에게 적룡에 대해서 물어볼 셈이냐?”
“그래.”
“뭐 니 맘대로 해도 좋다만 시간을 너무 낭비하지 않는 게 좋아. 백련교주가 남쪽대륙까지 찾아올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니고 십이율주 놈이 앞으로 무슨 수를 쓸 지 모르니까.”
“그것보다 제갈사, 부탁할 게 있는데.”
“뭐냐?”
“이계를 이동하는 사법(邪法)을 가르쳐 줘.”
내 요청에 제갈사는 비직 웃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그건 이계의 마물을 이용하는 소환술이라서 굉장히 어려울 텐데 배울 순 있겠냐? 나도 어렵게 배웠는데.”
제갈사의 입에서 대놓고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진짜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해야지.”
“수십 년이 걸려도?”
“그래도 배울 거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내가 그걸 배워야 앞으로 백련교의 사대신기도 찾을 수 있을테니.”
이대로는 안 된다.
이번 생에 전국옥새를 운용하면서,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뭔가 유물이 흩어져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제갈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계로 이동할 수 있는 처지였으므로 이대로는 한계가 있었다.
나 스스로 이계를 탐색할 능력이 있어야, 앞으로 명계탐색은 물론이고 백련교 사대신기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