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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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두 번째로 마주친 팔부신중 삼장을 보자 얼굴이 딱딱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 놈이 결코 좋은 의도로 온 게 아니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고, 또한 망량이 시간정지에 걸려서 굳어버린 상황에서는 이쪽이 크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삼장은 팔부신중 천인으로써 놈들 중에서도 상위에 꼽히는 존재였고, 여동빈의 기억을 볼 때 각성하는 팔부중 야차를 억누를 정도로 강대한 술법능력을 보유한 놈이었다. 이대로 싸우면 질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는 금세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 아니, 패배하는 건 문제가 아니야. 안되면 그냥 빠르게 자살하면 그만이야. 정말 문제는 저 놈이 왜 나를 주목하느냐…’
아무래도 소설 〈삼장전〉 때문일 것이다.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매번 우리를 따라다니는군. 그렇게 자전적 소설을 써주길 원하는 거요?”
내 질문에 삼장법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것도 좋지만, 우리가 회의한 결과 당신을 지켜보는 게 좋을 거라는 판단이 서서 그렇소. ”
“우리?”
“내게는 믿음직한 동료가 있어서 종종 중요한 이야기를 논하곤 하오.”
껄껄 웃는 삼장은 대수롭지 않은 얘기를 하는 듯 했으나, 나는 놈이 말하는 ‘우리’가 팔부신중 무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저 놈은 이미 팔부신중 야차와 접촉해서 마검 흐룬팅에 관련되었던 이야기를 모두 들어서 회의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동빈을 강림시킬 수 있으며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는 나를 본격적으로 따라다니며 감시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이를 악물었다.
‘ 제길. 이번 생에 너무 눈에 띄게 움직였나?’
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제천대성의 가호와 호의를 얻기 위해서 소설의 유행은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일이었고, 낙양의 봉인도 어떻게든 뒤처리를 하는게 도리상 옳았다. 내가 미숙한 게 죄였을 뿐이다. 나는 침착함을 되찾으며 차분히 말했다.
“원하는 게 뭐요?”
“말했듯 당신들은 현재 곤경에 처해있으니, 내 술법으로 저 명계의 방해꾼들을 몰아내 주겠소. 나는 그러려고 여기 온 거요.”
“마치 우리가 뭘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 딱 적절한 순간에 북망산에 나타났군. 날 계속 감시하고 있었군.”
내가 씹어뱉듯 말하자 삼장이 싱긋 웃었다.
“내 도움이 필요없다고 하면 그냥 가 주겠소. 언제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을 듯 하니.”
그 때였다.
천우진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삼장법사.”
존중따위 없이 그저 적의를 가득 담은 고요한 목소리였다. 천우진이 상대방에게 이렇게까지 살의를 돋우는 일은 매우 드문지라 나는 흠칫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삼장법사가 눈에 이채를 담고 천우진을 바라보자 천우진이 말했다.
“우린 이런데서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너같은 음흉한 놈에게 언제까지고 발목잡힐 순 없지. 거기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으면 어쩔 셈이오?”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하하하, 듣던 중 재밌는 농담…”
그가 다시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려 했으나 다음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그건…”
천우진이 맺은 수인(手印)이 그의 심기를 거스른 걸까? 절세미남의 얼굴이 갈수록 험상궂어졌지만 천우진은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고 주문을 외쳤다.
“급급여율령.”
파앗!
그 순간 삼장법사가 뭔가 술수를 발휘해서 방어하려 했으나 천우진의 술법이 만들어낸 적색 빛이 삼장법사의 전면을 강타했다. 삼장법사는 마치 꼬챙이에 꿰인 것처럼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가슴에 박혀있는 적색 창을 쳐다보았고, 그 반투명한 창에 손을 뻗어서 뽑아내려 했다.
부부북
“크아아아…”
그가 괴성을 지르며 창을 뽑으려 했으나 뽑히지 않았다. 천우진은 여전히 수인을 맺은 채로 말했다.
“급급여율령.”
치지직
창이 한층 더 강한 빛을 내뿜으며 삼장법사의 몸을 태우듯 연기를 냈다. 신기하게도 저렇게 위중한 부상인데도 삼장법사는 한 줌도 다친 기색이 없었고 마치 인형이 움직이는 듯한 기척이었다. 삼장법사의 얼굴은 이미 흉신악살이나 다름없게 변해 있었고 인간의 형태를 잃어서 마치 수라처럼 보였는데, 그는 시뻘건 눈을 들어서 천우진을 노려보았다.
[ 내 기휘를 건드리다니 정녕 신의 제자라는 걸 믿고 설치는구나.] “멋대로 말해라. 우리에게 도청추적술법을 걸어서 제멋대로 군 건 네 녀석이 먼저다.”태연하게 대꾸한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당장 우리에게 걸어둔 술법을 해제하고 꺼져라. 그리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마라.”
쿠구구구…
삼장법사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흉흉한 기운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치 예전에 걸선이 백련교주 앞에서 무력시위를 할 때 느꼈던,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본래 형상을 되찾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삼장법사는 현재 팔부신중 천인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드러낼까말까 고민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뭐야 천우진 자식… 왜 저래?’
나는 그냥 삼장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적당히 이용해먹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천우진의 반응이 격렬했다. 저 녀석 때문에 다시 죽음의 길으로 한단계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칫하다가는 암천향에 가기도 전에 죽을 위기인 것이다. 애시당초 나는 팔부신중과 전투를 한다는 선택지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천우진을 말리고 삼장법사한테 사과해야 할까?
너무 큰 짓을 저지른 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 아냐. 저 녀석도 일단은 기억을 공유하는 동료야. 의심하지 말고 믿어 보자.’
전생자의 특권은 ‘실패’가 허용된다는 것. 무조건 성공만을 추구하다가 아군의 신뢰를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처참한 패배를 당하는 편이 낫다.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언제든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술법사 천우진의 능력과 선택을 믿고 끝까지 지켜보기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차하면 여의봉을 꺼내서 정령 허유를 통해서 제천대성을 부르면 된다. 어찌보면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에게 빚을 섣불리 지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암천향에서 제천대성의 조력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고, 아마 지금 나선 천우진도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리라.
삼장법사의 눈에는 혼돈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인간의 형상은 유지하고 있으나 저 얼굴을 보는 순간 보통 인간은 똥오줌을 지릴 정도의 강대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놈은 격렬한 살의를 느끼는지 입꼬리가 크게 찢어질 듯 올라가 있는 상태로 자신의 새하얀 얼굴을 손으로 부여잡고 말했다.
[ 크흐흐, 흐흐흐흐. 여동빈 따위를 믿고 감히 내게 시비를 거는 것인가? 감히 내게…] “물론 여동빈만 믿지는 않지.”천우진이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대자재천의 인이 효과가 있긴 하군. 이대로 인과율을 다 잃고 이 세계에서 내쫓길테냐, 얌전히 추적술수를 거두고 물러날테냐?”
[ 네놈…]
“시비를 먼저 걸어온 건 네놈 쪽이다. 우리에게 헛수작 부리지 말고 당장 꺼져라!”
[ 꺼지라고… 당장 죽여줄까.]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생각이면 이쪽도 제천대성을 부를 수 있다. 이쪽이야말로 참아주고 있는 거다.”
천우진이 크게 호통을 치자 삼장법사가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 … 네가 망량선사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결코… 가만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꼬우면 너도 망량선사 제자 하던가.”[ 후우… 너무 나를 자극하지 말도록…]
그가 순간 무시무시한 눈을 하더니 말했다.
[ 좋다. 나는 더 이상 너희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 제천대성도 부르지 마라.] “알았다.”[ 허나 내 동료들이… 너희를 지켜본다는 걸 명심해라…]
파앗!
잠시 후 삼장법사의 몸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시간정지의 공간도 풀렸다.
망량은 나와 천우진의 기색이 난데없이 일변해있는 걸 보고 놀란 듯 하더니 상황을 파악한 듯 말했다.
“팔부신중이 왔다 갔나보군.”
“그렇소.”
“면목없소, 백웅. 나는 시간을 다루는 수준의 술법에는 저항할 수 없소.”
망량이 민망한 듯 말하자 천우진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사형. 삼장법사의 법술은 최상위 술법사도 버텨내기 힘든 것이니.”
“사제가 그를 내쫓았는가?”
“그렇소.”
나는 천우진을 우려섞인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겠어? 괜히 놈을 자극한 꼴만 된 게 아니었냐. 좀 유하게 받아들였어도…”
천우진이 내 말을 듣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 개소리 하지 마라! 그럼 네 녀석은 아무 대책도 없이 팔부신중한테 인과율을 줄 셈이었단 말이냐?”
“인과율?”
내 반문에 천우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저 놈이 왜 굳이 우리 앞에 나타나서 네 허락을 맡으려 했다 생각하냐? 저 팔부신중 천인의 힘은 막강하기 그지없어서 그냥 문답무용으로 명계 권속을 쓸어버리고 우리에게 빚을 지워도 될텐데.”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그냥 놈의 취향…”
나는 천우진의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망량이 끼어들었다.
“백웅. 사제의 말인즉, 삼장법사가 당신에게 허락을 구한 것 자체가 인과율의 획득이라는 뜻이오.”
“인과율이란 게 그렇게 얻어지는 거요?”
“당연한 것이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 라고 하는 단순한 원리이지만 그 원리가 인과율이며 우주를 구성하고 있소. 천인 삼장법사가 당신에게 허락을 구하게 되어 백웅 당신이 그 제안을 승낙했다면, 그 순간 인과율이 생기지. 그리고 팔부신중은 인과율을 빌미로 인간세상의 일에 끼어들 수 있게 되는 것이오.”
“아…”
“팔부신중 그들은 마왕급의 힘을 지니고 있으나 이런 인과율의 획득이 없으면 지상의 일에 힘을 쓰지 못하는 존재들이잖소.”
내가 이해가 된 표정을 짓자 천우진이 성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만일 네가 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천인 삼장법사는 명계 권속을 쓸어버리는 의뢰를 핑계로 인과율을 얻어서 우리한테 더 쉽고 확실하게 간섭하고 감시했겠지. ‘의뢰주’와 ‘수행자’라는 인과율을 얻은 상태로 말이야. 인과율이 없는 상태에서도 천리길을 마다하고 우리를 밀착감시하고 있던 놈이 그 때가 되면 무슨 짓을 할까?”
“윽.”
“암천향에 도전하기 전에 놈한테 뼈속까지 발리고 말 거다. 팔부신중과 창힐이 우리 모두를 장난감처럼 갖고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거면 그냥 거절만 해도 되는 거였잖아. 뭐하러 놈을 자극한 거야?”
내가 항변하자 천우진이 말했다.
“놈이 우리에게 추적술수를 걸어뒀지만 너무 술법이 은밀하고 수준이 높아서 나조차 해주하기 버거웠다. 이걸 놔두느니 놈이 자발적으로 없애도록 협박해야 했다.”
“협박이라면 방금 그 대자재천의 인을 말하는 건가?”
“그래. 이건 불가의 술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며 파괴적인 술수다. 대자재천 자체가 삼천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힘을 휘두르는 존재니까.”
천우진이 중얼거렸다.
“네가 전생하면서 뇌음사에서 얻었던 정보 덕이다. 뇌음사에 적혀있는 천인의 정보에 따르면 놈은 대자재천을 싫어하며 그 존재가 약점이라고 되어 있었으니까.”
“아, 그랬지.”
“대자재천은 우주를 파괴하는 불가의 상징이니 파괴신의 힘을 품고 있다. 또한 이는 상위존재의 인과율을 분해하는 권능도 가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뇌음사의 주지 요르한이 보여주었던 많은 정보 중에서 그런 내용도 있었다. 천우진은 그 기억을 토대로 저항할 방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천우진에게 냉큼 외쳤다.
“그 수인 나한테도 가르쳐 줘! 다음부터는 내가 써서 놈을 퇴치할게.”
“가르쳐줘도 넌 못 써.”
“왜 못 쓰는…”
“실력부족이다. 네가 대자재천의 수인을 맺는 건 따라할 수 있겠지만 술법 깨달음이 부족해서 인의 효과를 낼 수 없다. 적어도 최상위의 술사이며 도교와 불교의 술수에 고루 능통하며 밀종의 술법도 알아야 쓸 수 있는 최상위 수인이다.”
“……”
술법수준이 부족해서 팔부신중 퇴치술을 못 쓸 줄이야!
내가 아깝게 여기고 있을 때 천우진이 말했다.
“거의 도박이긴 했다. 다행히 잘 먹혔고 놈의 추적술법이 다 풀렸군.”
“도박이라고? 설마… 놈이 그대로 본체로 변해서 공격해 올 가능성도 있었단 말이냐?”
“당연히 있었지.”
“야, 젠장… 아니 그건…”
나는 천우진의 대꾸에 기가 막혀서 외쳤다.
“삼장법사가 변덕 부렸으면 이 자리에서 다 죽었단 소리잖아!”
“당연하지.”
“아니 근데 왜 그런 도박을 걸어?!”
천우진이 뭘 물어보냐는 듯 말했다.
“다 죽는 거 아닌데.”
“뭐?”
“나랑 사형은 망량선사의 제자니까 저 놈이 눈치보여서 못 죽여. 팔부중 주제에 ‘복수’라는 인과율까지 주면서 망량선사의 심기를 거스르려 할 리가 없지. 결과적으로 너만 죽잖아.”
“……”
이 새끼가 자기는 사니까 도박했단 말인가?!
“어차피 니가 죽으면 새 전생이 시작되는 거고, 이대로 저 놈의 추적술을 달고 있어도 계속 지난번처럼 외통수에만 몰릴거고… 난 해볼만한 도박이라고 판단했는데? 그리고 여의봉으로 제천대성을 부를 수도 있었으니까 생각처럼 큰 위기는 아니었어.”
“뭐 그렇긴 하지만… 제천대성한테 빚지는 걸 피하려고 도박을 건 거였냐?”
“그런 것도 있지.”
천우진이 난 놈이긴 하다. 삼장법사가 기습적으로 나타난 그 짧은 순간에 전후사정을 파악하고 최선의 한 수를 던진 셈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제천대성을 소환하는데 쓸 인과율을 아낀 셈이 되었다.
“그래도 말 좀 해줘.”
“방금 그 상황에 말할 여유가 어딨다고.”
“에라이 이 자식…”
이 놈은 왜 말을 굳이 틱틱 내뱉는 걸까?
천우진이 싸가지없이 말해서 내가 짜증을 내자, 망량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웅. 사제가 공격적으로 말하지만 결과가 좋으니 넘어가 주시오.”
“끙… 알았소.”
“그나저나 팔부중의 간섭은 일단 떨쳤으나 지금부터가 문제구려. 명계의 권속을 물리치는 건 아직 해결방법이 없으니…”
“흐음.”
나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냥 우희의 영혼을 찾는 일을 포기하겠소.”
“진심이오?”
“그렇소. 너무 성가시고 위험하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항우의 조력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시도해 본 건데 이렇게 귀찮게 빙빙 돌아가면서 죽을 위험도 크다면 더 진행할 이유가 없소. 항우의 의뢰는 나중에 수십년이 흘러서라도 천천히 하기로 하고, 나는 암천향 공략에 집중하겠소.”
할 수 있으면 하겠지만 도저히 이대로는 쉽게 해낼 공산이 보이지 않는다. 보나마나 일이 꼬이고 꼬이다가 외통수를 맞을 게 뻔하다!
이것저것 다 성공시키려다가 다같이 망하는 일을 자주 겪었으므로, 나는 지금이 빠질 때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명계행은 그 자체로 거대한 모험이기 때문에 암천향 공략과 함께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능력 이상의 일을 무모하게 하려다가 결국 망해버린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호오, 꽤 괜찮은 판단이오.”
망량은 부채를 손바닥 위에 탁 치며 말했다.
“저 놈들을 없애려면 방법이 없지는 않겠으나 포기하는 게 훨씬 현명해 보이는구려. 백웅 당신에게 조언하려 했으나 알아서 깨달았구려.”
“알아줘서 고맙소.”
“다만 조금 걸리는 게 있소…”
“어떤 게 걸리오?”
망량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 명계, 그 중에서도 저 남북두성군은 제갈유룡과 모종의 계약이나 거래를 맺고 있을 확률이 크오. 그래서 저 자들의 비밀을 알아내는 게 주작이 가진 불사신의 비밀을 알아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오.”
“불사신의 비밀? 그건 이미 밝혀졌잖소.”
나는 의아해서 반문했다.
“주작 저 놈은 연금술과 술법을 달통해서 수백 개의 보조몸뚱이를 만들어놓고 그걸 비밀기지에 숨겨놓고 무한히 부활하는 거였잖소. 여기서 더 비밀이랄만한 게 있소?”
“백웅. 당신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구려.”
“무엇을 말이오?”
“긴나라 때의 일을…”
망량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잘 생각해 보시오. 우리는 그 때 완벽하게 주작을 사경으로 몰아넣었다 생각했소. 그의 분신과 비밀기지는 모두 파괴당하고 본체도 소멸당했다 여겨졌소. 그러나 결국 주작은 자신의 몸뚱이에 팔부신중 긴나라를 빙의시켜서 태산을 차지했고, 그 곳을 거점으로 싸워서 우리를 곤경으로 몰아넣었소.”
“그랬었지.”
“그 때 주작은 도저히 회생이 불가했소. 그러나 그럼에도 마왕급 존재인 팔부신중을 강림시켜서 살아났소. 그 말은 주작에게는 분신체 부활 말고도 또 다른 불사신의 비결이 존재한다는 말이오.”
과연.
나는 망량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졌다. 나도 망량의 말을 듣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자 듣고 있던 천우진이 힐끔 북망산 위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팔부신중과 계약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놈의 영혼은 명계로 가지 않았지. 그렇다 해서 육체가 힘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긴나라에게 고스란히 지혜과 기술을 다 빌려주고 있었지. 그 말은 저 명계의 남북두성군과 묘한 밀약을 맺어서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고 있다는 말이겠구려, 사형.”
“그렇네, 사제.”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주작의 비밀은 한 줌도 남김없이 밝혀내야 하네. 그래야 후환을 없애고 황궁세력을 확실히 전멸시키는 공략로가 열릴 것일세. 지금까지 우리는 그 공략로를 확보했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계속 주작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일세.”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소, 사형. 저 무식한 포위는 항우나 제천대성… 아니면 팔부신중쯤 되는 놈이 오지 않으면 뚫을수 없소. 남북두성군을 붙잡는건 더더욱 힘드오.”
“정면돌파 말고도 방법은 있긴 하네.”
잠시 생각에 잠긴 망량이 내게 말했다.
“백웅. 동영에 갈 준비를 합시다.”
“동영은 왜?”
그가 먼 동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유사 이래 태산부군제를 최초로 성공시킨 술법사를 만나봐야 명계의 비밀이 풀릴 것 같소.”
“으음!”
나는 망량이 누구를 만나려 하는지 눈치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자를 만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모은 정보로는 가장 깊은 곳의 봉인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굴조차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당연히 인세에 가장 위중한 결계를 담당하고 있는 대술법사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만날 수는 없을 것이오. 그의 일족이 우리를 막겠지.”
망량이 싱긋 웃었다.
“요는 교섭이오. 그 자가 원하는 걸 주면 그도 우리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