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704)
703====================
암천향(暗天鄕)
스윽
검마는 무사시의 자세를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 카메와리(?割).’
검마는 본디 동영검술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나, 백웅의 기억을 흑요석으로 받아들이면서 상당부분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금의 검마는 백웅이 수십 명의 검호와 더불어 멸혼보를 수련했던 기억, 그리고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나 츠카하라 보쿠덴 등의 대검호와 검술을 교류했던 기억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 기억에 따르면 무사시의 첫 자세는 카메와리(?割)였다.
저것은 항아리를 통째로 분쇄한다는 느낌의 강검 자세였으며 잇토 잇토사이(伊東 一刀?)때부터 이어져 온 일도류가 오노 타다아키(小野忠明)때에 완성된 검형(劍形)의 증거이기도 했다.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또한 온갖 경험을 했으므로 일도류의 검형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지식이 백웅을 통해 검마에게 이어진 것이다.
검마는 순간적으로 무사시가 일도류의 후계자인가 생각했으나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기보다 무사시가 지금 검형을 굳이 잡은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검마는 무사시에게 말했다.
” 당신은 낭인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의외로 명문의 검술을 배운 모양이군.”
”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지.”
” 이미 초식이 필요없는 경지에 이르렀을텐데 굳이 내게 그 자세를 보여준 이유는?”
검마의 질문에 무사시의 안광이 빛났다.
” 이 검형으로 이어지는 절초를 받을 수 있다면 네 실력을 확실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 자, 간다!”
파앗
무사시의 장검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시간이 멈춘 듯한 찰나가 찾아왔다.
진정한 고수들만이 맞이하게 되는 이 순간 – 검마는 자주 이 공간에 진입해 보았으나 살기를 지니고 무사시와 생사결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검마는 흑백으로만 나뉘어진 정지된 시간의 연속에서 무사시의 자세부터 살폈다.
역이도(逆二刀)이며 역족(逆足)이었다. 검술의 상리에서 벗어난 자세였으나 그 순간 검마는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는 곧장 무영탈혼검법의 자세에서 좌탈백(左奪魄)의 초식으로 상대의 첫 일격을 막으며 몸을 반쯤 옆으로 틀었다.
까강!
무기끼리 부딪히자 강렬한 섬광이 튀어올랐지만 두 검사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둘 다 이미 심안(心眼)과 청경(聽勁)을 터득했기에 굳이 시력에 의존해서 상대의 위치를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광이 사라진 현장에는 무사시의 소도가 검마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고 검마는 어느 새 자신의 검면으로 소도를 방어하고 있었다.
검마의 검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무영검기를 내뿜었고 무사시는 급히 카메와리의 자세를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언뜻 서로 허공을 헛친 것 같은 형세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무사시는 감탄한 듯 말했다.
” 내 수법을 그 찰나에 모두 읽어냈는가?”
검마는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
” 이도류 역이도는 공수전환이 자유로우나 발까지 역족이면 반격 외에는 노릴 수가 없지. 강검(鋼劍)의 자세로 나를 혼란시키고 반격에 재반격으로 나를 일초만에 베어버릴 심산이 아니었는가?”
” 정확하다.”
무사시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 검마 서문대룡! 넌 벨 만한 가치가 있다!”
슈욱
무사시의 허리춤에서 섬광이 비산했다. 실제로는 너무나 빠른 극한의 쾌검이 시공을 격하며 검마가 서 있는 공간째로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검마는 무사시가 기(技)가 아닌 힘만으로 공격해 오는 걸 알아채고는 살짝 뒤로 물러나면서 절기를 펼쳤다.
절기
탈혼운광(奪魂雲光)
구름같은 탈혼검기가 일어나며 무사시의 섬광같은 공간살(空間殺)의 검기와 마주쳤다. 공간을 찢어버리던 무사시의 검기는 구름과 뒤엉키자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고, 검마는 탈혼검에 이어서 무영검을 덧씌우며 무사시가 서 있는 장소를 베어냈다.
푸콰콱
지평선까지 검기가 뻗어나가더니 뒤편의 야산을 반쪽내 버렸다. 탈혼운광 또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으나 무사시는 역시나 검마의 절초를 피해내며 자세를 잡았다. 그가 잡고 있던 장검과 소도가 반바퀴 허공에서 돌며 다시 손아귀에 쥐어졌고 무사시의 안광이 폭사했다.
” 하앗!”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후광이 미치듯 빛살같은 검기가 구름을 꿰뚫어버렸다. 검마는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피했지만 상체에 칼날자국이 서너 개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반격을 위해서 무사시에게 접근해서 중단세로 공격했으나 이윽고 찰나지간에 무사시가 발동한 절기에 눈을 부릅떴다.
무토도리(無刀取り)
파밧
어느 새 무사시의 손이 검마의 칼날을 잡아서 막고 있었고 검마는 급히 탈혼검기를 써서 그의 손을 공격했다. 하지만 백웅의 것과는 달리 무사시의 무토도리는 완벽한 모양인지 의념절기조차 느긋하게 피하면서 한동안 칼날을 놓아주지 않았다. 곧이어 무사시가 소도를 휘둘러서 검마의 목을 베려 하자 검마는 앞이마에 칼날이 스치는 걸 느꼈다.
결국 검마는 어검술을 써서 기력을 소모하여 무토도리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 괴물같은 놈…!!’
무토도리는 분명 동영의 검성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의 독문절기이며 중원에서 말하는 공수입백인을 절기로 승화시킨 기술이었다. 한 문파 무예의 극점에 달한 오의라고 할 수 있었는데, 무사시가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의 제자일 리는 없었다.
그냥 한번 보고 익힌 게 분명하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명실상부한 천재인 것이다.
찰나지간에 미야모토 무사시의 눈이 빛났다.
[ 이걸 받아봐라.]절기
부처베기(?斬り)!
무사시는 여기서 승부를 내기로 마음먹은 듯 했다.
검마는 무사시의 눈 앞에 반투명한 심인(心刃)이 생겨나고, 그 마음의 칼날이 이윽고 자신을 노리려 하자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는 걸 예감했다.
‘ 치받는 수.’
저 기술은 검마가 생전처음 보는 기술이지만, 절대지경에 이른 덕분에 저 칼날의 위력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건 아마 떨쳐지는 순간 회피가 불가능할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마음이 도달하는 속도를 인간의 육체로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통상의 무공이론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 절대지경만의 초식이다. 또한 저 칼날이 벨 수 없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저걸 감당하려면 무사시와 마찬가지로 심인을 만들어내서 칼날끼리 부딪히게 하는 수밖에 없다. 심검에는 심검으로 맞상대해야 하는 게 정석일 것이다.
그러나.
검마는 자신이 심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기묘한 감각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찰나의 기회밖에 없는데 망설임이라니 검객으로서 실격이었지만 알 수 없는 밍숭맹숭함이 그의 마음속에 휘돌고 있었다. 그 망설임은 바로 의혹이었으며 도전을 향한 갈망에 가까웠다.
내딛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 간다.’
검마는 모험에 뛰어들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무사시의 부처베기에 맞서서 심인을 만들지 않고 그 대신에 의념을 집중해서 새로운 검형(劍形)을 만들어냈다. 그 대응에 무사시는 크게 불쾌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너 정도 되는 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다니!
이 대결을 모욕하는 것인가?
무사시는 당연히 검마가 자신에게 맞서서 심인을 생성해서 상쇄시킬 줄 알았다. 검마 또한 절대지경의 검객이니 그걸 못하지는 않을 테고, 지금부터 차분하게 합을 겨루며 승기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시공을 격하는 검술에 맞서서 일개 검형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무사시의 불쾌감은 곧장 응징으로 펼쳐졌다. 무사시의 의지가 원하는 순간 마음의 칼날은 즉시 검마의 머리통으로 이동해 버렸고, 잠시 후 검마는 정수리부터 전신이 한일자로 갈라져서 죽음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
타당!
” ……!!”
그러나 예상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검마가 펼쳐낸 다섯 개의 검형이 뒤늦게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절기 부처베기의 심인을 튕겨내버린 것이다! 무사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주춤거리며 일순간 빈틈을 보였고, 검마는 그걸 놓치지 않고 그대로 한 손가락을 뻗어서 무사시를 가리켰다.
” 빈틈!”
푸욱
” 크윽…”
무사시는 침음성을 흘리며 검마의 수어검(手御劍)에 맞은 어깨죽지를 부여잡았다. 어떻게든 심장이나 머리같은 급소는 피했지만 역시 어검술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생각하기도 전에 무사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말했다.
” 그 검형은… 뭐지…?”
무사시의 의문에 검마가 대꾸했다.
” 왜검(倭劍)이오.”
” 왜검…?”
” 당신의 이도류가 아무리 기오막측하다고 해도 근본은 동영검술. 그리고 오래전부터 왜구에 침략당했던 명제국에서는 동영검술을 연구하여 왜검술을 만들어서 동영검술의 약점을 노렸소. 또한 우리 무영문에서도 왜검술의 검형을 나누어 무영탈혼검법에 흡수시켰소. 그래서 쉽게 공격의 궤도를 예측했던 거요.”
” … 그런 사소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무사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내 마음의 칼날은 바로 심검(心劍). 심검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심검 뿐! 그런데 어떻게 제약에 갇힌 초식으로 내 부처베기를 막아낼 수 있단 말이냐!”
무사시는 왜검술과 이도류의 상성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들같은 초극고수들에게 그런 건 부차적인 것일 뿐 승패에 큰 영향은 줄 수 없었다. 그가 진짜로 궁금한 것은 심검을 일개초식으로 견뎌낸 말도 안 되는 상황 그 자체였다.
그러자 검마가 말했다.
” 정말 그게 심검이오?”
” 무슨 소리지?”
” 당신이 쓴 부처베기는 마음의 칼날일지언정 진정한 심검이라 생각치 않았소. 속박에서 벗어나있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초식의 굴레에 메여있었지. 그렇기에 나 또한 초식을 벗어나서 상대하지 않고 정석대로 상대했을 뿐이오.”
” ……!!”
무사시는 이를 악물었다. 검마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웃기지 마라.”
그는 절대지경에 오른 후 의념절기를 연마해서 인지를 벨 수도 있게 되었고, 마음의 칼날으로 시공을 격해서 벨 수도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모든 걸 벨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찼는데 자신이 심검지경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검마의 눈은 한없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세계의 모든 무인(武人) 중 진정한 심검을 시전할 수 있는 자는 천상천하에 단 한 명.”
” 뭐라고?! 그게 누구냐.”
” 육의(六意)의 빛으로 성천(聖天)을 비추는 검선(劍仙) 뿐! 그의 검에 비하면 당신의 검은 아직 미진하오.”
그랬다.
검마가 방금 망설임을 느끼고 무사시의 부처베기의 약점을 파악했던 이유는 그저 그 윗수준의 절학을 기억으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검선 여동빈의 육의성천도가 진정으로 초식을 초월하여 천지신명에 도달하는 순간이었고, 그 엄청난 감흥에 비하면 무사시의 검술이 그저 겉보기뿐인 심검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 웃기는 소리…!!”
스스스스
무사시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뻗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양손에 들려있던 이도가 모두 흑광(黑光)으로 질척질척한 빛을 뿜어내었고, 그는 오로지 분노와 살의에 휩싸인 사신(死神)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알게모르게 마력(魔力)마저 뿜어내는 것 같았지만 지금 검마는 그 이유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잠시 후 무사시의 검이 상단세로 검마를 베어왔다.
콰과과광!!
위력이 방금 전보다 몇 배나 강해진 것 같았으나 검마는 냉정침착하게 자신이 훨씬 유리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검의 힘에만 치중하는 모습. 검류의 흐름이 안정을 잃었다.’
본디 무사시의 강함은 끝모를 침착함과 냉정함으로 일격필살의 검기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무사시가 중심을 잃고 기술의 배분에 실패한 이상 그의 전력은 원래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에 빈틈을 찔려서 한쪽 어깨를 당한 것 또한 치명타였다.
콰과광
검마는 강검에 마주 강검으로 대항하면서 동시에 무영검기와 탈혼검기를 운영했다. 두 개의 검기는 서로 다른 성질을 내뿜으며, 공격하는 순간에만 실체화하면서 무사시의 방어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겉보기에는 대단한 효과를 보이지 않으나 실전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게 바로 검마의 절대지경이었다. 상대가 잘못 대응하면 일격에 목을 따버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차츰차츰 상대의 전력을 깎아내는 게 가능했다.
츄칵
무사시는 어느 순간부터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새 첫 대결전장에서 멀어져서 웬 이름없는 절벽까지 몰렸고, 검마는 절벽을 등지고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진어검의 술수로 수만 개의 검기를 날렸다.
퍼버벅
무사시는 검기에 몸에 꿰뚫려서 중상을 입은 채 절벽에 날려갔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그는 고통때문에 아파하기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무사시의 모습이 만장단애 밑으로 떨어져서 사라지자 검마는 싸늘하게 절벽 밑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검마의 실력은 아직 무사시에 미치지 못했다. 막 절대지경에 오른 검마는 자신의 절학을 절대지경에 맞춰 다듬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다고 봐도 좋았고, 그건 진심을 다한 결전에서는 천지차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무사시는 시종일관 자신만만하게 검마를 공격했던 것이다. 그는 절대지경의 전투에 숙련되어 있기에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검마의 몇 마디에 무사시는 난데없이 자신이 갖고있던 심검의 자부심이 무너졌고, 그건 고스란히 그의 검 실력에 영향을 미쳤다. 냉정함을 강점으로 해야 할 검객이 냉정함을 잃어버린 순간 승부는 나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 운이 좋았군.’
사실 어깨를 당했어도 실력차는 여전했기에, 무사시가 끝까지 냉정하게 실력을 선보였다면 지금쯤 처참하게 죽어있는 건 무사시가 아니라 검마였으리라. 사실 검마 본인도 이렇게까지 쉽게 무사시가 흔들릴줄은 몰랐기에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무사시는 어째서 그렇게 쉽게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인가?
‘ 천재이기 때문인가…’
잠시 생각하던 검마는 그게 바로 천재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무사시는 그저 아류로 절대지경에 올랐으며 일견에 스친 인연만으로 무토도리를 대성해버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천재였다. 태어나서 제대로 된 패배라는 건 한번도 겪지 않았고 기껏해봐야 십이율주의 천의무봉의 파해법을 모르는 수준이었다. 천상천하에 자신보다 강한 검객은 없다는 확고부동하면서도 절대적인 자신감과 오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자신이 성취한 심검의 경지가 사실은 심검이 아니며 선인(先人)에 비하면 얄팍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게 분명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황은 하겠지만 이내 인정하고 다음 일을 생각하겠으나 –
‘ 그는 자기자신을 마음 속에서 너무 키운 것이다.’
쓸데없이 성장해버린 자아와 오만이 그 사실을 용납하게끔 놔두지 않았다. 절대지경의 무적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결국 자기자신에게 져 버린 것이다. 이건 검마의 승리가 아닌 미야모토 무사시의 패배였다. 또한 천재가 한 번 실패를 겪고 무너져 내리면 범인보다 훨씬 회복하기 힘들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 죽이러 가야겠군.”
파앗
검마는 잠시 대결을 돌아본 후 즉시 절벽 밑으로 뛰어내렸다. 보통이라면 이 만장단애에서 떨어져내리면 죽을거라 생각하겠지만, 상대는 미야모토 무사시였다. 자기 칼에 당해서 중상 좀 입은 정도로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검마는 절벽 밑으로 내려가서 그를 확실하게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검마가 이윽고 현란한 신법으로 절벽 밑에 내려서자 그 곳에는 비틀거리며 서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보였다. 어찌어찌 무사히 내려온 것 같기는 했으나 이미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검마는 달려들어서 무사시를 공격했다.
까앙!
까앙!
병기 부딪히는 소리가 두 검객의 귀를 시끄럽게 했다. 대결에 몰입했다면 이런 검음때문에 신경이 거슬리지는 않겠지만, 이미 승패가 난 상태에서 죽이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사시는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으려고 칼을 휘둘렀고 검마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죽이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푸욱!
결판이 났다.
무사시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무리 단련된 무사라 해도 심장에 칼이 꽂히면 피를 꿀렁거리며 흘리며 반사적으로 신음성을 내는데 그런것도 없었다. 대신에 무사시가 말했다.
” 그… 검선…을… 진작… 얘기해… 줬으면… 난…”
” ……”
” 내 검… 네가… 가져가…라.”
무사시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검마는 천천히 심장에서 검을 뽑으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검선의 존재를 얘기해줬으면 어쩔 셈이었단 말인가?
검선과 싸워보려고 중원무림 대신 천계로 갔을까?
미야모토 무사시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기에 검마는 미운 감정보다는 안타까운 감정이 앞섰다. 한평생 너무도 순수하게 힘을 추구했기에 자기자신도 주변도 돌아보지 않은 불꽃같은 사내였기 때문이다.
검마는 무사시를 죽인 후 그의 무덤을 만들어서 위에 자신이 쓰던 명검, 호조(毫曹)를 꽂았다. 대신에 그가 원래 쓰던 아메노하바키리를 들어서 중얼거렸다.
” 잘 쓰겠소.”
아메노하바키리는 무사시가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받은 검으로써 마(魔)에 강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무사시는 마지막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인 검마에게 자신의 검을 물려준 듯 했다. 검마는 씁쓸한 눈으로 무사시의 무덤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는 곳은 바로 요녕성이었다.
그 곳에서 동료들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