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71)
0071 ———————————————-
복마전(伏魔殿)
내가 흑사회주를 따라서 간 곳은 인적없는 폐가(廢家)였다. 하지만 폐가에 두세 걸음을 들어가서 조그마한 방을 지나자, 그 곳에는 명백히 무림세력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정돈된 공간이 나타났다.
흑사회주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소협. 이틀 후 해시(亥時)에 가비관(加泌館)으로 찾아와. 그곳에서 [푹 젖은 매실주를 원없이 마시고 싶다] 라고 암호를 대면 바로 암경무투회장으로 들어갈 수 있어.”
나는 그가 말한 시간장소와 암호를 외웠다. 내 암기력이 좋은 편이라서 왠만하면 까먹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되뇌고는 반문했다.
“암경무투회에서 승리하면 뭘 얻을 수 있지?”
“크크크… 너무 늦게 물어보는 거 아냐? 소협은 정말로 순수하게 싸우고 싶어서 내 제안을 받아들인 거군.”
흑사회주는 뭐가 그리 웃긴지 낄낄 웃어댔다. 그러더니 탁자에 있던 술을 한 병 들이키더니 말했다.
“소협같은 사람 싫지 않아. 왠지 우리와 동류(同類)의 냄새가 나.”
“닥치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라.”
흑사회주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암경무투회는 총 5회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정기적으로 열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참가자가 다 모였을 때만 열리지. 32명의 무인(武人)이 모였을 때에만 투마(鬪魔)께서 개최를 결정한다는 거야. 소협은 내가 영입한 마지막 무인이지.”
“그래서 이기면 뭘 받냐고.”
“비급(秘給)과 영약(靈藥), 보물(寶物)!”
“…….!!”
“그걸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무림공적(武林公敵)조차도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대회인 것이지. 매력적이지 않아?”
흑사회주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설마 무림인에게 있어서 목숨과도 같은 무술의 비급과 영약에 보물까지 제공한다니? 그것도 마도팔문의 수라문주가 그런 걸 제공한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었다.
“비급, 영약, 보물이라. 그런게 있으면 투마 본인이 가져야 하지 않나? 뭐하러 그 자는 남좋은 일을 하지?”
그러자 흑사회주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거짓말같겠지만 거짓말이 아니야. 투마는 전투광(戰鬪狂)이라서 자신이 싸우는 것도 남이 싸우는 걸 보는 것도 좋아해. 그래서 자신의 영향력으로 낙양의 권력자와 고관(高官)들을 끌어들여서 암경무투회를 만들어 냈지. 모든 은원을 집어치우고 순수하게 목숨걸고 싸우는 맹자(猛者)들의 사투를 보고싶다는 이유였다.”
“그것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는데.”
“그래그래, 사실 그 비급 영약 보물이란 건 투마가 제공하는 게 아냐. 투마를 도와서 암경무투회를 열고 있는 모종의 권력자(權力者)가 있다는 소문이야. 투마께서 그 보상을 빼돌릴 생각도 못하는 걸 보면 그 권력자의 힘이 대단한가 보더군.”
“으음… 진짜인가.”
“그래. 비급도 영약도 보물도 진짜다.”
흑사회주가 술을 한 병 더 들이키며 말했다.
“참고로 전회의 우승자가 얻은 것은 전륜도법(轉輪刀法)과 은율과(銀栗果), 자령언월도(紫靈焉月刀)였지. 지금 생각해도 굉장한 보상이었어.”
“……”
“흐흐. 이번 회 보상을 알고 싶지 않나? 금괴 하나만 더 주면 보상은 물론 출전자의 내력도 다 가르쳐 주지.”
콰광!!
“으윽…!!”
내 손에서 떨쳐진 단도가 빠르게 공간을 관통하더니 흑사회주가 마시던 술병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는 굉음을 내며 벽을 부수고도 힘이 남아서 십여 장 바깥까지 그대로 날아갔다. 흑사회원들은 동시에 흉기를 뽑아서 내게 달려들었으나 내가 뇌운장(雷雲掌)을 폭사하자 장력에 말려들어서 뒤로 날아갔다.
“으아아악…”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그 자리에는 약간 안색이 핼쓱해진 흑사회주가 잘린 술병 목을 들고 앉아있었다. 나는 검을 그에게 겨누며 차갑게 말했다.
“까불지 마라. 금괴 한 개면 충분하다. 네가 금괴 값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반대로 내가 네놈 목을 언제든 쳐줄 의향이 있다는 걸 알아둬라.”
“… 알았다. 그냥 농담 좀 해본 거니까 칼을 치워 줘.”
스릉
내가 검을 집어넣자 흑사회주는 손을 들어서 흑사회원들을 제지시켰다. 나는 이 자리에서 흑사회와 한판 떠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는데 내 전의를 흑사회주가 알아챈 것이었다. 그는 기가 질린다는 듯 말했다.
“백웅 소협은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건가.”
“뭐?”
“우리가 전멸한다 하더라도 소협 사지 중 하나 정도는 가져갈 수 있어. 왜 자꾸 호랑이 아가리에 목을 들이미는 거지?”
나는 살기를 치켜세웠다.
“내가 그런 각오도 없이 여기까지 따라온 줄 알았나! 정말 뒈져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군.”
지잉
“아, 알았다! 그만둬라. 소협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
내가 다시 검을 뽑아서 천뢰인을 끌어올리자 흑사회주는 기겁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오랫동안 흑도에 몸을 담은 인물이었기에, 상대방이 단순히 위협을 하는건지 진심인건지 본능적으로 판별하는 능력이 발달해있는 것이다. 내가 시종일관 진심이란 걸 알아채자 쓸데없는 협박을 그만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것이다. 흑도나 사파와 거래할 때는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잡아먹히는 게 당연한 일이다. 흑사회주도 겉보기에는 가볍고 능글능글해보이지만 여차하면 온갖 비겁한 수를 써서 나를 죽이려 들게 뻔했다. 흑사회주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말했다.
“… 어차피 나도 소협에게 돈을 걸 생각이니 출전자의 정보와 보상을 가르쳐 주지.”
“진작 그럴 것이지.”
“출전자의 정보는 이 책(冊)에 정리해 두었으니 나중에 확인해라.”
나는 흑사회주가 옆에서 꺼내서 던진 한 권의 책을 받았다. 얇은 책이었는데 확실히 그 안에는 무림고수들의 명호와 절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아마도 암경무투회에 출전하는 무림인들의 정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양가창법(楊家槍法), 곤륜선약(崑崙仙藥), 칠보혈검(七寶血劍)이다.”
“양가창법!!”
나는 양가창법이라는 이름에 흠칫 놀랐다.
‘ 천하삼대창법(天下三大槍法)!’
이광은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뇌신류의 창술은 천하제일이지만 굳이 견줄만한 존재가 있다면 아미창(峨嵋槍)과 양가창(楊家槍)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세 개의 창법이야말로 천하삼대창법이라고 설명했었다. 아미창은 불문 창술의 정화였으며 양가창은 실전무예의 극한이라고 들었었다. 그 자존심 높은 이광이 뇌신류와 비교대상으로 삼을 정도면 천하에 다시 없는 절세무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흑사회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양가창법은 잘 모르겠고 곤륜선약은 소림사의 대환단에 버금가는 영약이지. 그리고 칠보혈검은 성(城) 하나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 희대의 보검이다.”
“잘 모른다고?”
“그게 대단한건지 뭔지 사실 알쏭달쏭하다. 투마의 안목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있지.”
“……”
나는 흑사회주가 진심으로 양가창법의 가치를 잘 모른다는 걸 알아챘다. 분명히 이광이 천하삼대창법이라 말하며 양가창법에 찬탄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광이 파악하고 있는 천하의 절세무공과 세상사람들의 지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 했다. 어쩌면 양가창법 자체가 천하에 그다지 명성을 떨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흑사회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리고 혹시해서 말해두는데 투마께 무례를 범하거나 공격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그렇게 되면 천하의 그 누구도 그 자리에서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닐 텐데. 네 목도 함께 달아나서 그런 거겠지?”
“……”
정곡을 찌르자 흑사회주가 기가 막혀했다.
“소협 정말 제정신인가? 내가 낙양 암흑가의 지배자인 흑사회주라는 걸 알고도 이렇게 도발을 하는 거야? 미치겠군!”
“그래봤자 수라문의 하부세력일 뿐이지. 너한테 일일이 쫄아서야 어떻게 암경무투회에 나가겠나?”
“하아… 대단하군 정말.”
기가 질린 흑사회주가 손을 내저었다. 그는 내게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암경무투회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승리로 인정되지 않는가?”
“꼭 그런 건 아니고 상대의 투지를 꺾고 패배선언을 들으면 된다. 하지만 그러느니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는 놈들이 대다수일걸.”
“왜지?”
“패배자는 사지의 근육이 끊기고 내공이 폐쇄되어서 노예로 팔리기 때문이지. 여자무림인인 경우에는 남쪽 해적들에게 팔려가서 평생 배 위에서 성노예가 되는데 항복따윌 하겠나? 목을 쳐주는 게 훨씬 자비롭다고 보는데.”
“……”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암경무투회가 잔혹한 대회인 탓이었다. 흑사회주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이미 암경무투회가 몇 차례 열렸고, [본보기]를 당한 패배자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나중에.”
흑사회주가 말했다.
“아무튼 이틀 후에 보지. 소협의 건승을 기원하겠어.”
나는 흑사회를 나와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한씨세가로 향했다.
‘ 일단 어떤 상황인지 살피기나 해 볼까.’
예상외로 일정이 틀어진 이상 한씨세가의 동정을 살펴 볼 필요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씨세가에는 여전히 경비무사가 서 있지 않았지만, 그 대신 빈객들이 여기저기에서 내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쐐액
“잠깐 거기 서라.”
기쾌한 경공술로 나타난 흑의의 사내가 한씨세가로 들어가려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헌원사도 라고 하는 무림인들의 막내였다.
“왜 내 앞을 막지?”
“너, 개방이나 흑사회와 시비가 붙었던 모양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네가 오지 않았다면 우리 헌원사도가 너를 찾아가려 했었다.”
스스스
헌원사도의 나머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상당한 경계심을 지닌 채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힐끔 둘러보자 첫째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네가 기룡신군 님과 함께 황궁어전대회에 나가는 건 뭐라고 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그런 자리에 별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쓸데없이 여기저기에서 분탕질을 쳐서 한씨세가를 휘말리게 하는 건 가만히 둘 수 없다.”
“한씨세가와는 관계없어. 나는 내 일을 할 뿐이니 비켜라.”
“그럴 순 없지. 네 녀석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주마.”
우우웅
헌원사도가 동시에 도기(刀氣)를 끌어올렸다. 그들의 내공이 내게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상진의 압박에도 별다른 압박감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 하나하나가 뛰어난 고수이기에, 이대로 공격을 받는다면 골치아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두어라. 천둥벌거숭이들아.”
그 목소리는 일전에 한 번 들어본 것이었다. 그리고 한씨세가의 건물에서 매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흑발의 미녀가 천천히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씨세가의 가주인 한백령으로써 반로환동을 한 고수였다.
한백령을 발견한 헌원사도가 무기를 거두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너희 충성심은 알겠지만 이런 일에 일일이 소란피울 것 없다. 다른 빈객들도 차분히 있도록 해라.”
스으으
그러자 곳곳에서 기척이 스러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 자리에 헌원사도 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무공을 지닌 한씨세가의 빈객들이 적어도 십수 명이나 둘러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동시에 덤볐을 경우 나는 죽었으리라.
내가 침을 꿀꺽 삼키자 한백령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나를 따라오거라.”
“알겠소.”
나는 조심스럽게 한백령을 따라서 안쪽의 건물로 들어갔다. 한씨세가는 은근히 건물이 크고 넓어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복도가 미로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녀를 뒤따라서 약 일각 정도의 시간을 따라들어가자, 저번에 보았던 그 연못 장원이 나타났다.
한백령이 말했다.
“너는 정말 죽고싶어서 환장한 것 같구나. 어찌 암경무투회에 참가할 생각을 한 거냐?”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는 것이오?”
“흥, 이 안에 가만히 있어도 나는 개방보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네 녀석은 정말로 죽고싶어서 요 며칠간 개지랄을 하더구나.”
“……”
그렇게 톡 쏘아붙인 한백령은 연못의 조그마한 목재다리 위로 걸어올라갔다. 한동안 연못의 잉어를 감상하던 한백령이 말했다.
“아해야. 네가 강해지고자 하는 열정이 그리 강할 줄은 몰랐다. 이대로 십 년만 용맹정진해도 구파일방의 장문인(掌門人)에 못지 않은 무공을 지닐 텐데 왜 그리 서두르느냐?”
한백령의 목소리에는 뜻밖에도 살기가 별로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적은 그보다 더욱 강하기 때문이오.”
한백령이 뜻밖이라는 듯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런 자가 흔하지는 않을텐데 대체 누구와 싸우려는 거지?”
“……”
“흥, 뭐 상관없다. 몇몇 짐작가는 놈이 있으니.”
그렇게 중얼거린 한백령이 말했다.
“하지만 정신 차려라. 너는 실전경험을 쌓으려고 암경무투회에 출전하는 거겠지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지금 실력으로 나간다면 네 녀석은 2회전도 되지 않아서 탈락하고 말 게다.”
“무슨 소리요? 내가 그렇게 딸리는 실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소.”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걸 받아보아라.”
한백령이 손을 들었다.
쿠구구구
“……!!”
나는 눈을 부릅떴다. 첫 대면에서 한백령과 마주쳤을 때, 세 겹으로 중첩(重疊)되면서 내 팔을 부숴버릴 듯한 장력! 그게 눈에 보일 정도로 기(氣)의 유형화를 이루며 흰색으로 번쩍거렸다. 내가 급히 검을 꺼내서 천뢰인을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전개하자, 한백령이 슬쩍 장력을 내게 밀어냈다.
쿠콰콰쾅
폭발음과 함께 나는 전신이 새하얗게 얼어붙는 느낌과 함께 땅바닥을 지익 끌면서 밀려났다. 몸 전면에 새하얀 서리가 얼어붙는 듯 했다. 나는 피부가 얼어서 감각이 없는 가운데, 내가 어느 새 천뢰인으로 방어를 했는데도 무려 3장이나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엄청난 절세무공!
한백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암경무투회에는 방금 펼쳐낸 수법을 피해내거나 좀 더 무난하게 막아낼 수 있는 놈이 적어도 서너 명은 된다. 무림의 기준으로는 절정을 확실히 넘어서서 초절정에 몸을 담근 자들이며, 대개 전대거마(前代巨魔) 혹은 정체를 숨긴 흉인(凶人)들이다.”
“그런 고수들이 출전한다고?”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초절정고수는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급,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였다. 아무리 사파의 거마라지만 일개 대회에 그런 자가 서너명씩 출전하다니!
“그놈들을 끌어내는게 팔마의 목표이기도 하지.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지만 뒷사정이 있다.”
“……”
“그놈들에게 네가 내공의 이점을 살리려 해도 꼼짝하지 못하고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들이니.”
“무… 무슨. 당신은 어떻게 암경무투회를 알고 있는 거요?”
“말했잖느냐. 가만히 여기 앉아 있어도 개방 못지않은 정보가 들어온다고.”
내가 몸에 달라붙은 서리를 뇌령지기로 털어내자 한백령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언제나 빛보다 어둠이 위험한 법. 네 실력은 황궁어전대회에서 무난히 금의위에 입상할 수 있는 실력이지만 암경무투회에서는 처참하게 살해당하기 딱 좋은 수준이다.”
“나를 막는 건 한씨세가의 명예를 위해서요?”
“그것도 있고, 네 무공은 청룡과 너무 많이 닮아 있다. 혹여 지인(知人)이라면 귀찮아지니 본녀가 네놈을 보호해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무슨…”
내가 황당해하자 한백령이 말했다.
“분명히 말해두지 애송아. 네가 암경무투회에 나가기는 십 년(十年)은 일러. 흑사회주처럼 야심만만한 인간이 돈이나 걸면서 비급과 영약을 포기하는 이유를 생각지 못했나? 암경무투회에서 우승하고자 한다면 일대종사급 실력이어야 한다.”
“크윽…”
“알아들었으면 별채에 콕 처박혀 있어라. 정말 죽여버리기 전에.”
나는 한백령의 협박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녀는 삼절 이광과 같은, 범접할 수 없는 초절정고수의 경지인 것이다. 무형지기란 것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비슷한 수준까지 무위를 끌어올려야 했다.
나는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기에 악에 받쳐서 말했다.
“그럼 말만 하지 말고 좀 도와주시오! 내가 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대체 왜?”
“내겐 해야할 일이 있소. 더 빨리 강해지지 않으면 평생가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오. 언제나 목숨을 걸고 부딪혀야만 하는 자의 절망을 생각해 본 적 있소?!”
“……”
한백령은 침묵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 좋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네놈 원대로 해 주지.”
스스스스
한백령이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어디엔가 있었던 청홍(靑紅)의 쌍검(雙劍)을 어딘가에서 꺼냈다. 그 쌍검을 든 채 검식(劍式)을 잡던 한백령이 눈을 빛냈다.
“잘 봐라 이 한 수를.”
치링 – !!
거대한 새가 나는 듯 했다. 나는 청염(靑炎)과 홍염(紅炎)이 수백 수천 갈래로 교차하는 가운데 일위동풍(一威東風)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개(滿開)하는 검기의 소나기 속에서 감히 위력을 측정할 수 없는 거력(巨力)이 천지를 두 갈래로 분단하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압력 속에서 나는 전신의 모공이 활짝 열려서 뒤집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두개의 상이한 기운이 서로 압착하며 불규칙적으로 교차하는데, 그 변화를 살펴서 알아내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공간조차도 찌부러뜨린 검선(劍線)이 허공을 베고 지나갔다.
단천(斷天).
“……!!”
선명하게 베여서 그어진 공간의 균열이 보였다. 뒤늦게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봉황(鳳凰)같은 검기는 마치 환상과도 같았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강력하고 변화무쌍한 검법을 처음 보았기에 넋을 잃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검술이 존재했단 말인가?
퍼벅
검의 전개를 끝낸 한백령이 청홍의 쌍검을 어검술(御劍術)로 조종하더니 바위에 날렸다. 두 개의 검은 다시 바위에 박혔는데 마치 두부를 꿰뚫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시연을 보여 준 한백령이 말했다.
“네놈도 검객 나부랭이라면 방금 걸 보고 느낀 게 있을 것이다.”
“그 검법은 대체 뭡니까?”
“화신류(火神流) 진야월영(眞夜月影).”
한백령이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멀어져 갔다.
“네 병신같은 단점을 고치기에 딱 좋은 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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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플레 논의 때문에 글을 수정했습니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