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77)
0077 ———————————————-
복마전(伏魔殿)
그리고 괴이한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 너는 망량의 지인이냐?]그 목소리는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주변을 차분히 살폈지만 그럴듯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주 사자후로 외쳤다.
“너는 누구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갔냐?”
[ 으후후… 반천맹(反天盟)의 인간이라면 가만 놔둘 수 없지. 여기가 네 놈의 무덤이다.]
반천맹?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반응하기도 전에 사방 천지에서 식물 줄기가 솟아올랐다. 식물줄기 하나하나는 무려 3장이나 되는 크기였는데, 잘 보니 마을 중앙에 무언가가 묻혀있는 듯 했다. 마치 촉수처럼 튀어나온 줄기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나를 공격해 왔다.
쫘악
내가 천뢰인을 전개해서 줄기를 갈라버리자 목소리가 놀란 듯 했다.
[ 아니? 상당한 실력이군.] “네놈은 주술사냐? 망량은 어떻게 했냐.”[ 으하하하… 달라지는 건 없다. 죽어라!]
미친듯한 광소가 울려퍼지며 식물줄기가 한층 요란하게 몸을 떨며 나를 공격해 왔다. 만일에 5년 전이었다면 저 흉칙한 줄기에 맞설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몸을 피했을 것이다.
“하!”
하지만 나는 코웃음을 치며 뇌명의 호흡을 발동하고는 즉시 중앙까지 정면으로 베어들어갔다. 한 줄기 섬광이 스치고 지나가자 줄기들은 체액을 내뿜으며 요란하게 터져나갔다.
촤아아악!!
그리고 식물줄기의 중앙에 있던 구근을 향해 전력을 다해서 뇌운장을 날렸다.
콰과광
[ 으아아아아악…]비명이 울려퍼졌다. 내 생각대로 놈은 그 안에서 식물줄기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뇌령지기 때문에 전신이 탄 것처럼 변해버린 놈은 꿈틀거리면서 구근에서 기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구근에서 기어나온 주술사를 보자 눈을 부릅떴다.
“……!!”
인간의 형상이 아니다!
곤충의 모습을 하고, 차라리 파리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는 파리 인간이 거기에 있었다. 인간이란 걸 짐작하고 있는 것은 두 다리가 달려있기 때문이고, 나머지 부분은 파리라고 하기도 뭐한 괴상망측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새빨간 입 사이에서 촉수가 파들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통 인간은 저 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꺾이리라.
내가 놀라고 있자 그 주술사가 끼긱거리며 말했다.
[ 이놈… 신에게서 받은 이 훌륭한 신체를 보고 감히! 죽어라아아앗.]놈은 발광을 하며 몸을 꿈틀거리더니 용수철처럼 날려 왔다. 어떻게 봐도 인간의 모습을 한참 넘어서 있었기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있다가, 일 검(一劍)에 놈을 베어죽여 버렸다. 시퍼런 체액이 튀더니 이윽고 땅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 놈은 대체 뭐야?”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거두며 진랑곡 위, 망량의 거처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산을 오르는 도중에 또 괴상한 괴인(怪人)들이 습격해 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끼에에엑!!
“뱀?!”
정확히는 하체와 얼굴이 뱀으로 되어있는 인간들이었다. 놈들은 팔에 칼과 삼지창을 든 채 튕기듯이 내게 덤벼들었다.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만한 고수도 어려워할만한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뱀인간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다가 한 칼씩 꽂아주었는데 생각처럼 잘 잘리지가 않았다.
푸콱
[ 끼에에엑…]뱀 인간들은 너무 내구도가 좋은 탓에 처참하게 쓰러져서 죽어갔다. 고통없이 수십조각 내 줄 생각이었는데 어설프게 몸이 난자당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선천적인 육체가 인간에 비해 매우 강인한 듯 했다. 나는 망운진이 예전처럼 강력하게 작용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뱀인간들이 덤벼드는 걸 알아챘다.
‘ 아냐. 이 놈들이 망운진을 억지로 뚫으려고 대량으로 들어와있는 것 뿐이군!’
나는 기가 막혔다. 망량의 망운진은 위력을 잃지 않고 그대로 발동 중이다. 하지만 침입자로 보이는 뱀 괴인들은 연신 괴성을 지르며 억지로 진을 돌파하려는게 아닌가! 무식하고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뱀 괴인의 숫자는 백여 마리가 훨씬 넘는 듯 했으므로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리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기문둔갑을 공부했기에 놈들처럼 무식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대충 생문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망운진을 뚫고 오두막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망량!”
“늦지 않게 왔구려…”
망량은 씁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비해 꽤 달라져 있었는데, 전신에 까마귀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줬던 흑백련을 잘 소화했는지 상당한 절정내공이 느껴졌다.
나는 시뻘겋게 변해가는 진랑곡의 하늘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오? 저 놈들은 대체 뭐고?”
“금의위에서 칠요(七曜)를 찾았기 때문이오.”
“뭐라고?”
망량은 힐끔 망운진 쪽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백웅 당신이 사인(蛇人)의 숫자를 절반 가까이 줄여줘서 시간이 나겠군. 그래도 마물(魔物)이 오면 돌파당할테니 빨리 도망쳐야겠어.”
“빨리 설명해 보시오.”
망량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 동안 나는 당신에게서 받은 흑백련으로 내공을 키우고, 무공을 배움과 동시에 술수를 익혔소. 나는 상승효과로 술수의 경지를 높여서 나름대로 한 사람 몫을 할만큼 되었고, 그때쯤 자신감이 생겨서 요동(遼東)으로 향했소.”
“요동?”
“발해의 옛 땅은 그 근방에 있었소. 나는 거기에서 봉황조각의 단서를 찾았는데, 그 와중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소.”
망량이 손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산산조각난, 아니 마치 원래부터 조각나 있었던 듯한 은빛 봉황조각이 있었다. 그 봉황조각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던 망량이 말했다.
“이건 정해진 순서대로 해체하는 도형이었소. 또한 여기에는 발해의 마지막 왕이 남긴, 발해 멸망(滅亡)의 이유가 담겨 있었소. 발해는 거대한 화산의 폭발로 멸망했다 하지만, 그 화산폭발의 원인은 칠요(七曜)였던 거요.”
“수요신검 막야같은 게 그 근방에 있었던 것인가?”
나는 막야의 봉인을 풀었을 때 몰려왔던 거대한 폭우를 생각하며 물었다. 그러자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土曜)의 신보(神寶)는 삼황오제 복희가 하사한 세계 최초의 팔괘(八掛)였소. 정확히는 팔괘도(八掛圖)라고 해야겠군. 누군가가 토요의 비보를 봉인지에서 가지고 나가는 바람에 팔괘로 안정되어 있던 지맥이 흔들렸고, 화산 때문에 발해 제국이 멸망했던 거요.”
“……!!”
정말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이야기였다. 아무리 칠요의 비보가 대단하다지만, 설마 지맥을 움직이고 화산을 폭발시켜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내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헌데 나는 조사하던 중에 그 토요의 비보를 가져간 자들이 누군지 알게 되었소.”
“그게 누구요?”
“바로 금의위… 더 정확하게는 황제의 뒤편에서 암약하는 일족(一族)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소. 그 자들은 수백 년 전부터 황조를 바꿔가면서 칠요를 모으는 데 집착했소. 아마 현재의 금의위도 그 자들에게 조종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오.”
“……”
“나는 그 자들의 세력을 임의로 복마전(伏魔殿)이라고 부르고 있소.”
나는 갑작스러운 정보에 정신이 없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금의위는 내가 수련을 하고 있던 5년 동안 가만히 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칠요의 비보를 모아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복마전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 내 나름대로 반천맹(反天盟)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지난 몇 년 동안 활동해 왔소. 의로운 자들이 나를 그 동안 도와줬지. 그러나 금의위와 동창은 이미 무명제사서를 해석해서 술법사를 양성하는데 성공했는지, 이제는 막기조차 힘든 힘을 지니게 되었구려…”
“설마 바깥의 괴상한 주술사나 뱀인간들은?”
“복마전의 마인들이 무명제사서의 술법을 이용해서 소환해낸 힘이오.”
나는 기가 막혀서 말했다.
“무슨… 저 놈들은 이계의 주술사가 탈출하면서 무명제사서를 해석하는 게 불가능해진 게 아니었소?”
“그게 아닌 듯 하오. 아마 복마전은 주술사 대신에 이계의 존재를 또다시 소환해낸 모양이더군.”
“……!!”
나는 경악했다. 그 괴물같은 놈에 못지 않은 놈이 또 소환되었다고?!
망량은 바깥에서 끼익거리는 뱀인간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저 자들은 이제 인신공양으로 힘을 모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계의 힘을 얻어낸 모양이오. 아마 요 몇 년 사이에 칠요를 하나 발견해버린 모양이야… ”
“칠요를 하나 발견한 것만으로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단 말이오?”
“우리가 칠요의 수기를 공양한 것만으로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알고 있잖소? 칠요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면 저 정도는 일도 아니오…”
“……..”
나는 이를 질끈 깨물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복마전에서 움직인 금의위의 압박이 다가오기에, 더 늦기 전에 당신에게 정보를 알려주려고 진랑곡에 불렀소. 하지만 놈들이 한 박자 빨랐던 것 같군.”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되오. 나를 따라오시오.”
“… 부탁하오.”
나는 망량을 데리고 망운진 아래로 내려갔다. 망운진을 내려가면서 뱀인간들이 쇳소리를 내며 덤벼들었지만 나는 쉴새없이 베어넘겼다. 원래라면 이 놈들의 합공에 꽤 애를 먹었겠지만, 청룡무관에서 이광의 괄시를 받아가며 괜히 무공을 수련했던 게 아니다. 간간히 뇌명을 발휘하며 베어넘기자 순식간에 50마리 이상을 죽일 수 있었다.
망량이 내 무공에 깜짝 놀랐다.
“저, 정말 대단하군. 이 뱀인간 하나하나는 일류고수들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데…”
“흥, 지금 나한테 일류고수 따위가 눈에 찰 것 같소?”
나는 장난섞인 핀잔을 주면서 빠르게 진랑곡 마을로 내려갔다.
“갑시다.”
타다닷
그리고는 가까운 숲을 향해서 내달렸다. 망량이 경공술을 발휘해서 따라오는 걸 보면, 그 또한 몇 년 되지 않는 사이에 상승무공을 제대로 익힌 것 같다. 왠만한 무림 후기지수 수준은 되는걸로 보였다.
‘ 망량에게는 무공의 재능도 꽤 있었던 모양이군.’
내심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량은 말 그대로 술법 빼고 뭐든 잘 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와서는 여기저기에서 시뻘건 화염을 토해내는 썩은 시체같은 괴물들이 달려드는 것을 알아챘다. 이 놈들도 인간이라고 보기엔 많이 이상한, 이계의 괴물류인 것 같았다.
콰광
“크윽… 끝이 없구만.”
나는 이미 진랑곡 사람들은 포기하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식물뿌리를 조종하는 술법사에 의해 양분이 되었으리라. 지금 내가 해야하는 것은 망량만이라도 살려서 피신시키는 것이었다.
그 때였다.
삐이익 –
괴이한 소리가 들려 왔다. 망량은 그 소리를 듣자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 설마 비강장(飛腔腸)이!”
“그게 뭐요?”
“저… 삼각형 모양의 발자국… 으윽… 큰일났군.”
땅바닥의 기묘한 발자국을 보고는 안색이 새파래져 있던 망량이 급히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내버려두고 가시오. 지금 나타날 괴물은 당신이 마주쳤던 마물보다 더 독하고 무서운 놈이오. 떼지어 몰려다니면 답이 없으니, 나는 은형술(隱形術)로 몸을 숨기겠소. 당신은 최대한 빨리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시오!”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면…”
“안 되오! 제발 그냥 가시오. 놈들은 정말 무서운 존재요.”
그렇게 말한 망량은 그대로 부적을 꺼내며 뭔가 진법을 자기 주변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의 역량으로는 혼자밖에 보호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말할 정신도 없는지 정신없이 술법을 시전하는 망량을 보자 나는 왠지 오기가 생겼다.
‘ 난 이제 마물도 잡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왠 새같은 마물 때문에 도망쳐야 한다고?’
5년 동안 피맺히게 수련했던 게 아까워질 것이다. 나는 정 안 되면 도망치자고 마음먹으면서 조용히 뇌명의 호흡을 돋우었다.
쏴솨솨솨 –
뭔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멀리에서부터 반투명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무리지어서 달려드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소보다 몇 배는 덩치가 거대한 괴물들이 사람의 눈에 거의 안 보이게끔 반쯤 둥실 날아서 오는 걸 보자 기가 막혔다. 이 놈도 결코 자연계에서 정상적으로 수태될 수 없는 괴물인 것이다.
나는 호탕하게 외치며 검기를 내뿜었다.
“하! 이거나 받아라!!”
촤악!
뇌영검법에서 한단계 나아간 만승검결을 운용하며 쾌(快)와 환(幻)의 구결을 정신없이 내뻗었다. 수백 가닥의 검기가 솟구치더니, 전방에 쇄도하던 비강장이라는 괴물 한 마리를 회쳤다. 빠르고 강인해 보이는 괴물이었으나 역시 검기에는 썰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키기기긱
그 괴물 옆에서 달려오던 다른 비강장들이 갑자기 일제히 풍압(風壓)을 일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길다란 살덩이가 움틀거리며 내 헛점을 노리듯 사방을 맴돌기 시작했는데 외관상 매우 혐오스러웠다.
나는 내공을 크게 끌어올리며 뇌운장을 사방에 뿌렸는데, 번개의 힘을 맞자 비강장들은 일시적으로 비틀거리는 듯 했다. 그러나 큰 타격을 입지 않은 듯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한 가지를 알아차렸다.
‘ 이… 이 놈들은 물리적 타격을 거의 받지 않는구나! 순수한 기(氣)나 자연력만…’
꽈광
꽤애애애액 –
나는 그 깨달음을 후회할 새도 없이, 보이지 않는 괴물들이 난폭하게 날뛰면서 수백 마리씩 내게 공격을 날려대는 것을 감당해야 했다. 하늘에서 왠 광선을 쏘기도 했다.
“으아아아앗.”
나는 최선을 다 해서 저항했지만, 놈들을 수십 마리씩 베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다른 이계의 괴물들까지 끼어들어서 원거리에서 체액을 날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퍼버벅
약 반 시진 후, 괴물 중 한 마리의 촉수가 내 머리통을 터뜨렸다.
그것이 내 9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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