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79)
0079 ———————————————-
암천향(暗天鄕)
천우진이 있던 마을에서 나온 후, 나와 망량은 일단 함께 낙양에 들어갔다. 이전 생에서는 내 나름대로 무공을 쌓고자 했으므로 망량과 헤어졌지만 – 이번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므로 우선 망량과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고자 한 것이다.
와글와글
초저녁의 객잔에는 사람이 많았다. 망량은 개구리다리 요리를 시켜서 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흠 어디보자… 내가 의식을 진행할 때는 듣지 못한 이야기였는데, 그러니까 당신은 전생(前生)에 이미 태허천존의 축복을 받은 적이 있다는 거요? 그것도 대운(大運)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혼란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면서 원하던 비기를 익혔을 정도였지.”
“흠… 그게 이번에는 서왕모의 장생불사의 축복으로 변했다라.”
개구리 다리를 으득으득 씹어먹던 망량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술을 한 잔 따르며 말했다.
“뭔가 이상하군.”
“뭐가 말이오?”
“그 말대로라면 당신의 전생(轉生)은 신(神)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오? 물론 신격(神格)의 힘으로 위화감을 발견할 수는 있겠지만 태허천존이든 서왕모든 당신이 시간을 되돌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오.”
“그렇군…”
망량이 꽝 하고 탁자를 주먹으로 쳤다.
“그렇군이 아니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요?”
“……”
망량은 술을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일단 한 잔 하시오.”
“외견상 어린아이인데 괜찮겠소?”
“뭔 상관이오. 어차피 내공으로 주정(酒精)을 다 몰아낼 수 있으면서.”
“하긴.”
내가 망량의 술을 한 잔 받아서 마시자, 술 냄새가 향긋하고 좋았다. 대나무 술이라서 알싸한 맛이 혀 끝에 감돌았다. 나도 술을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한동안 술맛을 음미하고 있자 망량이 말했다.
“생각해 보시오. 태허천존은 도교의 유수한 신들 중에서도 수위권에 꼽히는 높은 신이며, 서왕모 또한 여선(女仙)을 총괄하는 직위에 있는 강력한 존재요. 그정도 되는 자들이니 막야의 수기를 먹고 강대한 은총을 내릴 수 있는 것이지. 헌데 그들조차도 당신의 전생회귀를 알지 못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소?”
“……?”
망량은 닭다리를 뜯어서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그 천암비서를 제작한 자, 혹은 회귀의 권능을 불어넣은 자는 최소한 태허천존이나 서왕모를 뛰어넘는 힘을 보유한 위대한 존재라는 뜻이오.”
“으음…!!”
나는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기에 침음성을 흘렸다.
‘ 천암비서를 만든 존재?’
여태껏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시간을 되돌려주는 신비한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칠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삼황오제, 도교의 신 따위를 접하다보니 의미가 달라졌다. 천암비서 또한 누군가가 제작했을 것이고, 그 제작자의 격은 인간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을 게 분명했다.
망량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당신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에 말려들었는지도 모르겠소.”
“그거야 늘 생각하는 것이오.”
“그런 의미가 아니지만, 흐흠. 여기 닭 한마리 더.”
망량은 어느새 닭 한 마리를 다 먹은 상태였다. 그는 추가로 안주를 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도교의 신격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소?”
“기문둔갑을 배우면서 얼추는 알고 있소.”
“사실 도교에서 신 취급을 하는 자들 중 대다수는 진짜 신이라기 보다는 신선(神仙)의 격을 높여서 칭하는 경우요. 적어도 도가수련자에게 있어서 신선과 신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지. 굳이 반선(半仙)이라는 존재를 따로 칭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소?”
“흐음.”
“헌데… 천암비서의 회귀를 가정하고 놓고 보면, 단순히 그런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몰라. 그들보다 격이 높은 존재라고 하면 타 종교에서 숭앙받는 진정한 신격(神格)밖에 없는 것이오.”
나는 의아해서 반문했다.
“도교에서는 태상노군(太上老君)과 석가모니를 거의 대등하게 치지 않소? 도불(道佛)의 격 차이는 대개 구분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흐흐, 그건 천축에서 비롯된 불교를 중원의 민간신앙에 결합시키고 흡수시키는 도중에 일어난 와전에 지나지 않소. 실제 천축의 불교에서 숭앙하는 신불(神佛)이라는 건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른 존재요.”
망량은 이번에는 닭날개를 뜯기 시작했다.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아니, 이야기를 잘못 했군. 천축이 불교의 발상지라는 이야기와 달리 천축은 불교를 많이 믿지 않소. 천축은 천하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다신교(多神敎)의 숭배지이며, 석가모니는 천축인들이 모시는 팔백만의 신격 중 하나에 지나지 않소.”
“뭐라고?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군.”
“혹시 불교 쪽을 좀 알고 있소?”
“솔직히 잘 모르오.”
“불교에서 칭하는 범천(梵天), 나라연천(那羅延天), 대자재천(大自在天)이라고 하는 존재들은 사실 단순한 대천세계(大天世界)의 신이 아니오. 범천은 세계의 창조자이며 나라연천은 세계의 유지자이고 대자재천은 종말의 시대에 세계를 파괴하는 존재요. 그들 자체로 대신격이지만 중원의 불교가 도교와 융화되면서 하위신격으로 격하(格下)되어버린 것이지.”
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신의 격이 내려가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가 조용히 망량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 그는 옆에 있던 오리다리를 집어들며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천, 나라연천, 대자재천의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소. 외부에 노출되는 격과는 관련이 없는 존재들이지. 천암비서의 창조자도 그런 존재일 가능성이 있소.”
“그런 존재라니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거요?”
망량이 오리다리를 우적우적 씹으며 말했다.
“신앙(神仰)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인간의 인지(認知)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오롯한 신격! 그정도 존재가 아니고서는 태허천존이나 서왕모를 뛰어넘을 수가 없소.”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요?”
“하아… 전생의 ‘나’는 당신에게 종교서적을 좀 읽게 했어야 하오. 현재 당신은 중원의 그 누구보다도 신(神)의 영역에 가장 가까이 발을 담그고 있는 인간인데 이토록 무지해서야.”
꿀꺽꿀꺽
탄식하던 망량이 술을 술병째로 들이키고는 설명했다. 그는 어느 새 닭을 거의 다 먹어치운 상태였다.
“생각해보시오. 태허천존이나 서왕모같은 신격이 강력한 이유가 뭐겠소?”
“음… 직위가 높아서?”
망량이 닭다리를 들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오. 수많은 인간들이 그들을 숭배하고, 그들을 인지하며, 숭앙하여 섬기기 때문이오! 신의 권능이란 건 신앙에 크게 좌우되는 면이 있소. 물론 그들은 선격(仙格)에서 상승한 존재들이라서 신앙을 받지 않아도 어느정도의 힘을 유지할 수 있으나, 신앙이 굉장한 힘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게 사실이란 말이오.”
“신이 인간의 믿음에 그렇게 큰 영향을 받는다고?”
“그렇소. 도교의 신이든 불교의 신이든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내고 인간이 창조한 존재. 그들의 신적인 권능 또한 인간과 크게 연관되어 있지.”
망량은 마지막 닭다리를 천천히 먹어치우는 기색이었다. 나는 탁자 위를 흘끗 보았는데, 아무래도 거의 다 먹은 듯 했다. 나는 별 수 없이 닭죽을 한 그릇 시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닭죽을 시키자 망량이 말했다.
“신이든 신선이든,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믿음에 근거해서 경외를 유지하는 존재들이오. 달리 말하자면 인간에게 잊혀진 신격은 갈수록 힘이 사라지며 종래에는 소멸하게 되오. 그러나 그런 법칙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는 존재들이 있지. 바로 인간의 신앙이나 인지에 관계없이 천지창조 이래로 존재해 오고 있다는 신격들이오.”
꺼억
망량은 밥을 많이 먹었는지 저도 모르게 소리가 나온 듯 했다. 나는 닭죽을 먹고 있던 중이었는데 망량의 식욕에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의식을 치르고 나면 극도로 배가 고파지는 모양이었다. 다음부터는 망량에게 밥을 든든히 먹여줘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망량이 말을 이었다.
“그 존재들은 극히 비밀스러우며 되려 민간에 알려져 있지 않소. 알려져 있더라도 비신(秘神)으로 포장되어서 그 실체를 아는 자가 극소수에 불과하오.”
“신격이나 선격은 인간의 믿음으로 힘을 얻는다 하지 않았소? 왜 그런 거요.”
“인간이 알게 되면 너무나 두려워서 그 존재감만으로도 미쳐버리는 존재들이니까!”
“……!!”
“또한 그런 자들은 인간의 신앙을 필요로 하지 않소.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천지를 자력으로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 또한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도 않고 기본적으로 벌레 취급을 하는 존재들이오.”
망량은 씹어뱉듯이 말했다.
“나의 스승인 망량선사도 사실 그 존재들이 이 세상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결계를 둘러치는 역할을 하고 있소. 내 스승의 힘은 대선(大仙)보다 훨씬 강력한데도 현세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지.”
“간섭하지 못하게 한다고…?”
“내 스승에게 주어진 것은 수호자(守護者)의 업(業)이오. 그렇기에 그 어떤 도교신격도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아닌 이상 내 스승에게는 강요할 수 없고 명령할 수 없소.”
나는 문득 망량선사와의 문답이 떠올랐다.
[ 네가 상대했던 그 주술사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다. 우연히 흘러들어온 이족(異族). 놈의 술법이나 지식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보통 존재들은 오염되고 타락하여 절망을 숭배하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은 그런 떠돌이들을 이 세상에 도달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운이 안 좋았군.] [ 잠깐, 당분간이라니? 그런 놈이 또 있다는 거냐?] [ 있겠지.]망량선사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는 평상시에 결계를 쳐서 사악한 신이나 그 숭배자들이 이 세상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주술사가 그 결계를 뚫고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이고, 그것은 아마 복마전(伏魔殿)이라고 불리는 어둠의 세력 탓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중얼거렸다.
“믿기가 힘들군. 그런 존재가 있다니.”
“사실 모르는 게 좋소. 그런 존재에 대해서 알아봐야 득될 것도 없고 미쳐버리는 게 보통이니까. 하지만 당신이 지닌 천암비서는 그런 존재가 만들었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소.”
“으음…”
“내 스승은 그 존재들을 ‘옛 지배자들’라고 부르곤 했소.”
옛 지배자.
나는 이제야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았다. 즉 인간을 벌레취급하는 사악하고 강력한 신이 암천비서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 왜 주술사 놈은 천암비서를 보자 도망친 걸까?’
천암비서에 주술사를 퇴치하는 힘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망량도 이게 특별한 술법서의 효능은 없고 그냥 책이라고 했다. 즉 주술사 놈은 천암비서의 ‘내용’을 보고서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도망가 버린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줄곧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심 결심했다.
‘ 좋아. 이번에 복마전과 싸우게 되면, 새롭게 소환된 이계의 존재라는 놈을 생포해야겠다. 예전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반드시 천암비서가 어떤 것인지 알아내야만 해.’
내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그는 밥을 다 먹은 듯 했다.
“아무튼 그 문제는 더 생각해도 의미는 없겠고…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렇군. 앞으로의 일을 의논해야겠지.”
나는 대나무술을 한 잔 마시면서 말했다.
“나는 칠요(七曜)의 비보를 찾고 싶소.”
“칠요의 비보를?”
“그렇소. 어차피 지금 나는 서왕모의 축복을 받아서 장생불사하게 되지 않았소? 그렇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칠요의 행적을 찾을 시간이 충분히 생겼다는 말이오. 나는 우선 칠요의 위치를 알아낸 후 전생을 거듭하며 모아볼 생각이오.”
이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태허천존에게서 대운의 축복은 받지 못했지만 장생불사의 축복을 받았다. 쉽게 죽는 나로써는 별로 의미없어보였지만, 달리 말하자면 칠요의 비보를 찾아다닐 시간이 생겼다는 뜻인 것이다. 어차피 죽지 않고 오래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런 비보를 탐색하고 다니는 편이 나았다.
망량이 보기 드물게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 생각은 못 했는데! 과연 괜찮은 생각이구려.”
“하하 고맙소.”
“헌데 어떻게 찾으려고? 칠요의 비보는 이미 은주시대의 전설이라서 행적을 찾는 게 불가능에 가깝소. 당신이 수요를 찾아낸 것이나 봉황조각에서 토요의 흔적을 알아낸 것은 엄청난 운이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역사의 고문헌에서 찾아보려 해도 너무나 힘든 일일 것이오.”
“……”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긴 아무런 흔적도 단서도 없는 상태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칠요의 비보를 어떻게 찾아낸다는 말인가? 발해에 있던 토요의 비보 팔괘도도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전혀 짐작도 못한 것이다. 심지어 나는 발해라는 나라가 뭔지도 몰랐다.
망량이 씨익 웃었다.
“내 생각은 이렇소. 나는 당신에게서 흑백련의 뿌리를 받고 막야의 힘으로 무공과 술법을 터득하고 있겠소. 당신은 그 동안 요동 땅을 통해서 반도(半島) 땅으로 가 보시오.”
“반도 땅?”
“내가 알기로 그 곳에는 현재 고려(高麗)라고 불리는 국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또한 그 곳에만 존재하는 동방의 무림도 별개로 존재한다고 알고 있지. 당신은 그 곳에서 해인(海印)이라는 걸 찾아 보시오.”
“해인?”
“그렇소. 내 생각으로는 그게 아마 칠요의 비보로 유력한 물건이 아닐까 싶소. 스승님은 동방의 해인이 천축에서 비롯된 보물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으니까.”
뜻밖의 이야기였다. 나는 망량이 내가 갈 길을 제시해주자 너무나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차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잠깐, 앞으로 5년이나 6년 이내에 금의위가 칠요를 모아서 음모를 꾸미고 나서지 않겠소? 그건 어떻게 해야하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오. 걍 내버려 두시오.”
“……?”
“생각해 보시오. 금의위가 칠요를 모아서 고작 5년만에 세상을 지배할 힘을 얻었다면 어째서 암살에 나섰겠소? 그 자들은 분명히 반천맹주인 내가 거슬렸던 것이고, 그것도 앞으로의 계획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오. 그것은 그 시점까지도 금의위가 완전히 목표에 도달할 정도의 힘을 쌓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지.”
“흐음…”
“정말로 ‘내’가 복마전에 대항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에게 연락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요. 다 같이 죽는 길을 뭐하러 택했겠소? 아마 뭔가 수가 있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려 한 거겠지.”
내심 뜨끔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을 닫고 있자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중요한 건 당신이 하나라도 많은 칠요의 행적을 파악하는 것! 정 안 되면 죽어서 전생해서 다음 기회를 도모하면 되는 거요. 그게 앞으로 당신이 싸워나갈 방법인 거지.”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금의위에 잠입해서 그 자들이 칠요를 어떻게 모으는지 파악하고 방해하는 건 안되겠소?”
망량이 깜짝 놀랐다.
“무슨 그런 무모한 생각을 하고 있소? 이계의 존재를 소환해서 세상을 뒤엎으려는 자들이오. 아무런 배경이나 법보도 없는 상태로 들어가다가는 죽기 딱 좋소. 최소한 당신이 칠요 중 하나의 권능을 얻을 정도가 되지 않으면 자살행위가 될 것이오.”
“음, 그렇군.”
“뭐 당신이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지만… 당신 말마따나 서왕모의 축복을 받은 김에 이번에 최대한 활용해봐야 하지 않겠소?”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나는 며칠 후 망량에게 흑백련 뿌리와 봉황조각, 막야를 넘겨 주었다. 망량은 이걸 받아서 최대한 자신의 역량을 키운 후 요동으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상당히 묘한 표정을 지었다.
“헌데 당신은 막야의 권능이 뭔지 모르고 있소?”
“그렇소만.”
“으음… 내가 최대한 알아내서 가르쳐 주겠소. 이건 현재 우리측의 최대 무기인데 그 효용을 몰라서야 너무 손해인 것 같소.”
“싸우는 무기로써는 그닥 좋아보이지 않아서 신경을 못 썼소.”
“분명히 뭔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오. 신대(神代)의 비보(秘寶)이니…”
나는 망량을 믿고 맡겨두기로 했다. 그리고는 생전 처음 향하는 동쪽의 반도행에 나섰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인이란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기약없는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내 첫 목적지는 동방 고려로 가는 항로가 존재한다는 산동(山東)이 되었다.
다그닥 다그닥
말을 타고 가면서 나는 여태껏 한번도 와본 적 없는 지형을 지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도를 사기는 했지만 중원대륙은 너무 넓어서 쉽사리 지도를 신용할 수 없었다. 나는 이 과정도 나중에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후, 산동이라…’
고려는 어떤 나라일까?
나는 내심 신선한 기분에 부풀어서 말고삐를 재촉했다.
“잠깐 거기 소협!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그런 내 활기찬 기분이 깨진 것은 왠 이상한 놈이 길을 가로막은 직후였다. 그 놈은 눈을 헤벌뜩하게 뜬 채로 거지꼴을 하고 있었는데, 영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말 위에서 묵묵히 그 괴인을 쳐다보고 있자 그가 말했다.
“소협은 혹시 스승이 있소?”
“없소만…”
“그럼 백련교에서 온 것인가?”
“그건 아니오만…”
그러자 그 괴개(怪?)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히히, 백련교인인 거 같으니 일단 맞아라!”
“엉?!”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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