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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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거지는 갑자기 타구봉(打狗棒)을 휘둘러서 내게 공격해 왔다. 그 움직임은 느린 듯 했으나, 내 공격범위 안까지 들어오자 일변해서 기쾌(奇快)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 나는 그의 초식이 굉장히 정밀하고 헛점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까앙!
거지의 타구봉과 내 검이 한 차례 부딪혔다. 거지는 충격 때문에 뒤로 쭉하고 밀려서 날아갔다.
“아이구구구…”
휘리릭
거지는 약 2장 정도를 날아가다가 공중제비를 돌아서 땅에 내려섰다. 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거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이거이거… 정말 대단하구먼… 몽천신공(夢天神功)을 최대로 끌어올렸는데도 이리 밀리다니, 정말 무시무시한 공력이야…”
“당신은 누구요?”
나는 함부로 그를 대할 수가 없었다. 거지가 나와 내공을 겨루다가 밀려서 날아갔지만, 피해를 입지 않고 적절하게 수습했다. 게다가 왠만한 고수들은 내 공격을 저렇게 받아낼 수가 없고 무기째 부숴져서 엉망이 되기 일쑤이다. 토혈조차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저 거지의 내공 또한 굉장히 고명한 편에 속하는 것이다.
거지가 히쭉 웃었다.
“히히, 거지 왕초다. 그러는 너는 백련교의 소교주라도 되느냐?”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별 시비를 다 거는군. 길가는 행인이 백련교 소교주일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시오? 그리고 내가 백련교를 믿는다는 증거는?”
“헐헐!! 내가 개방 방주 천룡개(天龍?)인데 10대 아해가 나보다 공력이 몇 배는 높을 확률과 비슷하겠지.”
“……!!”
나는 흠칫하고 놀랐다.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개방 방주, 천룡개 구익환(九翼換)!
그는 세상에 널려 있는 백만 거지들의 왕초이자, 정파의 태산북두인 구파일방 중 일방(一幇)을 이끄는 인물이었다. 내가 구파일방에 대해서 알아볼 때 숱하게 그 이름을 들은 바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정파 삼대기인의 직전제자였기에 가진 바 무공도 매우 높다고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경계의 기색으로 보자 거지가 말했다.
“폭풍같은 기(氣)가 느껴져서 몰래 따라와 봤는데, 인세를 초월한 듯한 기 덩어리가 지나가는 게 아닌가? 헌데 너무 어린 아해인 게야. 그래서 영락없이 반로환동한 호법사자(護法師者), 혹은 소교주인 줄 알았지.”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래 당신이 천룡개 구익환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겨우 당신 혼자서 호법사자나 소교주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소? 그 자들은 엄청난 괴물이라고 들었는데.”
“당연히 그런 오만함은 발휘하지 않네. 그래서 꽤 많은 친구를 데려온 게야.”
“친구?”
슈슈슉
사방에서 왠 고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다가 거지의 신호에 몰려든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 자들의 경공술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는 무림고수들이란 걸 깨닫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 수는 무려 50여 명이나 되었다.
천룡개 구익환이 껄껄 웃었다.
“정천맹(正天盟) 천검단(天劍團)과 지검단(地劍團)이 모두 왔지. 그리고 곧 지원군도 올 것일세.”
정천맹!
나는 그 말을 듣자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구파일방이 주축이 되어서 만들어진 정파의 연맹체로써, 실질적으로 정파가 마도팔문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 낸 기구였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정천맹주를 선출하는데 그를 중심으로 무리지어서 사파를 토벌하곤 했다. 그리고 천검단이나 지검단은 정천맹에서 독립적으로 만들어 낸 무력단체라고 알고 있었다.
‘ 전부 일류고수 이상… 정예들이군.’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 모인 자들의 역량은 금의위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실질적인 실력으로 보자면 금의위 5개조에 둘러싸인 거라고 봐도 좋았다. 게다가 절정고수급이 섞여 있다면 굉장히 위협적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나는 아직 천룡개 구익환의 실력을 명확하게 파악한 게 아니었다.
나는 천룡개에게 말했다.
“나는 그냥 내 문파의 무공을 익혔을 뿐이오. 백련교와는 연관이 없소이다.”
“소협의 말을 믿을 수 있는 자가 천하에 얼마나 되겠는가? 백련교에서 성련(聖蓮)이란 걸 이용해서 어린 소년소녀 고수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알고 있네. 소협이 이 중원을 염탐하러 온 첩자일 수도 있으니 우선 우리와 얌전히 동행해 줘야겠네.”
천룡개는 의심을 한치도 거두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긴 말하는 걸 보니 며칠 전부터 나를 염탐해서 따라오다가 철저한 준비를 해서 나를 기다린 듯 했다. 내가 백련교의 소교주나 호법사자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 치도 방심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고민했다.
‘ 이거 어쩌지?’
원래 내 성미대로라면 벌컥 화를 내면서 천룡개와 천검지검단과 한판 떴을 것이다. 내공을 앞세우면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그게 결코 상황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상태였다. 설령 저 자들을 이 자리에서 다 회쳐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는 정천맹과 쓸데없는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망량’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 내가 망량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머리를 굴렸다. 머리를 굴리다보면 뭔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 것 같았다. 쉽게 생각을 포기하고 힘부터 쓰는 건 필연적으로 죽음을 불러온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언젠가 망량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게 있소.’
나는 그러던 중 좋은 생각이 나서 입을 열었다. 차라리 내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천룡개께서는 혹여 청룡(靑龍)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천룡개는 정파에서 최고위치에 있는 간부이므로 우선 존댓말로 돌아섰다. 천룡개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신(四神)을 말하는 건가? 뭘 말하는건지 모르겠군.”
나는 그가 딴청을 피우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슥하고 창을 내밀며 말했다.
“한때 섬서무림을 뒤집었던 황궁의 사신(死神)에 대해 듣지 못하셨다니 유감이군요.”
“……”
웅성
나를 포위하고 있던 천검단과 지검단의 정천맹 고수들이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구파일방 출신의 무림인이나 제자들이었기에, 청룡의 전설적인 무력에 대해서는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정보를 취급하는 개방의 최고수장인 천룡개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는 내 창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청룡 이광에게 자네처럼 어린 제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 그에게는 진소청이라는 제자가 있지.”
“저는 그분의 직전제자가 아니지만 먼 사제뻘 되는 자이며, 일문(一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청룡무관의 무학(武學)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흠…”
“저와 정천맹이 대립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천룡개는 내 말의 진위를 판별하려는 듯 유심히 나를 훑어보는 기색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침묵하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패억! 준태! 상기!”
“네!!”
세 명의 중년검객이 대답하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 자들의 기도는 매우 출중해서 절정고수의 초입으로 보였다. 천룡개가 그들을 앞에 세워두고는 말했다.
“이들은 종남파(終南派)와 화산파(華山派) 출신이다. 또한 청룡의 무공을 직접 옆에서 본 적이 있다. 자네가 청룡의 문하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 여기서 무공을 시연해 보게.”
“그게 강호도의상 무례하고 금기에 가까운 일이란 걸 알고 하시는 말이겠지요?”
내가 짐짓 떠 보자 천룡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 알고 있지. 허나 증명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힘으로 자네를 제압할 수밖에 없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나는 서서히 창을 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정천맹 고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뇌령팔식을 유려하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시작은 고요한 물과 같았으나, 식(式)이 뒤로 넘어가면서 내 움직임은 더욱더 영활해지고 세부적인 움직임에 원(圓)의 운동이 섞였다. 이윽고 뇌영보 천주살의 보법이 합쳐지면서 창은 마치 백광(白光)을 일으키듯이 흔들렸다.
“오오…”
중년검객들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씨익 웃으며 뇌령팔식에 점차 더 많은 변화를 가미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동안 청룡무관에서 수련하면서 란, 나, 찰의 기본기를 쉴새도 없이 수만 번이나 수행했기에 창을 내 몸처럼 다루는 게 가능했다. 기초를 통달하면 응용기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므로 같은 초식이라도 무려 16번이나 다른 모습으로 펼치는 게 가능했다.
창의 날이 휘도는 게 느껴진다. 전(轉)이 내외(內外)하면서 가공할 진동을 일으킨다. 하체와 상체의 균형이 맞아들어감과 동시에 움직임이 펼쳐졌다.
파바바밧
내 몸이 창(槍)과 하나가 되어서 사 장 내의 공간에서 풍차처럼 회전했다. 창의 날이 분영(分影)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혼란시켰고, 이내 현란한 나선(羅線)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천지인의 삼좌(三座)를 제압하는 뇌령경천(雷靈驚天)의 초식이 란(欄)과 합쳐지자 소나기같은 빛을 만들어내었고, 호흡이 멈추듯한 순간 속에서 나는 연속으로 뇌령팔식의 팔대 초식을 연환해서 펼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이윽고 초식의 시전이 모두 끝났을 때, 내 뒤편에 있던 바위산에는 일 장이나 되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가 마지막에 가한 찰(刹)의 찌르기가 만들어 낸 위용이었다. 장내에서 내 무공시연을 보고 있던 자들은 멍하니 굳어있는 듯 했다.
그리고 가장 열심히 보고 있던 세 명의 중년검객들이 천룡개를 바라보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 모든 초식이 뇌령팔식(雷靈八式)입니다.”
“창술의 명인에게서 오랜 세월 전수받지 않으면 저런 기예를 펼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의견을 모은 듯 했다. 그들은 정천맹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구파일방 출신의 정파고수들이었기에 무(武)에 있어서 위증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으음…”
천룡개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듯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 나름대로 확신이 있어서 여기까지 정천맹의 정예고수들을 데리고 온 것인데, 내가 내 말을 증명해 버렸기 때문이다.
천룡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게 포권을 했다.
“소협에게 무례를 범한 것에 이 천룡개 구익환,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그대는 명문정파의 후예인 듯 하군.”
“받아들이겠습니다.”
“소협의 성명은 무엇인가? 이제라도 알고 싶네만.”
“백웅이라고 합니다.”
“백웅 소협, 허나 이대로 소협을 보내줄 수는 없네. 정말로 무례한 일이지만 정천맹까지 동행해 주기를 간절히 부탁하겠네.”
내가 물끄러미 천룡개를 바라보았다. 그같은 정파의 간부는 명분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런 억지를 부리는 이상 이제 강경책으로 힘을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같이 동행한 고수들도 정파인이었기에 논리에 맞지 않는 일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룡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솔직히 말하자면 갈수록 백련교의 위협이 더해지고, 강호 곳곳에서 백련교의 고수들이 암약(暗躍)하고 있다는 정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네. 그래서 조그마한 위험이라도 우리는 가벼이 보아넘길 수가 없어.”
“어쩌자는 겁니까?”
“우리가 그대에 대한 신변을 보증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결코 자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테니, 그냥 정천맹에 잠깐 들렀다 가 주게나. 이 무례에 대한 보답은 반드시 할 터이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는 천룡개를 따라서 정천맹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따르던 고수들이 나를 감시하는 기색이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미 마음속으로는 내가 백련교의 첩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천룡개가 억지로라도 나를 정천맹에 동행시키는 것은 내 신변을 알아내려는 정보단체 수장으로써의 집착에 가까웠다.
‘ 잘 하면 정천맹의 정보도 좀 얻어볼 수 있겠군.’
나는 아까 괜히 버럭해서 싸우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닥치고 싸움질을 하는 사파와 달리 정파에게는 명분이란 것이 중요했다. 명분이 맞지 않는 악적과 싸울 때는 목숨을 거는 게 정파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명분이 서지 않는다면 결코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다. 그들의 성질을 잘 알고 있다면 역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한참 후, 하남(河南)에서 산동(山東)으로 넘어가는 경계인 장평(長坪)에 도착했다. 으리으리한 5층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이 일대의 부지 전체가 정천맹인 듯 했다. 천룡개가 정천맹의 현관으로 들어가자 천검단과 지검단의 고수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정천맹의 여기저기에는 무공을 익힌 자들이 매우 많이 보였다. 이 곳이 정파의 산실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였다.
끼익
문이 닫히고 천룡개는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더니 어두운 대웅전(大雄殿)같은 건물로 들어왔다. 그는 크게 소리쳤다.
“정천맹주! 내가 크게 실수한 듯 싶소. 이 소협은 백련교 인물이 아닌듯 하오.”
스윽
어둠 속에서 한 명의 백의인(白衣人)이 걸어나왔다. 나이가 약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사내는 허리춤에 한 자루의 검을 패용하고 있었다. 정천맹주라고 불린 백의인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나는 되려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구려. 정말 저 소년이 백련교의 소교주나 호법사자였다면 오늘 크게 피를 보았을 터인데.”
“흐흐… 전력(戰力)이 도착하기 전까지 몽환신공으로 버틸 자신은 있었소.”
천룡개가 억지로 자존심을 세우려 하자 정천맹주가 씁쓸하게 말했다.
“천룡개. 호법사자의 무서움은 직접 싸워본 자만이 알 수 있다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자에게 당한 팔의 원한을 잊지 않고 있으나, 다시 마주치면 오금이 저릴지도 모르겠군.”
펄럭
정천맹주의 왼쪽 팔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호법사자란 존재와 싸워서 살아남기는 했으나 그 댓가로 팔을 내어준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저는 백웅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당신이 정천맹주 위지혼(尉遲魂)이십니까?”
백의인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네. 내가 바로 위지혼일세.”
그가 현재 구파일방과 정파의 연맹체인 정천맹을 이끌고 있는 수장(首長)이자, 위지가문 역대 최고의 검재(劍材)로 칭송받아, 무당파(武當派) 최고의 절학인 태극혜검(太極慧劍)을 전수받았으며, 동시에 무당파 속가를 이끌고 있다는 정파의 초절정고수 위지혼이었다. 그의 명성은 너무나 높고 높아서 내가 그동안 전생하면서 심심하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맹주. 일이 이렇게 되었소…”
천룡개는 나와 있었던 일을 정천맹주 위지혼에게 설명했다. 나는 그가 혹시 왜곡이나 축소를 할까봐 경계하며 듣고 있었지만 그런 기색은 없는 듯 했다. 끝까지 열심히 듣고 있던 위지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다행이야. 백련교의 첩자가 아닐뿐더러 청룡에게 이토록 출중한 후기지수가 있었다니.”
“다소 오해가 있는듯 싶습니다만, 저는 청룡 어르신의 직계제자가 아닙니다. 같은 유파이긴 하지만 스승이 다릅니다.”
“알고 있네. 그건 청룡이 직접 내게 말한 바가 있었지.”
“……?”
나는 의아해졌다. 뇌신류가 다인전승이라는 비밀은 외인에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데, 어째서 이광이 위지혼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는 말인가? 위지혼은 내가 의아해하자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나와 이광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네. 뇌신류에 대해 철저히 내가 숨겨주는 대신, 그 또한 정파에 반(反)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며 유사시에 백련교에 대항해 싸워주겠다고 했지. 자네 또한 뇌신류로 보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네.]아마도 청룡 이광이 편안하게 청룡무관 관주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정천맹주와의 거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자신의 유파의 배경을 어느정도 밝힘으로써 정파에 안심을 가져다주고, 그 대신 정천맹주가 정보를 통제해서 이광을 도와주는 식인 것이다.
위지혼이 말했다.
“또한 소협에게서는 성련 특유의 향(香)이 나지 않아. 나는 백웅 소협이 백련교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네.”
“향이라니요?”
“단시간에 가공할 내공을 보유하게 해 주는 성련을 복용하게 되면, 인간의 몸에서 백련향이 나게 되지. 그 냄새는 그리 강하지는 않으나 후각이 좋은 자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어. 또한 백련교의 고수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네.”
“그렇군요.”
나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 말대로라면 내공이 지나치게 높고 백련향이 나는 놈이 있다면 일단 백련교로 의심해봐도 된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새로운 정보를 머리에 집어넣고 있을 때 위지혼이 말했다.
“그래서 소협은 어디를 가던 중이었나?”
“산동을 통해서 고려(高麗)에 가려 했습니다.”
“고려? 그 곳에는 왜?”
“고려에는 뛰어난 무문(武門)이 많다 해서 무사수행과 견식을 함께 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내 말을 듣자 위지혼이 놀란 듯 말했다.
“고려와 요동을 비롯한 동방무림(東方武林)에는 십이율(十二律)이라고 하는 강대한 문파들이 존재한다네. 함부로 그 자들을 우습게 보면 큰코 다칠 것이야.”
“십이율이라고요?”
“흠…”
위지혼이 설명을 했다.
“사실 원명 교체기에 고려 또한 왕조가 뒤바뀔만한 일이 있었지.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 당시에 십이율이라는 무림문파가 끼어들어서 고려가 온존되고, 내부를 혁파해서 거듭났다고 알고 있네. 그들의 위세가 일개 국가의 정권에 미칠 정도이니 쉽사리 볼 수 없는 자들이야.”
“흐음… 조심해야겠군요.”
“어린 소협에게 우리가 무례를 범했으니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아닙니다.”
내가 머리를 긁적거리자 위지혼이 천룡개에게 말했다.
“나는 저 소협에게 정천맹의 신표(信標)를 줄 생각인데 천룡개의 생각은 어떠하오?”
“이의 없소. 나는 소협에게 개방의 도움을 줄 것을 선언하겠소.”
“하하하… 잘 됐구려.”
나는 뜻밖에 일이 잘 풀리는 걸 느꼈다.
‘ 시작이 좋은데?’
위기가 찾아왔지만, 잘 대처한 덕분에 정천맹주도 구경하고 정천맹의 도움으로 노잣돈과 신표를 얻게 된 것이다. 이걸로 나는 산동에서 배를 탈 때까지 정천맹과 개방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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