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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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미래의 인간이라고?
나는 언뜻 십이율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시간이동(時間移動)을 했다는 말입니까?”
시간이동, 또는 시간여행이라고 부르는 현상! 현재의 시간축보다 과거나 미래로 이동하는 능력!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꿈이라고 여겨지는 최고의 기술이었으며 이론상의 영역이었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과거를 조작한다면 가히 신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간이동을 실제로 이룬 존재는 내가 배운 지식 중에는 선지자의 종족밖에 없었으며, 나머지 이족(異族)들은 아무리 과학기술이나 마력이 발달했어도 이루지 못했다.
한때 제갈사에게 마도를 배우면서 나 또한 시간이동을 하는 게 아닌가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제갈사는 단호하게 말했었다.
즉 내 전생능력은 회귀능력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고, 또한 시간이동도 아닐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제갈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몰랐으나 아무튼 마도를 공부하면서 이것저것 들은 풍월이 있긴 했다.
십이율주가 히죽 웃는 듯 했다.
“불가능하지, 그건.”
“…….?”
“시간여행의 모순이라고 들어봤겠지? 제일 처음 시간여행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한 자가 있다면, 그 자가 과거를 바꿈으로써 현재가 바뀌게 되고, 그로써 모순이 가득해진다는 이야기.”
“알고 있죠.”
시간여행을 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나고 어떻게 해서 그게 가능한지는 선지자와 그 종족밖에 알 수가 없다.
나머지는 그저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지만, 확실한 것은 시간을 건드림으로써 현재, 과거, 미래를 아우르는 거대한 고리에 모순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십이율주의 말이 이어졌다.
“당초 인간들이 생각하는 시간여행의 원리는 [큰 굴레]를 건드리는 식이라서 불가능하지. [옛 지배자]가 그토록 강대한 마력과 신적인 권능을 지니고 있는데도 어째서 마음대로 역사를 계속 갖고 놀지 못하는가?
그것은 [큰 굴레]라고 불리는 거대한 이치는 그들로써도 건드릴 수 없는 별격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은 신조차도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선지자의 종족은….”
“그들은 예외야. 전우주에서 가장 과학과 마도기술이 발달한 종족이며 종족 자체가 [지배자]의 경지에 들어있지. 그리고 그들이 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인 이유는….”
뭔가 말하려던 십이율주가 잠시 입을 다물고는 다른 애기를 했다.
“아무튼 나는 미래의 인간이지만 시간이동을 한 건 아냐.”
“그렇다면 [큰 굴레]를 조종해서 온 겁니까?”
“…그것도 아닌데. 흠,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나….”
따악!
망성이던 십이율주가 뭔가 떠올랐는지 자신의 손가락을 마주치더니 말했다.
“그래, 새롭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거지!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고.”
“최후의 만찬?”
“나는 [옛 지배자]들이 모이는 ‘계시’를 그렇게 불러.”
나는 그말에 눈이 날카로워졌다.
“역시 당신은 종말이나 계시에 대해 뭔가 알고 있군요. 계시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말해주십시오.”
“자세한 건 사실 몰라. 내가 아는건…, 계시가 시작되는 순간 일어나는 현상뿐이다.”
“그 현상이란 게 뭐죠?”
“모든 것이 멸망한 대지가 신의 옥좌로 치환되지. 정확히는 이 지구 전체가 우주의 끝으로 이동하는 거야. 살아남았다는 가정 하에, 모든 인간이 우주 최고의 절대신(絶對神)인 [아버지]의 옥좌로 초대받게 된다.”
“……!!”
“당연히 지구에 몰려와 있던 지배자들도 다 같이 몰려가게 되지. 마치 하객(賀客)처럼 말이야. 지배자들이 지구에 있는 이유는 옥좌로 향할 ‘초대권’을 손에 넣기 위한 거라고 봐도 돼.”
뭐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그럴 수가….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되죠?”
“몰라.”
“…….”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어. 왜냐하면 난 거기까지 가지 못했거든.”
“가지 못했다고요?”
“그래…, 가지 못했어….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지….”
그의 음성에는 절망과 한탄이 스며들어 있었다. 뼈저린 감정인지라 탈 너머에서도 그의 격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잠시동안 침묵하던 십이율주가 말을 이었다.
“미래의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기어오는 혼돈], 외신(外神)이다..”
“……!!”
“직접적으로 멸망시킨 건 아니지만 놈의 사도이자 화신이 그 과정을 모두 주도했어. 나는 처음에는 놈이 계시 직전부터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놈은 아주 오래전…, 수백…, 아니 수천 년 전부터 이 세상을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지. 단지 마지막에서야 직접 이름을 내놓고 활동했을 뿐.”
“놈의 화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정체가 뭔지 알고 있습니까?”
“인간이야.”
“예?”
“놈의 화신은 언제나 인간의 형태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외신이자 [옛 지배자]로써의 강대한 힘은 거의 쓰지 않고 오로지 간교한 지혜와 세치 혀로만 모든 걸 농락하지.
재앙에 가까운 마력을 갖고 있지만 쓰지 않아. 일부러 인간의 강자에게 죽어줄 때도 있지. 그게 도리어 더 무섭고.”
십이율주의 탈 뒤편에서 서릿발 같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놈이 제일 좋아하는 건 인간이 절망을 이겨낸 순간에 이르렀을 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짓이지.
놈은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옛 지배자]다.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인간의 장단점을 이용할 줄 알아.”
“직접 만나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
십이율주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난 사실 네가 [기어오는 혼돈]의 화신이 아닐지 의심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흑요석의 기억을 봤기 때문입니까?”
“그래, 적어도 넌 [기어오는 혼돈]이거나 그 화신일 수는 없어. 왜냐하면 천암비서의 존재와 [큰 굴레]의 이동, 그리고 이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놈의 ‘취향’이 아니야. 적어도 놈이 주도적으로 할 짓은 아니지.”
“…무슨 소립니까?”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은 혼돈을 야기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멍청하게 당하기만 할 뿐이야. 자기 자신이 음모의 주축이 되어서 필멸자든 [옛 지배자]든 제멋대로 갖고 노는 놈의 취향과는 완전히 반대지. 그래서 아니라고 생각해”
“너무 단정적이군요. [기어오는 혼돈]에게 새로운 취향이 생기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없어. 놈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논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어.”
“음.”
너무 확실하게 단언해서 되려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십이율주는 미래에서 어떤 일을 겪은 것일까?
나는 의문을 느끼고 계속 질문했다.
“그럼 당신은 미래에 뭘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그리고 어떤 식으로 과거로 넘어온 거죠?”
“그걸 답해주기 전에 내 질문부터 먼저 답해줄래?”
“어떤 질문입니까?”
울주는 마치 힐난하듯 말했다.
“넌 왜 종말과 계시가 다가올 때까지 은거해서 500년을 지내지 않은거지? 왜 미래를 알아보지 않았나?”
“……”
“말로는 종말과 계시가 뭔지 알고 싶다면서 그걸 시도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이유가? 전생자인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500년 정도 살 수 있는 술법을 손에 넣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뜻밖의 질문에 주춤거렸다. 그리고는 생각을 정리해서 대꾸했다.
“그것도 흑요석의 기억을 받았다면 알고 있을 텐데요. 이 시대에 살아가는 내 동료들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계시를 본다고 하들 끝까지 볼 능력이 없다면 시간낭비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충분한 힘을 갖고 나서야 시도해 볼 생각이셨다?”
“그렇습니다.”
“크크…. 부럽군. 정말 부럽기 그지없어. 나는 기회가 한 번밖에 없는 너는 될 때까지 시도해볼 수 있다니…. 전생(轉生)…, 정말 최강의 능력이군.”
한탄하듯 중얼거린 십이율주가 말했다.
“좋아, 따라와”
“어디로 갑니까?”
“내가 이 세계로 왔던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알겠습니다.”
드디어!
나는 십이율주의 비밀을 알아낸다는 생각에 흥분되었다. 미래에서 왔다는 율주는 과연 어떤 비밀을 더 숨기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가 ‘종말’을 직접 본적이 있다는 증언을 듣게 되자 왠지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십이율주 그대는 종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단 말인가?] [후후…. 생각? 무슨 생각?] [[옛 지배자]가 일어서서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생자와 사자를 남기지 않고 혼돈 속에 매몰되는 그 생지옥을 예감하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는 건가?] [아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희 예측대로 성좌가 끓어오르는 밤하늘은 멀지 않았다. 모든 것이 광기 속에 메마르는 절망의 그 날을…. 나는 아주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지.] [자, 너희도 개소리 말고 서로 합의 하지. 이런 곳에서 낭비할 기력은 내게 없으니까.]책사들의 작전에 따라서 삼대세력의 회담을 갖추고 임시평화를 위해서 논의하던 그 자리 – 거기에서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주작 제갈유룡과 백련교주는 종말을 막아야만 한다는 이야기에 동의했다.
그러나 십이율주만큼은 유독 냉소적인 반응이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냉소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성좌가 끓어오르는 밤하늘.
그것은 바로 십이율주 하은천이 직접 보았던 종말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직접 ‘종말’을 본 미래인(未來人)이였으니…. 그의 기준으로는 500년이나 과거의 선각자들이 보지도 못한 종말을 운운하는 게 우스웠겠지.’
이제야 지금까지 십이율주의 언행이나 행동이 조금씩 이해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십이율주는 아직까지 나를 경계하고 있고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십이율주를 따라서 갔다.
위잉
아까의 은색 접시가 저절로 날아왔고 우리는 접시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접시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였는데 신기하게도 위에 타고 있는 자는 그 어떠한 흔들림이나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올라탄 중에 신기해서 율주에게 물어보았다.
“이 접시는 뭐죠?”
“무반동 양력제어장치가 달려있는 미래기술 접시라고 해 둘까? 외계인의 존재를 어렴풋이 믿던 시절에 생긴 은색접시의 환상 때문에 일부러 만들게 된 기술이지.
실제로는 미확인비행물체는 파우스트 박사가 만들어낸 감시 장치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음속의 50배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건 다행이지.”
“….?”
“도착했다.”
무슨 소린지 몰랐지만 아무튼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는 율주, 운사와 함께 접시에서 내린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십이율주는 앞으로 걸어가더니 전방의 비어있는 공간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잠시 후 전방에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입체영상으로 떠올랐고, 그 나무는 내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신단수(神檀樹)”
“그래. 너도 아는 그 신단수지.”
“이 영상은 뭡니까?”
“신단수, 아니 세계수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다.”
지지지징
잠시 후 입체영상이 천천히 팽창하며 모습에 균열이 일어났다.
거대한 신단수의 뿌리가 더욱 막대하게 커지더니 이윽고 대륙을 빨아먹는 듯한 크기가 되었고, 원래부터 성층권에 뻗어있던 줄기는 달까지 뻗어나 갈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대륙에서 힘을 흡수하는 듯하던 신단수가 갑자기 백광(白光)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파아앗
빛이 터져 나오더니 이윽고 신단수의 가지 끝에 조그마한 과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과실을 지켜보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저 과실이 뭐라고 생각해?”
“세계수의 씨앗이겠죠.”
“아니야.”
“아니라고요?”
“세계수는 아무리 영양분을 빨아들여도 자생하거나 번식하지 않아,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는 혼돈체이기 때문이지.
생명체처럼 보여도 저건 생명이 아니라 부화하지 못한 [옛 지배자]. 그래서 세계수의 씨앗은 양자법칙에 따라서 무작위로 세계에 출현하게 되어 있어”
그랬단 말인가?
행성을 양분으로 성장해도 번식하지는 못하는 존재가 세계수 인 듯 했다.
나는 신기한 눈으로 과실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럼 저 과실은 뭡니까?”
스스스스
잠시 후 신단수는 더더욱 커지더니 종래에는 지구 전체를 움켜잡더니 갑작스럽게 줄기가 엄청난 기세로 팽창했다.
나무 그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커지더니, 칠요(七曜)의 행성을 모두 자신의 줄기 내부에 가둬둘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줄기에서 또다시 가지가 뻗어 나오더니 태양계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 했다.
거기까지 지켜보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다중우주(多重宇宙)를 이동하는 지혜의 열매, 선악과(善惡果)다.”
“선악과?”
십이율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아홉 개의 세계에 뻗어있다는 북유럽의 전승은 바로 세계수가 완전히 생장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비유한 거지.
그 아홉 개의 세계는 선악과를 취함으로써 인간이 이동할 수 있는 다중차원우주의 숫자다. 나와 파우스트 박사의 마지막 발악이었지….”
스윽
십이율주는 선악과의 환영에 손을 대었다. 잠시 실재하는 것처럼 선악과를 만지작거리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나는 네 전생이 선악과를 이용해서 다중우주를 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이 방식을 쓸 경우 기(氣)가 전승되지. 태허의 맥이 이어지는 것이고.”
“……..”
“어쩌면 전생능력을 추출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너 뿐만 아니라 네 동료들도 전생능력을 갖출 수 있겠지. 물론 나부터 얻어야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추출할 겁니까?”
이어진 십이율주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마도서 천암비서를 이쪽으로 줘.”
“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순수한 태허(太虛)가 되기 직전의 파장을 날려보는 실험을 할 거야. 그 성격을 규명하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간단하겠지….
천암비서가 다중우주를 조종하는 단말이라는 것만 확실해지면 돼.”
“…….”
정말일까?
나는 천암비서를 달라는 요청을 받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순어구를 이용해서 제갈사와 논의하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순어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완전히 통신이 끊겨버린 것이다.
‘이, 이거 왜 이래?’
설마 이 [옛 대륙] 기지의 봉인이 모든 혼돈의 유물을 차단하기 때문인가?
나는 정작 중요한 시점에 제갈사와 의논할 수 없자 크게 당황스러워졌다.
그러나 이런 위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군.
나는 상황판단을 끝내고는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