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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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신투지존의 진정한 비기?
나는 그 말을 듣자 기대가 되는 마음에 말했다.
“설마 신역절기를….”
“안 돼. 그건 애초에 가르쳐줄 수도 없고 나가서 쓸 수도 없는 건데 뭐 하러.”
“그럼 신역절기가 아닌 다른 비기가 있단 말이오?”
“큭큭…. 너 재능 없단 소리 많이 듣지?”
“…….”
내가 뜨끔해서 입을 다물자 신투지존이 킬킬거렸다.
“무인으로 대성해선 안 될 놈이군. 그런데도 대성해 있으니 너는 다른 의미로 대단한 놈이야.”
“그런 건 당신 맘대로 정하는 게 아니오.”
“뭐 욕하는 건 아니다. 재능이 없다는 게 죽을죄는 아니니까. 되려 골수무인이 아닌 쪽이 내 입장에선 더 편하다고 할 수 있지….”
“……?”
신투지존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마치 신기루처럼 흐릿해지더니, 그는 어느 새 내 소매조각을 뜯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훔치는 순간을 느꼈나?”
“…잘 모르겠소. 알 것 같기도 하오만.”
신역절기와는 다른 느낌이다. 신역절기 일수탈심의 경우는 말 그대로 손도 발도 못쓰고 영문 모르게 당했던 거지만, 방금 신투지존이 훔친 수법은 내 감각에 미세하게 잡힌 것이다. 방어하려면 방어할 수도 있었겠지만 매우 힘들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아까도 이 기술을 쓴 건가?’
정면에서 내가 방어했는데도 기어코 소매를 훔쳤던 그 수법과 동일하다.
신투지존이 소매조각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다.
“방금 이게 내가 인간계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이자 절대지경, 만상지투(萬象之偸)! 난 이걸로 천하제일의 도둑이 되었다.”
“음… 절대지경인 건 알겠는데 정확히 그 효과가 무엇이오?”
“너, 내 책 백변신투를 다 읽었지?”
“그렇소.”
“그럼 도둑의 칭호에 3단계가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 3단계를 말해 봐.”
나는 기억을 되살리며 그의 물음에 대꾸했다.
“가장 낮은 도둑을 절(窃)이라 했고, 중간단계의 도둑을 도(盜)라 했으며, 최고단계의 도둑을 투(偸)라고 했었소.”
“어떤 차인지도 알고 있냐?”
“최하단계인 절도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기술 없이 훔치는 자이며, 중간단계인 도객은 생각을 하되 기술이 없는 자이며, 최고단계인 투도는 생각과 기술이 겸비된 자를 말하는 것이오.”
“이야, 외우긴 잘 외웠네?”
의외라는 눈으로 쳐다보던 신투지존이 말했다.
“그래 맞아. 그럼 생각과 기술이 겸비되어야 최상의 도둑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생각을 해야 상대의 생각을 앞서 나갈 수 있고, 기술이 있어야 상대의 기술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것도 맞다. 그런데 사실은 한 단계가 더 있지.”
신투지존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 그게 생각과 기술에 이어, 도둑의 신이 되기 위한 제 3의 능력이다.”
“마음…? 독심술을 쓴단 말이오?”
“그거랑은 좀 다른데, 흠… 다시 한 번 해 볼 테니 내 소매치기를 막아 봐.”
“좋소.”
타다닷
나는 아까처럼 신투지존이 잡은 소매를 방어하려고 전력을 쏟았다. 아까처럼 신투지존은 꽤 힘겨워하는 기색이긴 했으나, 잠시 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손바닥 위에 은자덩어리를 올렸다. 신투지존은 은자덩어리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다.
“힘들긴 하지만 나는 아까부터 어쨌든 간에 10할 확률로 네게서 소매치기에 성공했어. 너는 왜 내 소매치기를 못 막지?”
“당신이 한 수가 빠르기 때문이오.”
“그럼 내 수법이 네 수법보다 확실히 속력이 빨라서 그런 거냐?”
“그건… 아니오. 속도는 비슷하오.”
“흐흐. 이게 바로 묘의(妙意)다. 나는 네 무예의 마음을 읽어낸 거야.”
“……?”
“그러니까 무조건 한 수를 앞서나 간 거지.”
무예의 마음이라고?
아리송한 말에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신투지존이 말했다.
“무예에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나?”
“무예란 건 실존하는 생명체가 아니라 개념이오. 개념에 어찌 마음이 있을 수가 있겠소?”
“그건 고정관념이야. 무예에도 생명이 있고 마음이 있어.”
“뭐라고…?”
“나 정도 되는 최고의 도둑에게는 그 소리가 들려오고, 마음이 읽히거든…. 뭐 이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리던 거라서 재능이겠지만! 정확히는 마음을 읽는 게 아니라, 마음이 들리는 거야.”
신투지존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무예에 생명이 있다고?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신투지존이 말했다.
“유상(有常)의 사물을 훔치는 건 쉬워. 왜냐하면 그건 존재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 사물에 얽힌 의지가 도둑질을 힘들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 의지와 마음이 흐르는 걸 읽어서 빈틈을 찾을 수밖에 없어. 그 것이 내가 생각하는 궁극의 도경(盜境)이며, 존재하지 않는 걸 훔치는 수법이다.”
“무슨 말인지 잘….”
“아, 좀 닥치고 들어 봐!”
신투지존이 신경질을 냈다.
“원래 이거까지 알려줄 생각은 없었어. 이건 완전히 내 밑천이거든? 다른 기술을 알려주려 했는데, 자존심 때문에 네게 최고의 도둑에 대한 존경심을 심어주고 싶어졌단 말이다.”
“…….”
“본체 놈이 이 사실을 알면 기가 막혀할지도 모르지, 크크.”
쓴웃음을 짓던 신투지존이 서서히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이 다시 신기루처럼 변했다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내가 그 과정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자 신투지존이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걸 훔치기 위해서는… 먼저 훔칠 물건이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 자기 마음속에서 그 존재를 구현화시키는 거다. 그 후에 무상이 유상으로 변하면 그 흐름을 읽어내어 뜻대로 훔쳐내는 것…, 그 것이 절대지경 만상지투다.”
후웅!
신투지존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내 등 뒤에 나타났다. 나는 신역절기라도 썼나 생각했지만 그런 건 아닌 듯, 그가 자신의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난 방금 만상지투로 네 기(氣)를 훔쳤다. 느껴지냐?”
“기를 훔쳤다고…?”
움찔
“헉!”
나는 그 순간 내 기력 중에서 1할 정도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걸 느꼈다. 그의 말이 전혀 허언이 아니었기에 내가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자, 신투지존이 말했다.
“만상지투는 보통 겸사겸사 근접전에서 상대의 기력을 훔쳐내거나, 장기를 훔치거나, 수법을 읽어내서 방어하거나 빈틈을 찌르거나, 아니면 공간을 훔쳐서 간극을 조정할 때 쓴다구.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응용 방법은 많아. 모두 시전자의 역량에 달려 있지.”
후웅!
“이걸 궁극으로 발전시키면 신역절기가 되어서 진정으로 모든 걸 훔칠 수 있게 되는 거고. 물론 인간계에선 거기까진 못하고 한계가 있어. 의념천주의 한계지.”
다시 한 번 신투지존이 허공에 손을 휘두른 것 같았는데, 갑자기 그가 순간이동을 하듯 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나는 그의 신위에 진정으로 경악하고 말았다.
‘세상에…. 모든 걸 훔친다는 게 허언이 아니란 말인가!’
기라고 하는 무형의 존재조차 훔쳐 버리고 상대와의 공간까지도 훔쳐버릴 수 있다니!
과연 절대지경의 무학이라고 할 만 했다.
‘역시 검선 여동빈과 동시대의 초인…!!’
나는 신투지존에게 물었다.
“대체 이런 걸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나는 오랫동안 강호행을 해왔다 생각했으나 비슷한 무공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눈앞의 신투지존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였기에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강호행을 하면서 온갖 절세무공과 비급 등을 모두 섭렵해왔다 생각했는데, 신투지존의 무공은 아예 궤를 달리하는 기오막측한 것이었다. 그러자 신투지존이 말했다.
“내 스승은 따로 없고 문파도 없어.”
“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있어서, 대충 도둑질하면서 익히고…, 상대 무공을 보고 어깨너머로 익히고…, 그러다 보니 강해지기 시작했지. 독학만 수십 년 했다고 할까. 무공을 팠으면 더 빨리 절대지경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별로 흥미가 없더라고.”
“…….”
천재다.
그것도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의 천재였다.
저 말대로라면 신투지존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무공을 따라서 익힐 정도의 초절한 재능마저 지니고 있었던 셈이기 때문이다. 검귀의 재능을 타고난 여동빈과 대등,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신투지존이 말했다.
“이걸 익히기 위해서는 무공재능은 별로 필요 없어. 일단 ‘듣는’게 중요 하거든. 그걸 절대지경의 의념천주로 강화시키는 것뿐이고.”
“무공재능과는 다른 겁니까?”
“다르더라고. 세간에서 천재라는 놈들 몇 놈한테 가르쳐 봤는데 다들 못 배웠어.”
“…그런 걸 어떻게 제가 배웁니까.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전 재능이 없습니다.”
“할 수 있어. 넌 왠지 될 것 같아. 그….”
신투지존이 예리한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말했다.
“날로 먹으려는 심성이 마음에 들어. 도둑은 그래야지!”
뭐라고!
내가 입을 쩍 벌리자 신투지존이 히죽 웃었다.
“이건 내 감이야.”
“…….”
“내 감은 잘 맞더라고.”
이건 칭찬인지 뭔지 모르겠군….
‘젠장. 내가 날로 먹으려 한다니 무슨….’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해서 할 말이 없었다. 설마 절대지경이 인간의 심성을 가려 받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뜬금없이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때 신투지존이 말했다.
“잔말 말고 시작하자고.”
“…네. 요결을 가르쳐주십시오.”
“요결? 그런 거 없어! 듣기를 해야 한다는 데 무슨 요결이야. 내가 도가문파 꼰대로 보여?”
“그럼 어떻게 배워야 합니까?”
“알아서, 잘, 최선을 다해서!”
파바밧
그렇게 말한 신투지존이 다시 한 번 내게 소매치기를 했다. 나는 또 다시 막았지만 또 털리고 말았다. 신투지존이 다시 내게 훔쳐낸 은자덩어리를 던져주며 말했다.
“소매에 다시 넣어. 내 소매치기를 막아내면 기초수련은 합격이야.”
“당신을 공격해도 됩니까?”
“물론. 내가 하지 말라고 했던가? 어차피 도둑질하다보면 칼빵 정도는 수시로 먹게 마련이지만, 그것조차 극복해야 최고의 도둑이지.”
얕보는군.
쉬칵!!
나는 다음번에 신투지존이 소매치기를 하자 곧장 검을 꺼내서 검뢰로 그의 몸을 절단하려고 들었다. 엄청난 속도였기에 아무리 절대지경이라도 이 거리에서는 손을 뺄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공격해 들어가는 순간 신투지존은 기묘한 움직임으로 내 검뢰를 모두 피해내고는 소매를 훔쳤다.
파밧
“공격해서 빈틈이 나니까 더 쉽군! 방어만 할 때가 더 힘들었어.”
“……!!”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피한 겁니까?”
“무영탈주로 피했어. 이것도 내 밥 줄이지.”
나는 신투지존의 신법이 모조리 종이 한 장차로 내 검뢰를 다 피해낸 걸 알아채고는 소름이 돋았다. 지근 거리에서 이 정도의 신위를 보일 수 있는 자는 인간세상 무림에서 세 손가락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신투지존의 독문신법, 무영탈주의 위력!
말로는 멸혼보에 비해 무영탈주가 뒤진다고 했으나, 그저 달리기속도에서 뒤질 뿐, 실전에서는 그에 못지않은 절세무공이었던 것이다.
‘당나라 황궁에서 검선 여동빈의 천둔검법을 여유롭게 피해냈던 것도 이 신법이었던 건가?’
여동빈이 유난히 신투지존을 고평가한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신투지존은 그럴만한 초고수였던 것이다.
나는 다시 검을 잡으며 말했다.
“오십시오.”
파바밧!!
파바밧!!
나는 무려 백 오십 번이나 반복했으나 단 한 번도 신투지존의 소매치기를 막지 못했다. 소모된 기력 때문에 잠시 숨을 몰아쉬자 신투지존이 말했다.
“재능 문제가 아니라니깐? 넌 이미 배우고도 충분한 경지야. 그러니까 마음을 들어라.”
“마음을 들으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선문답이 아니야. 지금 네 무공이면 깨닫고도 충분해. 네가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도둑질을 기억해내라.”
“…….”
“날로 먹으려는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살면서 이런 충고는 정말 처음 들어본다.
‘날로 먹는다…. 날로….’
그러고 보니 나는 살면서 도둑질을 얼마나 해 왔던가?
비단 백변신투로 행한 도둑질뿐만 아니라, 전생하자마자 비등과 목갑을 이용해서 온갖 보물들을 싹쓸이 했던 것 또한 도둑질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 모든 걸 도둑질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가 임자일수도 있는 물건을 다 내 이득대로 챙겨온 건 사실이다. 그것까지도 도둑질이라고 치면 내 경험치는 차고 넘치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낯부끄럽기도 하다. 그렇게 치면 난 지금까지 샐 수 없이 도둑질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 붉어지자 신투지존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이야… 정말 가르친 놈들 중에서는 처음 보는 반응인데? 너 정말 도둑질 많이 했나보다.”
“그, 그게 아니고.”
“본성에 솔직해져. 어째서 모든 걸 노력해서 얻어내야만 하지? 이 세상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나? 누굴 위해 개미처럼 노력하는가?”
신투지존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노력하기 싫어! 인생을 날로 먹게 해달라는 말이다! 그것이 도둑들의 의지다!”
“……!!”
젠장!
공감하는 내가 싫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불쾌감이 들어서 외쳤다.
“아뇨! 그래도 그건 아니죠! 무슨 개떡 같은 소리입니까!”
그렇게 치면 내가 죽어라 노력한 세월은 뭐가 돼!
이래봬도 진지하게 무예를 수련하고 있단 말이다!
“그래? 그러면 증명해 봐!”
슈슈슉
다시 한 번 신투지존의 수법이 덮쳐왔다. 이 수법은 그리 빠르지도 않은데도 내가 별의별 수단, 심지어 무쌍패를 쓴다 해도 잠시 물러날 뿐 다시금 뱀처럼 파고들면서 기어코 훔쳐내고 말았다. 신투지존이 내 무예의 마음을 읽어서 한 수를 앞서나 간다는 건 허세가 아니라 진실이 분명했다.
그럼 나 또한 신투지존과 마찬가지로 무예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아니, 들어야 한다. 하지만 무예는 살아있는 게 아닌데 어떻게 말을 하는 것인가? 그걸 또 어떻게 들어야 한다는 걸까? 그리고 그게 날로 먹는 심성과 무슨 관계가 있단 거지?
그 순간이었다.
‘아…?’
신투지존의 저 공격 또한 노력해서 대응하지 않고 날로 먹듯이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쉽게 쉽게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살면서 쉽게 얻어내고자 노력했던 마음이 내 심장을 가득 채우면서 문득 명정(冥靜)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려지는 듯한 달인의 공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것이 총천연색으로 변하며 모든 감각이 제멋대로 활개 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마음’이 들렸다. 그것은 신투지존이 뭐든 쉽게 얻어내려고 하는 마음이었으며, 나는 그 마음의 방향에 따라서 홀리듯이 칠대절학과 뇌신류의 권법을 써서 따라갔다.
순간 망설임이 느껴졌고 심마(心魔)가 닥쳐왔다. 이 경지를 알 것 같지만 거부감이 느껴진다.
정말 이대로 가도 되나?
정말로 날로 먹으면서 쉽게 뭐든 얻으려는 게 내 본성이며 경지란 말인가?
무인으로써 살아온 일생과 도둑의 경지가 너무 모순되어서 거부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술 하나에 내 인생을 좌우 당하지는 않겠어.’
그러나 동시에 나는 스스로를 극복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나태함과 편의성을 밝히는 성질은 인정해야 하지만, 나는 그만큼 또 노력을 해 왔다. 날로 먹는 걸 좋아하지만 사실이지만 노력의 중요성 또한 인지하고 있다. 내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남부끄러울 게 없으니 나는 정정당당하게 한 걸음을 내딛겠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 따위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자, 마음이란게 실제로 보이거나 만져지는 건 아니지만 왜인지 느껴졌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든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또한 말 그대로 감으로 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도 알 수 있었다.
슈슉
그리고 신투지존이 한 발짝 앞서가려고 하고 있을 때, 나는 도리어 그의 한 발짝을 앞서나가며 그의 소매로 손을 뻗었다.
파밧!
다시 한 번 신투지존과 내 신형이 교차했을 때, 내 손바닥에는 은자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신투지존의 소매에 있던 은자덩어리를 훔쳐온 것이다!
문제는 내가 했는데도 어떻게 한 건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으나 어쨌든 해냈다!
신투지존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해냈군.”
“…….”
“너의 집념이 느껴졌다.”
“집념이라면….”
“잘은 모르겠지만, 부질없는 노력과 허송세월만은 싫다는 의지인가? 그 의지가 기술을 이끌어낸 건가? 너도 참 복잡한 녀석인가 보군.”
“…….”
“나랑은 비슷하면서 달라.”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생전 처음 보는 인물인데다 나와 접점도 없던 신투지존이 나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대로 이 허무의 공간에서 천 년 만 년 세월을 보내는 것만은 싫다는 마음이 나를 급박하게 이끈 것이다.
내가 침묵하자 신투지존이 히죽 웃었다.
“만상지투에 대해 더 가르쳐줄 건 없어. 그건 절대지경이라기 보다는 ‘기술’이니까, 그 감각을 갖고 계속 연마하기만 하면 돼. 그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훔칠 수 있는 범위도 계속 늘어날 거다.”
알 것 같다.
그는 이 ‘기술’을 연마해서 절대지경의 경지로 만든 것뿐이고, 본래는 신투지존의 천부적인 재능을 다듬은 별개의 능력이었으리라.
‘좋은 무기를 얻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끝난 겁니까?”
“아까 선물을 준다고 했잖아. 하나 더 남아있어.”
“어떤 선물입니까?”
“훔치기 수법은 가르쳐 줬고, 신법이야 뭐 별로 필요는 없겠고, 그럼 내 절기 중 남은 건 하나지.”
신투지존이 서서히 어디선가 꺼낸 가면을 썼다.
“지상최고의 변장술, 용백변의 진화형인 천면공자(千面公子)를 가르쳐 주마.”
“자, 잠깐만요.”
나는 급히 신투지존을 제지했다.
“벌써 시간을 꽤 쓴 것 같은데…, 여기서 시간을 무한정 보내도 상관 없습니까?”
“지상에 바쁜 일이 있나 보지?”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서 시간 보내는 게 지상세계의 시간과 같다면 문제가 되어서….”
“일 년이야.”
“네?”
신투지존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좌의 주인으로써 가진 권능으로 일 년 정도는 여기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아. 여기서 나가도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을 거다.”
“……!!”
“일 년 후엔 내보내야겠지만.”
그가 팔짱을 꼈다.
“안 그래도 천면공자는 앞의 두 가지보다 훨씬 더 연마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섬세함과 정밀함이 극도로 필요하고, 알아야 할 세부지식도 많아. 일 년도 부족할 테니 최대한 배우고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