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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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무사시를 앞둔 순간, 그는 다짜고짜 최강의 일섬을 날려 왔다.
절기(絶技)
무쌍참(無雙斬)
과거 해신족 수만 마리를 일격에 모조리 베었던 절대지경의 오의!
그 압도적인 위용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찰나에 죽음의 위기를 느낄 수 밖에 없었고, 동시에 무사시가 나와 싸움을 오래 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검마와 겨룰 때와는 카메와리의 자세를 취하면서 서로의 검세를 비교해보며 기예를 겨루려 했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무쌍참을 쓴다는 건 즉시 결판을 내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나를 하수로 보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하수로 보았다면 일반기술부터 쓰면서 내 밑천을 본 후에 결판냈으리라. 그가 무쌍참부터 쓴다는 건, 되려 나를 얕보지 않기 때문에 선수필승을 차지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무쌍참을 써야 내 밑천을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찰나의 순간에 무쌍참의 기세를 고요히 관조(觀照)했으며 투명한 눈빛 너머로 무쌍참이 차원의 균열을 넘나들며 내 빈틈을 베어오는 섬짓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내 손이 태극을 그렸다.
그리고 양수(陽手)가 좌(左)를 차지하며 내 발이 진각을 밟았고, 진각의 거센 타격음이 땅거죽을 울리는 순간, 절세무적의 오의가 내 양손에서 발현되었다.
무쌍패(無雙覇)!
콰과과광
혈풍(血風)이 사방에 쏟아지며 와류(渦流)가 만들어졌다. 마치 천재지변이 일어난 듯 와류가 용운궁의 궁궐을 조금씩 무너뜨렸고, 종종 바위조각이 하늘에 떠올랐으나,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상을 찌푸렸다.
‘힘을 완전히 무(無)로 만들지 못 했군….’
본디 무쌍패로 무쌍참을 완벽히 중화시켰다면 이런 파괴력이 주변에 흘러나가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사시의 일 검을 허공의 칼질로 전락시켜야 했다. 그러나 무쌍참에 담겨있는 절대지경 의념천주의 위력이 너무 강력했기에, 무쌍패로 방어는 했으되 주변에 여파가 몰아친 것이다. 무사시는 자신의 일격을 내가 무리 없이 막아내자 눈에 이채를 띄었다.
“놀랍군! 설마 무쌍참을 방어하다니. 그건 어떤 무공이지?”
“모르는가?”
내가 약 올리듯 말했으나 무사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 그런 무공은 동영에서도 고려에서도 보지 못했다. 말해다오.”
“…….”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
하지만 무사시가 그저 무(武)에 미쳐있을 뿐 딱히 선악이란 게 존재치 않는 괴인이란 걸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태도였다.
나는 속일 이유도 없었기에 천천히 대꾸했다.
“무당파 칠대절학 극의 무쌍패!”
“무쌍패…. 후… 과연.”
무사시는 되려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자 약간 소름이 돋았다.
‘빌어먹을. 저 자식… 무쌍패의 성질을 파악했을 텐데도 웃음이 나온단 말인가?’
절대지경의 고수인 이상 무사시 또한 무쌍패가 완전히 상대의 힘을 무로 되돌려버리는 무위전변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리라. 당연히 강력한 일격에 힘을 쏟는 무사시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도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다. 도리어 내가 살짝 긴장하자 무사시가 말했다.
“율주 이래로 제대로 싸워볼 만한 놈이구나. 후후….”
나는 무사시의 여유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속 나를 밑으로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잘난 척 하지 마. 넌 하은천한테 처 발렸잖아.”
사실이니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
무사시의 얼굴이 싹 돌변하며 굳어 버렸다.
이기려면 심리전 또한 좋은 전술이다. 나는 멈추지 않고 그를 동요시킬 셈으로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하은천의 천의무봉에 대항할 경험을 쌓으려고 중원의 절세고수를 찾고 있겠지만, 꿈 깨셔. 넌 아직 검으로 최고가 아니니까!”
“최고가 아니라고…?”
“그래.”
“그럼 나보다 더 강한 검객을 본 적이 있단 말이냐? 정말 중원에 그런 이가 있는가?”
무사시의 얼굴엔 의혹이 짙게 서려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광오하기 짝이 없군….’
저 질문 자체가 오만하다. 달리 말하자면 천상천하에 자기보다 강한 검객이 있을 리가 없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있어! 네 심검 따위는 그의 검결에 미치지 못한다.”
“그게 누구냐?”
“나한테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일 수 있다면 그 때 가르쳐 주지.”
“좋다….”
내가 계속 그를 약 올렸으나, 무사시는 도리어 눈빛이 침잠해 들어가면서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인의 감으로 무사시가 평상시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제 칠감의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챘기에 뜨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제길! 안 흔들리고 되려 집중한다고? 어떻게 된 놈이야….’
역시 무사시는 무사시인가.
나는 입맛이 쓴 걸 느끼면서도 무사시의 공격에 집중했다.
부웅
이번에 무사시는 무쌍참처럼 큰 기술을 쓰지 않고 특유의 보법을 쓰면서 동영검술을 시전했다. 하단세에서 비스듬히 쳐올리는 자세였으며 전형적인 카타(形)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 단 한 줌의 낭비조차 없었기에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동영검술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그의 자세를 보자마자 어떤 기술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천구서(天狗書) 히토츠노타치(一の太刀)!’
분명히 가시마신류의 검호가 쓰던 기술이다! 방어와 공격이 한 호흡에 이루어지는 가전검술로써 상당히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다만 무사시 정도의 검성이 쓰기에는 조금 하찮은 검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나는 예전에 보았던 히토츠노타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매끈하면서도 절제된 일참에 넋을 놓을 지경이었다.
‘…가시마류의 검호가 쓰던 기술을 한 번 보고 즉시 상상해서 익힌 게 분명해. 하지만 어떻게 곁눈질한 아류가 원본을 초월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재능이다….
투웅!
나는 감탄하면서도 무쌍패를 쓰지 않고 절기 여의조령을 쓰면서 몸에 호신강기를 감돌게 했다. 이번에는 그의 검이 흐르는 궤적을 읽으며 일단 공격을 흘려보낼 목적이었다. 무쌍패를 쓰지 않은 이유는 무사시가 무쌍패의 본질을 파악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쌍패를 큰 공격을 막을 때 외에 사용하게 되면 내 위험부담이 쌓인다는 걸 알아첸 게 분명해.’
근거는 딱히 없지만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무쌍참보다 더욱 강력한 신살참을 써서 베어버리려 하지 않고 다른 검기를 써서 공략해 온다는 건, 아마 무쌍패를 발현한 직후에 생기는 빈틈을 노린다는 뜻이다. 당연히 나는 그 빈틈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무사시의 공격에 눈치껏 대응해야만 했다.
위잉
여의조령이 펼쳐지면서 무사시의 공격궤도가 읽혔고 나는 옆구리로 그의 일격을 흘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사시의 검심(劍心)이 즉시 돌변했으며, 그는 거칠게 검로(劍路)를 직각으로 꺾으며 내 목을 베어왔다. 기쾌하면서도 신랄한 검격에, 나는 이번에는 검뢰를 시전하면서 무사시의 검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콰르릉!!
검뢰가 눈앞을 아리게 할 정도의 전광(電光)을 뿜어냈으며 무사시의 살기에 터져나갔다. 마치 번개가 폭죽처럼 터져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저리는 손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재차 무사시와 정면으로 강격(强撃)을 부딪혔다.
콰광!
과과광!!
마치 검이 아니라 서로 망치를 들고 두들기는 듯한 정면대결! 무사시도 나도 검기의 정묘함을 버리고 힘으로만 겨루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서로의 우위와 간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백중세.’
정확히는 서로의 장점이 상쇄되어 버린다.
당연히 내공력과 검뢰의 힘 등으로 보면 내가 힘에서 압도해야 정상이겠지만, 무사시의 의념천주는 절대지경답게 그 힘의 차이를 단숨에 메꿔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강검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는 국면이란 걸 서로가 알아첸 것이고, 이제부터는 눈치싸움이자 기예의 전술성이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크윽.”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에 내가 침음성을 내자 무사시가 검으로 가로로 치켜들며 말했다.
“재밌군. 이런 싸움은 처음이다.”
“뭐?”
“내 전투본능과 너의 기술… 어느 쪽이 이길지 승부다!”
고오오오
무사시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기 시작했고 방금 전보다 더한 집중력을 발현하기 시작한 듯 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이 순간 가장 중대한 변수가 무엇인지를 알아챘다.
‘신살참(神殺斬)!’
비록 전생하면서 신살참의 전적은 좋지 않았으나, 무사시가 쓸 수 있는 검기 중에서 최고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리고 무쌍패가 무쌍참을 막을 때 완전히 상쇄하지 못하고 와류가 일어났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신살참에 뚫릴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건 최악의 경우일 뿐이다. 무쌍패에 완전히 집중한다면 신살참이라 할지라도 막아낼 게 분명하다. 그러나 무사시는 목각인형이 아니니, 내가 무쌍패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도록 계속 전술적으로 방해할 게 뻔했다. 방금 본 것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동영검술의 절기를 동원해서 판을 짜려 할 것이다. 틀림없다.
신살참이 덮쳐오는 순간 막으면 내가 이긴다. 신살참을 쓴 무사시는 크게 지칠 게 분명하니 내가 체력과 기력싸움으로 몰아가서 필승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신살참이 내 무쌍패의 빈틈을 뚫는다면 내가 진다.
“…….”
나는 전생자의 감으로 이 자리에서 내가 불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사시의 말마따나 이 대결양상을 결정하는 것은 무사시의 타고난 전투본능, 즉 재능의 그릇에 달려 있었다. 그의 재능이 내가 여태껏 쌓아왔던 경험과 무공기술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신살참이 무쌍패를 불완전하게 만들어서 나를 벨 수 있으리라.
그리고 분하지만 감으로 볼 때 무사시의 재능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저 놈은 동영무예 역사상 전대미문의 초천재였기 때문이다.
나는 등골이 섬칫해지면서 엉덩이 아래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중장기전에 들어가서 기예를 겨루며 전술싸움을 할 경우 결국 외통수에 몰려서 죽게 되는 내 미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감뿐만이 아니라, 직접 무사시와 목숨 걸고 2번이나 겨뤘던 검마의 전투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천재인 검마조차도 무사시의 전투본능에 몇 번이고 힘겨워했다면, 내 무공절기가 아무리 다채로워도 허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진소청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천재는 무공의 역사를 거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그럼 변수에 변수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배운 걸 써먹어야지!
나는 내심 중얼거리면서 천천히 손을 들었다. 내 행동을 무쌍패의 시전이라고 생각한 듯 무사시가 훗하고 웃었다.
“그 강력한 오의는 무구한 집중력과 완벽한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정상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 나는 네 빈틈을 노릴 것이다.”
“알아. 하지만 잡기술은 너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뭐?”
“흐흐. 보라고.”
나는 실쭉 웃으면서 천천히 허공에서 가면을 덮어썼다. 그리고 천면공자의 1단계가 발동하면서, 내가 여태껏 보아왔던 인간 중에서 한 명의 실체가 내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스스스
잠시 후 내 몸이 해당인물로 변신하자 무사시가 눈을 꿈틀거렸다.
“누구로 변신한 거지?”
나는 눈을 번득하고 빛내며 육합전성으로 중얼거렸다.
우우웅
내가 허공에서 강환(罡丸)을 오십 개 만들어내며 어둠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자, 미야모토 무사시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강환을 빠르게 쳐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강기의 투환이라서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기에 초절정고수도 일격에 찢어죽일 수 있을 텐데, 마치 돌덩이라도 쳐내는 것 같았다.
나는 무사시가 막아내는 틈에, 장심에 모든 내공을 집중해서 거대한 사자후와 함께 불경한 범언을 토해냈다.
[사바하(娑婆訶)!]키기기깅
‘으으으윽….’
나는 억지로 만들어낸 등 뒤편의 거대한 만다라가 후광을 뿜어내자 엄청난 내공의 소모 때문에 손발이 후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마치 강신한 여동빈이 보패를 마구 쓸 때 같은 느낌이었다.
‘제, 제기랄…. 내 내공으로도…? 역시 진짜 원영신과는 아직 격차가 있나보군….’
하지만 여기서 굴하면 그대로 패배였기에 정신력으로 이겨내면서 만다라를 억지로 회전시켰고, 이윽고 사바하의 범언과 함께 무사시를 향해서 거대한 광선이 쏘아져 나갔다.
콰과과과광!!
“크흐윽!!”
무사시는 처음으로 비명을 토해내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뜻밖의 공격인지라 그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듯 했고, 무엇보다도 혼돈의 힘을 머금고 있었기에 사실상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크게 다치진 않은 듯 했고 그저 힘을 아끼기 위해 한 번 물러난 느낌이었다.
무사시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더니 아직 남아있는 용운궁의 잔해 위에 착지했다. 그는 내가 변신한 모습을 예리하게 노려보더니 말했다.
“다음번에는 벤다.”
[너라면 그러겠지. 아무리 백련교주의 전투방식이라도 네게 같은 수법은 안 통할 거다.]
“백련교주?”
무사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스으윽
나는 다시 한 번 손을 들어서 가면을 바꿔 썼다.
그리고 나는 뇌신류 종사, 이청운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알고 있는 만큼 시도해 봐야겠지.”
파직!
동시에 내 몸에서 뇌천(雷天)이 흐르기 시작했다.
천면공자의 1단계는 2단계와는 달리 상대의 모든 능력을 훔쳐오는 효능까진 없다.
하지만 – 충분히 상대에 대해 알고 있고 인격에 대한 경험치가 높다면, 가면술사가 연기를 하듯 그 자의 능력을 모사(謀寫)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대상의 본체보다는 훨씬 떨어지는 능력과 기술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가면술.
‘이긴다.’
벌써 27번이나 전생(轉生)한 내가 쓰지 못할 가면은 천하에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