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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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여동빈의 물음에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여동빈이 과거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망량선사에게 혼돈과 태허의 융합에 대한 단서를 듣고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여동빈은 뜻밖에도 소환없이도 나타났었는데 순수하게 자기 힘을 소모해서 모습을 드러낸 일이었으므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여동빈은 내게 한탄인지 뭔지 모를 이야기를 한 후 판단을 보류한다고 하면서 사라졌던 것이다.
‘ 왠지 그 때의 문답이 연장된 느낌이다.’
물론 여동빈이 그 당시의 기억을 갖고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가 지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 당시와 같다는 건 즉시 알 수 있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면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 ……”
여동빈 본인의 말로 되돌려주자 여동빈은 깊이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 표정이 불안해져서 다시 한 번 물었다.
” 신이 되는 게 잘못되었다 생각하십니까?”
나는 사실 언젠가 신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까지는 신력이 그정도 수준은 아니지만 앞으로 전생을 하면서 계속해서 신력을 더 쌓는다면 신의 경지에 도달할게 분명했다. 물론 장구한 시간 – 수백에서 수천 년은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문제일 뿐 현실적인 문제인 건 틀림없는 것이다. 그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내게 있어서 신화(神化)는 뜬구름잡는 철학문제가 아니었다.
여동빈이 입을 열었다.
” 연자여. 그대처럼 생각한 자는 과거에 분명히 존재했었다. 그러나 천하 그 어디에도 인간만을 위하는 선량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그리하겠는가?”
” 으음.”
뜻밖의 이야기다.
‘ 그러고보니 신이 되려는 인간도 많았을 텐데 왜 착한 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
아마테라스같은 경우 인간을 좋아하고 도와주려 하는 듯 하지만 그녀는 창세신이자 고대신이었기에 태초부터 신격이었다. 인간에서 신이 된 예시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신이 된 경우 선신(善神)이 되었다는 예는, 여동빈의 말처럼 내가 전생을 하면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 … 인간의 몸으로 [옛 지배자]와 대등한 경지에 오른건 기껏해야 창힐인가… 하지만 창힐은 선하지도 않았고 인간을 위해서 활동한 게 아니었다.’
명분은 인간종족을 위해서이지만 창힐의 모든 행동은 그 개인의 이기심이었으며 그저 왕좌에 오르고싶은 것 뿐이었다. 여동빈의 말이 뜻밖에도 깊은 부분을 찌르자 나는 어찌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사가 대답했다.
” 어설프게 강한 존재가 선량해봤자 [옛 지배자]에게 짓눌릴 뿐이기 때문이지. 마치 너희들처럼. 그리고 [옛 지배자]와 동격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런 초월자에게 있어서 필멸자의 선악(善惡)은 이미 무의미하기 때문이 아닌가?”
” 끼어들지 마라, 마도사. 나는 연자의 대답을 듣고 싶다.”
여동빈이 차갑게 대꾸하며 나를 응시했다. 나는 여동빈의 몸 주위에 주황빛 기세가 번져나오는 걸 느끼자 움찔했다.
‘ 심검지세(心劍之勢)!’
그의 기세로 보아 한번만 더 제갈사가 끼어들면 베어버릴 것 같았기에 제갈사도 더 이상은 입을 열지 못했다. 제갈사가 겁이 없다지만 여동빈처럼 한다면 하는 성격 앞에서는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나는 여동빈의 시선을 마주보며 대답했다.
” 아무리 강해져도 이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 ……”
여동빈이 처음으로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 종말을 막는 것과 초월자의 선(善)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 … 희망이 없으면 선도 악도 무용(無用)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었다.
” 나는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종말을 막을 수 없어서 스스로 타락하고 절망한 현인(賢人)과 영웅(英雄)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본디 선량한 자들이었으나 결국 악한 수단을 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그런가.”
”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악한 자들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저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선이고 악이고를 떠나서 생존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게 지극히 당연하지 않습니까. 가능성이 선과 악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여동빈은 내 대답에 무표정하게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 그 말은 두 가지 뜻이 되겠구나. 하나는 절망한 세계에서 악하게 살더라도 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대가 신이 되는 행위란 결국 악(惡)의 일좌(一座)가 늘어날 뿐이니 백해무익하다는 사실인가.”
” ……”
” 그대를 이 자리에서 베더라도 우릴 원망하진 못하리라.”
그, 그게 그렇게 되나?
나는 뜻밖의 반박에 잠시 허둥거렸으나 평정을 되찾고는 말했다.
” 절 베면 뭐가 달라집니까? 세상이 뭐가 바뀌죠?”
” ……”
”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신이 되어봤자 쥐꼬리만한 힘을 가진 새끼신이 될 뿐인데, 이미 세상에는 거악(巨惡)이 흘러넘치지 않습니까. 저를 죽여서 세상의 평화에 기여했다 말씀하실 수 있다면 기꺼이 목을 내드리겠지만, 절대 그렇진 않을 겁니다!”
” 적어도 당금에 천계가 멸망하는 건 막을 수 있겠지. 왜냐하면 그대가 일행의 우두머리일 터이니.”
” 천계를 그렇게까지 지켜야 하시는 겁니까. 그럴 필요까진 없을 텐데요.”
여동빈이 세게 몰아붙이고 있지만 나는 어쨌든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자리에서 상급 대라신선 세 명과 싸우면 죽을 게 뻔했기에 상황을 호전시키고 싶었다. 그러자 여동빈이 말했다.
” 이상한 일이군.”
” 네?”
여동빈이 냉막하게 말을 이었다.
” 그렇게까지 구원의 의지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연자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으며, 연자 또한 세계를 구해야 할 이유는 딱히 없을 것이다. 그건 연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공통된 현실.”
” ……”
” 단순히 죽기 싫어서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가?”
이 세상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여동빈의 그 한 마디는 단순했지만 무겁게 내 가슴 속에 틀어박혔다. 내가 평소부터 가지고 있던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외모도, 능력도, 재능도, 두뇌도, 신체도, 가문도, 친구도, 미래도…
첫 번째 삶에서 나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서 살았던 것 같다. 고수가 되겠다는 꿈 또한 현실도피에 불과했으며 내 존재는 기나긴 해안가의 모래알과 같았다. 고작해야 표사의 삶조차도 내게는 버겁고 힘겨웠다.
사실 몇 번 정도 전생해서 충분히 잘먹고 잘 살 기반을 마련한 후에는 행복한 삶을 추구할수도 있었으리라. 지금처럼 서른 번 가까이 죽어가면서 불가능에 계속해서 도전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그러나 나는 씁쓸함을 목구멍으로 집어삼키며 입을 열었다.
” 죽는 게 뭐가 두렵겠습니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게 더욱 두렵습니다.”
” 지금의 연자를 보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할 자는 없을 것이다.”
” 아뇨. 목표를 이루지 않는 한 그 모든 것은 물거품입니다. 저는 세상을 구하려 하지만, 그건 저만의 의지가 아닙니다.”
” 그럼 누구의 의지인가?”
나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 … 사나이의 의지이며 동료들의 대의(大義)입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죽는 건 이제 와서 그렇게까지 두렵진 않다. 안 두려운 건 아니지만 이렇게나 자주 죽는다면 익숙해질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면, 망량은 도대체 왜 죽은 것인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준 제갈사, 검마, 진소청, 미호, 서문혜, 극호… 그들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다.
정말로 문제인 것은, 내가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죽음을 갚으려 해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세상의 어떤 수단으로도 내가 그들에게 속죄할 방법은 없으리라. 그리고 이제 내게 있어서 그들의 목숨을 갚아줄 방법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을 절망의 운명에서 구해내는 것.
이 세상의 모든 사악한 신들을 무찌르고 세계의 멸망을 피하게 하는 것만이 내 유일한 구원이 될 것이다.
” 음…”
여동빈은 내 대답을 듣자 정말로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한참동안 고민하던 여동빈이 옆에 있던 구류손대법사와 팔선 장과로에게 말했다.
” 이들을 도와야겠습니다.”
그러자 십이대선인 구류손대법사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 서왕모… 그녀에게 대적하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일진대… 그리하여 방관하기로 한 게 아니었느냐, 동빈아.”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풀썩
” … 헉!!”
여동빈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아무리 구류손과 장과로의 서열이 높다고 하더라도 여동빈 또한 대라신선이었으니 그들에게 굽힐 이유는 없었다. 십이대선이라 해도 함부로 팔선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동빈은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 부탁드립니다.”
” … 호오오…”
구류손대법사가 크게 고민하자 팔선 장과로가 껄껄 웃었다.
” 대법사! 한낱 인간도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는데 어찌 신선이 소멸을 두려워하겠소?”
” 그것도 그런가…”
구류손대법사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 가자. 어찌되었든 오늘이 천계의 마지막 날이라면 함께 묻히는 것도 내 업이겠지…”
우우웅
그러자 구류손대법사 주변에 여섯 개의 초록빛 원이 나타나더니 누군가가 공간이동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자마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중화팔선(中華八仙)!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여동빈과 장과로를 포함해서 모든 팔선이 이 자리에 집결한 것이다. 종리권이 여동빈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 껄껄… 천계가 망하면 나랑 중원의 술을 다 마시러 다니자!”
저벅
” ……”
” 일이 이리 됐으니 구천현녀의 말대로 해야겠구나… 모두 함께 서왕모에게 가자.”
여동빈이 말했다.
” 서왕모를 죽여야 합니다.”
” 허허… 가능할지.”
구류손 대법사는 회의적으로 말하면서도 앞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구류손 대법사가 제일 앞에 앞장선 채로 그 뒤를 팔선이 뒤따르자 그 위용에 놀라움을 느꼈다. 신력과 화안금정을 깨우친 내 눈에는 대라신선 아홉 명이 동시에 움직이자 마치 거대한 산맥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슈슈슉
그들은 머지 않아 구름과 함께 선술(仙術)로 사라졌고, 장내에는 나와 제갈사만이 남았다.
제갈사가 흥미로운 듯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 백웅, 이게 바로 정향의 인과율인 듯 하군.”
” 제갈사.”
” 구천현녀가 사전에 십이대선 중 믿을만한 자 몇몇에게 모반의 계획을 알렸고, 동참하거나 방관하라고 했을 것이다. 아무리 구천현녀라도 혼자서는 서왕모를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리고 구류손은 방관하려 했으나 지금 여동빈의 설득으로 움직인 것이다.”
” 그게 정향의 인과율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까?”
” 할 수 있지. 너는 한낱 인간에게 중화팔선의 수좌인 여동빈이 진지하게 대화를 걸고 네 대의에 설득되어 십이대선을 움직이기 위해 무릎까지 꿇을 확률이 얼마나 된다 생각하느냐? 그것도 팔선까지 다같이 움직이면서.”
” ……”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그 확률이 정말 적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방금 전의 설득에서 기적적인 확률을 느꼈다. 9할 9푼은 이 자리에서 죽을 가능성이라고 봤어.”
제갈사의 말대로였다.
여태껏 여동빈은 나와 단말이 통해져 있는 것과는 별개로 정말로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자신의 신념과 목표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며 내 말을 무시하거나 내가 죽게 내버려두거나 방관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서는 내게 칼침을 먹여서 죽이기도 했었다. 그런 여동빈이 우리에게 동조해서 무릎까지 꿇을 확률은 정말로 낮은 것이다.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 중화팔선과 십이대선 한 명이 우리 편이 되었다. 그럼 우리는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바로 되돌아가서 제천대성과 합류하자.”
” 서문혜에게 합류해서 그녀를 돕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불안해서 말했다. 미호의 실력은 신급에 이르러 있으니 크게 걱정되지 않았으나 서문혜가 아무리 초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상위 대라신선을 다른 문제였다. 당연히 여유가 생기면 서문혜를 도우러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제갈사가 고개를 저었다.
” 서문혜는 네 생각보다 훨씬 강해. 솔직히 옆에서 그 잠재력을 측정했던 내가 보기엔 네가 걱정한다는 게 우스울 정도다.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건지…”
” … 그 정도야?”
” 거신족의 정통 선조회귀란 건 사실 인간세상에 나와서는 안되는 거지. 그녀가 네 앞에서는 내숭을 좀 떨었나 보군.”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제천대성이 지금쯤 나타태자를 때려눕혔을 거다. 그럼 얻을만한 게 있으니까 미리 얻어두고 가자고.”
얻을만한 것?
나는 제갈사의 말에 의문을 느꼈지만 일단 그의 말대로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천계의 뒷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전장에 도착하자, 제갈사의 말대로였다.
쿠구궁…
” 크흐… 크흐흑…”
보패인간인 나타태자는 몸 여기저기가 부숴진 채로 전신에게 백혈(白血)을 흘리며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팔다리가 하나씩 부숴진 나타태자는 제대로 설 수도 없었으며 그의 보패인 화첨쟁에 기대어 간신히 서 있을 뿐이었다. 풍화륜 또한 부숴져서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혼천릉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 머리를 깨 줄까? 가슴을 뚫어 줄까?”
그리고 그런 나타태자를 앞에서 귀를 후비적거리는 제천대성은 자기 팔뚝에 길게 나 있는 자상을 만지작거릴 뿐, 별다른 부상이 없어 보였다.
이미 승부가 난 상황.
‘ 세상에… 우리가 떠난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나타태자 또한 괴물처럼 강한 투선인데도 이렇게 실력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내가 놀라서 눈 앞의 광경을 쳐다보고 있자 제천대성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 뭐야, 왜 돌아왔어? 설마 벌써 십이대선을 쓰러뜨린거냐?”
” 구류손과 중화팔선을 회유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우리 편이라서 서왕모를 쓰러뜨리기 위해 그녀의 궁궐로 향했습니다. 아마 구천현녀와 합류하겠지요.”
” 뭐…?!”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제천대성이 정말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황당해하다가 이내 껄껄 웃었다.
” 이야 죽이는군! 그 정도면 오늘 꽤 할 만 하겠는데! 그럼 너네는 나랑 합류하려고 굳이 여기까지 온 거냐?”
그러자 제갈사가 흉소를 흘리며 말했다.
” 흐흐흐. 나타태자를 갈기갈기 찢어 주십시오.”
” 엉? 곱게 죽이면 안 되냐?”
” 나타태자는 선계에서 만들어진 보패인간이니 태어날 때부터 강력한 보패의 핵(核)을 심장에 품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걸 얻고 싶군요.”
” 어디 쓸건데?”
” 제 주군인 백웅을 위해서.”
그러자 제천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그렇게 하자!”
나타태자가 광분하듯 외쳤다.
” 크아아악! 내가 이대로 당할 줄 아느냐!!”
퍼버벅
” 끄어억.”
그러나 이미 승부가 난 상황이었기에 나타태자는 제천대성이 달려들자 3초만에 팔다리가 찢기고 모가지가 뜯겨서 허공을 날았다. 오체분시된 나타태자의 시체가 참혹하게 널부러지자 제갈사는 시체더미에서 나타태자의 몸통을 찾아내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서 가슴을 째고 심장을 꺼내려 했는데, 뜻밖에도 단도가 부러지고 말았다.
까앙!
그러자 제천대성이 말했다.
” 그 놈도 동두철액이고 선철(仙鐵)로 제련된 몸이라서 인간세상의 무기로는 소용없을걸. 청강단도 따위로는 어림없어.”
” 그럼 심장 좀 꺼내주십시오.”
” 제길, 별 걸 다 시키는구만…”
제천대성은 투덜거리면서도 주욱하고 나타태자의 심장을 뽑아냈다. 그러자 심장 내부에서 마치 떠다니는 듯한 붉은 빛 보석이 떠도는 게 보였고, 제갈사는 그 보석을 보더니 히죽 웃더니 내게 심장을 내밀었다.
” 자.”
” ……?”
” 먹어라, 백웅.”
나는 크게 당황했다.
” 뭐, 뭐라고.”
” 순도높은 보패의 핵을 섭취한다면 힘이 급상승하겠지. 당연한 거 아닌가?”
그야 그렇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놈의 심장을 뽑아내서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겠냐고!!
‘ 이건 마도(魔道)로 쳐야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심장을 먹는 게 제대로 된 행동은 아니겠지.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제천대성이 말했다.
” 먹든말든 니들이 알아서 하고, 나는 다른 일 좀 처리하러 가련다.”
” 팔부신중이 침입해 온 걸 막으러 가시는 겁니까?”
” … 뭐, 그런거지. 그 놈들을 막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러자 제갈사가 고개를 저었다.
” 막을 필요 없습니다. 괜히 힘만 빼는 일이니, 그냥 다른 십이대선을 쓰러뜨리러 가 주십시오.”
” 엉? 네가 뭔데 그렇게 자신하는 거냐?”
” 팔부신중의 목적은 불보듯 뻔하니까요. 서왕모를 죽이러 온 겁니다.”
” 아니면 어떻게 하려고.”
” 크크크. 자기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어찌 그런 불안감을 갖겠습니까.”
제갈사는 그저 불길하게 웃기만 했다. 제천대성은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찌푸리다가 말했다.
” 알았다.”
파앗!
제천대성이 사라지자 제갈사가 다시금 나타태자의 심장을 내 입 앞에 들이밀었다.
” 얼른 먹어. 몸에 좋다고.”
” ……”
” 이렇게 귀한 걸 먹을 기회가 그리 자주 오진 않아.”
보약 먹이듯이 설득해도 좀 그렇다.
‘ 그, 그래도 강해질 수 있다면 먹을 수 있지 않… 나…?’
두 눈 감고 먹어보면 어떻게든…
나는 먹어볼까 싶어서 입을 살짝 벌려봤다. 하지만 이내 비위 때문에 눈을 질끈 감았다. 생으로 인간의 심장을 먹는다는 건 너무 강렬한 경험이었다. 실제로도 인간이 할 짓이 아니기도 했다.
” 젠장… 못 먹겠어!”
그러자 제갈사가 휙하고 심장을 내게 던졌다.
” 편식이 심하군. 못 먹겠으면 나중에 먹게 넣어둬. 요리사를 구해서 간을 맞춰 주지.”
” ……”
” 이런 건 생으로 먹으면 식감이 좋은데 말이지.”
” … 아… 그래…”
그 식감을 어떻게 아느냐고 제갈사에게 물어보면 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