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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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우리는 본거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갈유룡이 말했다.
” 제천대성을 지원하러 중화팔선이 간다고 전해 왔다. 우선은 전황을 고착시킬 수 있을 듯 하다.”
” 고착이라고? 어떤 상황이길래.”
” 제천대성이 그럭저럭 버티는 중인 듯 했다. 막 종리권과 한상자가 그를 지원하기 시작한 듯 하군. 이제 안심이다.”
” ……”
나는 의혹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 표정을 본 제갈유룡이 짐작을 한 듯 말했다.
”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알겠군. 사도를 넘어선 절대강자인 나인교주가 제천대성을 박살내야 정상인데 어찌 버틸 수 있느냐는 것 아닌가?”
”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라.”
” ‘소질’과 ‘매체’의 차이다.”
” 뭐?”
” 상황으로 미루어 볼때 현재의 나인교주는 강하긴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감당이 불가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제갈유룡의 말에는 반쯤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 뭔가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제갈유룡의 ‘확신’에 대해서는 다른 제갈가의 책사들도 짐작하고 있다는 듯 별반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제갈사가 한걸음 앞으로 나와서 마저 말했다.
” 형님. 고대인을 다뤄서 뭔가 할 계획인가 보군. 시간이 오래 걸리나?”
” 잘 모르겠다. 고대인들 중에 강력한 재능을 지닌 존재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 시간을 벌어달라는 소리군.”
제갈사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 그렇다면 내가 먼저 비장의 수를 쓰지. 시간벌이는 내게 맡겨라.”
” 제갈사! 비장의 수라니?”
제갈사는 힐끔 나를 본 후 말했다.
” 지금 우리 편이 흉신의 세력을 감당함에 있어서 가장 골치아픈 문제가 뭔지 아냐?”
” 음… 잘 모르겠는데.”
” 바로 물량이다. 놈들은 이미 중원의 남쪽을 차지했고 인신공양을 이용해서 온갖 마물과 이족 마도사를 소환하고 있지. 이쪽은 놈들의 고급병사와 간부를 당해낼만한 전력이 있지만 숫자가 부족해서 공세를 막기에 벅찬 상황이다.”
” 물량을 감당할 술책을 부리겠다는 말이냐?”
” 그래. 다만 이 계책을 쓰면… 나는 더 이상 너를 따라가지 못할 거다.”
” 응?”
” ……”
제갈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담담함을 읽고는, 그것이 죽음을 인정한 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의 이번 책략은 그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으나 이내 제갈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 크크,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 이게 슬프냐? 그게 넌 지겹지도 않냐?”
” 뭐?”
” 동료가 목숨을 걸 때마다 일일이 놀라고 괴로워하고… 그렇게 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백웅? 수백 번? 수천 번? 슬슬 너 이외의 모든 존재가 인형이나 다름없다고 느낄 때도 되지 않았나? 너 자신의 실존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마도(魔道)에 가까운 것. 그런 의미에서 너보다 왕다운 왕은 없다.”
” ……”
” 모든 희생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건 불가능해. 결국 죽음이란 가벼운 농담만도 못한 거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런 말 하지 마.”
”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이 세계에서 생명이 그리도 무가치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동료가 나 외에 누가 있을 것 같냐.”
” 크윽, 다 알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 하잘것없는 인간성을 위해 분노하고 괴로워하는 척이라도 해 본다, 그거지? 이젠 뻔해.”
제갈사는 나를 비웃었다.
” 그런 건 이제 됐어. 귀찮을 지경이라고. 보는 사람조차 힘이 빠진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거냐? 무슨 연극하는 것도 아니고.”
” ……”
” 억지로 감정을 짜내지 마. 보기 싫다.”
연극.
나는 그 말에 왠지 마음이 찔리는 걸 느꼈다. 늘 슬프고 괴로운 걸 느끼는 건 사실이었으나 제갈사의 말이 어느 정도는 내 심중을 찌르고 있었다. 결국 내가 억지로 감정을 느끼는 척, 동료들의 죽음으로 나를 내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침묵하자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나와 네가 같은 길을 걸어가는 한 몇 번이고 말해주지. 거짓으로 눈물을 짜내느니 그냥 웃어라. 우리 입장에선 그게 낫다.”
” 웃으라고…?”
” 그게 차라리 나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번 웃어버려라.”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 …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웃을 수 있으면 너의 승리다. 세상이란 그런 거지.”
” 알았어.”
나는 제갈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리상 슬퍼해야 하지만 슬퍼하려 하다가 도리어 인간성이 더욱 마모되는 모순.
의리와 현실의 경계.
제갈사는 매번 감정과 힘을 소모시키지 말고 그냥 웃어버리라고 충고해준 것이리라.
‘ 앞으로는 일일이 슬퍼하지 말자.’
나 자신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다. 결국 동료 모두를 위해서 슬픔이란 감정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뿐이다.
……
점차…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
이게 좋은 것일까?
제갈사가 말했다.
” 나와 제갈유룡이 있는 전력을 활용하면 흉신의 군세를 5일 정도는 붙잡는 게 가능할 거다. 백웅 너는 그 사이에 동선을 짜서 최대한 인과율과 힘을 확보해서 수해를 뚫어라. 기본적인 전략은 그렇게 해야할 것이다.”
” 동선을 어떻게 짜지?”
” 그건 현이가 말해줄 것이다.”
망량이 작전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현재 제1의 목표는 수해를 돌파하는 것이고, 제2의 목표는 전욱 등 삼제(三帝)에게 바칠 인과율을 확보하는 것이오. 그러나 제1의 목표는 신농이 직접 움직여서 수해의 지배자를 잡아줄 때까지는 아직 도모할 게 아니며, 막상 외차원의 입구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아무 준비가 없으면 사대신기를 탐색해서 얻어올 힘과 체력이 부족할 것이오. 그러므로 제 2의 목표, 인과율의 확보부터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하며 그걸 위해 아버님과 숙부가 5일의 시간을 버는 것이오.”
” 흠.”
” 인과율의 확보라고 해도 까놓고 말하자면 신에게 공양할 보물을 확보하는 것이오. 동선이라고 한 이유는 보물을 효율적으로 확보해서 최대한 긁어모아야 하는 것. 지금부터 동선을 설명할테니 잘 들으시오.”
” 알았소.”
나는 망량의 작전을 신중하게 들었다. 그리고 동선을 모두 듣자 약간 회의감이 들어서 말했다.
” 가능하겠소? 물론 동선대로 다 풀린다면 우린 더없는 힘을 손에 얻게 되겠지만 자칫하다가는 격한 싸움 끝에 소모가 쌓여서 도중에 뜻밖의 패배를 당할지도 모르오.”
” 걱정 마시오. 이 작전은 예전과 다른 점이 있으니까. 충분히 성공할 것이오.”
” 다른 점?”
” 물량을 확보한 건 흉신측만이 아니라는 소리요.”
파앗!!
우리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동선대로 움직이기에 앞서서 우리는 제천대성이 전투를 벌였다는 광동(廣東)으로 갔다.
‘ 나인교의 위력과 그 힘에 대해서 알아둬야 해.’
그리고 광동성의 거대한 성채에 도착하자 제천대성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제천대성은 이 성채에 결집한 수만 명의 인간 피난민들을 보호하면서 싸우는 중이었다.
” 여어! 잘 왔어.”
” 대성!! 왼쪽 팔이…”
제천대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 잘렸지 뭐냐. 그 새끼 꽤 하던데? 역시 흉신의 제일사도인가.”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제천대성은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힘은 그다지 쇠하지 않았으나 그 정도 되는 강력한 투선이 팔을 잃었다는 건 나인교주의 힘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 아마도 흉신의 마력 때문에 팔 회복이 안 되는거겠지…’
제천대성이 말을 이었다.
” 다만 못 이길 정도는 아니야. 팔선이 다 도와준다면 놈을 해치울 자신이 있어.”
” 음… 놈과의 전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놈의 외견도 알고 싶고, 어떤 술법이나 전투방식인지를.”
” 전투방식이라.”
제천대성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그 놈은 뭐 평범한 인간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더군. 인간 장군의 말로는 해남파(海南派)라는 무림문파의 장문인이라던가. 그리고 싸우는 건 마력으로 몸을 강화시켜서 단순히 무식한 힘과 속도로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다.”
” … 무림인의 몸이란 겁니까.”
” 그래. 뭐 이상한 게 있냐?”
” 아뇨…”
나는 말꼬리를 흐렸으나 이미 머릿속에는 의문점이 떠올라 있었다.
‘ 흉신은 어째서 초상기인을 통해서 나인교주를 강림시키지 않은 거지?’
지금까지 흉신은 여차할 경우 초상기인에게 부여되어 있는 반쪽짜리 인과율을 이용해서 초상기인을 각성시키거나, 혹은 장기적으로 거기에 마력을 불어넣어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다. 제갈유룡 또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흉신이 뜻밖의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제갈유룡이 따로 초상기인을 봉인하는 작업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흉신은 초상기인이라는 강력한 소체를 이용해서 나인교주를 만들지 않고 일개 인간을 이용해서 사도인 나인교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무림인의 몸이라고 하더라도 초상기인으로 소환되는 나인교주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망량이 제천대성에게 말했다.
” 듣기로 나인교주는 현재 나인교단의 진영으로 물러나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혹시 강한 타격을 주셨습니까?”
” 물론이지. 팔선이 도와준 덕분에 놈의 빈틈을 찔러서 가슴을 세 번 꿰뚫었다. 불로불사니까 죽진 않겠지만 힘을 꽤 잃었을 거다.”
” 그렇군요. 그럼 혹시 이 광동성을 근거지로 최대한 버텨주실 수 있겠습니까? 놈들이 더 이상 북진할 수 없도록.”
망량의 말에 제천대성의 얼굴이 구겨졌다.
” … 농담하냐? 지금 이 성에 모인 수만 명의 인간들을 대피시키고 천계 투선끼리 힘을 모아서 따로 별동대를 꾸려도 모자랄 판이야. 저 놈들을 상대로 인간까지 지키면서 싸우라고?”
망량이 고개를 숙였다.
” 곧 지원군이 올 겁니다. 제발 버텨 주십시오. 더 이상 나인교가 내륙으로 상륙하게 놔둔다면 그때마다 인신공양이 일어날 것이고 나인교주와 주교들은 무한한 힘의 재생력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나인교주가 삼황오제에 준하는 힘을 얻게 될 겁니다.”
” 끄응. 상황이 참 거지같군. 원래라면 광동성을 버리고 인간들을 대피시킬 생각이었단 말이다.”
” 죄송합니다.”
” 그러면 남은 천계의 투선들을 다 여기에 불러모을 수밖에 없는데 괜찮냐? 다음 회전에는 나인교 주교 9명이 다 나설거 같아서 지원이 꼭 필요한데.”
” 괜찮습니다.”
” 야, 그렇게 되면 다른 전선이 억제되지 않아. 다른 곳에서 투선들이 일당만으로 나인교 개떼들을 막아주기 때문에 북진이 막아진다고. 투선을 여기로 불러오면 다른 데는 어떻게 할 건데.”
” 말했듯 지원군이 올 겁니다. 투선들을 결집시켜서 이 곳에서 나인교주와 주교들을 최대한 막아주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 … 좋아, 일단 믿어보겠어.”
일련의 작전배치가 끝난 후 우리는 제천대성이 있는 광동성을 떠났다. 망량이 내게 말했다.
” 생각보다 나인교주가 약한 것 같아서 다행이오. 우리는 계획대로 움직입시다.”
” 이해가 가지 않소. 나인교주가 어째서 초상기인을 소체로 쓰지 않았을까?”
” ……”
망량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 흉신은 더 큰 파멸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르오. 판이 커진 만큼 더 큰 힘이 필요할 터이니, 짐작가는 건 있소. 다만 우리는 지금 손 쓸 방법이 없소…”
” 더 큰 파멸?”
” 우선 제갈유룡이 최대한 팔괘를 동원해서 초상기인의 잔기(殘機)를 봉인할 터이니 그 일은 더 생각지 맙시다. 알아도 못 막는 걸 생각해봤자 무의미할테니.”
파앗
우리는 다음으로 무당파로 갔다. 그리고 무당파 내부에 있는 비밀 밀실로 들어가서 한 자루의 검을 찾아낼 수 있었다.
” 음신지력을 이용해서 뽑아 보시오.”
” 알았소.”
쿠구구구
나는 망량의 말대로 음신지력을 가득 손에 모아서 검의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었다. 그리고 힘이 불어넣어지자 검의 주변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이윽고 상반되는 힘이 내 손목을 타고 찌릿하면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빠지직! 빠지직!
” 크으으윽!!”
이… 이 힘은 뭐지?
‘ 신력(神力)인가!’
하지만 음신지력이 아니다. 음신지력은 아니지만 어쩐지 ‘가면’의 흔적이 느껴지는 힘이었고, 그 사실이 뜻하는 건 바로 이 검이 삼황오제의 유물이라는 증거였다. 나는 한참동안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검의 힘을 가라앉히는데 전력을 다했고, 내가 잠시 후 팔에 힘을 주자 쑥하고 검이 뽑혔다.
치리링!!
청명한 소리와 함께 뽑아진 검이 내 손에 들렸다. 하지만 나는 음신지력을 상당히 고갈시키듯 사용하고 말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 고생을 해서야 억지로 이 검을 뽑을 수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 헉… 헉… 도대체 무슨 힘이… 지상계에 이 정도의 유물이 있을 수 있다니.”
턱도 없다. 음신지력이 대성에 이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전욱의 강림으로 삼할의 힘을 추가로 손에 넣지 못했다면 뽑으려 하다가 힘이 역류해서 죽고 말았으리라.
” 그 정도니까 장삼봉 진인이 일부러 경고를 했을 것이오.”
망량이 쓴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 백웅, 축하하오. 이로써 의천검(義天劍)을 최초로 손에 넣었구려.”
의천검!!
무당파에서 장삼봉 때부터 대대로 봉인하고 있었으며, 장삼봉 진인이 [거짓된 신왕의 검]이라고 일컬으며 재앙이나 다름없으니 결코 뽑지 말라고 경고한 중원 최강의 신검!! 그걸 지금 음신지력을 이용해서 강제로 뽑은 것이다.
의천검을 얻은 이유는 앞으로 인과율을 위한 제물로 쓰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얻기 좋은 위치에 있었고, 향후 동선을 이동하면서 좋은 무기로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책사들 입장에서는 제일 먼저 얻을 수밖에 없었다.
” 헉… 헉… 조금만… 쉽시다… 일 다경만…”
” 그럴 시간이 없소. 오늘 내로 할 일을 다 끝내야 하오. 5일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오.”
내가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휴식을 간청했지만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 지금 당장 팽조를 쳐 죽이러 갑시다. 숙부가 파우스트 박사와 연계하여 놈을 칠 준비를 끝냈다 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