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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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천우진이 있는 마을으로 갔다. 그리고 마을 내부로 걸어서 들어가자, 환상의 안개가 퍼져나오며 내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운무(雲霧)가 흐르는 광경은 익숙했기에 무감각한 표정으로 서 있자, 천우진의 모습이 내 삼 장 밖에 나타났다.
천우진이 말했다.
” 사형은 죽었나?”
아마 점괘나 영감으로 알아보았거나 망량선사가 가르쳐줬을 듯 했다. 나는 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래.”
” 시신은.”
나는 천천히 목갑에서 망량의 시신을 꺼내서 내놓았다. 천우진은 손을 휘둘러 그 시신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후 살펴보았고, 이내 울적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마치 세상을 잃은 사람같은 표정이었으며 두 번 다시 회복될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가 곧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이제 꺼져.”
” ……”
” 꺼지란 말이다.”
그 목소리 속에서 천우진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망량은 그에게 있어서 선배이자 조언자였고, 부모이기도 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말이 사형이지 그가 아이일 때부터 데려와서 돌봐주었던 망량은 천우진에게 있어서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천우진은 폭발하고 말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천우진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예감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지.’
나는 각오를 정하고는 입을 열었다.
” 여기서 하나 더 할 일이 있다.”
” 뭐냐.”
” 진소청의 상태를 보고 싶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사실은 진소청 얘기보다는 천우진에게 망량선사의 사도로서 나를 위해서 싸워달라고 설득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그리고 천우진의 감정상태를 보면 절대 지금은 설득이 불가능하다. 어차피 자기 의지가 아니면 결코 따라주지 않을 테니 일단은 차분하게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고, 내가 시간벌이를 위해서 선택한 지연책이 바로 진소청의 상태 확인인 것이다.
천우진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 따라와.”
나는 천우진을 따라서 걸어갔다. 그리고 따라서 걸어갈수록 환무가 걷혔고 평범한 시골마을의 풍경이 나타났다. 한참을 걷자 천우진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이 나타났고, 그 오두막집 안에는 책을 읽고 있는 진소청이 있었다.
내가 힐끔 천우진을 돌아보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집 안으로 휘적휘적 걸어들어갔다. 나 또한 천우진을 따라들어갔는데 진소청은 우리가 바로 곁에 있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책만 읽고 있었다.
” 진소청.”
내가 그를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가 의아하게 여기자 천우진이 입을 열었다.
” 소용없다. 그는 지금 여기에 있되 있지 않으니까.”
” 다른 차원으로 보낸 거냐?”
” 자기자신의 꿈에 가두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꿈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지. 그보다 효율적인 봉인은 없으니까.”
” ……”
대단한 술법이었다. 일반적인 봉인이나 결계와 달리 천우진의 술법은 너무나 감쪽같아서 펼쳐진 것을 인지조차 할 수 없다는 게 특징인 것이다.
‘ 예전에 나를 반 년 동안 시간감각 속에 가둬놓았던 술법이 저건가?’
천우진에게 예전에 비슷한 걸 당해본 적이 있었기에 이해는 빨랐다. 나는 탁자에 앉아서 천우진에게 파천일월선을 내밀며 말했다.
” 받아라. 죽기 전 망량이 너에게 전해주라고 한 물건이다.”
천우진은 물끄러미 파천일월선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 내가 네놈을 위해서 사도로 일해주기를 바라나?”
” 그래.”
” 꿈도 꾸지 마라.”
천우진이 으르렁거리듯 말을 이었다.
” 사형이 너를 물심양면으로 도왔지만 그건 사실 사도로써의 의무가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궁극적인 목적은 낙양 대결계의 수호와 인간의 보호일 뿐,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네놈을 굳이 돕지 않아도 상관없다.”
” ……”
” 스승님께서 직접 명하지 않으신다면 난 결코 네놈을 돕지 않아!”
” 그렇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 그 얘기는 됐고 진소청의 상태를 듣고 싶다. 아참, 목이 마른데 손님한테 차 한 잔 내와.”
” … 뻔뻔한 새끼!”
천우진은 이를 부득 갈았으나 어쩔 수 없이 허공에서 찻잔을 소환해서 내 앞에 놓았다. 나는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한 모금을 마셨다. 역시 실제라고밖에 상상할 수 없는 느낌이었으나 이 또한 감각의 착각일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랐다. 천우진의 환술은 대라신선을 초월해 있었기에 내 감각 중 어느것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찻잔을 놓고는 말했다.
” 망량은 입버릇처럼 진소청과 진천휘의 봉인을 예의주시해야한다고 말했다. 진소청에게 뭔가 특이한 상황은 없었나?”
” 그다지 없었다. 흥.”
천우진은 턱을 괸 채 자기 옆에 앉아있는 진소청을 힐끗 보다가 말했다.
” 이상한 점이라면… 하나 있긴 있었지만.”
” 뭐지?”
” 이따금 환상의 세계에서 혼자서 무술수련을 하더군. 그런데 그 무술수련을 하는 와중에 봉인이 풀릴 뻔한 적이 한 번 있었다.”
” ……!!”
” 놈의 의념(意念)이 내 봉인을 흔들어버린 거지. 물론 강한 반발이 아니라서 다시 억제하긴 했지만…”
나는 놀라서 말했다.
” 그게 가능한가? 지금 진소청은 모든 감각이 지배당해서 꿈속의 차원에서 헤매이고 있는 걸텐데…”
” 나도 모른다. 의념이나 무술경지가 극고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지는 나로서도 아는 바가 없으니까. 단지 그의 경지가 내 예상보다 고절하다는 건 확실하지.”
” ……”
나는 천우진에게 봉인되었을 때 반 년 동안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진소청은 자력으로 그 봉인을 흔들었단 말인가? 나는 그게 진소청이 타고난 천품이자 재능의 위력이라는 걸 깨달았기에 문득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말했다.
” 진소청을 계속 봉인해줄 수 있을까? 절대 그는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안 돼.”
” 네놈이 말하지 않아도 이건 사형의 부탁이었으니 내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당장 꺼져라.”
” 잠깐…”
” 마침 파천일월선을 쓸 때가 되었군.”
휘리릭
천우진이 나를 노려보며 파천일월선을 한 번 휘두르자, 나는 다음 순간 동료들이 있는 곳에 뜬금없이 나타나 있었다. 천우진이 나를 돌려보낸 것이다. 나는 상황을 모두에게 설명하고는 제갈유룡을 쳐다보았다.
” 이제 어떻게 하지? 천우진을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그 상황에서 설득을 해 보려고 했다가는 천우진과 싸우다가 죽었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목숨은 건져서 나왔지만 이로써 망량선사의 가호를 빌린다는 전략이 봉쇄된 것이다. 그러자 제갈유룡이 말했다.
” 그리 큰 상관은 없다.”
” 정말인가?”
” 천우진이 새롭게 망량선사의 사도가 된다 해도 바뀌는 건 별로 없다. 어차피 흉신이 지상을 침공하는 상황에서는 흉신을 막고 세상을 구하는 게 지상명제가 되지. 그리고 현재 지상에서 흉신에게 대항할 능력과 방법을 갖고있는 건 우리뿐이니 자기 쪽에서 찾게 될 게 뻔하다. 혼자 힘으로는 흉신을 물리칠 수 없으니까.”
” 흠…”
” 우리가 싸우고 있다 보면 그가 알아서 도와주게 될 것이다.”
” 그럼 이젠 뭘 해야 하지.”
” 천제단으로 가면 된다.”
제갈유룡이 눈을 빛냈다.
” 이제야 필요한 보물과 제물을 거의 다 모은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천제단을 통해서 봉선의식을 치르고, 그 의식을 통해 삼황오제에게 인과율을 바침과 동시에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 봉선의식? 단순한 공양의식이 아니라 봉선의식의 형태로 진행한다는 것이냐?”
” 물론. 봉선의식은 황제가 만든 것이니 일반적인 공양의식보다 훨씬 객관적인 조건에서 신격과의 교섭을 이룰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양을 받는 입장에서도 섣불리 요청하는 자의 의사를 내팽개칠 수가 없지. 이보다 더 좋은 건 없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 필요한 건 차례, 권리, 자격, 시운. 그리고 나는 이미 차례를 알고 있고 시운 또한 백웅 네가 기후를 조종해서 맞출 수 있다.”
” 권리와 자격은?”
” 네게 의미가 있을까? 넌 이미 삼황오제의 사도인데 권리나 자격 따위는 더 말해서 무의미하지. 이미 상위의 요건을 달성한 자에게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 ……”
” 또한 천제단은 태산의 천제단으로 한다.”
” 이유가 따로 있어?”
” 당연히 황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갈유룡의 말에 영 상황을 알 수 없어져서 질문했다.
” 자, 잠깐. 우리는 황제에게 대적하는 삼제인 전욱, 제곡, 소호를 위해서 공양의식을 진행하는 게 아니었나? 그러면 황제의 기운이 많이 담긴 태산의 천제단에서 봉선의식을 하는 건 조금…”
” 바로 그러니까다. 더욱 객관적으로 변하지.”
” ……?”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부가 답답한지 이를 악물다가 외쳤다.
” 제길! 끝까지 놈들 좋은 짓만 해줄 셈이냐? 여차할 경우 다른 선택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협상할 때 좀 더 좋은 고지를 차지할 게 아니냐.”
” 아…!!”
” 네 녀석은 치고 빠질 때에 대한 감각이 둔하구나.”
제갈부가 성을 내자 제갈유룡이 씁쓸하게 말했다.
” 어쩔 수 없겠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일반인과 다른 이상, 미묘한 정치적 감각은 아무리 갈고닦아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건 이해해야 할 부분이며, 그의 지능이나 재능 문제가 아니다.”
” 아버님.”
”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이대로 진행하자.”
” … 알겠습니다.”
나는 잠시 후 그들과 함께 태산의 천제단으로 향했다.
파앗!
그리고 천제단에 도착한 우리는 제단에 제물을 놓고 공양의식을 준비했다. 나는 주술문양을 그리면서 생각했다.
‘ 이제 삼황오제에게 인과율을 바치고, 그들은 인과율을 얻음과 동시에 여와와 복희를 죽이러 간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편승해서 외차원으로 가서 사대신기를 얻고, 특이점을 무마할 방법을 손에 넣는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매우 길었던 느낌이 든다. 이런저런 사고가 많았으나 드디어 복잡한 여정이 일단락 나려는 것이다. 특이점이란 게 찾아오는 간극을 크게 늘릴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전생도 좀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
제갈유룡은 제단의 준비가 끝나자 내게 말했다.
” 백웅. 잘 들어라. 기본적으로는 삼제에게 공양을 하겠지만, 상황이 틀어질 경우 다른 계획대로 하면 된다.”
” 알았어.”
” 계획은…”
우우우우
잠시 후 천제단 위에 선 제갈유룡이 주문을 외웠고, 그가 주문을 외울 때마다 제단 위에서 심상치 않은 어둠의 기운이 흘렀다. 나는 제갈유룡이 신호를 주자 즉시 음신지력을 강하게 뿜어내며 기후를 바꾸었다.
태평요술!!
쿠구구구!!
” 으… 으윽…”
힘이 거창하게 뿜어져 나가며 하늘을 먹구름으로 뒤덮기 시작했지만 나는 이윽고 힘이 통제되지 않아서 이마에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역시 흑웅이 없기 때문에 세밀한 조작이 전혀 되지 않았고 이대로 가면 천후를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게 아니라 물난리나 홍수가 날 위기였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제갈부가 내 등에 손을 뻗으며 외쳤다.
” 흡기(吸氣)!”
츄와아악
그와 동시에 내 몸에 가득 차 있던 음신지력이 제갈부에게로 흘러들어갔고, 제갈부는 다른 한 손으로 하늘에 주술의 문양을 그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것은 내 힘을 빼앗아서 대신 통제해주는 형상이었고, 제갈부가 옆에서 천후의 주문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빠르게 술법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쿨럭
갑자기 제갈부가 크게 토혈을 하자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 이봐 괜찮냐!”
” … 음신지력이 너무 많아서 내장을 좀 다쳤을 뿐이다. 죽진 않는다.”
” ……”
” 집중이나 해라.”
” 알았어.”
나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해서 최대한 태평요술에 집중했다. 어쨌든 내 사정으로 모두가 목숨을 걸고 있는 이상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천제단 위에 서 있던 제갈유룡이 손을 위로 뻗었고, 허공에 거대한 삼제(三帝)의 형상이 떠올랐다.
전욱, 제곡, 소호!
그들의 모습은 본체의 형상이 아니라 전형적인 고대의 제왕의 모습이었다. 지난번에 직접강림했을 때는 본체를 보여줬지만 이런 공양의식에까지 본체를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전욱은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 사도 백웅이여. 충분한 인과율을 공양할 준비가 되었는가?]나는 전욱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전욱이시여. 다 되었습니다.”
[ 좋다. 그럼 공양을 시작하라.]
” 그 전에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 뭐냐?]
나는 의지를 눈에 실어서 말했다.
” 이건 일반 공양의식이 아니라 봉선의식입니다. 그러니… 사도인 저 또한 천제단에 선 자, 주재자(主宰者)로써 [소원]을 이룰 권리가 있는 거겠지요?”
[ ……]
” 진시황이나 무측천처럼 말입니다.”
전욱은 힐끔 옆에 있던 제곡과 소호 등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제곡이 말했다.
[ 지금의 무례함은 특별히 용서할 터이니 제물을 꺼내라.] ” 무슨 말씀인지 알고 싶습니다.”
소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 이봐, 인간 사도 백웅! 말을 못 알아듣겠느냐? 사도란 신격의 부속물같은 것이니, 봉선의식으로 따로 소원을 들어줄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네게 섭섭치 않게 잘해줄 터이니 이대로 의식을 진행해라.] ”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 양아치같은 놈들!’
하지만 이런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이미 제갈유룡에게 들어 두었기에, 나는 그를 힐끔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
” 좋습니다.”
[ 말해두지만 허튼 짓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 나, 백웅. 이 모든 대가를 바치나이다.”
제곡이 엄포를 놓았으나 나는 그를 무시하고는 씨익 웃었다.
‘ 어디 맛 좀 봐라.’
내 손에서 화요(火曜)가 새하얀 열염(熱炎)을 뿜기 시작했다.
신을 소환하기 위한 매개체로써 바쳐지는 것이다.
이 천제단은 삼황오제 중 그 누구라도 소환할 수 있는 장소니까!
” 나오소서… 염제 신농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