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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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외신조차도 멸하는 진공가향.
‘ 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어이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왜인지 그렇게까지 안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달마가 한 말에는 강대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고, 그 신념은 듣는 사람에게 마치 될 것만 같이 느껴지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달마에게 말했다.
” 어떻게…?”
설마 아무런 방법도 없이 내게 그런 엄청난 일을 주문하지는 않았으리라. 내가 질문하자 달마는 그 상태로 천천히 대답했다.
[ 의식의 막바지에서 나는 이제 많은 걸 깨달았다… 어째서 사대신기가 여기에 왔는지…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또한 그대는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를…] ” ……”[ 백웅이여… 외신들이 진공가향에도 불구하고 멸망에서 면책되는 이유는… 단순히 상위존재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옥좌]에 도달하여 진정한 영겁을 손에 넣은 존재… [아버지]의 꿈을 지켜 볼 관객의 자격을 얻은 것… 영원히 파멸을 노래하는 존재들…]
그렇게 말한 달마가 서서히 시꺼먼 몸뚱이를 펴서 하늘을 향해 허리를 펴는 듯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생각보다 매우 흉측했으므로 순간적으로 신음소리가 나올 뻔 했다. 몸 전체가 혼돈에 녹아들어가서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흉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내 달마의 눈빛에서 아직 강한 신념이 흘러나온다는 걸 알고는 감탄했다.
‘ 저… 저 상황에서도 의지를 지킬 수 있다니.’
어마어마한 정신력이다.
산 채로 수백 번을 타죽어도 신음성 한 번 흘리지 않을 정신력이 아니라면 저런 짓은 불가능하다. 인간세상 최악의 고통이 쉴새없이 닥쳐오고 있을 게 뻔한데 아직도 제정신이라니! 내가 경악하고 있자 달마가 말했다.
달마는 손을 덜덜 떨었다. 고통을 끝까지 참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 나조차도… 그 길을 갈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군… 하지만… 왠지 너라면…]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간단하다… 외신을 파멸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아버지] 뿐… 그 존재에게 도달할 수 있다면 진정한 진공가향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 ……!!”
[ [아버지] 본인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지…]
나는 그제서야 달마가 이야기한 진의를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외쳤다.
” [옥좌]!!”
달마는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이해했구나… 그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거하는 옥좌에 도달해야만 한다… 이런 방식으로 외신에게 허락받은 진공가향이 아닌… 직접 절대자에게 도달하는 길로써 진공가향을 이루는 것이다…] ” 다, 달마. 하지만 나는…”나는 달마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모르고 허둥댔다. 그것은 달마의 말을 이해 못했거나 해낼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달마의 말을 듣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이미 [옥좌]에 도달했었는데?!’
그렇다.
나는 전생하면서 이미 [계시] 후의 [종말]이 닥쳐온 미래세계에 간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쩌다보니 세계멸망이 임박했을 시점에 [옥좌] 바로 앞까지 가서 기묘한 존재를 맞닥뜨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옥좌에서 [아버지]라고 불릴만한 존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달마는 의아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또한 눈치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했다. 그러나 나는 달마에게 섣불리 이야기할 수가 없었기에 안절부절 못했다.
‘ 으으! 달마에게 내가 봤던 걸 설명해 준다면 이 대화에서 더 큰 단서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분명히 그게 이득일 것이다. 지금의 달마는 온갖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그와 정보를 공유하면 전생을 수십 번 단축시킬 수 있는 크나큰 단서가 튀어나올 게 분명하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바로 망량선사의 예언이다.
망량을 통해서 망량선사는 내게 예언을 전달했는데, 그 내용은 계속해서 이번 전생동안 내내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당연히 모험을 하다보면 득(得)과 실(失) 중에서 계속해서 선택해야 했는데 그 때마다 망량선사가 말한 [최악의 상황]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정향의 인과율 덕에 크게 생각지 않아도 될 국면이 많이 생겨났지만, 정향의 인과율이 사라진 지금은 저 예언을 쉽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 달마는 이미 내가 전생자라는 걸 어느 정도 예측한 거 같아… 그리고 구천현녀와 미호에게 피치 못하게 흑요석을 준 적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었고.’
일단 상황을 단순히 본다면 달마에게 흑요석을 줘도 큰 무리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진공가향 의식의 막바지, 그것도 달마 앞에서 큰 분기를 맞이했다는 점 때문에 망량선사의 예언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지금은 정향의 인과율까지 끝났기에 아까처럼 어이없는 현실적인 재난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은가?
‘ 크윽…!! 아무리 그래도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고…?’
외우주까지 오는데 얼마나 개고생했던가.
잘만 하면 이 수수께끼같은 전생의 비밀을 쾌도난마처럼 풀어버릴 수도 있는데!
도저히 뭐가 옳은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입을 뻐끔거렸으나 뭐가 좋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후 주먹을 불끈 쥐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 … 알았어!! [옥좌]에 도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줘!”
나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달마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걸 포기했다.
‘ 얻으려 하면 잃을 것.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분명히 내 욕심이 극대화되는 이 순간을 이야기한 게 분명해!’
망량선사의 예언은 지금이다!
나는 결단을 내리고는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주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어쨌든 앞으로도 전생하다보면 또 다시 외우주에 올 기회는 있으리라. 이번 생에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하려 들지 말고 동료들의 말을 믿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게 맞을 것이다.
내 말에 달마가 말했다.
[ 나도 잘은 모른다… 다만 우주의 지식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퍼온 정보에 따르면… 그렇다더군… 아주 꼼꼼하게 농락하려고 만들어 둔 함정이라고…] ” ……”
[ 또 하나의 방법… 그것은 정식으로 [자격]을 얻어서 천상(天上)에 오르는 것이다…] ” 천상?”
어디서 많이 들었던 단어다.
하지만 기억이 방대해서 언뜻 관련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을 하나하나 생각해내려 하고 있을 때 달마의 말이 이어졌다.
[ 후후… 내가 진공가향을 시도할 수 있다거나… 네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아니겠나…]
달마는 왠지 껄껄 웃는 기색이었다.
” ……”
나는 달마의 말을 듣고 힐끔 서(書)를 쳐다보았다.
지지직…
이상하다.
달마와 이야기를 나눈지가 꽤 되었지만 서는 마지막 10번째 조각이 생겨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번갯불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저 9번째 조각이 달라붙은 채 허공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시간으로 보면 벌써 완성되고도 남았어야 했는데 아직도 멈춰있는 중이었다.
나는 달마에게 물었다.
” 달마. 서가 완성되지 않아. 설마 네가 일부러 완성을 지체시키고 있는건가?”
[ 그럴 리가… 비록 내 진짜 뜻과는 어긋난 진공가향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기에 나는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다… 진공가향은 기필코 이룰 것이다…]
” 그럼 왜 10번째 조각이 생기지 않는 거냐?”
[ 그건 바로… 마지막 조각은 술자(術者)의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 … 뭐?”
쿠르르르
달마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흉측하게 혼돈으로 녹아내리던 달마의 몸이 서서히 검은 가루처럼 변해서 어디론가 빨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루는 천천히 서(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
어둠이 적막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나는 점차 사라지는 달마를 보자 안색이 흐려졌다. 달마는 혼돈이 일렁이는 몸뚱이로 나를 직시하며 말했다.
[ 그대 또한… 예감했겠지… 결국 이렇게 될 거란 사실을…] ” ……”그렇다.
지금껏 마도의 의식을 많이 접했기에 어느 정도는 이런 전개일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었다. 달마 본인이 온몸을 바치는 것도 크게 놀랍진 않았다. 마도의식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아니기를 바랬을 뿐.
달마가 바로 멸망의 서의 마지막 조각.
그가 최후의 조각이 됨으로써 진공가향 의식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상최악의 마도서가 완성되어 우주의 멸망을 증거하고, 모든 게 소멸하리라.
적막한 고요 속에서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달마가 희미하게 웃는 듯 했다.
[ 나는 신들에게 기만당해 진공가향을 추구하다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소멸하겠지만… 그대는 기필코 천상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 ” … 말해줘.”[ 무엇을 말인가…]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달마를 바라보았다.
” 방금 전, 이 진공가향에도 의미가 있어서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당신이 말한 그 의미가 뭐야? 설마 그냥 자기만족인 건 아니겠지?”
[ ……]
” 말해 줘. 난 꼭 듣고 싶어.”
어처구니가 없다.
이 질문은 필요한 질문이긴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달마의 희생이 안타까워서 그의 희생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어리석다 해도 할 말은 없었다.
내 질문에 달마는 자신의 머리 위쪽이 모두 빨려 들어가서 입 아래만 남은 상태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자기만족일지도 모르지…] ” ……!!”[ 난… 아무리 절망에 맞서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이미 마도(魔道)를 밟았다… 나는 수많은 삶을 반복하며 수억 명을 학살했고… 수십억 명을 괴롭혔노라…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고 배신을 반복하였고…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내 종사들을 인신공양했다… 고작 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의미없는 살육도 반복했지… 지옥이 존재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제일 밑바닥에 갈 것이다…] ” ……”
[ 내 죄를 변명할 생각은 없다… 허나… 어차피 모두가 지옥에 간다면… 내가 좀 더 큰 죄를 짓는다고 해서 큰 차이는 없지 않겠나…] ” 뭔 소리야…”
[ 아… 그대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가만히 있으면 이뤄질 것이다.]
나는 자꾸 말을 돌리는 달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말해주기 싫더라도 말해 줘.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야!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 의식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 거잖아!!”
[ ……]
”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가 없는 건가?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천상이라는 걸 노려본다면…”
달마와 이야기하는 동안 계속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달마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마치 예전 – 백련교주와 이야기했던 마지막 순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특별한 이유 없이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싫었다. 뭔가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달마가 말했다.
[ 무리다… 내겐 무리야… 이미 이 진공가향의 업(業)에 모든 인과율을 바친 나로서는… 이 의식에서 빠져나가는 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 그저 기만당한 나 자신에게 헛웃음이 날 뿐…] ” ……!!”[ 하지만 최소한의 의미는 있지… 외신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나는 이 세계에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 법칙?”
[ 그래… 법칙. 바로 백웅 네 덕분에 생각해낸… 최소한의 반항. 어쩌면 그게… 이쪽 세상으로 그대가 신기를 찾아오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지. 인과(因)果)는 이어져 있으니까.]
” ……?”
[ 자아… 그럼 잘 가거라. 백웅.]
달마의 마지막 포효가 세상에 울려퍼졌다.
[ 멸망하라 우주여!!]파지지직!!
그 순간 달마의 전신이 급격하게 빨려들어가더니 서의 마지막 조각이 되었고, 번갯불이 튀기며 멸망의 서가 완성되었다.
‘ 이제 진공가향이 시작되는 건가!’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서에서 어둠의 기운이 번져나오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첫 장이 펼쳐졌다.
우우우
그와 동시에 천하가 진동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또한 결계 주변에 모여있던 [옛 지배자]들의 모습도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달아나는 듯한 자들도 있었는데, 그 자들 또한 마치 가루가 되듯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우우우우우
파가각
‘ 흉신이…’
근처에 있던 흉신의 몸뚱이가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뜻밖인 것은 흉신은 살아남으려 발버둥치지 않고 그저 고요한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흉신이 뭔가를 말하는 게 들려왔다.
[ 최 후 의 승 천 은 나 의 것 이 다 …]파가각!!
흉신이 쓸려서 소멸되는 걸 시작으로 모든 지배자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윽고 천하를 메우던 사악한 [옛 지배자]들의 영육이 모조리 분쇄되었고, 부숴진 그들의 영혼이 빛이 되어서 멸망의 서에 빨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쉬이익!!
신의 영혼이 빨려드는 모습은 장관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영혼을 빨아들일 때마다 서의 마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걸 알아챘다. 이미 인간의 단위로는 표현할 방법조차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 서에 응축되고 있었다.
” ……”
자… 이제 나는 어떻게 하지?
달마가 나를 원래대로 돌려보내 준다고 약속했으나 지금은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저 세계가 멸망하는 장관을 구경만 하고 있을 때였다.
” 후배. 내가 잘못 생각했어.”
나는 말이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 곳에는 신투지존이 서 있었는데, 내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자 그는 전에 없이 슬픈 표정으로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 … 이 지경이 되어서도 [그]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군. 제기랄. 크크크…”
” 무슨 소리지?”
” 이제 곧 세상이 망할 테니까, 뭐… 내 진짜 목적을 말해 주지.”
그는 다소 자포자기한 듯 중얼거렸다.
” 나는… 이 세계에서 진공가향을 일으켜서 내 본체인 [기어오는 혼돈]의 가면을 훔치고 싶었다. 신역절기를 써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