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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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우선 무영문에 가서 검마와 서문혜에게 기억을 전해주었다. 아군을 늘리는 작업부터 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서 흑요석의 기억을 얻은 두 사람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서문혜는 그저 살짝 놀라는 기색이었을 뿐이었다. 역시 그녀는 거신족의 후예이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검마의 경우, 거대한 지식의 양에 혼란을 느끼면서 눈빛이 몇 번씩 흐릿해지는 게 느껴졌다.
‘ 역시 암기의 편린이 남아있나…’
검마는 잠시 후 자기자신을 추스린 듯 했다. 그리고 이마에서 땀을 닦으며 말했다.
” … 백웅이여.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군…”
” 나로서는 정말 자주 들은 말입니다.”
” 후, 후후. 그렇겠군.”
검마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잠시 후 말했다.
” 절대지경의 고수가 된 것을 축하하네. 자네의 노력이 드디어 보답받았군.”
” 감사합니다. 하지만 멀었습니다.”
” 멀었다니? 이미 자네는 백련교주와 대등한 수준에 올랐으니 천하에 적수가 없네.”
” 이걸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혼돈의 신을 베기 위해서는 백련지종 천뢰신무의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얻는다 해도 아직까지 외신에게 제 칼이 닿일지는 알 수 없으니, 이제 첫 발을 내딛었다 할 수 있습니다…”
” ……”
검마는 잠시동안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침음성을 흘렸다.
” 으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군. 내가 알던 모든 상식을 초월한 수준일세…”
검마가 이윽고 말을 꺼냈다.
” 이제 우리에게 기억을 주었으니 황궁의 세력과 그 수장인 제갈유룡과 결판을 내러 가겠군. 진소청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 그 이야기도 망량, 제갈사와 했습니다만… 우선은 그를 자극하지 않고 놔두기로 했습니다.”
” 왜인가? 그에게 자네의 무술기억을 전해준다면 엄청난 속도의 성장을 보일 것일세.”
”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말끝을 흐렸다.
여기에 오기 전 망량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내 반문에 망량이 머뭇거리며 말했었다.
[ … 그들 본인이 배신자이거나 사악한 건 아니오. 화신일 리도 없소. 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하오. 그러나 신투지존의 예시에서 볼 때, 중대한 비밀에 접근할수록 그들을 곁에 두는 건 엄청난 위험부담을 동반하게 되오.] [ ……] [ 당신은 이번 생에서 큰 이득을 얻게 될 것이오. 어쩌면 한 번에 일의 핵심으로 찔러들어갈지도 모르지. 좀 더 확실해지기 전에는 그를 영입하는데 신중할 필요가 있소.]어쨌든 이번 생은 진소청을 멀리하게 되었다.
” ……”
내가 침묵하자 검마가 말했다.
” 좋네. 자네가 원치 않는다면 그 얘기는 하지 않지. 그보다 제갈사나 백련교주가 내게 따로 지령을 내린 건 없었는가?”
” 있었습니다. 조만간 사파 마도팔문(魔道八門)의 회합을 열고, 그 자리에서 무력으로 그들 전원을 제압해 주십시오.”
” 나 혼자서 말인가?”
” 네. 그들을 힘으로 누르고 사파의 진정한 수장이 되어주십시오.”
” 크크크… 확실히 최소한의 노력으로 백련교가 천하통일을 노린다면 그게 제일 빠르겠군. 허나 마도팔문 문주 두세 명까지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내 목숨이 남아나지 않네. 그 자들 또한 초절정고수이며 그 중에서도 중상위권의 고수들이야.”
” ……”
” 아무리 자네의 무예기억을 받았다 해도 두세 달 내에는 그 정도 무위를 갖기 힘드네.”
검마가 헛웃음을 짓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방법이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나는 검마에게 ‘방법’을 일러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서문혜와 이야기했다.
” 이번에 또 당신을 끌어들이게 되었구려.”
” 아닙니다, 은공(恩公). 이렇게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 … 무생노모의 법문을 찾는다는 건 우주를 멸망시키는 여정으로 향한다는 것이오. 정상적인 구원이라고는 볼 수 없지. 그래도 날 끝까지 따라오겠소?”
” 물론입니다. 어차피 생과 사가 [옛 지배자]에게 귀속되어 지옥밖에 남지 않았을진대, 이 생에 매여서 파멸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 고맙소.”
나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 조만간 내 흑웅을 부활시키고 음신지력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면 당신과 할 일이 많아질 거요.”
” 기대하겠습니다.”
파앗!!
대화를 끝낸 후, 나는 아베노 세이메이에게로 갔다. 음양사 일족의 안내를 받아서 그를 만난 후 흑요석을 건네주자, 아베노 세이메이는 금세 모든 걸 깨달은 얼굴이 되었다. 그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 그렇군. 무생노모의 법문이란 건가?”
” 우리는 중원무림을 통일하고 있겠다. 당신은 그 사이에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법문의 정보를 알아내 줘.”
” 알았다. 그보다…”
” 응?”
은빛 머리칼의 미소년이 나를 쳐다보았다.
” 이번 생에도 내 아마테라스를 가져가겠나?”
흐음.
그러고보니 지난 생에는 아베노 세이메이와 영육이 합일된 고대신, 아마테라스의 반쪽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음신지력으로 변환시킨 덕에 예정보다 훨씬 일찍 음신지력을 대성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만일 이번 생에도 세이메이의 희생으로 아마테라스를 얻는다면 음신지력이 훨씬 빠른 폭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이번 생에 필요한 건 정보다. 그리고 우리의 우방이 될 음양사일족의 수장인 당신이 힘을 잃게 된다면 정보를 얻기 힘들어지잖아. 당신이 가진 힘은 정보를 찾는데 최대한 써 주길 바래.”
” 좋다.”
” 그리고 미호를 데려오면 그녀를 보호해 줘. 서왕모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 알았다.”
파앗
나는 다음으로 미호에게 향했다. 천황궁으로 온 나는 미호에게 흑요석을 넘겼고, 미호는 흑요석을 받자 엄청나게 놀란 듯 했다.
” ……!!”
나는 깜짝 놀라는 미호에게 말했다.
” 기억을 봐서 알겠지. 이번 생에 해야할 일은 인과율 특이점을 피하기 위해 무생노모의 법문을 찾는 거야.”
” … 저, 전생자란 말이냐?”
” 그래. 너와는 여러 번 마주쳤어…”
그녀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잠시 꿈벅거리다가 말했다.
” 일이 이런 지경까지 왔는데… 나 따위의 힘이 네게 필요하겠느냐, 백웅?”
그녀는 흑요석 기억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는 듯 했다. 그 정도로 내 기억이 가진 정보량과 진실성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미호. 네게 말하고 싶은건 이거야.”
” ……?”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 나는 앞으로의 전생에서 서왕모와 싸우게 되겠지만, 그녀와 너를 동시에 구하고 싶어.”
” 말도 안 되는 소리구나!! 그 분은 본녀의 근원이시니, 어찌 둘을 동시에 구할 수 있단 말이냐. 설마 너와 네 동료들이 서왕모를 봐줄 수 있는 처지라 생각하느냐.”
미호가 놀라서 경기를 일으키는 듯 했으나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 방법을 찾을 거야. 서왕모, 즉 여와 또한 이 세상이 그냥 멸망하는 건 결코 바라지 않아. 그리고 황제 공손헌원을 크게 의심하고 있지. 그녀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뭔가 이룰 수 있을 거야.”
” ……”
” 난 포기하지 않아.”
미호는 놀란 표정으로 그대로 굳었다. 그러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 아하, 하하하… 백웅 너는 정말 크게 성장했구나… 힘도 마음도…”
”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야. 너희가 계속 날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 내 동료가 되어라, 미호.”
미호는 내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내 손을 마주잡았다.
” 좋다. 널 믿겠노라, 백웅.”
나는 미호를 영입한 후 그녀를 천황궁에서 아베노세이메이의 거처로 이동시켰다. 천황궁에 계속 놔두면 나중에 천계의 신선들이 와서 그녀를 납치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는 김에 세이메이에게 미호에게 음양술을 좀 더 가르쳐주기를 청했다.
일단의 준비가 끝난 후 나는 황궁으로 향했다.
파앗
나는 제갈부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내황각으로 갔다. 그리고 내황각의 내부로 들어가자 결계가 출렁하며 나를 감싸는 걸 알 수 있었다.
‘ 역시 술법으로 방어막을 만들었군.’
이번에 내가 무명제사서를 훔쳤을 때 반쯤은 따라와 보라는 생각으로 대놓고 훔쳤으나 제갈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겼거나, 내가 다시 올 것이라고 예상했으리라는 뜻이었다. 아마 이 방어막은 한 번 외부에서 들어오면 다시 순간이동 능력으로 도망칠 수 없는 함정일 것이리라.
저벅
내가 내황각의 최상층으로 올라가자 제갈부가 이미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 역시 또 왔구나… 무명제사서는 어디 있느냐?”
” 역시라… 어떻게 내가 또 올거라는 걸 예상한 거지?”
” 알 필요 없다!”
쉬리리릭!!
다음 순간 제갈부의 낙혼별부가 펼쳐지며 나를 포위했다. 내가 사방에 떠 있는 부적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 제갈부가 이를 갈며 말했다.
” 목숨을 구걸할 기회는 지금 뿐이다. 항복하지 않는다면 널 죽여서 그 혼을 소환해서 강제로 물어볼 것이다!”
” 보나마나 제갈유룡이 네게 조언을 했겠군.”
” ……”
제갈부가 흠칫 놀라자 나는 지루한 얼굴로 눈을 반개했다.
” 매번 이러는 것도 점점 귀찮아지는군. 나중에 이불 찰 일은 그만하고 나를 제갈유룡에게 안내해라. 아니면 이미 이 자리에 와 있나?”
” 건방진 놈!! 죽어라!”
키이이잉!!
다음 순간 낙혼별부가 발동하며 내가 있는 공간 일대가 새하얗게 빛났다. 반경 백여 장 이내의 모든 존재가 순식간에 혼이 나가버리는 무시무시한 아공간 술법! 이 때문에 예전에는 제갈부를 이기려고 온갖 용을 쓰며 수련한 적이 있었다.
‘ 제갈부를 한번에 제압하면 제갈유룡이 내게 관심을 좀 가질까?’
하지만 나는 무심한 눈길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멸혼보(滅魂步)
투웅!
멸혼보의 극성이 펼쳐지며 찰나에 낙혼별부의 범위를 빠져나왔다. 내 몸 주위로 혼을 떨어뜨리는 부적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멸혼보는 그 모든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제천대성에게서 얻은 화안금정으로 빠르게 주변을 살폈고, 은신술법과 결계로 몸을 감추고 있는 제갈부의 실체를 알아차렸다. 나는 제갈부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등 뒤로 돌아갔다.
” 이익.”
제갈부가 호신강기를 발휘하며 내게 반격절초를 썼으나, 나는 놈의 초수를 두세 번 가볍게 피하고는 검의 손잡이로 요혈을 찍어서 기절시켰다.
” 컥.”
풀썩
제갈부 또한 초절정고수였지만 멸혼보에 이어 절대지경의 무위로 빈틈을 노리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저 녀석 본인이 무(武)를 소홀히 해서 실전에 익숙치 않은데다 술법에 크게 의존했기에 무인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제갈부를 쓰러뜨리고는 천천히 주변을 향해서 말했다.
” 숨어있는 걸 알고 있다. 나와라, 제갈유룡.”
스스스스
내 말이 끝나자 멀찍한 곳에서 제갈유룡이 자신의 신형을 드러내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경계심이 역력했다. 제갈유룡은 제갈부보다 훨씬 실력이 위인지라 방금 전 화안금정으로 은은한 기척을 포착하긴 했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 어떻게 내가 또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는지 모르겠군.”
” 너는 전국옥새의 봉인 앞에서 망설이다가 되돌아간 흔적을 남겼다. 네가 전국옥새에 미련이 있다면, 그 앞으로 곧장 오는 게 아니라 그 단서를 알고 있을 부아를 습격하려 할거라 생각했다.”
” 으음… 그랬군.”
나는 내 실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말대로 나는 한 번에 황궁의 보물을 다 정리해서 모아오려다가 전국옥새의 봉인 앞에서 망설였었다. 왜냐하면 흑웅이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거대한 음신지력을 발휘해서 억지로 봉인을 열다가 자칫 잘못하면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갈유룡은 그 흔적에서 내 심리를 유추해낸 모양이었다.
제갈유룡이 말했다.
” 너는 누구냐? 누구길래 황궁의 비보(秘寶)와 그 위치를 모두 알고 있느냐.”
나는 제갈사가 알려줬던 제갈유룡 설득법을 써 보기로 했다.
” 제갈유룡. 진천휘가 알려줬던 발해의 예언이 사실 거짓이었다면 그래도 신의 제사장으로 활동할 것인가?”
” ……!!”
” 당신의 아내가 죽은 것 또한 그저 신의 장난에 농락당한 것 뿐이었다면.”
” 뭐라고.”
제갈유룡은 그 한 마디에 모든 평정심이 뒤흔들린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도 모를 그만의 비밀을 한번에 꿰어서 토하듯 말해버렸기 때문이었다.
” 나는 당신과 진천휘가 생전에 꾸몄던 계획과 그 전모를 알고 있다. 당신의 동생 제갈사의 동료로써 활동하다가 알게 되었지.”
”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 나는 백웅이다.”
” 어떤 무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지?”
” 백련교의 부교주다. 하지만 그건 대외적인 명함에 불과해.”
나는 제갈유룡을 향해서 서서히 흑요석을 내밀었다.
” 내 기억을 전해주겠다. 이걸 받으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 ……”
제갈유룡이 망설였다. 그러더니 흑요석을 받으려는 듯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려 할 때였다.
” 멈춰라. 저 놈의 제안에 응하지 말거라.”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자,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어떤 미모의 여인이 황궁의 지붕 위에 어느 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 ……!!”
어째서 저 녀석이 여기에…?!
그 이유는 곧장 알 수가 있었다.
” 수상한 놈을 잡아달라고 내게 부탁한 건 잘한 일이다. 확실히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놈으로 보이는구나, 제사장이여.”
” ……”
제갈유룡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불러놓은 건가.
정말 철저한 인간이다.
” 물러나 있어라. 내가 저 놈을 잡아주마. 이야기는 그 후에 들어도 되지 않을까?”
” … 알았소. 부탁하오.”
제갈유룡은 크게 망설이다가 이윽고 포기한 듯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내 제안에 마음이 혹하다가 일단 조력자의 말을 듣기로 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조력자는 인간이 아니었으며 일종의 초월자였기 때문이다.
‘ 제기랄.’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선검을 소환했다.
난데없이 전생 초반부터 이런 위기가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저런 강적과 싸워야 할 줄은…
부웅 –
휘영청 빛나는 달을 등지고 여인이 거대한 낫을 가로로 휘둘렀다. 그녀의 눈빛이 마력으로 요이(妖異)하게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가공할 힘이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 자, 싸워볼까…?”
팔부신중(八部神衆) 야차(夜叉)가 내게 살의(殺意)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