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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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나는 성진의 말에 큰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 그 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과연 과거에 진공가향을 이루려 할 때 [기어오는 혼돈]이 어떤 식으로 끼어들었단 말인가? 굉장히 중요한 정보였으므로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성진이 말했다.
” 물론 말해주겠다. 다만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군.”
” 어디로?”
”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성진은 결계가 깨진 장소에서 중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극히 신중한 성격인 듯 했으므로, 나는 별 생각 없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 그러지.”
후웅!
잠시 후 성진이 구름같은 걸 소환하더니 우리 둘의 몸을 휩싸고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축지법의 일종인 듯 했지만 본 적 없는 술수였다. 그리고 어딘가에 도착했을 때, 사방이 신비스러운 안개로 가득 찬 계곡에서 한 채의 모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또한 모옥 앞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세 명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을 뛰어난 미녀들이었다. 나는 성진에게 물었다.
” 저들은 누구지?”
” 나를 따르는 자들이다. 귀혼일파는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내 일을 도와주고 있지.”
그렇게 대꾸한 성진이 그 중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비단옷의 여인에게 말했다.
” 백능파(白凌波). 결계를 더 강화해 주시오.”
” 알겠습니다.”
” 그리고 정경패(鄭瓊貝), 심요연(沈梟煙). 손님께 대접할 음식을 준비해 주시오.”
” 알겠어요.”
그들은 잠시 후 저마다 일을 하러 갔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모두 자취를 감추자 말했다.
” 백능파는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 화안금정 덕분인가? 바로 알아봤군.”
” 용(龍)인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미녀 백능파의 모습을 화안금정으로 살펴보니 마치 백룡(白龍)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화안금정은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이니 아마 백능파는 인간이 아니라 용일 것이다.
성진이 대답했다.
” 맞다. 그녀는 용왕(龍王)의 딸이지.”
” 용왕? 사해용왕을 말하는 건가.”
” 아니. 명목상으로는 용왕이지만 사해용왕보다는 낮은 위계인 2천 년 묵은 대룡(大龍)이 동정호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의 허락을 받아서 백능파를 데려왔다…”
” ……”
대체 성진은 어떻게 살아온 걸까?
이 놈도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생애를 살아온 건 틀림없었다. 아무튼 나는 백능파에게 더 관심을 가져봤자라는 걸 깨닫고는 모옥으로 들어가서 성진과 마주보고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 네 본거지를 보여준다는 건 완전히 날 믿었단 말인가?”
” 어리석은 질문이군.”
” 뭐?”
성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대꾸했다.
” 흑요석을 통해 네가 전생자라는 걸 알게 된다면, 지혜있는 이들 중 그 누가 감히 네게 거스를 수 있을까? 스스로의 위치가 어떤 위치인지 이제 깨닫고 있지 않은가. 네게 반기를 들 수 있는 필멸자는 아무 생각도 없는 어리석은 놈들 뿐이지.”
” ……”
” 전생자인 시점에서 내 의지는 상관없으며 신뢰를 논하는 것도 무의미하지. 실제로 나와 동기들은 스승님이 있는 한 신조차 두렵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은 과거 달마를 스승으로 삼았었다. 다시 말하자면 전생자의 구(舊) 동료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전생자에 대한 시점이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확고하고 냉정한 게 당연하리라.
‘ 마치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군…’
잠시 후 성진이 말했다.
” 지금부터 내가 할 얘기는 그대가 외우주에서 겪었던 일과는 꽤 다를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되었나?”
” 물론! 말해 줘.”
” … 후후, 전생자와 두 번이나 함께 하게 되다니… 잘 부탁한다.”
씁쓸하게 웃은 성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진공가향 – 그 전모가 서서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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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그랑
차르륵
막사 안에서 딱딱한 물체가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연속되었다.
‘ 거슬리는군.’
참다 못한 성진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 황우(黃牛) 사형. 이제 금(金) 따위를 만지작거릴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제, 성진의 말에 황우는 움찔했다.
그는 자신의 손에 금목걸이와 비취 등을 잔뜩 든 채 잘그락거리고 있었는데 누가 보아도 부귀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황우는 자신의 보물상자를 닫아 버리고는 헛기침을 했다.
” 험… 험!! 스승님께서도 물욕(物慾)또한 세상의 일부이니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나 자신의 욕망을 관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으려 수양하는 것이니.”
” 그것도 그렇군요. 하지만…”
성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 이제 우린 진공가향(眞空家鄕)으로 세상을 멸망시킬 거란 말입니다. 이 상황에 금목걸이를 만지작대는 사형은 정말 이상하군요.”
” ……”
그러자 옆에서 화염으로 된 기이한 새를 만지작거리던 아름다운 절세미녀가 훗하고 웃으며 성진의 말을 받았다.
” 성진 사형. 죽기 전에는 뭐든 하고 싶은 법이에요.”
” 아유타(亞維妥). 우린 죽는 게 아냐. 세상을 평화로운 무(無)의 세계로 되돌리는 거야.”
” 그런가요? 무(無)야말로 절대적인 평화인 걸까요.”
”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 그렇죠. 그러니 우리가 여기에 와 있는 거죠.”
그녀의 이름은 아유타 공주 – 달마의 다섯 제자 중 막내였다. 성진과 마찬가지로 일국의 왕족이었던 그녀는 달마의 깨달음에 반해서 출가했던 것이다.
성진은 아유타의 눈빛을 쳐다보았는데 그녀의 눈빛은 말과는 달리 지극히 담담했다. 그녀 또한 깊은 수양을 통해 달마의 정신을 이어받은 존재인 것이다.
그 때, 바깥에서 번쩍 하는 소리가 들렸고 다음 순간 한 인영(人影)이 장내에 들어와 있었다. 그를 본 세 명의 제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 사형!”
” 호월(虎月) 사형.”
” 가신 일은 잘 되셨습니까?”
다섯 제자의 둘째, 호월은 비에 젖은 우의를 벗으며 말했다. 그의 굵직한 팔뚝 사이로 물방울이 흘렀다.
” 제물은 이제 다 준비되었다.”
” 오오…!!”
” 결국 해냈군요.”
그 이야기를 들은 성진은 기뻐서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 역시 호월 사형은 대단해!’
그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했다.
” 마도사 천 마리, 대요괴 5백 마리, 이무기 백 마리, 고위이족 3백 마리… 못할 줄 알았는데 결국 해냈군요. 다 호월 사형 덕분입니다.”
” 마리라고?”
” 상관없지 않습니까.”
성진, 그에게 있어서 마도사는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굳이 인명으로 세지 않았다.
그랬다.
그들은 수억 명 단위의 제물이 필요한 진공가향을 진행하기 위해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수억 명을 다 죽이는 건 삼황오제의 감시도 있을뿐더러 무모한 일이었으며 인간적으로 할 수 없는 방법이었기에, 사방구축의 원리를 통해 제물을 분산시키기로 한 것이다.
마도사축(魔道四軸)!
강렬한 마(魔)와 악령등을 사방의 각 방위에 배치하여 제물을 쌓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으로 하면 서로 다른 강력한 마(魔)를 잡아야 하기에 도리어 난이도가 높았지만 제물의 질(質)은 도리어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전생자 달마가 수많은 시행착오로 만들어낸 이 방식은 굉장한 효율을 갖고 있기에 수억의 인간제물을 대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웬만한 마도사들은 마도사축의 방식을 알아도 꺼려하거나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도사, 대요괴, 이무기, 고위이족 등은 일개인간에 비하면 굉장히 강력한 존재였고 그런 존재들을 수백마리씩 잡아들이는 수고와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도사축의 제물 중에서 7할 정도는 오로지 호월이 혼자서 모았다. 무력(武力)에 있어서 달마의 제자 중에서 최강이며 독보적인 게 호월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무기는 커녕 용이나 대라신선도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게 호월이었다.
호월이 말했다.
” 우리가 이 일을 마치는 데 이십 여 년이 걸렸다. 하지만 스승님이 나서셨다면 한 달 내로 다 모으셨겠지… 그 분의 발목을 잡은 것 같아서 민망하구나.”
” 스승님이라면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삼황오제와 [옛 지배자]의 이목에 띄면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대신 나선 거잖습니까.”
” … 아무튼 다 모은 이상, 오늘 내로 진공가향을 시작하시겠군.”
” 네.”
성진이 힐끔 지평선 너머에 있는 백련교의 제단을 보며 말했다.
”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지금…”
” 당장 둘이서 가지. 스승님께 보고를 드려야 하니.”
” 네. 그럼 제가 술법을 쓰겠습니다.”
성진은 호월 혼자서도 갈 수 있을테지만 임무를 끝낸 상태라 피곤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법으로 편하게 옮겨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아 참. 혜가 사형은?”
” 일이 있어서 나가셨습니다.”
그렇게 대꾸한 성진이 수인(手印)을 맺었다.
운중룡(雲中龍)의 술(術)
운룡축지(雲龍縮地)!
파밧
성진이 술수를 시전하자 사방이 운무로 가득해지더니 잠시 후 그들의 몸이 구름에 휩싸여서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다. 그리고 운룡축지술이 끝나자 호월과 성진은 달마대사가 있는 제단 위에 도착해 있었다.
호월이 포권을 하며 등을 돌리고 있는 달마에게 말했다.
” 스승님. 마도사축의 제물을 오늘부로 모두 모았습니다.”
[ 잘 했다… 그럼 이제 암천향의 문을 닫겠다.]
스윽
달마가 손을 저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시꺼먼 차원문이 열렸다가 빠르게 닫혔다. 성진은 그 모습을 보고 내심 찬탄했다.
‘ 역시 스승님은 대단해…’
다른 제물은 몰라도 고위이족이라는 축의 제물은 현세에서는 모으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제물이 될만한 고위이족은 현실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달마가 일부러 암천향의 차원에 구멍을 내어서 편법으로 통로를 만들었고, 그 통로를 통해서 달마의 제자들이 암천향을 왕복하면서 고위이족을 사냥해 왔던 것이다.
암천향에 이런 꼼수를 쓰는 게 원래는 [문지기]라는 존재 때문에 안될 일이지만, 달마는 전생자이기에 그 [문지기]에도 모종의 뇌물을 먹여서 가능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제자들에게도 말해주지 않았으며 아마도 전생자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일 듯 했다.
달마는 등을 돌린 채 말했다.
[ … 너희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고 불리는 창힐의 개들이 우리의 계획을 냄새맡았다.] ” 알고 있습니다. 임무 중에 몇 번 마주친 적도 있었습니다.”[ 신체(神體)를 얻은 고대의 영웅들… 강할 수밖에 없지… 허나 결국 토사구팽(兎死狗烹)인 것을…]
안타까운 듯 중얼거리던 달마가 말을 이었다.
[ 아마 팔부신중은 우리의 마지막 계획도 방해하러 올 것이다. 그리고 팔부신중이 꼼수를 써서 결계 내에 들어오면 너희의 힘으론 놈들을 막을 수 없겠지.]달마의 제자들은 모두가 전생자인 달마의 도움으로 큰 기연을 얻어서 짧은 기간에 큰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고대시절부터 수천 년 동안 힘을 쌓아온 마왕인 팔부신중에게는 힘이 딸릴 수밖에 없었다.
아예 처음부터 신을 초월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으면 모를까, 인간이 마왕을 이길 수는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필멸자의 한계였다.
” 대체 왜… 그 자들은 고통받는 필멸자에 대한 연민이 없단 말입니까!”
[ 창힐은 결국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마신(魔神)일 뿐. 놈에게 진정한 세계구원에 대한 복안은 없다. 삼황오제를 누르고 또 다른 최상위의 [지배자]가 되고싶어하는 것 뿐이다…]
” ……”
[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반복할지, 아니면 이대로 계획을 밀고 나갈지를 계속 고민했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말한 달마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가면을 쓴 달마는 호월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 호월! 너를 내 사도(使徒)이자 호법(護法)으로 임명하겠다.] ” ……!!”[ 너는 본디 일국의 장군 출신으로 무(武)를 익혀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용살(龍殺)의 경지까지 강해졌다. 내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너의 재능은 매우 뛰어나다… 나는 너를 믿고 이번 진공가향에 모든 걸 걸겠다.]
호월은 크게 놀란 듯 말했다.
” 스승님. 저보다 혜가 사형의 깨달음이 더욱 깊고 뛰어납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 그래… 혜가의 깨달음은 깊노라… 허나 무력에 있어서는 너를 따라갈 수가 없다.]
” ……”
호월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좋다… 시작하자. 성진, 나머지 제자들을 불러오거라.]
” 네!”
성진은 달마의 명령에 빠르게 움직였다. 막사에 있던 아유타와 황우를 데려간 후 혜가가 있는 숭산(崇山)으로 갔다. 백련교의 본거지에서 숭산은 천리길이었지만 운룡축지술을 쓸 수 있는 성진에게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성진이 숭산에 도착해서 혜가가 있는 곳에 도달했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사찰…?’
번듯한 사찰, 그것도 꽤 거대한 규모의 사원이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혜가는 그 사원의 주인이었기에 대웅전에서 성진이 혜가를 만나게 되었다. 성진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혜가에게 말했다.
” 사… 사형. 우리는 이제 진공가향을 진행할 겁니다. 세계가 망할건데 대체 이 사찰은 왜…”
아까 황우가 금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것보다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진의 물음에 혜가는 한 손으로 예를 표하며 대답했다.
” 사제. 아닐세.”
” 아니라니요?”
이어진 혜가의 말에 성진은 머리가 딱딱하게 굳는 기분이 들었다.
” 진공가향은 실패할 것이네. 그리고 나는 이 절을 소림사(少林寺)라 칭하고 스승님의 깨달음을 전하는 터전으로 삼을 터이니, 스승님께 그렇게 전해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