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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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 ……!!”
언령이 내 신력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성진에게 말했다.
” 잠깐!! 내가 이번 생 초반에 팔부신중 야차를 쓰러뜨리는 데 대라멸진을 시전한 걸 알고 있잖아! 그 때 나는 대라멸진의 부작용을 억누르려고 음신지력을 소모했어.”
” 그랬지.”
” 그리고 그 이후에 따로 전욱의 동상에서 음신지력을 흡수하지도 않았다고. 소모된 대로라면 도리어 27번째 삶보다 절대량이 줄어든 것일텐데 어째서 경문의 언령이 내 음신지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내 질문에 성진은 차분하게 대꾸했다.
” 네 음신지력의 절대량이 늘어났는지 줄었는지는 내가 전생마다 따라다니며 네 힘을 측정한게 아니니 알 수가 없다.”
” 무슨 소리야? 당연히 줄었겠지.”
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 그건 전적으로 네 감(感)이지 않은가? 신력이란 신의 힘, 물리적 법칙을 초월하는 형이상학적인 권능이다. 우리가 모르는 모종의 법칙이 작용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 으음. 하지만…”
분명히 내 느낌으로는 음신지력이 크게 소모되었는데?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성진이 말했다.
” 애시당초 신력을 몇 년치 단위라는 식으로 양(量)으로 정확히 잴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신력은 기(氣)와 달라. 따지고 보면 우주적 존재가 남긴 흔적을 네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니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 …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럼 어떻게 흑웅을 되살려야 하는 거냐? 이유야 어찌되었든 상관없어. 난 음신지력을 제대로 써야 한다고.”
내 말에 성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 천우진이 알려준 정령화 경문보다 더욱 강력한 언령(言靈)을 찾는 게 해답이라 생각한다.”
” 정말이야?”
” 의심가면 천우진을 찾아가봐라. 그러나 내 대답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 음… 그렇다 치고 더 강한 언령이 어디 있지?”
” 정령화수련 자체가 신대(神代)의 주문이니 더 강력한 언령을 찾고자 한다면 신적인 존재에게서 내려받는 수밖에 없겠지…”
” ……”
” 어찌할 건가?”
나는 고민하다가 성진에게 말했다.
” 천우진과 한번 상담해보고 오지.”
” 알았다. 백련교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파앗
나는 망량이 천우진을 끌어들이기 싫어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천우진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정령화주문을 내게 가르쳐 준 게 천우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우진에게 흑요석을 전달해서 현재 내 상황을 말하자, 천우진이 극렬하게 짜증을 냈다.
” 이런 제길…!! 너는 무슨 일만 있으면 내게 찾아오는 거냐! 내 평화를 깨지 마라!”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 너무 짜증내지 마. 이번에는 올 만 해서 온 거니까.”
” 큭… 그래. 성진의 말대로다. 흑웅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정령화주문의 언령에 힘이 부족한 게 정답이지. 네 음신지력의 잠재력이 더욱 향상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성진이 내놓은 해답이 옳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역시 그 또한 천여 년을 살아온 술법사라서 수준이 딸리지는 않는 것이다. 나는 천우진에게 말했다.
” 지금보다 더 강력한 언령을 어떻게 얻지?”
” 그 해답도 성진이 이미 내놓았군. 신적인 존재한테 내려받아라. 넌 왜 굳이 나한테…”
천우진이 투덜거렸지만 나는 계속 질문했다.
” 누구한테서?”
” 글쎄… 그건 알아서 해라. 확실한 건 대라신선 수준에선 얘기가 되지 않을 거다.”
짜증스럽게 대답한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 다만 네 음신지력의 양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더 강해진 건 흥미롭군. 뭔가 원인이 있을 텐데 추측이 되지 않아.”
” 너도 모른단 말이냐?”
” 나와 성진이 모른다면 필멸자 수준에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봐도 좋겠지.”
맞는 말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 흑웅을 잃고 나서 전생을 거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지…’
그 동안에 뭔가 음신지력에 영향을 줄만한 사건이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나도 짐작이 가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을 때 천우진이 말했다.
” 그럼 이제 가라.”
” 잠깐… 해결법은 더 안 주냐?”
” 왜? 대체 내가 왜?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투웅
천우진은 말이 끝나자마자 술법을 부려서 나를 망량선사의 마을에서 튕겨내버리고 말았다. 나는 천우진이 심하게 짜증을 부리자 불쾌해졌지만, 그럴 만도 했기 때문에 돌아와서 성진을 만났다.
성진이 내게 조언해주었다.
” 섣불리 고위존재를 소환해서 언령을 얻으려 무리하기 보다는, 좀 더 수련을 거치는 게 좋겠군.”
” 맨땅에 머리를 박는 느낌인데 그래도 계속 하라는 건가?”
” 그 경문이 지닌 언령의 힘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수련기간이 늘어난다면 통제력을 더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 ……”
하긴 한 달만에 포기한 건 좀 빠른 건가.
”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라. 너는 스승님에 비하면 굉장히 빨리 힘을 얻은 편인 것 같으니까…”
” 알았다.”
나는 성진의 말대로 지금 당장의 곤경에 휘둘려서 삽질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많았고, 휘둘릴 때마다 결과적으로 내 전생이 무의미하게 반복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단 얻을 수 있는 것부터 얻어놓고 차분하게 도전해도 늦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백련교에서 귀혼일파의 무공과 비전술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과거 뇌신류의 개파대전 때도 등장하지 않았던 귀혼일파의 고수들은 내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이한 무공을 알고 있었다. 그 숫자는 최소한 30여 개가 넘어갔으며, 나는 이걸 모두 대성하려면 엄청난 수련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 으음. 이걸 언제 다 익히지?’
내가 하루하루 귀혼일파의 비전을 습득하고 있자 성진이 말했다.
” 우리의 비전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네가 이미 수습한 절세무공에 비해 크게 뒤쳐질 것이다. 예외가 되는 몇 가지만 중점으로 습득하면 될 것이다.”
” 멸혼보 말인가?”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걸 포함해서 도움이 될만한 비기를 알려주마…”
그렇게 석 달 동안 매일을 수련으로 보내고 있을 때였다.
우웅
‘ … 조금씩 정제되는군.’
성진의 말대로였다. 꾸준히 기존의 수련법을 반복하자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경문을 일천 번 암송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하루도 빼먹지 않은 덕분일까? 신력이 찰흙처럼 떨어져서 객체화되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크게 느린 속도라서 경문의 통제력이 약해졌다는 건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본디 십칠 일동안 연마한 끝에 흑웅을 얻었다는 걸 생각하면 느렸다.
성진이 말했다.
” 그 속도라면 흑웅을 얻는 건 향후 일 년에서 일 년 반 정도가 걸리겠군.”
” 너무 느린데…”
” 한 번 흑웅을 얻으면 다음 전생부터 또 수련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해볼 만한 시간이지. 딱히 지금 해야할 일도 크게 없지 않은가?”
” 전국옥새로 신승을 찾아볼까 생각했어.”
신승의 행방 또한 마음에 걸렸다. 그러자 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 그가 혜가 사형의 무공인 역근세수경을 찾아다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신승은 결국 실전된 무공을 찾지 못했다. 지금 신승을 찾아봐야 무의미해.”
” 그건 그렇군…”
” 네 동료들의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게 느껴진다. 좀 더 기다려보는 걸 추천한다.”
” ……”
가만히 기다리며 노력만 하는 게 힘든 일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요즘은 더 참기 힘들었다. 그래도 꾹 참고 계속 수련만 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망량과 제갈사, 제갈유룡이 나를 찾아왔다.
” 백웅. 때가 되었소.”
내가 그들을 쳐다보자 망량이 입을 열었다.
” 낙양으로 갑시다.”
파앗
나는 동료들과 함께 낙양으로 갔다. 그리고 낙양의 심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갈부가 우리를 보자 말했다.
” 왔나?”
” 잘 잡아두고 있었소?”
” 그래. 확실히 여기에 있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윽고 제갈부가 부적을 허공에 흩뿌렸고, 그 자리에는 뿅 하고 얼음으로 되어있는 관(棺)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갈부가 손을 뻗어서 관을 천천히 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새하얗게 얼어있는 자를 보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연금술사!”
틀림없다!
저 놈은 제갈유룡 등과 손을 잡고 어둠속에서 인신공양과 사악한 연구를 하던 서방의 연금술사였다. 제갈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원래 네게 이 놈의 포획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너는 뭔가 중요한 수련을 하고 있더군. 그래서 아버님과 내가 지혜와 힘을 짜내서 이 놈을 빈틈없이 포위해서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 이 놈의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을 텐데 그렇게 힘든 일이었나?”
” 제길…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이 놈이 고위마도사란 걸 알고있지 않나? 직접 싸운다면 물론 이길 자신이 있지만 이 놈이 마법을 발휘해서 도주한다면 쉽게 붙잡기 힘들었다! 이 놈이 도주해서 이변을 까발리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나 있느냐!”
제갈부가 역정을 내자 제갈유룡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 그것도 있고, 우리는 아직까지 복마전이라 불리는 마도세력에 몸을 담고 있다. 또한 내가 제사장이니 우리가 역심(逆心)을 품고있는 게 들킨다면 신(神)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여러 모로 뒷말이 안나오게 하려고 신경을 썼다.”
제갈유룡도 마냥 마도의 세력에서 활개칠 수 있는 건 아닌 건가.
나는 내가 말을 실수한 걸 깨닫고 사과했다.
” 음… 그렇군. 함부로 말해서 미안하다.”
” 아무튼 너를 여기에 부른 이유는 연금술사에게서 정보를 캘만큼 다 캐냈기 때문에 그 정보를 전달하려 한다. 그러는 김에 겸사겸사 또 하나의 일을 진행하려 하고…”
” 좋아. 어떤 정보지?”
제갈유룡은 힐끔 제갈사를 쳐다보았다. 제갈사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심문은 내가 이혼대법을 써서 했다. 그리고 생각외의 소득을 얻어냈지.”
” 어떤 소득?”
” 네가 이미 모은 정보대로 이 연금술사란 놈은 서방의 대마도사이자 학자인 ‘생 제르맹’이 만들어 낸 호문클루스다. 호문클루스가 뭔지는 알고 있을테니 설명은 넘어가지.”
” 알아.”
호문클루스란 초상기인과 유사한 것으로, 따지고 보면 초상기인의 원형같은 것이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공학이었으며 호문클루스로 만들어진 존재는 인간의 자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생 제르맹은 이 호문클루스를 만들어놓고 제어하지 못해서 놓쳐버린 모양이었고 탈주한 호문클루스가 스스로를 생 제르맹으로 자처하면서 연금술사의 업을 쌓아올린 듯 했다.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약간 놀랐다.
” 이 놈은 위대한 혼돈을 모시는 사교단(邪敎團)의 일원이며 중심간부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어오는 혼돈]을 섬기는 놈이지. 황궁에 소환된 것도 우연이 아니며 본인이 지원해서 소환된 것이다.”
” ……!!”
” 그리고 초상기인을 제작한 이유도 알 수 있었지.”
제갈사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 초상기인은 결국 신에게 바쳐질 제물로 만들어진 것이지. 궁극적인 목적은 완전체 초상기인을 제작해서 특급제물로 신에게 큰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초상기인의 인과율은 [황궁의 신], 그리고 [흉신] 두 명의 신에게 반씩 양분되어 있다.”
” 그랬지.”
나눠진 인과율 때문에 두 신이 목숨걸고 싸우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 그런데 이 놈은 궁극의 초상기인을 제작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이상의 것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 응? 궁극의 초상기인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게 아닌가. 그 이상의 물건이 나올 수 있다고?”
” … 방금 전, [제물용]이라고 했지. 궁극의 초상기인이 아무리 뛰어난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제물용이고 전투능력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단 소리다.”
” 음… 그렇다면…”
” 그래. 이 놈은 스스로가 호문클루스의 한계를 탈피하려고 최강의 몸뚱이를 제작하려고 했던 거다. [전투용 초상기인]을 말이다.”
” ……”
” 제물용조차 그렇게 강력했는데, 가만 놔뒀으면 이 놈 자체가 세계적인 재앙이 되었겠지.”
” 하지만 초상기인이란 건 결국 동서양 최고의 기술이 합쳐졌기 때문에 그런 걸작이 나올 수 있었던 거잖아. 고향으로 돌아가서 혼자서 제작하는 게 가능하기나 해?”
” 이 놈의 고향에는 서방최고의 천재인 파우스트 박사가 있다. 이 놈은 파우스트 박사의 도움을 얻을 생각이었던 모양이야.”
” 흐음.”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새하얗게 얼어있는 연금술사를 쳐다보았다.
‘ 이 놈, 정면싸움이 약할 뿐이지 대단한 거물이었던 건가?’
어떻게 보면 이 놈이 초상기인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시점에 내가 전생하기 시작한 게 천운일지도 모른다. 나는 연금술사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 어쨌든 이 놈을 붙잡았으니 그 야망은 봉쇄한 셈이군. 이 놈을 죽이지 않고 봉인한 이유는 뭐지?”
” 이 놈은 강력한 마도사인 만큼 그 몸과 영혼이 모두 [옛 지배자]와의 계약에 걸려 있다. 섣불리 없애버렸다가는 인과율을 건드려서 [옛 지배자]가 끼어들 빌미를 줄 수 있지. 이대로 절대혹한의 관짝에 가두어서 영겁토록 봉인할 예정이다.”
” 그렇군. 그럼 앞으로 초상기인 연구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 그것도 시간이 걸린 이유 중 하나지. 이 놈의 머리속에 있던 연구지식을 이혼대법으로 다 빼내서 기록하는게 귀찮긴 했지. 앞으로는 이 놈의 도움 없이도 초상기인을 제작할 수 있을거다.”
황궁의 위협은 이제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동료들이 매우 일을 잘 해준다는 생각에 흡족해져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잘 됐군. 그럼 또 하나의 일을 진행하겠다는 건 뭐지?”
” 그게 진짜 중요한 일이지.”
쿠르릉
제갈유룡은 다시 진언을 외워서 연금술사를 봉인한 석관을 지하에 집어넣은 후 말했다.
”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따라와라.”
” 으음.”
설마 강적과 싸우는 일이 기다리는 건가…
내가 검집을 강하게 움켜잡자, 제갈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 멍청아. 손에 힘 풀어. 싸울 일은 없으니까.”
” 응?”
” 하긴 뭐 긴장해서 나쁠 건 없겠군.”
무슨 소리지?
나는 갸웃하면서 제갈유룡을 따라갔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황궁의 심처에서 나와서 대낮의 황궁내부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는 게 부담스러워서 인상을 찌푸렸는데, 의외로 황궁의 모든 내인들과 황족들이 두려워하며 그저 우리에게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 응?’
심지어 황궁의 수백 명이나 되는 무사들도 고개를 숙일 뿐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우리가 가는 곳에 길이 만들어지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윽고 내가 도착한 것은 황궁에서 가장 깊은 장소이며 몇 번이고 와 봤던 장소였다. 옆에 있던 내황각을 힐끔 본 나는 앞서 걸어가던 제갈유룡에게 말했다.
” 어, 어이. 설마…”
” 다 왔다.”
저벅
저벅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좌우에 동창과 금의위의 고수들이 시립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으며 개중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자도 있었다. 또한 수장인 사신위 백호, 현무 또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묘한 정적 속에서 나는 마침내 최심부 내전에 발을 디뎠고, 그 곳에 수많은 중신(重臣)들이 관복을 입은 채 침묵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현 대명제국을 이끌어가는 최고위 관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벅
붉은 빛 융단으로 만들어진 길.
거기서 멈추어 선 제갈유룡과 제갈사, 망량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내게 무언가를 강요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의 압박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고작해야 오십여 보(步)에 불과한 거리.
나는 융단길의 끝에 도착해서 천천히 아홉 층계참을 올랐다. 이 아홉 층계참은 천자(天子)의 위엄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고, 이윽고 보옥으로 만들어진 옥좌가 내 엉덩이에 딱딱하게 닿였다.
” 황제폐하 만만세.”
처음 말을 꺼낸 것은 망량이었다. 그 말이 고즈넉하게 울려퍼지자 다른 중신들이 움찔하더니 허리를 숙인 채 크게 합창하듯 외치기 시작했다.
” 황제폐하 만만세!”
” 황제페하 만만세!!”
나는 용상(龍床)에 앉은 채 밑을 내려다보았다.
모든 대소신료가 서서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바깥에서부터 온갖 인물들이 와글거리며 내부의 기색을 살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내 정체에 의문을 품는 자는 한 명도 없으며 감히 나와 눈을 마주치기도 버거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망량이 말했다.
” 폐하. 즉위식이 준비되었습니다. 가시지요.”
평소와는 다른 존댓말이었다.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고, 옆에서 제갈부가 손가락을 튕기자 술법으로 내 옷이 용포(龍布)로 변했다. 그리고 황궁의 바깥으로 걸어가는 중에 옆에 서 있던 내시들의 수장, 현무(玄武)가 공손하게 내게 황관을 건네었고 나는 받아서 머리에 썼다.
그리고 어전 바깥으로 나와서 거대한 대(臺)에 오르는 순간 – 광장에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하는 자들도 있었고, 더러는 큰 호기심에 까치발을 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지평선 너머까지 낙양을 가득 채운 백성들의 군체(群體)를 보자 일순간 숨이 막히는 걸 느꼈다.
” ……!!”
이것이… 황제가 보는 풍경이란 말인가?
내가 가만히 서 있자, 망량이 부채를 휘두르며 외쳤다.
” 황제 폐하 납시오!!”
잠시 후 밑에서 처음 듣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 황제폐하 만만세!!”
”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거대한 백성들의 외침이 낙양을 들끓듯이 울려퍼졌다. 내 발밑에 수십만 명의 군중이 있었으며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내가 이 열기를 느끼며 멍하니 서 있자,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오늘부로 대륙의 황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