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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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지혼(四神之魂)
업?
” 그게 무엇입니까.”
내가 검마에게 반문하자 검마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 백웅. 절대지경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절대지경이 된 지금의 자네라면 말할 자격이 있겠지.”
” ……”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잠시 심사숙고하다가 말했다.
” … 우선은 재능.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게 다 필요하지요.”
우선 제일 필요한 건 재능이다. 재능이 있어야 절대지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재능있는 자는 많았으며, 젊은 나이에 초절정의 반열에 오르는 자들도 많다. 그런 천재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몇몇만 절대지경의 반열에 오를 수 있으니, 거기서부터는 재능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했다. 물론 진소청같은 경우는 약간 논외로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재능이 없는 내가 절대지경에 어떻게든 도달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전생능력을 이용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을 쟁취해낸 것이나 다름없다.
검마가 말했다.
” 그 말이 정답일세. 천부적인 재능은 당연한 것이고 피와 살을 깎는 노력도 필요하며 운 또한 필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자네가 흑요석으로 동료들에게 자네의 무술기억과 경험을 전해주는 건 가히 천혜의 기연이라 할 수 있어. 본디 재능을 지닌 자들은 나머지 요소들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으니까.”
” 음…”
” 헌데, 자네의 흑요석을 받아들여 절대지경에 이른 동료들에게 한 가지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응?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짐작도 되지 않아서 말했다.
” 그런 게 있단 말입니까?”
” 그렇네. 나는 자네의 기억을 받아들이고 무예경험을 바탕으로 수련하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네. 아마 나 이전의 동료들도 대충은 느끼고 있었겠지만, 그간은 자네에게 말해줄 필요를 못 느낀 이야기지… 말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었으니까.”
” ……”
” 그러나 자네가 절대지경의 양성을 목표로 한다면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네.”
” 도대체 그게 무엇이지요…”
” 그건 바로… 자네의 경험이 무인에게 너무 압도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탓에, 흑요석동료들은 순수하게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면서 절대지경에 도달하는 건 아니란 걸세.”
” ……?”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나는 이윽고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 … 칠대절학과 팔선신공, 뇌신류 무공 등을 익히기 때문에 자기만의 무도(武道)를 만들어갈 여유가 부족하단 말입니까?”
” 그런 이야기지. 역대 무림지존이었던 장삼봉, 여동빈, 뇌신류 등의 절세무공을 익히니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자들은 아주 쉽게 절대지경에 이르러 의념천주를 얻을 수 있네. 그러나 그건 자네가 만들어준 [길]을 빠르게 달려나가는 것일 뿐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개척해나갈 여지는 적었던 것이네.”
” ……”
” 자네처럼 무예의 기연을 전승하는 일은 없었으므로 참 우리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생경한 문제라고 할 수 있지.”
나는 검마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 그게 단점인가?’
보통인간, 아니 천재 미만의 모든 무림인들은 피와 살을 깎는 노력을 하고도 평생 자기의 경지를 한 단계도 더 올리지 못하고 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엄청난 기연을 얻더라도 절대지경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절대지경을 손쉽게 개척하는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니?
내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검마의 말이 이어졌다.
” 그리고 내가 판단할 때는 그걸 업(業)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 하네.”
” 업…”
” 절대지경은 그 인간의 모든 생애와 무도경험이 집약되어서 만들어낸 궁극의 경지. 다시 말하자면 [삶] 그 자체가 아닌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절대지경에 이르렀는지는 굉장히 중요하네. 궁극의 무인이 되기 위한 과정 그 자체가 업보(業報)라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업보가 절대지경의 위력을 만들어낸다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한 검마가 눈을 빛냈다.
” 그리고 이 업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나중에 진소청을 제외하고는 절대지경의 고수 중 그 누구도 십이율주의 천의무봉(天衣無縫)을 깰 수 없게 될걸세.”
” ……!!”
천의무봉!
나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부르르 떨었다. 아마도 그 경지야말로 내가 인간계를 제패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리라.
” 전생자인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그 천의무봉이란 경지는 인간으로서는 달성 불가능한 무시무시한 업(業)을 대가로 축적된 특수한 절대지경이야. 그 전율스러운 무상성(無相性)의 경지를 깨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업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
”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검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 그럴 수밖에. 여태껏 제대로 된 절대지경의 고수를 양산한 적도 없었는데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잖은가? 매번 신이나 마왕과 치고박는 상태라 손 하나를 아쉬워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이런 조언을 동료들이 자네에게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일세. 사치스러운 걱정이라고 할까.”
” 으음.”
그렇긴 하다. 천계의 투선이나 마왕들과 싸울 때 동료 하나가 아쉬운 판에 절대지경의 잠재력을 논할 여유가 어딨었는가…
” 아무튼, 절대지경에 아직 도달하지도 못한 내가 이런 얘기를 계속 하는 것도 주제넘구만… 다만 무위(武威)와 무도(武道)는 다른 문제라는 걸 유념해 주게.”
나는 검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 아니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허허. 무슨 말을…”
나는 진심으로 검마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마의 말대로 그는 아직 절대지경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사파지존으로서의 경험과 고찰을 통해서 내게 알맞은 조언을 해 준 것이다! 검마가 말해준 부분은 여태껏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으므로 깊게 생각해 볼 문제였다.
‘ 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말하자면 내가 흑요석으로 무공경험을 전해주는 것은 본디 뼈를깎는 고통으로 등반해야 하는 고령단애(高嶺斷崖)를 손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원래라면 자기 힘으로 척박한 바위를 움켜잡고 길을 헤매며 산을 올라야 하는데 날아서 올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원래부터 재능있었던 자는 아주 손쉽게 정상에 등정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절대지경에 도달한 상태이므로 내 기억을 받은 후발주자들은 예전보다 더 쉽게 올라오리라.
그러나 그 대가로 자기만의 경험과 [길]을 개척할 시간은 줄어들어버리며, 자기만의 절대경지를 축적한 종사(宗師)가 되기는 힘들어진다. 물론 천재라면 넘치는 재능으로 자기류(自己流)를 재창조해서 또다시 발전해나가겠지만 고난을 자기힘으로 뚫고 올라온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기억을 받아서 절세무공들을 수련하는 것 자체로 내가 만든 백웅의 유파를 익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 … 그렇다고 기억을 안 줄 수도 없다. 당연히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으면 성장시키는 게 좋지 않은가?’
나는 모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흑요석을 줘야만 하지만, 흑요석으로 빠른 성취를 얻게 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성장잠재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검마에게 말했다.
” 문제는 결국 천의무봉을 깰 수 있는 절대지경이군요. 검마 어르신이 보시기엔 지금 제가 접한 절대지경 중에는 그런 경지가 없다고 보십니까?”
” 흠… 어르신이라 부르지 말게.”
” 네?”
” 자네의 실질나이는 이미 내 곱절이 넘는다네. 그런 자네에게 어르신이란 말을 들으니 낯간지럽구만, 허허.”
” ……”
내가 머쓱해서 머리를 긁자 검마가 말했다.
” 꼭 그런 건 아닐세. 백련교주의 원영신은 확실히 천의무봉에 강한 것 같더군. 십이율주 또한 백련교주와 부딪히는 걸 꺼려했어. 허나 그건 과연 원영신 자체의 강함인지, 아니면 백련교주가 가진 총체적인 전력 때문인지 확실치가 않아… 그리고 자네가 원영신을 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은가.”
” 흐음.”
” 원영신 자체가 절대지경인지 무공과 마도의 혼합인지도 확실치 않고.”
” 그렇긴 합니다만… 그 외에는요?”
” 독왕 당산의 절대지경인 무형지독… 독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 진소청은 어떻습니까?”
” 가장 확실한 대안이지. 다만 그의 절대지경이라는 진천(振天)은 어떤 경지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일세. 진소청 그 자신만이 알 것인데… 이건 부딪혀봐야 알 수 있을 터.”
” 용중일의 사신지혼은…”
” 내가 볼 땐 별로일세.”
그렇게 말한 검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 뭐, 너무 깊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네. 어차피 자네가 무쌍패를 지니고 있는 시점에서 십이율주와 어떻게든 동수를 이룰 수 있지 않은가? 자네는 왕으로써의 길을 먼저 생각하게나.”
” 네.”
하지만 마냥 좋게 생각할 수만도 없다. 무쌍패와 천의무봉은 언뜻 대등해보이지만 무쌍패에는 큰 약점이 있기에, 나는 십이율주를 상대로 우위는 커녕 수세일 가능성이 높았다.
” 내가 추천하는 건 일단 인재들을 발굴해서 다같이 모여서 수양하게끔 하는 것일세. 위대한 재능끼리 협력하고 부딪히며 생겨나는 향상효과가 있을거라고 보네.”
그렇군.
지금까지는 중원 전역의 천재들을 발굴했어도 여유가 없어서 점진적으로 알아서 수행하게끔 내버려뒀는데, 모여서 실력을 도야할 기회를 주는 게 좋다는 건가? 나는 검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 황제의 권위로 그런 장소를 만들어 보지요.”
”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자네보다 하수라는 걸 유념하게. 진짜배기 절대지경 고수에게서 더 나은 조언을 듣는 게 좋을거야.”
나는 검마의 조언을 들은 후 무영문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가서 청월을 구출했으며 연종휘도 나를 따라오게끔 만들었으며, 어린아이인 당산에게 가서 그를 데려왔다. 지금까지는 인과의 흐름이 어찌될지 몰라서 그들의 행적을 건드리지 않았으나 이제 인재를 모으기로 작정한 이상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그 후에 바로 나는 독고성을 찾아갔다. 독고성은 나를 보자 크게 경계하는 기색이었으나 나는 독고성을 언변으로 구워삶은 후 무영문으로 데려왔다.
‘ 검마가 말한 것도 있으니 흑요석을 주는 건 일단 신중하게…’
나는 검마에게 그들에게 칠대절학을 가르쳐 줄 것을 부탁했다. 흑요석으로 전해지는 무예기억에는 내 수련경험치까지 묻어있었기에 검마가 말했던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지만, 순수한 전승이라면 그럴 염려가 덜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백련교주를 찾아가서 이 일에 대해서 상담하기로 했다. 현재 검마의 말대로 내 주변에서 절대지경 고수의 조언을 듣는다고 한다면 교주 외에는 다른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련교주는 내 이야기를 듣자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 그렇군… 검마는 과연 일세의 천재이다.] ” 백련교주. 흑요석으로 성장을 촉진시키는 게 성장가능성을 저해할거라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당연한 일… 검마가 업(業)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인생과 직접 연관된 절대지경에 ‘어떻게’ 오르는지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어찌보면 그대의 절대지경이 강력한 것은 그 때문도 있겠지… 고진감래(苦盡甘來)인 것이다.] ” 흐음… 어떻게 해야 하지? 절대지경을 빠른 시일에 양성하려면 흑요석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서는 힘들어.”
칠대절학과 팔선신공 위주로 직접 가르친다면 되긴 하겠지만 어쨌든간에 흑요석보다는 느리다. 십이율과의 충돌은 코앞인 상황에서 너무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 흑요석의 본질을 되짚어보는 게 중요하겠지…] ” 흑요석의 본질? 무슨 말이냐.”[ 흑요석의 술법은… 네가 [위대한 일족]에게서 받은 술법이다… 근원을 따지자면 외계종족의 신묘한 마법… 그래, 마법의 힘을 간접적으로 빌리는 셈이지. 그렇지 않은가?] ” 음… 그렇긴 한데.”
[ 무신(武神)이라는 존재는 이족과 마법의 영향을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듯 하다… 그렇기에 흑요석의 힘을 빌린 무예의 전승은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 아니 뭐야. 그럼 흑요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 그런 얘기는 아니다… 다만… 외계의 마법인 만큼 확실히 알아봐야 한다는 말.]
백련교주가 팔짱을 꼈다.
[ 흑요석 술법의 성질에 대해 좀 더 연구하고… 그 응용법을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군… 무예(武藝)의 업(業)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 선지자를 찾아가라는 말인가?”[ 그래… 안 그래도 권하고 싶은 일이었다…]
백련교주가 나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 그… 흑요석… 월요의 수호자가 가지고 있던 그 흑요석에 대해서 선지자에게 꼭 물어봐라… 그건 틀림없이 중대한 비밀을 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