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0
17화
땡!
체육관의 종이 울렸다.
5라운드가 시작됐다.
프로 선수라는 녀석의 분위기가 변 해 있었다.
주먹을 내뻗어 오는 횟수가 줄고 거 리에 신경 쓰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 는 것이다.
그러며 쓸데없는 동작들을 줄이는 것으로 체력 또한 안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태로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녀석이 노리고 있는 건 오 히려 이번 라운드일 것이다.
녀석은 트랩을 깔고 나서 몬스터를 기다리고 있는 사냥꾼들의 심정으로, 내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노리고 있다.
모르는 체 받아 주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펀치도 던지면서 말이다.
육체 단련으로 올릴 수 있는 능력치 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 이상, 다음 걸 확인할 때였다.
퍼억!
녀석의 주먹은 턱에 꽂혔지만,정작 눈앞이 캄캄해졌다.
바로 고쳐 뜬 시선도 홱 돌아가 있었 다.
순간 희미해진 시야 안으로 관객들 의 다양한 표정들이 잡혔다.
내 두 다리는 힘이 제멋대로 풀려 있 었고, 힘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코너까지 물러나는 동안 가까스로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녀석이 득달같이 붙었다.
이 런 약해 빠진 능력치로 프로 선수 에게 턱을 대 주었던 건,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다.
“흡!”
본래 목적이 역경자가 발동하는 조 건을 확인하는 데 있었다고 해도,오 래 시간 사선(표線)에서 누적시켜 왔 던 경험들이 녀석의 공격을 쉽사리 허 용해 주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글러브를 방패삼아서 얼굴과 바 디를 방어하기에 바빠져 있었다.
또한 반격할 순간만을 쫓고도 있었 다.
글러브과 글러브 사이.
녀석의 주먹이 휘어져 들어오는 중
이다.
정확히 보였다.
그 순간에 나는 녀석의 턱에도 똑같 이 주먹을 먹여 줄 수 있었다.
나락개미들이 달라붙은 것 마냥 전 신이 근질거렸다. 참지 말고,저 녀석 의 턱에도 한 방의 가르침을 내려 주 라는 생체 신호임에 분명했다. 능력을 사용하라는 어떤 명령처럼도 느껴졌 다.
스킬,오딘의 분노.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녀석 의 얼굴은 다 타버리고 말 것이다.
민간인은 결코 그걸 감당할 수 없다.
얼굴은 함몰되는 수준이 아니라 타 격 즉시 폭발할 지도 모른다.
새까닿게 타 버린 육점들이 사방으 로 튀기고,푸른 불꽃들이 깔깔거리며 허공에서 튀어 댈 것이다. 목 잃은 녀 석의 시신은 무거운 소리를 내며 쓰러 지겠지.
이 평화의 세계에 아수라장도 그런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것이다.
나는 방어를 풀었다.
빡!
시큼한 맛이 번졌다
눈앞이 먹먹해졌어도 무게 중심이 파괴되었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
다.
육체가 약해졌을 때만큼 정신 공격 에 취약해지는 순간이 없다.
캄캄해진 시야는 스크린이 되어 있 었다. 이지를 상실하거나, 정신 지배 를 당한 동료들의 다양한 모습이 찰나 에 뜨고 사라졌다. 그들의 비명 소리 도 환청으로 울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링 안에서는 그 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어나.”
녀석의 목소리가 정수리로 떨어졌 다.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나는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도 역경자가 안 떠? 순간적으로 혼미한 상태 였는데?
“일어나라고 했다. 당장 일어나!”
“대수야. 애 잡겠다!”
관장의 목소리도 끼어들었다. 녀석이나 관장의 목소리가 뚜렷하고 시야도 선명해졌다.
“더 할 수 있지? 그렇지? 정호야?” 녀석은 나를 강제로라도 일으킬 기 세였다. 눈썰미가 제법 있는 녀석이었 다.
고개를 끄덕 였다.
링 위로 올라오고 있는 관장에게도 명백한 거부의 뜻을 전했다. 관장은
걱정스러운 기색이 다분했지만, 관객 들의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녀석은 네가 자초한 일이다!, 라는 눈으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내가 일어나자 녀석이 링 중앙으로 돌아가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자세는 잡았지만 숨이 벅찼다. 돌멩 이가 숨구멍을 막고 있는 것만 같았 다.
녀석도 체력이 많이 빠지긴 마찬가 지였다. 그러나 녀석의 눈빛만큼은 전 보다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최선을 다해 본인의 분노를 다 풀고 내려가고 야 말겠다는 눈빛이었다.
녀석의 분노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밖에 없었다.
비 능력자급인 F급의 능력치로,프로 선수에게 두 번이나 고의로 턱을 내주 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일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분명 히 더 느려지고 힘이 덜 실린 주먹이 었을 텐데도,한 방 한 방이 위협적이 게 되었다.
녀석의 뿜어내는 눈빛대로 내가 자 초한 일이다.
정상적으로 상대했다면 이렇게 구석 까지 몰릴 일이 없었다.
픽! 퍽!
녀석의 주먹이 어디에고 박혔다.
복부의 근육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 지 않는 시점은 이미 지났다. 녀석의 주먹이 내 복부를 향해 번뜩이는 순간 에,나는 이를 악물며 다음을 대비했 다.
역시나 강력한 통증과 함께 허리가 꺾였다. 녀석의 글러브가 시선을 가득 채웠다.
퍽! 픽! 퍽!
고개가 몇 번이나 사정없이 돌아갔 을 것이다. 그 순간에 드는 생각 하나 는,정말 익숙한 맛이 입 안에서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피 맛.
입 안을 거북하게 채우고 있던 마우 스피스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 날아가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해! 인마! 그만하라고! 죽이려 고작정했어?”
관장의 목소리가 백 미터 후방에서 들려오는 것만큼 아련하게 들렸다.
더 이어졌어야 할 뒷말은 갑자기 끊 겨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얼굴 전면 으로 날아온 주먹을 허용해 버렸던 순 간이었을 것이다.
정신을 잃기에 충분한 공격이란 건, 맞는 순간 알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 같은 건 일순간에 날아가 버렸 다.
뜨기 힘들었던 두 눈도 쉽게 떠지며 힘까지 들어갔다.
[ 역경자가 발동 하였습니다. ]전면으로 몇 줄의 메시지가 채워져 있었다.
[ 체력 등급이 변동되었습니다.변동: F — E] [ 근력 등급이 변동되었습니다.
변동: F —E] [ 민첩 등급이 변동되었습니다.
변동: F — E] [ 감각등급이 변동되 었습니 다.
변동: F —E] [ 오딘의 분노 등급이 변동되 었습니 다. 변동: F — E] [ 부상이 소폭 회복됩니다. ] [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습니다. ]
역시 전투 불능 상태에 돌입해야만, 역경자특성이 터지는 것이었다.
관장이 링 위로 뛰어 올라오고 관객
들 중 몇도 관장에게 동참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잖냐!”
관장이 녀석에게 불같이 화냈다. 녀 석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헤드기어를 쓰지 않은 스파링이었 다.
내 얼굴이 어떻게 처참해졌는지는 볼 수 없지만, 관장과 관객들의 반응 으로 볼 때 어느 정도일지는 추측이 갔다.
화가 한풀 꺾인 녀석도 후회하는 기 색이 역력했다.
그 때쯤 내가 일어섰다.
확실히 부상이 조금 회복되었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 었다.
당장 폭발하듯이 뛰던 심장이,그저 미친 듯이 뛰는 수준으로 내려와 있으 니까.
“전 괜찮습니다.”
한마디 한마디마다, 가쁜 숨과 함께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내 주변의 링 바닥은 잔뜩 튀긴 핏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삼세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K0 한 번 더, 남았습니다.”
“미안하다. 형이 어떻게 됐었는가 보
다……
심성이 나쁜 녀석이 아니다. 내가 프 로의 자존심을 자극했던 것이지.
“무슨 삼세판이야! 대수! 네가 병원 데려가. 인마.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 어 놓으면…… 하아. 뼈 나간 데는 없 어? 없냐고!”
아쉽지만 판이 끝난 걸 인정해야 했 다.
누군가 내민 수건에 얼굴을 닦자, 수 건도 금방 피로 젖었다.
관장은 내 코며 눈이며 응급처치한 다음 녀석을 강제로 떠안겼다. 괜찮다 고 몇 번이나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녀석과 함께 체육관을 나섰다.
“미안하다. 정호야.”
“정말로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자초한 일인데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내 잘못 은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게
“제가 쓰러지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 고 생각했습니다. 멍청했죠.”
이제야 온 얼굴이 욱신거 렸다.
“형 존심 세워 주려 했다고? 야. 형 존심 같은 거 내세울 처지도 아니야. 아이구. 얼굴 다 날라 가서 어떡하냐. 진짜.”
“형님. 대충 시간 보내고 들어가세 요. 병원은 저 혼자 가겠습니다.”
“안 돼.”
“뼈 나간 데 없습니다. 피도 다 멎었
고요.”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꿰매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야.” 녀석은 능력자의 재생력을 알 리가 없었다. 얕게 찢겨진 상처는 봉합 필 요 없이 가만히만 놔둬도, 삼 일 안에 완전 회복되기 마련이다.
“조만간 다시 들르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갑니다!”
녀석을 간신히 떼어 놓았다.
“역경자라……
거리를 걸으며 직전의 일을 떠올렸 다. 역경자 효과가 꺼져 버린 뒤 겨우 정신을 차린 후였다.
특성 역경자는 자해로는 발동되지 않는다. 외부의 공격에 의해서만 발 동,그것도 전투를 지속할 수 없는 경 우에만 말이다.
이를 반전시켜 더 강인한 능력으로 전투를 지속하게 한다는 그 이면에는 나름 심오한 뜻이 담겨 있을 거라 생 각한다.
육체와는 별개로 정신이 무력한 자 는, 역경자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느껴 졌다.
하긴.
역경자라면 그래야 한다.
태궁에서 산도를 빠져나왔던 당시의 기억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기억뿐 이라 가능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왔다.
그런데 무작정 짓누르고 있을 일만 은 아닌 것 같았다. 필요한 순간이 되 면 당시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리 라.
거리를 배회하던 중.
전자 상가 창 안의 텔레비전 뉴스에 눈길이 쏠렸다.
「산업 은행. ‘동남아시아 위기. 국내에 는 영향 없다.’」
큼지막한 문구가 화면 하단에 박혀 있고, 메인 앵커가 진행 중이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더라도 입술의 움 직임으로 대략 판별 할 수 있었다.
“태국 바트화 폭락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 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전체에 연쇄 반응 을 보이면서 그들 국가의 통화도 지속적 인 폭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조일 주 산업은행 국제기획부장은 ‘작년 말부
터 태국의 경제 위기에 유의하면서 대비 해 왔다. 국내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다.’ 라고 밝혔습니다. 김철진 기자입니다.”
국내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더니,정 작 우리나라만큼이나 영향을 크게 받 는 곳도 없다.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IMF에 받을 충격은, 어떤 의미로는 시작의 날에 받는 충격보다 크다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