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ful bullpen life RAW novel - Chapter 105
※ 105화. 포스트시즌
성운 호크스와 동성 호넷츠.
한쪽은 매년 하위권에서 놀다가 작년 운 좋게 포스트시즌 막차를 탄 팀. 다른 한쪽은 포스트시즌이 매우 익숙한 팀.
바꿔 말해볼까?
작년보다 몇 단계 성장한 실력으로 순위를 한 단계 끌어올린 팀. 다른 한쪽은 어딘가 삐걱거리며 두 단계나 내려앉은 팀.
이런 두 팀이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나게 됐다.
어디가 이길까?
마이크를 잡고 자신감 가득한 말들을 내뱉는 우석이와 현진이를 보며 무게를 재봤다.
“와…동성 큰일났네. 어떡하냐.”
3 대 빵.
본진에서 2연승을 거둔 뒤 서울로 올라온 성운은 기세를 주욱 이어 다음 한 경기만에 다음 단계 진출을 확정지어버렸다.
동성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박살이 난 건지.
성운의 움직임은 일견 우리 원하의 움직임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턱걸이로 리그를 4위로 마친 뒤 준플레이오프 진출. 다음 해엔 비교적 여유있게 시즌을 3위로 마친 뒤 준플레이오프도 승리.
만약 원하 챌린저스와 성운 호크스의 움직임이 정확하게 1년 차이가 난다고 하면…?
“내가 얘기했지, 플래그 세우지 말라고.”
귀신 같이 성운은 플레이오프에서 광탈했다. 마치 작년의 우리처럼.
“아니, 잘 생각해봐, 형. 이게 흐름이 똑같다고 보잖아? 어? 작년에 정규시즌 1등 어디가 했어.”
“상수.”
“그래. 한국시리즈 우승은 누가 했어.”
“상수.”
“그치? 이걸 올해에 대입을 해보자고.”
“아니.”
규진이형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그럼 내년은. 성운이 시즌 1위한다는 건데, 우리는.”
“아.”
맞네.
“…한국시리즈 질까?”
“미친새끼야.”
준플레이오프, 그리고 플레이오프까지 마무리가 되며 한국시리즈 상대가 정해졌다.
상수 타이거즈.
항상 1위의 입장에서 한국시리즈를 기다려온 그들이 올해는 아래에서부터 갈아온 칼을 들이밀고 있다.
10월 14일.
한국시리즈까지 약 일주일 정도가 남은 지금은 원하 챌린저스의 선수단을 절반으로 쪼갠 뒤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2주가 넘는 기간을 푹 쉬며 체력을 최고치까지 회복한 건 좋지만, 그 반대급부로 감각이라는 개념을 푹 삭혀야 했으니까.
따악-!
“어우. 주호 무섭네.”
홈 팀의 유니폼을 입은 주호가 살벌하게 배트를 휘두르면 혁준이가 던진 공은 까마득하게 날아간다.
파악-!
“볼 쓰리이!”
“바로 1루!”
주자 1루와 2루 상황, 미끄러지며 타구를 막아낸 헌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베이스를 밟고 1루로 공을 던졌다.
“헌희도 수비가 많이 좋아졌네.”
“그러게.”
이닝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선수들의 유니폼은 흰색보다 남색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몸 관리 잘했나보다?”
“그럼요!”
비록 홈런 하나를 허용하긴 했지만 딱히. 홈런 하나 맞았다고 얘가 엔트리에서 빠질 애도 아니고.
그래, 지금의 시기는 어찌보면 시즌이 시작되기 전 스프링 캠프와 매우 비슷하다.
주전급의 선수들은 감각을 되돌리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움직이고 있지만 백업 멤버들은 전혀, 절대 그렇지 않다.
날 써! 날 쓰라고! 날 엔트리에 넣으라고!
조금 전 주호의 홈런도 그렇고 헌희의 호수비도 그렇고, 푹 쉬고 체력을 회복하라는 지시를 마음껏 불복종한 게 눈에 보였다.
일주일.
1.5군급 멤버들 정도라면 그래도 꽤 당선 확실에 가깝지만 그보다 아래의 선수들은 정말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그들은 미디어 데이 직전까지도 엔트리 끝자락에라도 걸쳐보기 위해 꽉 닫힌 입을 열지 않을 거다.
“건영아.”
“예에!”
간만에 등판 명령이 떨어졌다. 아주 오랜만에 잡힌 야구공이지만 감각 자체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투욱, 투욱, 자리에서 일어나있는 건영이와 캐치볼을 진행했다. 손으로 느끼는 감각은 익숙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감각은 어딘가 어색했다.
“아, 잠깐만.”
“네!”
싱커가 왜 안 말리지.
“싱커.”
“예!”
뻐엉-!
“아이, 좋아요!”
아 됐다.
상기했던 주전급의 멤버엔 나도 포함이 된다. 내가 등판해서 무실점으로 막든 1이닝 동안 10실점을 하든, 엔트리는 들어간다.
물론…후자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우리 팀은 또 올시즌 초의 나를 떠올리겠지만.
“올라가자.”
“네에.”
상수 타이거즈와의 원정 게임일 때 겪어봐서 그런가, 우리 집임에도 3루쪽에서 마운드로 향하는 건 생각보다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흐음….”
플레이트를 밟고 한산한 구장을 주욱 둘러봤다.
여기도 얼마 있으면 그득그득하게 사람들이 들어차겠지.
“플레이!”
감각을 일깨워야 할 필요성이 있는 건 심판도 마찬가지.
굳이 따지고 보자면 쉬는 날에 해당하지만 몇몇 심판들은 무료 봉사를 자처했다. 덕분에 이렇게 게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선두타자는 성훈이형.
거의 1년만에 같은 팀의 인원들 상대로 투구를 하자니 꽤나 어색했다.
뭔가…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괜한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느낌.
그건 그때 얘기고.
애써 불편함 마음을 숨기고 투구를 진행했다.
뻐엉-!
“스트라잌!”
* * *
“한울 씨.”
“여어, 오랜만입니다.”
다시 구장에 출근하자마자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이가 있었다.
“잘 지냈어요?”
“그냥 적당히 살죠.”
“어때요? 우리 팀이 곧 한국시리즈 가는 건데.”
“좋죠.”
영진 씨는 히히 웃으며 캔 커피 하나를 건넸다.
“우리야 지금이 힘들지…영진 씨쪽은 이제부터 머리 좀 아프겠어요?”
“아…그렇죠. 이제 슬슬 터지니까요. 이게, 터지기 전에 성적들이 좋았으면 모르겠는데….”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사라진 캔 하나가 금방 찌그러졌다.
“보자…올해가 규진이형이랑 명진이죠?”
“그렇죠.”
“내년이랑 내후년은요?”
“내년이 남기성 선수랑 윤승주 선수랑 이성훈 선수. 내후년이 유훈 선수랑 전성문 선수.”
팀이 젊음을 유지하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 게다가 젊은 선수들로 좋은 성적까지 낸다면 더더욱이 완벽하고.
“슬슬 터지네요.”
“머리 진짜 아파요.”
하지만 거기서 시간이 아주 조금만 지나면 알게 된다.
“어떻게…가이드는 대충 잡고 있어요?”
“목표는 항상 같죠. 다 잡는 거지. 한울 씨도 알잖아요? 우리 스타팅 중에 보내고 확실하게 메꿀 수 있는 자리 하나도 없는 거.”
이 때문에 시즌이 끝나기만 하면 어딘가에서 폭탄이 터진다는 걸.
원하 챌린저스는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타팀과 눈치싸움을 이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앞서 2년은 어떻게든 잘 방어해왔다는 점. 이어서 걱정되는 건,
“돈은 돼요?”
앞서의 2년 때문에 뒤의 3년이 좀 걱정이라는 점.
“일단 올해까지는 확실히 괜찮고. 내년은…좀 간당간당하게 괜찮을 거 같은데.”
“내후년이 애매한가보네요.”
“아…머리 진짜 아프네.”
명진이와 규진이형. 기성이랑 승주랑 성훈이형. 훈이랑 성문이.
7명 모두 누구 하나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영진 씨와 친해지며 구단 운영에 대한 부분을 알음알음 듣다보니 구단의 사정이라는 것도 이해는 된다.
“전에 왜…기억해요? 한울 씨가 했던 얘기였는데.”
“언제요?”
“언제였더라…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아, 재작년이다.
그렇게 설명을 덧붙인 영진 씨가 본론을 이야기했다.
“왜, 그랬잖아요. 한국시리즈 우승이랑 뭐…대충 그런 얘기했을 때였는데. 나도 지금 단편적인 것만 생각나가지고.”
“뭐지….”
“그때 왜…타팀에 원하는 선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한울 씨가 그랬잖아요. 그냥 우리끼리 하고 싶다고.”
“아…아. 기억났다. 그거 아마 올스타전 끝나고 직후였나로 기억하는데.”
“맞다, 맞다. 맞아요, 그때 얘기다.”
2년하고도 대충 3개월 전.
벌써 어렴풋해진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기분을 되찾았다.
“그 얘기는 왜요?”
“한울 씨가 지금 저랑 같은 마음으로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냥 저도 비슷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끼리 다 해먹고 싶은 그런 생각?”
“네.”
헛헛하게 웃은 영진 씨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이게 사실, 구단 직원이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데….”
치익, 칙, 칙―
“후우…사실 비즈니스잖아요. 엄밀히.”
“맞죠.”
“우리는 돈을 주고, 선수는 성적을 주고.”
“맞죠.”
“근데 까놓고 얘기해서, 선수한테 주는 돈이 내 돈은 아니거든. 구단 돈이지.”
가감없이 지껄이는 소리에 허허,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우리 팀 선수들 누구 하나 보내고 싶지도 않고, 또 괜히 타팀 선수 데려오고 싶지도 않아요.”
“데려오는 건….”
“필요하면 데려와야죠. 필요하면. 그래서 최은구 선수랑 신경석 선수 데려왔던 거고. 그냥….”
영진 씨의 폐 속에서 한 번 깊게 순환한 담배 연기가 퍼져나갔다.
“우리 백업 선수들이랑 2군 선수들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잘돼야지.”
“잘돼야죠.”
“근데 다 잘 될 수는 없어요.”
“알아요. 그래서 아쉽죠.”
적자생존.
프로의 세계에서 ‘정’이라는 것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영진 씨가 선수들한테 정을 잘 줘서 요직에 앉아있는 게 아니다.
“일단 프론트는 그…백업이랑 2군에 좀 잘해줘요. 프론트가 뭐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건 아는데….”
“맞죠. 그 선수들이 잘해야죠. 10억 줄테니까 내년에 10억치만큼 해줘, 그런 게 아니니까.”
“잘하겠지.”
마음이 좀 풀렸나.
영진 씨는 꽁초를 재떨이에 푹 찍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울 씨도 준비 잘하시구요.”
“우리쪽은 걱정 마시고.”
내 마지막 말에 영진 씨는 흐뭇하게 웃고 돌아갔다.
* * *
김형철의 돌직구 – 원하 챌린저스의 한국시리즈는 모두에게 기억될 수 있을까.
2019 KBO 한국시리즈가 당장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당장 내일이 한국시리즈 미디어 데이임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셈.
몇 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인지는 필자 또한 달력을 한 번 보고나서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원하 챌린저스는 과연 한국시리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일단 한국시리즈를 포스트시즌의 범주에 놓고 본다면 간접적인 경험을 최근 2년 연속으로 했다.
17시즌엔 4위로 마감했지만 준플레이오프 탈락, 18시즌엔 3위로 마감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
따라서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데에서 오는 부담감은 확실히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7시즌 황혁준은 KP 스타즈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완투승을 기록하며 빅게임 피처의 면모를 보였다.
윤승주는 해당 경기에서 만루홈런으로 본인의 별명이 왜 클러치 히터인지를 증명해내었다.
심심하면 안타와 타점을 뺏어내는 모습에서 강성현은 기사에 담기 조금은 애매한 본인의 별명을 각인시켜주었다.
세 번의 시리즈 동안 김한울은 일본식 표현이기는 하지만 ‘수호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자, 그렇다면 직전 문장의 ‘포스트시즌’이라는 단어를 ‘한국시리즈’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뒤의 말을 유지해도 괜찮을까?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모두 대단한 무대다. 위대한 무대라 하기 부족함이 없으며 모두 박수 받아 마땅한 시리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는 다르다. 경기수, 혹은 배당금, 아니면 주목도 모두 다르지만 제일 중요한 건 아무래도 결과가 아닐까.
1등만 기억한다고 일컬어지는 이 세상에서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은 냉정하게 말해 해당 팀의 팬들 정도만 명확히 기억할 뿐이다.
반면 우승팀은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기억한다. 또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기 위해 진출을 확정지은 모든 선수가 피와 땀을 흘리고 있다.
여러가지 관전 요소가 가득한 2019 KBO 한국시리즈. 과연 원하 챌린저스는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모두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