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ful bullpen life RAW novel - Chapter 12
※ 12화. 개새끼
“야, 이거 빨아와.”
“야, 오늘 밥 뭐냐.”
“야, 망 잘 보고 있어.”
“야, 볼 좀 던져봐.”
“야, 그걸 그따구로 던지냐!”
흐음…….
이용호.
나보다 두 살 많은 고등학교 2년 선배였다. 내가 팀의 주전 선발 투수였고 이용호는 주전 유격수에 4번 타자. 우리 둘은 시합 내적인 부분에선 꽤 잘 맞는 투수와 야수였다.
붙박이 4번 타자를 맡았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초고교급 투수라 불렸던 것처럼 녀석도 초고교급 타자로 이름을 날렸었다.
하지만 이놈과 나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었다.
인성.
녀석은 내로남불, 짬 때리기, 폭언, 욕설, 심지어는 가끔이었지만 폭력까지 일삼았다. 강약약강의 표본 그 자체.
으. 극혐.
그렇게 안 좋은 의미로 나름 유명했다. 주변 학교들에까지.
야구부의 수뇌부가 됐든, 아니면 피해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됐든. 이런 녀석의 이런 행동을 막을 행동이 있어야 하겠지만 야구를 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용했다.
혹여 비판의 목소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려고 해도 반대 진영이 그 고개를 다시 내리눌렀다.
야, 4번에 숏이 빠지면 팀은 어쩌라고?
같은 별 말 같지도 않은 논리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면, 녀석의 손길이 그나마 나에게는 덜 미쳐오긴 했다. 그나마.
나 한번 잘못 건드렸다가 터지면 팀의 에이스를 잃는 거고, 그러면 팀 성적이 무너지고, 그러면 또 지가 지 퍼포먼스를 선보일 기회가 줄어들고.
하지만 인간의 본성 자체는 어찌 숨길 수가 없는 건지, 나에게도 잡다한 심부름이나 욕설은 기본 베이스였다.
아, 그렇다고 폭력이 전혀 없던 건 아니야.
여튼… 그러다가 나보다 2년 일찍 프로에 입단했다. 대형 유격수로.
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녀석은 성장하지 못했다. 초고교급이라던 타격은 그냥 고등학교 졸업생 수준이었고, 그보다 좋은 평가를 받던 수비는 오히려 점점 퇴보했다.
유격수에서 3루수, 3루수에서 2루수, 2루수에서 좌익수.
파워, 컨택, 주루, 수비, 송구, 이 다섯 가지 툴 중 하나만 완벽하면 그래도 1군에 붙어는 있을 수 있다는 요즘 야구 시대.
약점에 관대해진 현대 야구 시점에서도 녀석은 2.5군급, 혹은 고교생 수준에 머무르며 1년 1년을 겨우겨우 연장해 가고 있는 수준이다.
당연히 2군을 들락날락한 기간이 한참이라 컨트롤 기간도 꽤 남아 있으니… 조금만 더 지켜는 보겠다…같은 느낌으로 놔두는 모양.
프로 입단 후에도 녀석과 난 조금 닮은 부분이 있었다. 초고교급 유망주, 느낌표에서 물음표, 그리고 쩌리 로스터용 선수.
하지만 결정적으로 달랐던 두 가지.
하나, 우리 팀은 하위권에 놀면서 ‘나라도’ 필요한 팀이었고 녀석은 안 그래도 맨날 바닥을 기는 성적군의 팀에서조차 쓸모가 애매한 녀석이라는 것.
둘, 녀석의 처지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쩌다가 1군에 가끔 모습을 비치기는 하는데 그때마다 똥 싸는 놈.
팀 팬, 코치님, 프론트도 똥줄을 붙잡고 그래도 1차 1지명인데 언젠간 터지겠지, 별 의미 없는 채권 서류 하나 붙잡고 있는 모양새.
하지만 난 환골탈태했다.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새 팀의 불펜 중심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아예 리그를 대표하는 불펜 에이스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
힘 빼고 던진 136km짜리 똥볼에 헛스윙 삼진 처먹고 크게 욕설을 씨불이는 모습을 보고도 딱히 기분이 좋다, 통쾌하다 뭐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글쎄, 그래 넌 원래 그 정도 놈이야, 같은 느낌, 그 정도.
* * *
아, 재밌다.
덕업일치를 이룬 것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과 생계가 같다는 건 축복일지 모르나, 그 생계가 틀어지는 순간 좋아하는 것마저 싫어지기 마련이니까. 단순히 공을 던지는 것을 좋아했고 그게 취미가 되었고 더 나아가 직업이 되었다.
하지만 직업이라는 틀이 망가지게 되면 당장 오늘내일 먹을 밥부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곧장 백투백으로 이어지는 생계형 스트레스에 취미는 지랄, 하며 당장 뭐 먹고 살지가 우선적으로 부상하게 된다.
“뭐 약 처먹었냐?”
“예?”
“요즘 뭐 혼자 그렇게 날아다녀. 무슨 무협지마냥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
“허허… 형님. 절 너무 뽀록쟁이로 몰아가시는 것 아닙니까.”
“염병.”
1년 차 선배, 규진이 형은 털썩 내 옆에 앉더니 마시던 물컵을 옆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아니,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142km가 나와. 130km도 간당간당하게 던지던 놈이.”
그래, 각성. 각성했다.
작년까지였나, 작년 시즌이었나, 내 직구 평균 구속은 126km 언저리였다. 언더핸드나 표본이 적은 좌완도 아닌, 정통파 우완투수가 던지는 구속이라기엔 끔찍할 정도.
키가 작다, 말랐다, 근육이 적은 것도 아니다.
188cm에 107kg. 큰 게 아니라 그냥 거대한 체구. 이야, 메이저리거랑 비교해도 안 꿀린다! 하던 첫 감독님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던 게 생각났다.
처음으로 지금의 ‘상태’를 각성하고 내 통산 최고 구속을 잠시 갱신했을 때가 136km. 내 인생에서 몸이 제일 멀쩡했을 때 던졌던 구속이 135km임을 감안하면, 닳고 닳은 이 몸으로선 아주 대박이지.
제구 ― 최상
구위 ― 중+???=최상
체력 ― 하
포심 ― 46+17=63
커브 ― 39+9=48
슬라 ― 26+16=42
스플 ― 31+7=36
체인 ― 36
싱커 ― 34+12=46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특급(임시) ―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구원 등판 시 모든 능력치 +2/구원으로 등판 시 투구 수 20구까지 포심+3, 변화구 +1
구질을 스탯으로 따졌을 때, 직구가 평균보다 살짝 아래 정도, 그리고 변화구 또한 평균보다 살짝 아래인 정도.
누가 봐도 쓸모없는 투수지만 많은 숫자의 구종,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는 나노 제구가 합체하면 아무리 구위가 쓰레기여도 어느 정도 에이스 놀이는 가능하다.
하지만 에이스 놀이가 아니라 진짜 에이스 모드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저 +들. 갑자기 왜 붙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능력치 자체가 시스템의 영향임을 생각한다면 얼마 전 게임에서 얻었던 내 MVP급 캐릭터에 대한 임시 버프가 아닐까? 실제로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치가 지금 내 능력치와 같으니까.
덕분에 난 에이스 놀이가 아니라 진짜 리그 에이스가 되었다. 내 캐릭터가 업데이트된 6월 6일부터 어제 6월 28일까지, 3주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내 자책점은 1점이었다. 평균 자책점 말고, 내 자책점이.
이 기간 내 성적은 12경기 14이닝 방어율 0.64 1승 2홀 7세이브 24삼진 3볼넷 0사구 WHIP 0.42.
뭔 소설 같은 먼치킨이냐고? 어차피 이 기록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다. 월간 MVP 덕에 잠깐 받은 버프이고, 아마… 7월 초 업데이트 때 우리 팀에 나 말고 다른 선수가 월간 MVP로 뽑힌다면 내 버프는 사라지겠지.
아니, 이렇게 MVP 버프 받고, 현실에서 MVP급 성적 찍고, 또 월간 MVP 선정되고, 또 버프 받고 또 성적 찍어주고… 같은 선순환을 잠깐 기대했었지만 이건 그냥 행복 회로일 뿐.
내가 알기로 이 망겜은 같은 선수를 두 달 연속으로 MVP로 선정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고 대놓고 말하자면 조금이라도 다양한 선수들로 우리의 지갑을 털어먹겠다는 굳은 의지인 게지.
하여튼. 난 지금 매우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 6월 28일부터 치러질 이번 달 마지막 시리즈. 7월 3일 화요일에 업데이트되기 전의 마지막 시리즈이기도 한 이번 시리즈의 상대는 바로…….
“그러니까 기대하셔도 조오옿습니다… 이번 상수전.”
리그 최고 군림자. 상수 타이거즈. 정확하게는 그 팀의 4번 타자 박해진.
“이겨야지. 우리 작년에 걔네한테 개쪽이었잖아.”
“아, 근데. 그거는 딱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
“왜.”
“상수한테 개쪽 아닌 팀 찾는 게 더 빠르니까.”
“오. 웬일로 제대로 된 소릴 하는데.”
그래서 리그가 다른 의미로 참 재미가 없다는 사람도 꽤 있다. 너무 독식 아니냐고. 하지만 잘하면 이기는 게 당연하고 못하면 지는 게 당연하다. 프로니까. 그들은 그들 나름의 결과를 낸 것일 뿐.
“슨배임. 지금 제가 제일 바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뭔데.”
“딱, 9회 말 2아웃이야. 1점 차, 만루. 타자는 박해진.”
“…한울아.”
“왜요.”
“세간에선 그런 쌉소리를 거들어 뭐라 하는지 아냐.”
“뭔데.”
“따라 해봐. 염.”
“염.”
“병.”
“병.”
“합쳐서.”
“염병.”
“그래, 염병이라 한단다.”
아.
“염병 떨지 말고. 내가 그 상황이었잖아? 그랬으면 차라리 거른다.”
“만루에서? 1점 차에? 거르면 동점인데?”
“맞으면 거기서 그냥 경기 자체가 끝나버리는데?”
흠… 매우 일리 있는 말…….
“아냐. 난 그래도 승부할 거야.”
“너 같은 새끼가 그런 짓 하다가 끝내기 만루 홈런 처맞고 뒤지는 거야.”
“에이…….”
“에이는 무슨. 지금 너 딴에는 나름 역대급 월 성적 찍었다고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런데도 니 얘기 딱히 안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냐?”
“어…….”
그러게……?
역대 최초, 내지는 역대 최고 등의 페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시즌 동안 이런 성적을 찍은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성적이면 기사라든지 팬들 사이에서 호들갑 비스무리한 게 나와줘야 한다.
그러고 보니까 딱히…….
그 이전의 성적들도 워낙 좋았어서? 라고 하기에… 는… 이전 성적들이 안 좋은 건 아니다. 아니, 좋지. 엄청. 그치만 이번 달이랑 비교하면 살짝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박해진 이번 달 홈런 몇 개 깠는지는 아냐?”
“아뇨?”
“당당한 새끼.”
그러더니 폰을 꺼내 몇 번 터치한 후 그 화면을 내 면상에 들이댄다.
“6월 한 달 동안 25게임 뛰어서 18홈런이야.”
“…….”
미친 새끼. 사람인가.
웬만한 중장거리 타자가 1시즌 동안 뽑아낼 홈런을 이놈은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다 뽑아냈다. 심지어 월간 타율은 6할에 육박한다.
진짜 사람 맞나.
“잘 생각해 봐. 진짜 그 상황 오면 어떡할지.”
“허허…….”
* * *
6월 28일 금요일.
잠실에서 벌어진 상수 타이거즈 원정 시리즈. 3연전 중 첫 게임은 10 대 4로 승리. 상대 2선발을 웬일로 시합 초반부터 두들기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투수진들도 상수의 리그 최강 타선을 손쉽게 잠재우며 7회까지 가다 투수 유망주들이 올라가 8회 3점, 9회 1점만 주고 깔끔하게 이겼다.
6월 29일 토요일, 2차전.
13 대 1 대패. 전날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작정한 건가, 전날의 게임 양상과는 아주 정반대로 1회부터 8점을 내며 우리 투수진을 확실하게 박살 냈다. 그나마 우리가 낸 한 점은 운빨 그 자체였지.
9회 초, 행운의 내야 안타, 행운의 빗맞은 안타, 행운의 베이스 맞는 타구로 1점. 그리고 만들어진 무사 1루와 3루 상황에서 참 운 없게도 삼중살로 그대로 경기 끝.
그리고 6월 30일 오늘. 3차전…….
“음…….”
9회 말, 상수 타이거즈의 공격. 점수는 7 대 2. 다행스럽게도 우리 팀이 ‘이기고는’ 있다. 하지만 야구는 분위기의 게임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었지.
지극히 동감한다.
5점 차, 만루 홈런을 한 대 때려 맞고 이어서 솔로 홈런을 처맞아도 지지는 않는, 최소 동점 상황까지는 끌고 가는 점수 차가 되었음에도 뭔가… 불안하다.
그 불안함의 증거는 우리 팀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 팀이 낸 모든 점수는 운빨 그 자체로 낸 점수였다. 하지만 저 녀석들은 지지리도 운이 하나도 안 따라줬다.
빗맞은 안타와 행운의 안타의 연속 사이에 오심이라는 두 글자를 살짝 끼얹어 만든 7점보다, 담장을 넘기는 타구 두 개에 곁들인 잘 맞은 야수 정면 타구들의 향연이 훨씬 더 무거워 보였다.
“편하게 던지고 와.”
“…예.”
요 며칠 등판이 없었기에 컨디션 점검차 마운드에 오르기로 했다. 9회 말. 5점 차. 타순은 8번 타자부터. 상대하는 타순도 나쁘지 않다.
연습 투구를 비롯해 루틴까지 마치고 나서 플레이트를 밟자 등장하는 타자 또한 대타가 아닌 선발 그대로의 8번 타자.
이 게임을 이대로 포기한다는 걸까, 아니면 이 8번 타자로도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걸까.
상대 덕아웃을 흘끔 쳐다보고선 규학이의 오른손을 노려보았다. 초구에 몸쪽 직구.
“스트라이크!”
던지고 슬쩍 전광판을 보니 139km. 그리 세게 던진 느낌 없이 던져도 꽤 구속이 나와주는 것을 보면 확실히 버프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규학이의 사인을 기다리면서도 이 버프가 끝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한다.
“파울!”
똑같은 코스에서 몸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싱커에 3루 쪽 파울. 다음 사인은 몸쪽에서 하나 정도 깊게 들어가는 직구.
바로 승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규학이가 뭔가를 느꼈지 않았을까. 마운드에서 혼자 주절주절 떠드는 투수보다, 타자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포수의 감이 더 확률이 높으니까.
딱!
조금 힘을 넣어서 던진 공. 하지만 완벽하게 몰린 카운트에 타자의 방망이가 어설프게 따라 나왔고 애매하게 맞은 타구는 3루 베이스 옆으로 지나가는 파울…….
“페어!”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