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ful bullpen life RAW novel - Chapter 123
※ 123화. 인성
스프링 캠프.
본인, 혹은 코칭 스태프가 부족하다 느껴지는 부분을 보완하고, 강점이라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강화를 하는 시기.
이런 보완과 강화를 꼭, 무조건적으로 스프링 캠프 때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스캠 때가 제일 집중하기에 좋지.
시즌은 경험, 캠프는 육성.
그래, 시즌은 엄밀히 말해 성장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증명을 위한 무대니까.
하지만 캠프 때 육성된 피지컬, 메카닉을 곧바로 시즌에 투입하기엔 아무래도 타임 렉이 걸리는 게 사실이다.
이게 맞나? 잘 되가고 있는 거 맞나?
때문에 어느 정도 피지컬, 혹은 메카닉적인 부분에서 보완을 완료했다면 이젠 이것들을 실전 비스무리한 곳에 투입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바로 연습경기.
“후우….”
오늘, 원하 챌린저스는 미야자키 캠프 내 미니리그의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 있다. 그 상대는 바로 상수 타이거즈.
“형, 무리는 하지 말고. 연습게임에서 힘 빼면 의미 없는 거 알잖아.”
“알지.”
그리고, 이 상수 타이거즈를 상대할 원하 챌린저스의 선발투수는 규진이형.
FA 계약 첫 해부터 눕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돈값해야한다는 부담감 같은 걸 느낄 사람은 아니다.
다만…….
따악-!
따악-!
저기서 연습 배팅 중인 이용호.
으득―
작년 말, 트레이드로 인해 빨간 유니폼에서 검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녀석 때문에 규진이형은 잇몸이 걱정될 정도로 이를 갈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무리를 해봐야 좋을 게 없을텐데, 사람의 멘탈이라는 건 전혀 종잡을 수가 없다.
그 멘탈 좋다고 소문난 규진이형이 저렇게까지,
뻐엉-!
“볼!”
흔들릴 줄이야.
전광판에 뜨는 구속을 확인하니, 지금 규진이형은 딱 스프링 캠프 때 필요한만큼의 힘만을 쓰고 있는 건 맞다.
다만 문제는 제구.
뻐엉-!
“볼-.”
올해도 상수 타이거즈의 1번타자 중견수를 맡고 있는 고동욱을 상대하며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말았다.
규진이형 정도의 짬이 되면, 혹은 멘탈이 되면 지금 본인의 어딘가가 삐걱거리고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거다.
전광판을 노려보며 모자를 계속 썼다 고쳐썼다 하는 모습을 보니까, 맞네. 알고는 있어.
다만 이걸 알고만 있느냐, 혹은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수정 사항을 거칠 수 있느냐로 규진이형을 분류한다면,
딱-!
규진이형은 충분히 본인이 해야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세컨!”
“아냐, 1루, 1루!!”
“2루 늦어!”
2번타자 강대현이 바깥쪽에 떨어지는 커브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지만 작정하고 빗맞아버린 탓에 타구의 속도는 아주 굼벵이 같았다.
때문에,
“아웃!”
우리 3루수, 성훈이형이 러닝 스로우로 1루에서 아웃을 하나만 잡아낸 것만해도 아주 칭찬해 마땅한 상황인 거지.
“아, 써드 나이스!”
“수비 좋아, 수비 좋아아!”
호수비가 등장하면 당연히 덕아웃의 팀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낸다. 성훈이형은 우리를 등진 채 그 성원에 힘입어,
“아이고야.”
셀카 세리머니로 화답했다.
형…….
이게 분위기의 힘인가. 저 무뚝뚝한 사람을, 저런 거 제일 싫어하는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버리다니.
기성이는 그런 성훈이형의 모습에 큭큭큭 웃은 뒤 받았던 공을 규진이형에게 전달했다.
근데 하필, 기성이가 공을 준 사람이 이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웃지 못 하는 한 명이었다는 게 문제지.
짝짝짝짝!!
“에에에에, 규진이형 가자아!!”
“규진이 뽈 좋아아, 가자가자!!”
규진이형은 우리가 덕아웃에서 뭐라고 떠들든, 생쇼를 뭐 어떻게 피우든 전혀 신경쓰지 않고 규학이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규진이형을 상대하는 이용호 또한 예전과 같은 거만함을 가진 채 타석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 저 새끼 진짜.”
그래, 성적‘만’ 따지고 보자면 이용호는 느지막하게나마 A급 타자로 성장한 게 맞다.
하지만 내가 저 새끼를 절대 스타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뻐엉-!
“스트라이잌-!”
인성.
그냥 야구 잘해서 야구선수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인성이라는 측면까지 요구하는 건 조금 과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고작 1분만에 뒤집혀버렸다.
제 어릴 적 꿈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영웅…영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는, 그런 영웅이요.
빵-!
“볼!”
명진이가 복사근을 다쳤을 때 전화로 지껄였던 쌉소리가 아주 좋은 예시가 되겠지.
그래, 프로야구 선수는 단순히 우리끼리 공 던지고 치고 하는 놀이가 아니다. 팬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우리가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거지.
뻐엉-!
“볼-.”
우리의 팬들은 항상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항상 일거수일투족이 팬들에게 노출된다.
사리분별할 줄 아는 나이 찬 사람들이야 저 새끼 나쁜 새끼, 하고 말겠지만, 우리를 진짜 영웅으로 생각하는 어린 아이들은,
따악-!
저 인간의 어두운 면까지 낱낱이 배워갈 수도 있다는 거다.
“호옴!”
“세컨 오른쪽, 오른쪽 붙어어!!”
“노 컷, 세컨 빠져!!”
그런 의미에서 이용호가 때린 우전 안타는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당히, 아주 상당히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성현이의 강한 송구 덕에,
촤악―
“아웃!”
홈에서 고동욱을 잡아내며 2아웃까지 완성했다는 점이 우리를 안심시켰다.
“아, 수비 좋아, 수비 좋아아악!!”
“성현이 나이쓰으!!”
“호오오오!!”
호송구를 선보인 성현이 덕에 팀의 분위기는 더더욱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달아오르다 못 해 주접을 떠는 명진이.
1루에서 방방방 뛰는 기성이.
저 멀리 우익수 자리에서 셀카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성현이.
그런 와중에 규진이형은 나지막하게 입 모양을 ‘X발’이라는 단어로 만들었다.
탈탈탈, 로진을 만지작거리면서도 투수는 1루쪽으로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용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기보단, 그냥 그 존재 자체를 무시하려는 느낌.
그렇게 1사 주자 2루가 2사 주자 1루로 바뀐 뒤 맞게 되는 타자는 상수의 4번타자 박해진.
“아이, 규진이형 가자가자!!”
“괜찮아, 뽈 좋아아아!”
아싸리 이용호를 출루시켜버리자 규진이형은 차라리 후련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빵-!
“스트라이잌-!”
초구부터 과감하게 커브로 카운트를 잡는 모습이나,
틱―
몸쪽 깊숙한 체인지업으로 파울을 얻어내는 모습도 그렇고,
퍼엉-!
“스윙, 아웃-!”
높은 직구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는 모습 또한.
그 박해진을 공 세 개로 완벽하게 처리한 뒤 덕아웃으로 돌아온 규진이형은 어딘가 얹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덕아웃, 혹은 규진이형 뒤에 있던 선수들도 그 분위기를 읽고,
“아, 나이스 피처어!”
“형 오늘 볼 좋다!”
“계속 가, 이어가!”
투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텅, 털썩―
“하…X발.”
글러브를 적당히 내던진 뒤 내 옆에 앉은 규진이형은 일단 욕부터 박고 시작했다.
“아 최근에 이상하네.”
“어떤 게.”
“이용호, 저 새끼.”
“쟤는 원래 이상했어.”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뭐?”
물음표와 동시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규진이형은 아까부터 얹짢음 가득한 표정 그대로였다.
“…쟤, 원래 못쳤는데. 최근 들어서 내 공 계속 때려.”
“아, 그거.”
이 부분에 대해선 나 또한 이용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설명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도 말하면서도 좀 거지 같긴 한데. 아, 진짜, 진짜진짜 X 같긴 한데 말야 형. 그건 나랑 이용호랑 얼핏 비슷한 부분이 있거든.”
“뭐?”
“옛날 나는 그냥 다 처맞았잖아. 근데 성적이 좀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한테 겁나 쎄던 애들을 이제는 내가 다 때려잡잖아.”
“아….”
‘나’를 기준으로 잡고 이야기해보자면,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하는 게 바로 비스코의 배덕현이었다.
언제까지였지, 16시즌이었나? 그때까지 통산 상대 타율은 무려 6할.
하지만 17시즌, 내가 급격하게 성장한 뒤부터를 새로운 시점으로 잡는다면 통산 상대 타율은 1할 아래로 내려가버린다.
“그런 거야.”
“하….”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나의 플레이, 하나의 상황 안에서 투수와 타자 둘 모두가 좋은 플레이를 보였다는 이야기는 절대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다.
타자가 아무리 잘쳐도 아웃으로 판정을 받으면 투수의 승리가 되는 것이고, 투수가 아무리 잘던져도 볼넷을 주든 안타를 맞든 하면 타자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애초에 야구라는 스포츠가 그런 거니까.
“형, 그냥 편하게 생각해.”
“뭘, 뭘 어떻게 편하게 생각해.”
“형 직구 있잖아, 150km 넘는 직구로 뚝배기 한 번 맞추면 시즌 아웃되지 않을까?”
“미친새낀가봐.”
그저, 나는 이 상황에서 규진이형이 악순환에 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규진이형은 충분히 그럴 멘탈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고.
“…나간다.”
어느새 1회 말 공격이 끝난 뒤, 2회 초 수비를 위해 불펜을 떠나는 규진이형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짝짝짝!!
“힘쇼오오오!!”
그냥 응원 밖에 없지 뭐.
“한규진 선배님 빠이띠이잉!”
“규진이 가자아악!!”
물론, 그 응원을 보내는 게 나뿐만은 아니지만.
* * *
매우 극단적인 표현인 줄은 알지만, 나는 정규시즌 극초반까지의 성적까지도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결국 시즌이라는 건 최종장, 마지막을 위해 달려가는 거니까.
때문에 오늘 연습경기가 어떻게 이겼는지 졌는지는 정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잘했고 못했고 또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느냐.
그런 의미에서 올해, 2020시즌 원하 챌린저스의 스프링 캠프는 아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훈이는 본인의 약점인 선구안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태웅이는 조금씩 제구의 안정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진형이는 벌크업이라는 도박수의 결과를 성공쪽으로 기울여가는 추세였다.
물론 실제 시즌에 돌입을 해봐야 판가름이 나겠지만, 그 맛을 알았다는 게 중요하다.
바깥쪽에 빠지는 저 볼에 휘두르지 않는 참을성.
스트라이드를 완료한 오른발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발목의 근육.
살짝 커진 몸의 부피 때문에 거슬리지 않도록 수정한 스윙의 궤도.
이것들을 알지도 모르는 상태로 시즌에 돌입하느냐, 알기라도 하는 상태에서 시즌에 돌입하느냐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니까.
“시간 진짜 빠르네요, 한울 씨.”
“그렇죠?”
모든 캠프를 마친 뒤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바로 민영 씨를 만나러 왔다. 민영 씨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곧장 뛰어왔다.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씻고 옷만 대충 입고 나와 민영 씨의 손을 잡고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곤 또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근처 카페에 앉았다.
피곤하지, 솔직히.
하지만 꽤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 했던 예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냥 여독이라는 것은 알아서 녹아내려갔다.
“캠프는 잘 마치신 것 같던데요?”
“음…괜찮게? 나쁘지 않게?”
“올해는 신인 선수들 어때요?”
“좀 애매해요.”
일단 투수조에선 2020시즌 신인인 성원이와 승진이가 생각외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야수쪽에선 글쎄…그냥 있던 백업 친구들이 더 낫겠다 싶을 정도.
“신인들은 진짜 1년에 한 명 꼴로 나타나는 이상한 애들 아니고선 대부분 시즌 까봐야 알거든요.”
그래도, 정해진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정말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셈.
“아…막막하네요, 얘기 듣고 보니까.”
“어떤 게요?”
“사실 작년 원하 성적이 좋았잖아요?”
“그럼요. 아주 좋았죠.”
“근데 사실 다들 생각하는 거 같을 거예요, 설마 정규시즌 1위하겠어? 라는 생각하고 시즌 시작한 사람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래도 막…올시즌 목표는 우승입니다! 다들 그러잖아요.”
“그냥 하는 말이죠.”
이 판에서 구른 게 몇 년인데. 된다 안 된다를 굳이 찍어먹어봐야 알지는 않는다.
“거기다가, 시즌 초반에 제가 안 좋았던 것도 있고.”
“근데 그런 것치고는 초반부터 꽤 치고 나가지 않았어요?”
“맞죠. 그래서 더 신기하죠.”
“힘을 빼서 그런 걸까요?”
힘을 뺐다…중요하지. 이 부분 메모.
“이게 착착 계획을 세워둔대로 진행이 된 거라면, 그 계획을 다시 한 번 타거나 수정하는 방향으로 갈텐데….”
“일이 생각보다 너무 잘풀려서 그걸 다시 하자니 막막하다는 거네요?”
“그쵸. 그거죠.”
역시 민영 씨.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근데 한울 씨, 그…언제였지? 언제였는지는 저도 정확하게 생각은 안 나는데…한울 씨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어떤 말이요?”
“원하 챌린저스가 강점으로 세울 수 있는 건 리그에서 수비가 제일 좋다는 거랑 나이가 어리다는 것.”
“아….”
꽈악―
내 손을 잡고 있는 민영 씨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올해야말로, 한울 씨가 이야기했던 그 강점이 제대로 터질 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