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ful bullpen life RAW novel - Chapter 25
※ 25화. 미디어 데이
찰칵찰칵―
“다들 이쪽 한번 봐주세요!”
찰칵찰칵―
“이번엔 파이팅 포즈 한번 잡겠습니다! 아, 좋아요!”
찰칵찰칵―
“도발 포즈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찰칵찰칵―
10월 5일 저녁, 부산 모처에선 다음 날에 있을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미디어 데이가 진행되었다.
정규 시즌을 3위로 마친 KP 스타즈, 그리고 4위의 원하 챌린저스.
3위 팀의 KP 스타즈는 감독직의 김석호 감독님과 주장인 김성수, 그리고 팀의 1선발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임재혁이 등장했다.
그에 맞서는 우리 원하 챌린저스는 우리 이한주 감독님과 팀의 주장인 이성훈 선배, 그리고 나.
나?
그래, 나.
작년까지 팀의 쩌리 투수였던 내가, 올해 팀의 세컨더리 셋업으로 출발해서 프라이머리 셋업으로 승진한 것도 모자라 혁준이나 규진이 형, 이효재 선배를 뛰어넘어 팀을 대표하는 투수까지 된 것이다.
감개무량. 아니, 그 어떤 단어로 지금 심정을 대체할 수 있을까.
사실 미디어 데이라고 해서 크게 뭐 대단한 게 있지는 않다.
이번 시즌에 대한 소감, 앞서 치르게 될 시리즈에 대한 각오 정도 이야기하면 시간은 의외로 금방 간다. 중간중간 감독과 선수들의 입담, 기자들과의 인터뷰 몇 번이면 2시간 후딱 간다.
“일단 여기 김한울 선수를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올 시즌 저희 팀 선수 모두가 고생했지만, 특히 여기 한울이가 제일 고생한 것 같아요. 아마 한울이가 작년이랑 같았다면 우리 팀 또한 작년과 같지 않았을까요.”
먼저 우리 팀 감독, 이한주 감독님의 시즌 총평.
아힛…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수비가 어땠고, 타격이 어땠고 꽤 길었던 상대 감독님의 인터뷰에 비하면 꽤나 짧고 내게 있어선 계속 고개를 조아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키 플레이어는 선발진 아닐까요. 이효재 선수가 체력적으로 부담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울이가 효재 역할까지 어느 정도는 맡아줘야 하는데, 얘도 사람이니까 지치잖아요. 선발진이 길게 가줘야 불펜의 부담이 적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한울이인 것 같습니다. 수비하는 입장에서 한울이가 있으면 심적으로 엄청 편하거든요. 감독님 말씀이랑은 다르게 한울이가 계속 던졌으면 좋겠습니다.”
키 플레이어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감독님은 선발진을 집었지만 그 의미는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였고 성훈 선배는 아예 콕 나를 집었다.
감독님 이야기가 그렇다 쳐도 성훈 선배까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기에 절로 두 눈알이 커졌다. 그런 눈빛으로 내 왼편을 흘끔거리고 있을 때 진행자가 나를 호명했다.
“그럼 앞서 두 분 말씀에 이어, 김한울 선수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
약간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고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예. 저희 팀은 누구를 콕 찍어서 키 플레이어라고 하기는 어려운 팀인 것 같아요. 모든 선수들이 딱 맞물렸을 때 원하의 강점이 나타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치만 저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냥 저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아, 꽤 괜찮게 말한 것 같다.
재미있는 말이었는지 기자진들뿐 아니라 상대 팀 세 분도 웃었다.
“당연히 김한울 선수죠. 실제로 저희 팀이 올해 김한울 선수한테 한 점도 못 냈었거든요. 저희 팀이 이기려면 선발진들 빨리 내리고, 김한울 선수 좀 지치게 하면 쉽게 이기지 않을까요? 에이, 이한주 감독님도 다 아실 텐데요.”
“저도 김한울 선수요. 올해… 몇 번 만났지? 한 네 번 만났던 것 같은데, 전부 범타였거든요. 아주 이를 갈고 있습니다.”
상대 김석호 감독님과 팀의 4번 타자이자 주장직을 맡고 있는 김성수 선수의 이야기. 상대 팀 선수 중 누구를 가장 경계하느냐는 질문에 나온 대답이었다.
팀의 1선발로 내정되어 있는 임재혁 선수는 후반기 들어서 타격감이 꽤나 좋았던 규학이를 선택해 의외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후 KBO 측에서 제작한 약 2분 정도 되는, 준플레이오프에 대한 티저 영상을 잠시 시청했다.
웅장한 BGM을 베이스로 깐 위에 구단별로 멋진 장면들이 교차되며 지켜보는 선수단뿐 아니라 기자들, 그리고 이 미디어 데이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고양시키고 있었다.
원하 쪽 영상에서 내 분량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라기도 하고.
이후엔 각 팀 감독님들의 1차전 선발에 대한 이야기, 상대 팀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 상대 팀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 등 꽤나 영양가 있는 인터뷰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그럼 이번 준플레이오프 스코어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음…….
“당연히 3 대 0으로 이길 겁니다.”
꽤나 민감한 질문이다.
“저도 3 대 0으로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나한테만 민감한 질문인 건가?
“저는 3 대 1 정도로 이길 것 같은데요.”
상대 팀을 대표해서 나온 세 명은 모두 본인 팀들의 승리를 점쳤다. 3 대 2까지 가지도 않는, 누가 봐도 본인들이 압도할 거라는 평가.
이는 이런 자리에서 아주 당연한 이야기였고 이어 본인과 본인 팀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로 이어질 것이다.
“전 3 대 2 정도 이길 걸로 보고 있어요.”
그에 반해 우리 감독님은 아슬아슬한 우리의 승리를 예고했다. 다음으로 성훈 선배는,
“전 3 대 0으로 이길 겁니다.”
무리수를 시전했다. 이윽고 내 차례.
“자, 양 팀 모두 자신감이 대단한데요, 김한울 선수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KP가 이길 거 같은데. 3 대 1로.
난감한 질문에 멋쩍게 웃으며 머리만 긁적이고 있자 분위기가 묘해진다.
“이거 솔직히 말해도 돼요?”
“네네. 당연히 되죠.”
성훈 선배는 내가 쌉소리를 시전할 것이라 예상한 듯 이마를 짚었다.
“감독님이 3 대 2 말씀하셨고 이성훈 선배가 3 대 0 말씀하셨으니 저는 3 대 1 찍을게요.”
어디가 3이라고는 안 했다.
“자, 찍는다는 발언 나왔구요!”
“근데 몇 대 몇으로 이길 거 같냐 이거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네네. 어떤 건가요.”
“만약 저희 팀이 준플레이오프에서 진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내년은 또 다를 거고, 내후년은 또 다를 거예요. 이번 시리즈는 딱히 중요하지 않아요. 3년 뒤에, 한국 시리즈 우승합니다. 전 거기까지 봅니다.”
찰칵찰칵―
갑작스러운 반응에 기자들의 셔터 누르는 소리가 폭발했다.
성훈 선배는 평소 내 성격을 잘 알기에 무슨 말을 할지는 몰라도 이상한 소리를 할 거라는 건 예상했는지 아까 이마 짚었던 그대로고, 우리 감독님은 처음 듣는 말인지 눈 땡그래진 채로 날 보고 계셨다.
“오오, 이건 어떤 의미로 보면 더 엄청난 도발인데요.”
“각종 스탯들까지 들이대면서 부연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아마 이대로 이야기가 끝나는 걸 여기 계신 기자님들은 더 바라고 계실 거예요.”
올, 센스 있는데.
모 방송국의 캐스터로 활동하시는 진행자분의 발언에 몇몇 기자들의 몸이 보일 정도로 움찔거린다.
덕분에 좀 소란스러워졌던 분위기는 진정되었고 대본상의 일정은 모두 끝나 이 자리에 나온 이들에 대한 개인적인 짧은 인터뷰가 이어졌다.
딱 10분만 받겠다는 캐스터님의 깔끔한 진행 속 여섯 번째의 기자가 손을 들 때까지 나에 대한 질문은 두 가지가 있었다.
“작년 시즌까지와 다르게 올 시즌 갑작스럽게 성적이 비상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 비결도 듣고 싶습니다.”
“다들 뭐 아시다시피, 작년까지 제 성적이 아주 아름다웠잖아요. 그래서 FA도 신청 안 했던 거고… 근데 구단 측에서 오히려 더 연봉을 올려주시면서 믿어주시더라구요.”
문득 영진 씨와 커피를 마시며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서 1년만 더 해보자. 1년 해보고 안 되면 진짜 은퇴밖에 답이 없다. 그래서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다행히 좋은 결과가 나왔네요. 그 비결이라고 하면 혁준이의 도움을 좀 많이 받았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내용 중에 올 시즌은 중요하지 않다, 몇 년 뒤가 중요하다 하셨는데요. 부연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저희 팀의 강점이자 약점인 특징이 선수들의 나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고작 29살인 제가 팀에서 고참급이니까요. 그 어린 나이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서 한 경기라도 뛰어본다는 게 아주 큰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니, 마침 여기 나온 두 사람이 최고참급이네.
“어린 만큼 빠르게 흡수할 테니까요. 수비 측면에서 기본기는 다들 탄탄한 친구들이니까 더 안심이 되구요. 타격은 언젠가 터집니다. 팀에 계속 묻혀 있다가 올해 제가 터진 것처럼요.”
단순한 자신감의 표현 정도로만 생각했겠지.
생각보다 진지했던 일장연설에 기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이후 일곱 번째, 여덟 번째 기자를 지나 아홉 번째 기자의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세 번째의 지명을 받았다.
“김한울 선수가 올 시즌이 끝나면 다시 FA 권리를 신청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방금까지 하신 말씀을 종합해 보면 이미 원하와 3년 이상의 계약이 합의되어 있는 건가요?”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기자의 헛소리에 기자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성훈 선배와 우리 감독님은 물론, 심지어는 상대편 선수단 측마저도 무례에 얼굴이 굳어졌다.
이대로 두면 분위기가 좀 험악해질 것 같아 소요가 더 커지기 전에 마이크를 얼른 잡았다.
“아뇨. 계약하고 싶네요. 가능하면 원하에 남고 싶어요. 올 시즌 제 활약이야 다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다른 팀에서도 많이 탐낼 거예요. 그런 의미로 주님… 아니, 구단주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고개까지 숙여 보이자 굳어 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아, 겁나 센스 있었어.
개드립에 기자들 사이에서도 ‘하하’ 하는 분위기가 다시 생겨났고 감독님이 이어 마이크를 받아 방금 질문하신 기자님, 한울이가 원하 남으면 기자님 덕입니다 라는 위트로 질문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나머지 하나의 질문은 나와 있는 선수단 모두에게 하는 질문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변수를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상대 감독님은 본인 팀의 타격 부진을, 상대 주장과 1선발은 우리 팀의 타격을 이야기했다.
우리 감독님은 오히려 본인 투수진들의 부진을, 우리 주장님께선 상대 투수진의 약진을 꼽았고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난 내가 무너지는 것이라 답했다. 이 한마디로 꽤나 많은 것을 함축할 수 있으니까.
이후 진행자분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미디어 데이가 마무리되었고 양 감독님 간의 악수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열심히 찍어대기 바빴다.
미디어 데이까지 종료. 현재 시각 저녁 8시 50분쯤.
얼른 숙소에 가서 밥 먹고 자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내일을 대비하자. 내일 나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회장을 나섰다.
하지만 프로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출전하게 된 마음은 날 쉽게 재워주지 않았다. 이런저런 망상, 상상이 계속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기면 어떡하지. 한국 시리즈 우승해 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생각해도 행복 회로에 그칠 망상 같은 걸 계속 이어가다가 룸메이트인 이효재 선배가 뒤척이는 걸 보고 나서야 망상은 겨우 내 머릿속에서 꺼졌다.